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18화 (518/1,307)

# 518

누구든 흥미가 있으면 풀어보라는 뜻이다.

수재들만 모인 학교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홀로 복도 청소를 하던 윌은 간단하게 풀어냈다.

교수는 학생 가운데 누군가가 풀었나 싶어 새로운 문제를 적어놓았다. 이 문제 역시 아무도 손을 못 댄다.

걸레질을 하던 윌이 이 문제를 푸는 것을 우연히 본 램보 교수는 낙서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쫓아내려 다가갔다.

그런데 윌이 쓰고 있는 것은 그 문제의 유일한 풀이였다.

램보 교수의 각별한 관심을 받게 된 윌은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되고, 결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이것들, 내 동기들과 같이 검토해도 되겠는가?”

“네?”

“2002년 필즈상 수상자인 미국의 블라디미르 보에보토스키라고 있네. 밀너의 가설을 새로운 방법으로 증명한 친구지. 블록―카토의 가설도 증명했네.”

“……!”

“프랑스의 로랑 라포르그는 랭글런즈 추측의 특수한 경우를 해결했네. 정수론과 해석학의 새로운 연관성을 제시한 친구지. 이 친구도 2002년 필즈상 수상자이네.”

“……!”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것이다. 4년에 한 번 주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풀이를 이들이 같이 봐준다면 영광이기에 현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참, 기하학에 혁명적인 공로를 세운 옛 소련 출신 미하일 그로모프 뉴욕대 교수님에게도 한 부를 보내겠네. 2009년에 아벨상을 받은 분이지.”

아벨상은 노르웨이의 천재 수학자 아벨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21세기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최고 권위의 수학상이다.

필즈상과 달리 나이 제한도 없으며 매년 수상자를 선정한다.

“흐음, 그리고 포항공대 수학과 박현주 교수에게도 보내겠네. 내년에 열릴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필즈상을 받을 것으로 유력한 사람이지.”

“……!”

너무도 쟁쟁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었기에 현수는 멍한 표정이다. 필즈상와 아벨상 수상은 수학계에서 바라보는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현수가 대답이 없자 교수가 실소를 짓는다.

“난 실력이 없어서 꿈도 못 꾸는 상이지. 허허!”

교수가 짐짓 너스레를 떤다. 보아하니 방금 언급한 사람들과 막역한 사이인 듯싶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논다는 뜻이다.

따라서 교수 역시 쟁쟁한 실력자일 것이다. 하긴 MIT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따온 사람이니 어찌 평범하겠는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검토하도록 애를 쓰겠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그나저나 오류가 너무 많이 발견되어 교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냐, 아냐! 내가 보니까 아주 제대로 잡았어. 나머지 것들도 이것과 같이 참신하다면 자넨 아주 큰일을 하는 것이네.”

“큰일은요, 무슨…….”

세계의 어느 수학자도 풀지 못한 난제 여섯을 모두 풀어낸 일은 엄청 대단한 일이다.

축구를 예를 들자면 6회 연속 월드컵 우승과 비교된다.

야구로 치자면 WBC 결승전 경기를 노히트 노런으로 연속해서 여섯 번 우승한 것이다.

골프는 18홀을 전부 홀인원한 것과 같고, 마라톤은 세계 기록인 2시간 2분 38초를 깨고 1시간 2분 38초 만에 들어온 것과 비슷할 것이다.

“쯧쯧! 그나저나 박 교수 참 안되었네.”

교수는 느닷없이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네? 그게 무슨……?”

“포항공대의 박 교수 말이야. 내년 필즈상 수상자로 유력했는데 아무래도 자네 때문에 물 먹겠어.”

“……?”

“아무튼 일곱 개 중 두 개만 성공해도 아벨상도 자네 것이 될 것이네. 울프상과 가우스상도 가능성이 높고.”

울프상은 아벨상이 생기기 전까지 수학 부문의 노벨상에 가장 가까운 수학상으로 간주되던 것이다.

가우스상은 국제수학연맹이 수여하는 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수학자에게 주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껏 필즈상, 아벨상, 울프상, 가우스상을 모두 수상한 수학자는 없다.

따라서 교수의 말대로 된다면 엄청난 영광일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엔 이런 상 수상자가 전무한 상태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넷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면 대단한 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올림픽에서 네 번 연속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도 훨씬 큰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은 세 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있고, 한 명의 가우스상 수상자, 세 명의 울프상 수상자가 있다.

지나도 한 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있다.

“보안은 철저히 유지할 것이니 걱정 말고 가게.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가야지. 그리고 정말 수고했네. 자네 덕에 우리 대학의 명성이 높아지겠어.”

“틀린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건 우리가 알아서 짚어낼 것이네. 그러니 조금 쉬게. 이거 푸느라 엄청 고생한 거 다 아네.”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검토 부탁드립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시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닐세. 영광이네. 세계 최초로 일곱 난제의 풀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네. 그러니 오히려 자네가 고맙지. 고마우이. 날 찾아줘서.”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현수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비켜선다.

“아이고, 참! 교수님, 저 교수님 제자입니다. 잊으셨어요? 스승이 제자에게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닐세. 이건 내 학구적 갈증을 풀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뜻이네. 그리고 이걸 처음으로 검토하는 영광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고.”

