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1
“안 맞춰주다니요?”
이실리프 무역상사 같은 거래처는 매우 드물다. 계속해서 주문량은 늘고 납품 즉시 전액 현금으로 지불한다.
그런데 고의적으로 납기를 지연시킨다는 뉘앙스이다.
“현재 추이를 살피는 중이지만 고의적인 것 같아요.”
“고의적이라……. 그럴 만한 개연성이 있나 보죠?”
현재의 거래처들은 현수와 은정이 같이 다니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약품의 주주가 되면서도 거래선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고 보고 드릴게요.”
“흐음, 알았습니다. 잘 살펴보세요. 또요.”
“그다음엔 별다를 게 없어요. 참, 거래처가 늘었어요. 새로 입사한 최미애 사원과 전혜숙 사원이 한 일입니다.”
“그래요?”
현수가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자 얼른 말을 잇는다.
“수출 상대는 말레이시아입니다.”
“말레이시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슬람 문화 국가이기에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된 덕이에요. 최미애 사원과 전혜숙 사원이 그곳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이번 일을 성사시켰어요.”
이은정 실장의 말대로 둘은 틈날 때마다 말레이시아 대장금 팬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성의있는 답변이었기에 수많은 질문이 쇄도했다. 덕분에 둘은 그 사이트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한약에 관한 질문이 올라왔다.
다음은 그중 가장 빈번한 질문 중 한 유형이다.
―한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건가요?
―한약은 몸에 해롭지 않은가요?
―한약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건가요?
둘은 한약의 우수성을 두루 설파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하던 둘은 급기야 전문 서적까지 뒤져서 근거를 찾아냈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나의 한의학과 조선의 한의학이 어찌 다른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에 흥미를 느낀 저쪽에서 샘플을 요구해서 그것을 보내주었다. 물론 각종 증빙 자료도 함께 동봉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말레이시아 광산 재벌인 앤드루 캄 회장이었다.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경기에서 자국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7억 2천만 원 상당의 금괴를 준다고 했던 인물이다.
그 대회에서 말레이시아는 아깝게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아무튼 앤드루 캄 회장은 직원들을 서울로 파견했다.
그 결과 상당히 많은 종류의 한약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면밀한 시장 조사를 마친 후 오더가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제법 많이 팔리는 한약들이다.
비록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수출은 성사되었다.
아직 효능을 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과를 얻은 최미애와 전혜숙은 요즘 거의 모든 외국의 대장금 사이트를 순회하며 답글을 남긴다고 한다.
더 많은 한약이 외국에 팔렸으면 하는 의도이다.
“흐음! 수고들 했군요. 발생되는 순이익의 10%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현수가 지급하려는 인센티브는 일회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앤드루 캄 회장과의 거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지급된다.
회사를 위해 애써준 직원들에 대한 보답이다.
“또 다른 사항은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 참, 지시하신 대로 라일라 아지즈 씨 주소와 연락처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들은 귀국했나요?”
“네, 오늘 아침 비행기로 돌아갔습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이실리프 어패럴로부터 샘플이 들어올 거예요. 그거 발송해 주고 수출 상담하세요.”
“네, 사장님. 근데 하나 여쭤볼 게 있어요.”
“뭐죠?”
6장 빨리 연락 좀 해주세요
“우리 회사, 종합상사로 개칭하는 건 어떨까요?”
“웬 뜬금없는 종합상사랍니까? 그러려면 상장부터 해야 하고, 총 수출액의 2% 이상을 달성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은 1975년 이래 수출 진흥책의 일환으로 이 같은 조건을 달성하면 종합상사로 지정해 줬다. 이럴 경우 세제나 금융 면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2012년 2월 28일까지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 총액은 5,310억 달러이다. 이중 2%를 달성하려면 연간 106억 2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해야 한다.
드모비치 상사와의 연간 거래액은 12억 달러 정도 된다. 여기에 천지약품 등과의 거래를 모두 합해도 어림도 없다.
그렇기에 가당키나 하느냐는 뜻으로 반문한 것이다.
“그랬는데 2009년에 그 제도가 없어졌어요. 따라서 명칭을 바꾸는 것엔 아무 하자 없죠.”
“그래도 그렇지 직원이라곤 달랑 몇 명밖에 없는데…….”
“이제 늘어나잖아요. 외국과 거래를 할 때 명칭이 중요할 때도 있구요. 그러니 개칭했으면 해요.”
“흐음, 이실리프 종합상사라…….”
현수는 무의식적으로 아래턱을 쓰다듬는다.
“조금 더 생각해 보구요. 그거 말곤 없어요?”
“네, 나머진 일상적인 업무 내용이에요.”
“알았습니다. 읽어보고 결재할게요.”
“네, 사장님.”
이은정 실장이 자리를 비우자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종합상사라는 어휘가 준 뉘앙스 때문이다.
개조된 엔진이 스피드에 장착되면 100억 달러 수출 정도는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탁월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자동차 수출액은 250억 1천만 달러이다.
1,700,364대로, 신차뿐만 아니라 중고차까지 포함한 것이다.
연간 100만 대쯤 생산하여 절반인 50만 대만 수출해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흐음, 종합상사라…….”
현수가 또 한 번 턱밑을 쓰다듬는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현재 자동차와 의약품, 그리고 화장품이 주력 상품이다.
