# 508
군사 비밀 세부 기준 중 2급 비밀의 내용 중에 전략 무기 또는 유도 무기의 사용지침서 및 완전한 제원이 있다.
양만춘함의 변화는 이보다 상위에 있다 판단한 것이다.
다시 말해 2급 비밀에 속하는 전략 무기 및 유도 무기는 적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양만춘함의 경우는 적이 아직 모르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전략 무기 개발계획 및 운용 계획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신관의 이러한 판단은 지극히 올바르다. 그렇기에 나중에 심 소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는다.
진급 심사에 유리한 가산점을 받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2함대 사령부 통신실 장병들은 몇 차례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 물론 나중의 일이다.
현수가 대한민국 해군 전력을 업그레이드하고 그것을 실제로 확인하는 현장마다 파견되기 때문이다.
통신장교가 판단했듯 1급 비밀이 되기에 다른 사령부 통신실 장병들이 알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어쨌거나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엔 오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극히 일부지만 터져 나오려는 환성을 억지로 누르려는 이상한 현상이다.
아무튼 심흥수 소장이 바쁜 걸음으로 사령관실로 향할 때 현수가 모는 검정 소나타는 계룡대 인근에 당도했다.
“필승!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흐음, 나는 국회의원 홍진표라 하네. 국방장관님과 약속이 있어 왔으니 안내 부탁하네.”
“아!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위병 근무를 서던 병사가 황급히 위병소로 들어간다. 그리곤 확인 전화를 하는 동안 잠시 시간이 흐른다.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저기 보이는 저 차를 따라 들어가시면 됩니다.”
“흐음, 알겠네.”
둘이 안내받아 간 곳은 계룡대 육군참모총장실이다.
“홍 의원님,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내를 해준 이는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다.
중령이면 대대장급이다. 그런데 워낙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리 높은 계급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 홍 의원님, 어서 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중 눈에 익은 사람이 있다. 오정섭 국방장관이다.
군복 차림으로 앉아 있던 오 장관이 홍 의원을 보자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으응? 의원님, 옆에 있는 젊은 친구는 혹시…….”
“하하! 네, 제가 전에 그랬잖습니까. 장관님도 아는 사람이라고. 천지건설 전무이사인 김현수 맞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현수라 합니다.”
“오오! 이거 오늘 내가 스타를 만났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참, 이쪽은 송지호 육군참모총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홍진표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송지호라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반갑습니다. 텔레비전보다 실물이 훨씬 낫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자, 자리에 앉읍시다.”
“네, 장관님!”
모두가 착석하자 당번병이 음료를 내온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자 오 장관이 입을 연다.
“김 전무님, 이 군복은 어디서 만든 겁니까?”
“말씀 놓으십시오. 아직 새파랗게 젊습니다. 총장님도요.”
“험, 그럼 그러지요. 아니, 그러지. 그나저나 이 군복, 어디서 만든 건가?”
“이실리프 어패럴이라고 제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입니다.”
“홍 의원님으로부터 건네받고 오늘까지 계속해서 입고 있는데 효과가 정말 놀랍더군.”
“감사합니다. 좋은 평가를 내려주셔서.”
“항온 전투복이라 들었네. 설명해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항온 전투복의 개념은…….”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참모총장은 현수가 미리 꺼내놓은 전투복의 요모조모를 살피고 있다.
물론 귀는 활짝 열어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항온 기능을 갖는 겁니다. 참고로 지금 장관님께서 착용하신 것은 동절기용입니다. 하절기용 전투복은 별도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흐음, 설명 잘 들었네. 아주 좋더군. 전투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 근데 군납 추진은 하고 있는 건가?”
“아뇨. 현재는 군납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지?”
장관과 참모총장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설명대로라면 다른 전투복들은 아예 경쟁 상태가 되지 않는다.
의복이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군납을 추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했지요.”
“으음, 왜 그런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그건…….”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최세창 대령에게 샘플을 건넨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강철환이 계속해서 협박하고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군납이 추진되고 있지 않은 겁니다.”
“흐음, 최세창 대령, 선진식 소령, 기무사 출신 예비역 대령 강철환……. 총장님, 기무사령관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군수사령관도 같이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참모총장이 인터컴을 들어 지시했다. 물론 기무사령관과 군수사령관을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군을 대표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 지난일인 걸요.”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참모총장은 지그시 입술을 다문다. 기무사와 군수사에 한바탕 정풍(整風)이 불려는 조짐이다.
기다리는 사이에 주한미군에 납품 계약했음을 알렸다.
원래는 국군에 먼저 납품하려 하였으나 최세창 대령이 주한미군 제19전구지원 사령관 폴 헐리 준장에게 샘플을 보냈기에 어쩔 수 없이 맺은 계약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샘플을 줄 때 보안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했음을 전했다. 당연히 둘 다 얼굴이 붉어진다. 대노한 것이다.
“참, 이실리프 어패럴로 예비역 대령 강철환이 방문하여 노골적으로 기술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기술을?”
“네, 저도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겁니다만 여기서 같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흐음, 그럽시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수가 노트북을 꺼내 메일을 여는 동안 실내엔 정적이 흘렀다. 예비역이지만 대령이었던 자가 국가 비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함부로 빼돌린 것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는 사이에 메일의 MP3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여어, 요즘 자주 봅니다, 박 사장!”
