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4
그러면 방북 이유를 밝혀야 한다.
사실을 숨기면 온갖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그래서 직접 방문은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번 기회에 자신에게 테러를 지시한 삼합회를 손볼 생각이다. 벌써 두 번째이니 그냥 놔둘 일이 아니다.
마냥 당하고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다만 하나, 몸조심하게.”
“네, 그건 걱정 마십시오. 러시아에서 저에 대해 통보를 했을 테니 함부로 건드리진 못할 겁니다.”
“그래, 그랬겠지. 그래도 주의하게. 올 초에 어땠는지 알지?”
“네, 전쟁 직전까지 갔었지요.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걱정되네.”
“괜찮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만날 사람이 있거든요.”
“만나? 누구를?”
현수가 북한에 친분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러시아 외무부 그리고리 로그비노프(Grigory Logvinov) 북핵 담당 특임대사입니다. 누군지 아시죠?”
“자네가 북핵 담당 특임대사를 만나?”
의외의 인물이 언급되었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현수가 어떻게 그와 연결이 되었는지는 가늠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싱긋 웃는다.
“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2013년 2월 유럽 연합(EU)은 핵 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금융 및 무역 제재와 자산 동결, 여행 제한 등의 강력한 제재에 합의했다. 이때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반대를 했다.
지나가 북한으로 가는 석유와 식량을 제한하면서 길들이기에 나섰던 시기이다.
북한 입장에선 어려울 때 유일하게 편들어준 우방이다.
따라서 아무리 간이 커진다 해도 러시아의 특임대사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다.
“흐음, 그건 그렇고 말이네.”
신 사장이 뭔가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하려는 기색을 보인다.
“그냥 편히 말씀하십시오.”
“좋아, 브라질 재건축 사업 말이네. 그거 아무래도 경쟁력이 없는 것 같네. 자네가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지건설은 요즘 현수가 발주하거나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 네 건으로 창사 이래 최대 활황이다.
1. 3,000㎢에 달하는 비날리아 지역 거주 시설 건설 및 농지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수만 채의 집과 도로, 각종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상하수도 설치 등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2. 1,500㎢에 달하는 반둔두 지역 거주 시설 건설 및 농축산지 개발 역시 그러하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물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주택뿐만 아니라 축사 및 임가공 공장, 그리고 냉장창고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잉가댐 건설 및 수력발전 시설 건설도 엄청난 공사이다.
4. 킨샤사―비날리아 간 총연장 2,432㎞ 고속도로 건설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엄청난 토목공사이다.
이 밖에 국내에 건설 중인 수십 종 아파트와 각종 빌딩 신축 공사, 지하철 공사, 토목 공사 등이 있다.
다른 건설사들은 지독한 불경기에 시름이 깊어가지만 천지건설만 독야청청 계속해서 사람을 뽑는 중이다.
인력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공사와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도 수주될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공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것 역시 엄청나게 큰 공사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분당 정도 되는 신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뽑아놓은 사람들에게 급여를 지불하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사 끝났다고 자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회사 입장에선 계속된 일감이 있어야 한다.
현수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해외영업부 최 부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하여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생각 중입니다.”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네.”
신 사장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환히 웃는다.
아마도 이창진 천지건설 회장이나 이연서 천지그룹 총회장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세계 각국의 유수한 건설사들이 저마다의 장점을 내세워 수주하려고 할 겁니다.”
“그래, 지금 그러고 있지.”
신 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어야 유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확실한 차별화?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자는 건가?”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서 시름이 깊네. 설계실과 업무지원팀의 인력을 풀가동했지만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네.”
“리우데자네이루는 더운 지역입니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작년엔 체감온도가 50℃에 육박하던 때도 있더군요.”
“그래, 엄청 더울 때도 있지. 그래서 에어컨은 필수이네.”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항온 의류를 옵션으로 수출하면 어떨까 합니다.”
“항온 의류를 옵션으로 한다고?”
“네, 그것만 입고 있으면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덥다는 느낌이 훨씬 덜해질 테니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음, 항온 의류를 옵션으로 한다…….”
신 사장은 턱밑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생각한다. 수많은 상념이 스치고 지날 것이다.
현수는 망설이다 한마디 더했다.
“새로 지어질 주거 공간에 특수한 장치를 부착하여 바퀴벌레나 모기, 그리고 쥐 같은 것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기가 엄청 많다는 소린 들었네만 그건 방충망으로 해결되지 않는가?”
“한국에도 집집마다 방충망은 있습니다. 그래도 물리잖아요. 제가 말씀드린 건 도시 전체가 대상입니다. 다시 말해 아파트 밖이라도 모기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해보자는 거죠.”
“도시 전체를? 그럴 방법이 있나?”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발생시키면 곤충이나 쥐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초음파를 발생시켜?”
“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겁니다. 상품으로 개발되어 나온 것들도 상당히 종류가 많고요.”
“흐음, 그걸 도시 전체에 하려면…….”