러시아와 콩고민주공화국이 주요 교역 대상이다.
현재는 일방적으로 수출만 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선 첨단 무기를 들여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제 VA―111 쉬크발이 있다. 이것은 구 소련 시절에 개발된 초고속 어뢰이다.
스퀄(Squall, 돌풍) 어뢰, 또는 초공동어뢰(Super cavitation Torpedo)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징은 370㎞/h(200Knots)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속도이다. 탄두 무게 700㎏, 사거리 11∼15㎞ 정도이다.
3㎞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적 잠수함을 잡는 데 30초면 충분하다. 회피기동의 의미가 없어지는 강력한 무기이다.
이 밖에 컨테이너형 대함미사일 CLBM―K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거리 260㎞, 마하 0.8, 중량 140㎏이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컨테이너 자체에 전력이나 조준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 선박이나 바지선에도 실을 수 있으며, 트레일러에 실은 채 발사할 수도 있다.
심할 경우 러시아의 자랑인 타이푼급 핵잠수함을 수입할 수도 있다. 100Kt급 핵탄두 200개를 싣고 다니는 놈이다.
물론 푸틴의 허락이 있어야 할 무기들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러시아의 전략 무기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미국보다 러시아제 무기 쪽에 무게를 두는 것엔 이유가 있다. 푸틴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태도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2013년에 나로호를 발사한 바 있다. 이때의 발사 기술은 러시아의 것을 썼다.
여담이지만 대한민국이 신무기를 도입하려 하면 미국은 우방국이라면서 자신들의 것을 구입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나로호 발사 추진단장은 일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 우주 로켓 개발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한 바 있다.
이때 미국은 ‘한국이 우주 로켓을 개발하는 것과 개발 능력을 갖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하여 가장 저렴한 값을 적어낸 지나에 의뢰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이 반대했다. ‘지나는 천안문 사태로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와 거래하면 미국산 위성 부품을 안 팔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로켓을 쓰는 것도 반대했다. ‘러시아 로켓 기술을 수입하려다 역시 제재를 받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러시아와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계약 내용 중 혹시 기술 이전이 되는 것은 없느냐?’는 질의를 러시아에 했다.
이런 이유로 막대한 돈을 들여 나로호를 발사하면서도 기술 이전을 받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자기 이익만 취하려 하니 언젠가는 우리를 등칠 수 있어. 지나는 동북공정을 하고 일본 놈들이 독도를 노리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해.”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세계전도에 시선을 주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작은지 한눈에 보인다.
“욕심 사나운 지나 녀석들도 늘 견제해야지. 그러려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늘어야 하는데. 흐으음!”
현수는 턱을 괸 채 잠시 상념에 빠졌다.
상당히 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지만 스스로를 약소국으로 여기고 있다. 주변에 강대국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대한민국이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에 있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힘이 세서 나쁠 건 없지. 그나저나 양만춘함은 어떤 결과를 빚어냈을까 궁금하네.’
흘깃 휴대폰을 바라보니 배터리가 모두 나간 상태이다.
“이런…….”
배터리를 갈아 끼우니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딩동! 문자 왔숑. 딩동! 문자 왔숑. 딩동! 문자 왔숑!
“헐!”
김상우 대령, 고복현 대위, 심흥수 소장, 홍진표 의원이 보낸 문자만 30여 통이다.
―긴급 연락 바랍니다. 대령 김상우.
―김 전무님, 양만춘함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습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소장 심흥수.
―연비 끝내줍니다. 고복현 대위.
―김 전무, 해군 쪽에서 계속 연락이 오네. 이 메시지 보는 대로 연락해 주시게. 홍진표 의원.
문자를 보는 동안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해서 들어오고 있다.
“끄으응! 괜한 일을 한 건 아닌지 몰라.”
딩동! 문자 왔숑! 딩동! 문자 왔숑! 딩동! 문자 왔숑!
―김 전무님, 다치신 데는 없는지요? 차는 걱정 마십시오. 울림네트워크 대표 박동현.
―김 전무, 연락이 안 되는군. 금일 중으로 본사에 들르게. 천지건설 사장 신형섭.
―김 전무님, 군복 납품 관계로 만났으면 합니다. 시간 날 때 공관으로 연락 주십시오. 국방장관 오정섭.
“허, 이거야 원,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군.”
모든 문자를 확인한 현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드미트리부터 만나고.’
해군과 육군 모두에 용무가 있으나 해군 먼저이다. 모르긴 해도 심흥수 소장 등은 답답해 미치는 중일 것이다.
평범했던 구축함이 느닷없이 스텔스 함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연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12분지 1로 줄었으면 좋겠는데.’
똑, 똑, 똑.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노크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린다.
“사장님, 드미트리 씨께서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안으로 모시세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드미트리가 환히 웃으며 들어선다.
“보스, 오랜만입니다. 보기 좋습니다.”
“어서 오세요.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악수를 하며 덕담을 했다.
“자, 앉죠.”
“네, 보스.”
“근데 그 보스 소리는 좀 빼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특명이라서요.”
싱글거리면서 웃는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특별 손님이자 사위가 된 현수는 조직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는 쉐리엔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조직에 상당히 많은 자금이 흘러든다고 한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이전의 레드 마피아 보스와는 사뭇 다르다. 음지보다는 양지 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