“아! 강철환 대령이시군요.”
녹음되는 인물이 누구라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였나 보다.
“아! 현역은 아닙니다. 근데 김 전무는 어디 갔나 봅니다?”
강철환의 어투는 거리의 건달과 다를 바 없다. 시비 걸기 위해 비아냥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김 전무님이야 늘 업무가 바쁘니까요. 그나저나 오셔봤자 소용없다는데 왜 또 오신 겁니까?”
“왜요? 난 여기 오면 안 되는 사람입니까?”
강철환의 말끝이 슬쩍 올라간다. 슬슬 시비 걸기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저도 업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때나 불쑥 오시면 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내가 지금 업무 방해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완연한 시비조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허어! 이 사람 이거 아직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모양이구만. 내가 어디 출신인지 잊은 거요? 아님 듣고도 기억 못하는 바보인 거요?”
“……!”
박근홍 사장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강철환이 다시 입을 연 모양이다.
“뭐, 바쁘다니 긴말하지 않겠소. 항온 재킷에 관련된 기술을 넘겨주시오.”
“뭐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박근홍 사장의 반응이다.
“아! 이실리프 어패럴에는 섭섭지 않은 대가가 주어질 것이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오. 나와 내 부하들이 알아서 잘 할 테니 기술만 넘기시오.”
“…기술을 가져다 어쩌려는 겁니까?”
“어쩌긴, 돈 되는 기술이니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 이익이 남아 이실리프 어패럴에도 배당금을 줄 수 있으니 말이오. 안 그렇소?”
이 대목에선 마치 수천억을 벌어들인 거부처럼 거들먹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많이 판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팔 생각입니까?”
“당연한 것 아니오? 미국에도 팔고 옆 나라 지나에도 팔 것이오. 아! 시베리아 벌판의 로스케들에게도 팔면 괜찮겠군.”
“……!”
박근홍 사장은 한동안 대꾸하지 않는다. 어쩌나 보려고 던진 말의 반응치고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지나에 팔면 그게 곧장 북한으로 흘러들 수도 있다는 거 모르십니까?”
박근홍 사장의 이 말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 즉 이적 행위는 반역과 다름없다는 것을 주지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느물느물하게 빠져나간다.
“글쎄요?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무튼 기술을 넘기시오.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돈 벌게 될 것이오. 그나저나 김 전무는 언제 오지요?”
“그야 저는 모르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은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일 아침 일찍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갈지도 모르고요.”
“흐음, 이봐! 가서 내일 출국자 명단에 김현수 전무가 있나 확인해 봐. 있다면 몇 시 비행기인지 확인하고. 즉시 확인해.”
“네, 대장님!”
누군가 대답하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박 사장님, 좋은 말로 할 때 기술을 넘기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조사해 보니 아드님이 외국 유학 중이더군요.”
“……?”
“외국에선 가끔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더군요. 교통사고도 있고 강도를 당하기도 하지요.”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박 사장이 발끈한다.
“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강철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음색의 변화가 없다.
“뭐, 그럴 수도 있다는 말에 왜 이리 흥분하십니까?”
“끄으응!”
“기술을 넘길 땐 조금도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늦어지면 상황이 어찌 변할지 모른다는 걸 아십시오. 이건 경고입니다.”
“이이……!”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충고. 흥분은 몸에 해롭습니다. 그러니 김 전무에게 연락이나 빨리 하십시오.”
“……!”
“난 이만 갑니다. 오늘 내일 중으로 답을 줘야 할 거요.”
뚜벅뚜벅, 딸깍! 쿵―!
MP3 파일로 녹음된 건 여기까지이다. 재생이 끝났음에도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은 입을 열지 않는다.
대령이면 상당히 높은 계급이다. 그런데 이런 자가 군부에, 그것도 기무사에 머물렀다는 것이 어이없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군.”
“……!”
“기무사령관 언제 오나 확인해 주세요, 총장!”
“네, 장관님!”
면목이 없는지 송지호 참모총장이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편안히 앉아서 부관에게 확인시킬 사안이 아닌 때문이다.
“아까 미군에도 납품한다 했는데 단가는 어찌 됩니까?”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물음일 것이다.
“ACU 한 벌당 300달러에 계약했습니다. 헬멧과 전투화는 150달러씩에 했구요.”
“흐음, 벌당 36만 원 꼴이군요.”
국방장관은 새삼 걸치고 있는 군복을 살펴본다. 2011년 말부터 전군에 보급되고 있는 신형 전투복과 다를 바 없다.
다른 건 모르지만 항온 효과만은 분명하다.
전투력 향상은 기본이고 이것이 가져올 부수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돈이 아깝지 않다.
행정실의 냉난방비만 계산해 봐도 어마어마하다.
“참, 항온 내복이나 항온 체육복도 가능한가?”
“당연하지요.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건 얼마인가?”
국방장관이 바싹 다가앉는다. 흥미 있다는 뜻이다.
“항온 내복은 벌당 9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라! 그건 왜 그렇게 싸지?”
“이 가격은 저희가 보건복지부에 납품하는 가격입니다. 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 계층 노인 분들을 위한 것이지요.”
“흐음! 그렇다면 자네 회사의 이문은 좀 박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