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16화 (516/1,307)

# 516

“흐음, 다음은 6대 난제인가? 문제가 어디에 있지?”

인터넷으로 문제를 검색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삐이꺽―!

“아! 박 과장님.”

노크 소리에 이어 고개를 내민 사람은 박진영 과장이다. 현수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전무님, 퇴근 안 하십니까?”

“네? 지금 몇 시인데요? 어라, 저 시계 고장 났나요?”

무심코 시선을 돌려 벽을 바라보니 3시 12분이다.

“아뇨. 정상입니다.”

“네? 그럼 지금 새벽이란 말이에요?”

“네, 새벽 3시 12분, 아니, 이제 3시 13분이네요.”

“헐! 근데 왜 아직 여기 있어요?”

현수의 말에 박 과장은 뻗친다는 표정이다.

“전무님이 퇴근 안 하시는데 어떻게 합니까?”

“네? 그럼 김지윤 대리 등도 다 있는 거예요?”

“네, 지금 이 건물엔 경비 빼고 우리 다섯뿐입니다.”

“헐! 이런!”

현수는 황망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컴퓨터를 껐다.

“미안해요. 뭐 좀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신 건데요, 뭐.”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지은 죄가 있기에 얼른 밖으로 나왔다.

김지윤 대리, 황만규 주임, 그리고 구본홍 사원이 바라본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다.

빈 책상은 강연희 대리 자리뿐이다.

“아이고, 이거 미안합니다. 제가 안에서 뭘 좀 하느라고요.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어서 퇴근하세요.”

“전무님, 황만규 주임은 집이 분당입니다. 구본홍 사원은 성남이구요. 지금 가면 네 시 넘어야 당도할 겁니다. 그럼 두어 시간쯤 자고 다시 출근해야 합니다.”

“……!”

현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드는데 김지윤 대리와 시선이 마주친다.

“김 대리는 집이 가까우니…….”

말을 이으려는데 김 대리가 먼저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집에는 철야 근무한다고 이야기해 놨습니다.”

“끄으응!”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남의 집 귀한 딸을 집에도 못 가게 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다.

“이렇게 합시다. 일단 모두 퇴근하세요. 그리고 내일은 근무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제가 책임질 테니 퇴근하고 모레 나오세요. 내일 꼭 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안 그런가요?”

“전무님…….”

“김 대리는 저하고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요. 그리고 이건 택시비 하세요.”

지갑을 열어 5만 원권 지폐를 각기 한 장씩 나눠주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무님!”

“아뇨. 괜찮지 않아요. 저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있었는데……. 참, 배고프겠군요. 가기 전에 해장국 한 그릇씩 할까요?”

“좋죠. 좋은 생각이십니다.”

갑자기 박 과장이 중간에 끼어든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해장국 먹은 다음 택시 타고 퇴근합시다. 우리가 언제 그래보겠습니까? 안 그래요?”

“……!”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박 과장이 셋과 일일이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가시죠. 근데 해장국도 전무님이 사시는 건가요?”

“네? 아, 그럼요. 제일 맛있는 집으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옷 속을 파고든다. 하루 중 가장 추운 시각이라 그런지 싸늘하다.

박진영 과장 등 남자들은 양복 깃을 세워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해보려 하지만 김지윤 대리는 못 그런다.

여자인지라 패션에 신경 써 옷도 얇다.

현수는 슬쩍 김 대리의 뒤쪽으로 다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실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 대리의 앞쪽에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실드가 쳐진다. 그와 동시에 파고들던 찬바람이 사라진다.

“……?”

“좀 춥죠?”

“조금 전까진 그랬는데 이젠 괜찮습니다.”

“김 대리 혹시 해장국 같은 거 못 먹고 그러는 거 아니죠?”

“저 음식 안 가려요. 보신탕만 빼고 거의 다 먹어요.”

“다행이네요.”

일행이 간 곳은 회사 인근에 위치한 해장국 집이다. 추운 데 있다 따뜻한 곳에 들어와 그런지 모두들 얼굴이 붉어진다.