“교수님…….”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교수를 바라본 현수는 울컥하는 기분이다. 괜스레 눈두덩이 뜨뜻해지고 콧날이 시큰하면서 눈물이 찔끔 솟으려 한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학자의 전형을 보는 상황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슬쩍 눈물을 감췄다.

캠퍼스를 빠져나온 현수는 가까운 사우나에서 잠시 쉬었다.

대한의약품을 방문할 생각인데 집에 들렀다 가기엔 마땅치 않은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 * *

“에구, 제가 좀 늦었지요? 미안합니다. 깜박 잠이 들어서.”

“하하! 괜찮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현수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민윤서 사장이다.

“너무 바빠서 몸이 피곤한 모양입니다, 전무님.”

연구실 김지우 박사가 환히 웃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전 9시에 만나자는 문자에 그러자고 답해놓고 10시 반이 돼서 당도했기에 현수는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하여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셋이 자리에 앉자 비서 아가씨가 생강차를 내온다.

생강의 매운 맛은 세균을 막아주며 가래를 삭여주고 두통 방지와 손발이 차가운 수족냉증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

아울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어서 가래와 기침 증상 완화로 감기 예방에 좋다.

“흐! 향이 좋군요.”

“네, 몸에 좋은 거지요.”

민윤서 사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나저나 저를 호출하신 이유가 뭐지요?”

“그렇게 바쁘십니까?”

“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민 사장이 또 웃는다.

“바쁜 줄 알지만 쉬엄쉬엄 하시라는 뜻입니다. 음식도 급히 먹으면 체하잖아요.”

“아, 바쁜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럽니다.”

“하하! 그래요? 그렇다면 얼른 말씀드려야죠. 우선 미라힐에 관한 보고입니다. 미라힐 희석 농도는 3.65%가 임계점인 듯합니다. 그것보다 옅으면 효과가 확연히 떨어지고 넘으면 너무나 확실히 나타납니다. 그래서 3.65% 희석 액을 건강 음료로 제조했으면 합니다.”

“제품 출시 전에 행해야 할 각종 검사는 다 하신 겁니까?”

“그럼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제가 합성해 드린 효소들은 양이 충분한가요?”

“그렇지 않아도 그걸 말씀드리려 합니다. 더 만들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합성은 안 되는 건가요?”

“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조만간 만들어 드리죠. 충분한 양을 제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다음은 청향에 관한 건입니다.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공기정화 장치를 사용하여 제조했습니다. 용기도 변경하였고요. 물론 재활용 가능한 용기입니다. 이겁니다.”

김지우 박사가 건넨 것은 이전에 말했던 그 모습이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만드셨네요. NOPA와 홍익인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국내 발매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는 중입니다.”

“네? 왜요?”

“누군가 의사협회와 약사협회에 로비를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국내 시판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여 미국에 현지 법인을 만들어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먼저 받을 생각입니다.”

“흐으음! 그거 신약 승인 받으려면 성분과 기술이 공개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직 확실히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민 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만일 기술이나 성분 전부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라면 승인 신청을 하지 마세요. 그렇게 저자세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럼 시판할 수가 없는…….”

“갖고 있는 기술은 어디 가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의약품은 꼭 미국이 최고인 것은 아닙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또는 에티오피아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약효만 뛰어나면 다음은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

“그러니 요건이 맞지 않으면 NOPA와 홍익인간은 잠시 접어두세요. 다른 나라에서 만들면 되니까요.”

“……!”

민 사장과 김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같으면 NOPA나 홍익인간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실마리를 잡으면 사운을 걸고 개발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게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릴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전의 의약품들이 러시아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회사는 굴러간다.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을 남기는 쉐리엔도 있다. 그래서 대한의약품의 덩치를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원료인 쉐리엔만 지속적으로 공급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쉐리엔이 출시된 이후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일본, 러시아, 지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이에 대한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대체 무엇이 함유되어 있기에 그런 효과를 내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들은 쉐리엔이 어떠한 특허도 취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성분 파악이 되면 베껴도 된다.

지나의 제약사 가운데 하나는 성분 파악이 되는 즉시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 특허를 출원할 생각이다.

이게 통과되면 대한의약품에 로열티를 내고 팔던지 생산 중단하라고 할 생각이다. 적반하장인 듯 보이지만 엄연한 특허권자로서의 요구이다.

이런 마음을 품게 된 이유는 대 지나 쉐리엔 수출 할당량이 너무나 적어서이다.

쉐리엔은 발매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리냐의 늘씬한 몸매를 잘 연출한 CF 덕이다.

물론 확실한 체중 감량 효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약품은 쉐리엔 발매를 하면서 마트를 이용했다.

전국적인 유통망이 없기에 백두마트 같은 할인마트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대형 할인마트에선 상당히 높은 이윤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정리되었다.

쉐리엔의 정가는 전국 동일이다. 마트는 매출액 대비 10%의 이익만을 챙긴다. 대한의약품은 납품과 매대 정리만 맡는다.

이는 조경빈 백두마트 상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국내 판매 이외엔 오로지 러시아에만 수출했다. 물량 부족 때문이다.

그러던 중 여러 나라로부터 수출 상담이 들어왔다.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로부터이다. 진짜 먹고살기 바쁜 후진국만 빠졌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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