엄청난 수량이 엄두가 나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같은 순간 현수 역시 생각에 잠겼다.
신 사장의 생각처럼 엄청난 수량의 초음파 발생 장치를 사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매우 번거롭고 유지 보수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생각해 낸 것이 증폭 마법이다. 발생된 초음파가 미치는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면 수량이 많이 줄어도 된다.
둘 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에 조인경 대리가 뭔가 보고하러 들어왔다가 슬그머니 나간다.
대화하다 잠이라도 든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신형섭 사장이다.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이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항온 아파트는 안 되나?”
“네?”
“자네 말대로 리우데자네이루는 습하고 더운 곳이네. 만일 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아파트나 빌라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묻는 말이네.”
“……!”
현수는 잠시 대꾸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념이 순식간에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신축될 아파트와 빌라 등은 엄청난 숫자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건축물에 항온 마법진을 설치하자면 못할 일도 없다.
마법진이야 처음에 하나 만드는 것이 번거로울 뿐 퍼펙트 카피 마법으로 얼마든지 복제 가능하다.
문제는 마법이 유지되도록 마나를 공급할 마나석이다.
지금껏 멀린이 남겨준 마나석과 유카리안 영지에서 가져온 것들이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멀린의 마법은 모두 대단히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여 다른 마법사라면 중급 마나석이 필요한 곳에도 하급, 또는 최하급 마나석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마나 집적과 오토 리차지 마법을 함께 구현시키기에 수명이 다한 마나석을 교체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건축되는 건축물에 항온 마법진을 적용했을 때의 문제점은 마나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뿐이 아니다.
사실 항온 마법진은 현대의 물리학과 궤를 달리한다.
지금까지는 몇몇 의복에만 이것이 적용되기에 별 문제가 없다. 만일 드러내 놓고 마법진이 사용된다면 세상의 수많은 과학자가 달려들 것이다.
자신들이 아는 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다른 나라의 군부나 정보기관 등이 개입되면 그때부터는 골치 아프다.
개인의 자유는 사라질 것이고, 기술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물론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세 겹의 앱솔루트 배리어는 머리 위에서 벙커버스터가 터져도 끄떡없게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해 총칼로는 현수를 제압할 수 없다. 오히려 미티어 스트라이크 같은 대단위 공격 마법에 의해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어쩌다 감옥 같은 곳에 갇힌다 하더라도 텔레포트나 워프 마법으로 얼마든지 도주할 수 있다.
심한 경우 아예 차원 이동해 버리면 끝이다.
전 인류가 오로지 현수 하나만을 찾기 위해 지구를 샅샅이 뒤진다 하더라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지구에서의 평온한 삶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수는 마음을 굳혔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건축물에는 그 기술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항온 이불이나 커튼은 어떤가? 그것도 섬유로 만든 것이니 가능하지 않나?”
신 사장은 리우데자네이루의 공사를 꼭 따내고 싶은 모양이다.
“섬유에 그 기술이 적용될 수는 있지만 그 근처만 가능합니다. 공간 전체를 어찌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런가?”
신 사장이 다시 턱밑을 쓰다듬는다. 같은 순간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상념이 있다.
모스크바와 킨샤사의 저택, 그리고 곧 조성된 서울 근교의 저택엔 항온 마법과 초음파 발생 마법진을 설치해야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들과 가족들이 함께 거주할 공간이니 상급 마나석이 소모되는 한이 있더라도 꼭 그럴 생각이다.
이 밖에도 침입자를 대비한 각종 마법진으로 도배될 것이다.
담장을 짚을 경우를 대비한 일렉트로닉 쇼크 마법은 애교가 될 것이다. 어찌하여 담을 넘는 경우 곧바로 홀드퍼슨 마법진에 의해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다.
유리창은 총으로도 깰 수 없을 강화 마법이 적용될 것이다. 벽면과 지붕 역시 강화 마법진으로 보호된다.
웬만한 폭탄이나 미사일로는 흠집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루전 마법은 침입자로 하여금 사방에서 다가오는 맹수를 보게 만든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랑이나 늑대, 곰 등을 보는 순간 웬만한 사람은 오줌을 지리며 기절할 것이다.
특수부대원 아니라 그들의 교관이 온다 해도 이겨내긴 힘들 것이다. 사방팔방을 메운 수십 마리의 호랑이 등과 싸워 이겨낼 재주가 누구에게 있겠는가!
게다가 환상 마법이므로 호랑이 등은 총으로도 제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맹수가 달려드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침입자가 단순한 도둑이라면 경찰에 넘겨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억 삭제 마법인 메모리 일리머네이션으로 모든 기억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경우 백치가 된다.
“아무튼 묘안을 당부하네. 자네라면 뾰족한 수를 낼 수 있을 것이네.”
“생각을 해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방금 전 신 사장의 말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은 바 있다.
항온 이불이 그것이다. 여름과 겨울, 또는 야외에서 아주 유용할 듯싶다. 또 하나의 상품이 구상된 것이다.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