해장국과 수육을 주문하곤 소주도 한 잔씩 걸쳤다.

“김 대리, 전처럼 너무 많이 마시지 마요.”

“네, 과장님.”

김 대리가 고개를 숙이며 흘러내린 귀밑머리를 쓸어올린다.

“……!”

현수는 무언가를 보았지만 티내지 않고 대화를 주도했다.

일행은 권커니 잣거니 하며 소주 세 병을 비웠다. 두어 잔을 받아 마신 김지윤 대리의 얼굴이 더 붉어져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자주 시선을 주는 사내가 있다. 박진영 과장이다. 슬쩍슬쩍 바라보는데 그 시간이 조금씩 늘고 있다.

눈빛을 보니 호감이 실려 있다. 김지윤 대리에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박 과장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 집안 괜찮고 능력도 있고.’

박진영 과장을 기획영업단에 받아들인 후 현수는 인사부에 박 과장 관련 인사 파일을 요구했다.

그것을 열람해 본 결과, 동기보다 빨리 진급한 것은 박준태 전무라는 존재 때문만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신입사원 채용 때 필기시험 및 면접 점수 1위였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의 성적도 최고이다. 이후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리 때도 그래서 동기들보다 먼저 진급한 것이다.

기획 3팀장으로 있을 때의 인사고과도 괜찮다.

자신과 연희와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치졸하게 군 것만 빼면 다 괜찮다. 얼굴도 그만하면 호남형이다.

김지윤 대리 역시 상당히 높은 점수로 입사했다. 학력도 좋고 얼굴도 상당히 예쁘다. 몸매 역시 괜찮다.

잠시 후 박 과장이 화장실로 가기에 따라나섰다.

“박 과장님.”

“네, 전무님.”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선 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김 대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네?”

“김지윤 대리, 업무 능력 좋죠?”

“그럼요. 우리 기획영업단에 꼭 필요한 인재입니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아서가 아니구요?”

“예? 물론 예쁘지요. 천지건설 3대 미녀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래요? 전엔 2대 미녀라 들었는데.”

“김 대리가 눈이 좀 나빴나 봐요. 그래서 늘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얼마 전에 라식 수술을 했대요.”

“아! 안경을 벗으니까 비로소 미모가 드러난 거군요?”

“네. 참 예쁜 얼굴이죠.”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다시 좌석으로 돌아온 현수는 곁에 앉은 김 대리에게 슬쩍 말을 건다.

“김 대리, 박 과장님 일 잘해요?”

“네? 아, 그럼요. 얼마나 열심인지 몰라요. 늘 솔선수범이세요. 웬만하면 저희들에게 미룰 일도 본인이 알아서 다 해요.”

김 대리는 직원들의 평가를 듣고 싶어 그런가 싶은지 조심스런 표정이다.

“일 잘하고, 집안 괜찮고, 인물도 좋고, 성격도 괜찮은 것 같은데, 내 평가가 맞는 건가요?”

“그, 그럼요. 박 과장님 정말 괜찮은 분이세요.”

말을 하며 슬쩍슬쩍 박 과장을 바라본다.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친 현수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일부러 소리친다.

“아이구, 이런!”

“왜 그러세요?”

“박 과장님, 새벽에 임원 조찬 회동이 있는 걸 깜박했네요. 아무래도 전 퇴근 못할 것 같습니다.”

“네?”

“저 대신 박 과장님이 김 대리를 집까지 에스코트해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래줄 수 있죠?”

“네? 아, 네에. 그럼요. 알겠습니다. 제가 하죠.”

“어머,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러니…….”

김 대리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아닙니다. 여자 혼자 이 시각에 움직이는 거,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조금만 돌면 되니까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박진영 과장의 말에 김 대리가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그래요. 여자 혼자 이 시각에 다니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죠. 박 과장님이 잘 모셔요.”

“네, 그럼요!”

현수의 시선을 받은 박 과장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펜시브 참은 그렇고 그냥 참(Charm) 정도면 되겠지?’

전자를 구현시키면 김 대리와 박 과장은 그 순간부터 열렬한 연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씩 더 늘어나게 해주는 것뿐이다.

두 사람의 확실한 내심을 모르면서 괜히 엮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수준을 조금 낮춘 것이다.

해장국을 모두 비운 일행이 차를 타러 밖으로 나왔다.

현수와 황만규 주임, 그리고 구본홍 사원은 회사 근처 사우나에 갔다가 퇴근하기로 했다.

박 과장과 김 대리가 택시에 탈 때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참(Charm).”

“네? 뭐라고요?”

“참, 김 대리와 박 과장 모두 내일은 푹 쉬라고요.”

“네, 전무님.”

박진영 과장이 사우나로 되돌아온 것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통행량이 적은 새벽이다.

왕복 3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1시간 만에 왔다는 것은 30분 동안 데이트를 했다는 뜻이다.

아무튼 현수를 보자마자 탄성부터 지른다.

조각 같은 상체 근육과 탄탄해 보이는 하체 근육에 저도 모르게 낸 탄성이다.

“우와! 전무님! 몸 진짜 좋으시네요!”

황만규 주임과 구본홍 사원이 했던 말과 똑같다.

“에구! 그러는 박 과장님은 운동 좀 하셔야겠습니다.”

“하하, 네!”

살짝 솟은 아랫배를 문지르며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넷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우나를 즐겼다. 그리고 셋은 곧장 퇴근했다.

사무실로 다시 들어온 현수는 아까 보다 만 수학 난제들을 체크했다. 그리곤 문제 풀기에 몰두했다.

그전에 문 앞엔 특별한 용무가 아니면 들어오지 말 것과 시간 되면 퇴근하라는 쪽지를 붙여두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6대 난제는 아직까지 지구의 어떤 수학자도 풀지 못한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현수는 하나하나 해결해 갔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세 가지나 있다.

첫째는 비약적으로 좋아진 두뇌 덕분이다.

IQ 255는 세계 최고로 명석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마법과 접목된 아르센식 수학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센 대륙의 수학은 지구와 다르다.

대수학 쪽은 약하지만 기하학 쪽은 상당히 강하다.

마법을 구현시키기 위한 마나의 배열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1서부터 10만까지 더하기엔 약하지만 미적분은 암산으로 해결할 정도이다.

셋째, 접근 방법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Stereotype]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사람들의 전체 집단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개인적 속성에 대한 일련의 신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사과와 과도를 주고 이등분해 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꼭지 쪽에 칼을 대어 잘라낸다.

사선으로 벨 수도 있고 가로로 벨 수도 있으며 지그재그 형식으로 반분할 수도 있다.

6대 난제를 접한 수학자들 역시 고정관념이 있다. 그렇기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여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다르다.

보통의 접근 방법은 남들도 다 해보았으나 실패했을 거라는 전제부터 했다. 그리곤 아주 특이한 접근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니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후와아! 다 풀었다. 후후후!”

현수는 후련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널린 A4 용지를 주섬주섬 정리했다. 어떤 문제는 40장이 필요했고, 어떤 문제는 100장이 넘게 필요했다.

평균적으로 난제 하나당 대략 80장 정도 소요되었다.

아무렇게나 쓱쓱 쓴 게 아니라 고등학교 다닐 때 미적분을 풀 때처럼 차근차근 풀이를 쓴 게 그렇다.

500장 가까운 A4 용지를 든 현수는 싱긋 웃음 지었다.

“후후! 이 정도면 책 한 권 내고도 남겠군.”

똑, 똑, 똑!

“들어와요.”

“좋은 아침입니다, 전무님! 이거 드세요.”

들어선 인물은 사장 비서실의 조인경 대리이다. 급히 오느라 문 앞에 붙여놓은 쪽지를 못 보았기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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