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9
난색을 표하자 마트에서 사재기를 시작했다. 그 결과 상품 진열과 동시에 매진되는 기현상이 날마다 벌어졌다.
당연히 항의가 들어온다. 하여 각국 별로 할당량을 정했다. 그런데 그 양이라는 게 러시아 수출 물량의 1% 수준이다.
지나는 인구 16억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의 경우는 1억 4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나는 나날이 인구가 늘지만 러시아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중이다.
아무튼 지나의 인구수는 러시아의 11.4배를 넘는다. 그런데 러시아에 수출되는 양의 100분지 1만 배정받았다.
가져가기만 하면 떼돈을 번다. 그런데 구할 수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성분 분석에 들어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쉐리엔을 합성해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극소량이지만 지구에 없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물질 때문에 살이 쭉쭉 빠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백두마트 등에선 쉐리엔의 매대를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쉐리엔의 정가는 경쟁 업체들이 고사하지 않도록 적절한 가격으로 매겨져 있다.
진열하기 바쁘게 모두 팔려 나가기에 쉐리엔은 큰 이익을 남겨주는 상품이다. 그렇기에 알아서 대접해 주는 것이다.
“미국 현지 법인 설립은 일단 뒤로 미루세요. 대신 콩고민주공화국이나 에티오피아에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세요. 흐음, 불어를 쓰는 콩고민주공화국보다는 영어를 쓰는 에티오피아가 더 편하겠네요. 그죠?”
“……!”
“아무튼 그쪽에선 신약 허가를 쉽게 받을 겁니다.”
“그곳은…….”
기술력이 거의 없는 후진국에 제약회사를 만들어 어떻게 헤쳐 나가려 하느냐는 표정이다.
“약효가 확실한 이상 아주 잘 팔릴 겁니다. 그럼 소문이 나겠지요. 아, 물론 러시아엔 계속 수출할 겁니다.”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럼 에티오피아에서 제조하는 걸로 추진하겠습니다.”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코리아타운이 있습니다. 6.25 참전용사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입구에 천지약품이 조성되는 중입니다. 그쪽 인근 토지를 매입하여 일을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하셨던 군인용 상처 치료제 개발을 마쳤습니다.”
“군인용? 아!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만든 것 말이지요?”
“네, 임시로 프라이벳 리메디(Private remedy)라 이름 붙인 겁니다.”
김지우 박사가 내민 것은 연고 형태로 제작된 것이다.
“프라이벳 리메디요?”
“네, 프라이벳은 ‘개인 소유의’, 또는 ‘전용의’라는 뜻 이외에도 이등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등병 약이라는 뜻이지요.”
“재미있는 작명이네요. 근데 조금 길어요. 그냥 메딕(Medic)은 어떨까요? 위생병, 간호사라는 뜻을 가졌잖아요.”
“그건 그냥 보통 명사라……. 그것도 생각해 보았는데 나중에 상표권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민 사장의 말을 자른 것은 현수이다.
“그러세요. 이름보다는 효과가 중요한 것이니 그냥 그걸로 진행하세요. 그런데 사용법과 효과는요?”
“상처 난 부위에 짜 넣기만 하면 반나절 이내에 새살이 돋아 아무는 정도입니다.”
“흐음, 너무 사기성이 짙지 않은가요?”
“전장 특성상 그 정도는 되어야 먹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참, 샘플로 몇 개 주십시오. 국방장관님을 만날 일이 있을 때 사용하게요.”
“국방장관님을 만나세요?”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하긴 건설회사 전무가 왜 국방 총책임자와 만나겠는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샘플로 몇 개 주십시오. 그리고 프라이벳 리메디는 보안 유지를 해주십시오. 일단은 우리 군에만 납품할 생각이니까요.”
현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NOPA와 홍익인간, 그리고 미라힐Ⅰ과 미라힐Ⅱ, 청향의 출시를 막았던 자들의 미래가 짐작된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쉐리엔의 원료 수급에 관한 문제입니다. 꾸준히 적정량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생산이 중단되어 출시가 곤란해지면 회사 신인도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오늘 의논된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전무님은 쉐리엔 원료에 신경 써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셋은 구내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엔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직원들이 밥 먹으러 나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해서 이렇게 바꿨습니다.”
“잘하셨네요. 영양가 많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일을 잘하지요. 참, 전에 말씀하시길 옆 공장이 비어 있다고 했지요?”
“네, 하지만 그 공장은 인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 큰데다 건물 자체도 낡았고 남아 있는 기계 모두 구형이라…….”
“아! 제 말은 그게 아니고요, 그 공장을 인수해서 운동장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해서요. 점심 먹고 축구 한판 해야 직원들 건강에 좋지 않겠습니까?”
“축구장이요?”
“네, 기왕이면 잔디구장으로 만들고 주변은 여직원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정원을 꾸미면 어떨까 합니다. 여의도 공원처럼 말이에요.”
“……!”
바로 옆 공장을 인수해도 거기서 나오는 이득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이에 현수는 피식 웃었다.
“그래야 직원들의 충성도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면적만 충분하다면 독신자 숙소도 지어주면 어떨까 합니다.”
“……?”
“아! 관리비 정도는 받아야 합니다. 전기요금, 상하수도 요금은 받아야죠. 우리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잖아요?”
“네?”
“와이파이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걸로 하면 좋겠네요.”
“끄응!”
“많이 버니 많이 쓰십시다. 우리만 좋아지고 직원들은 그대로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현수의 시선을 받은 김지우 박사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상당히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이에 피식 웃었다.
“운동장을 만들고 산책로까지 제대로 조성해 보세요. 또 땅을 살 수 있다면 근처에 아파트를 짓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아파트요?”
“돈 들여 만든 운동장과 산책로를 비워둘 수는 없잖아요. 임직원들이 들어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
나중의 일이지만 대한의약품은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제약사가 된다.
급여는 대기업 수준이다. 독신 사원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뷔페로 제공된다. 아파트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물론 가스 및 전기요금 등의 비용은 내야 한다.
제공되는 면적은 가족 수에 따라 다르다.
독신자는 14평, 2인 가족은 24평, 3인 32평, 4인 36평, 5인 가족은 48평 수준이다.
아파트 인근 상가엔 각종 생필품을 파는 마트가 들어선다. 일반 분양 물량도 꽤 되기 때문이다. 물론 천지건설이 짓는다.
상가 곁에는 헬스장, 수영장, 테니스장, 축구장, 탁구장, 당구장 등이 조성된다. 직원과 그 가족에 한하여 무료이다.
또한 길이 4㎞짜리 산책로가 조성된다.
이것은 지역 주민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있고, 구름다리와 잘 조성된 정원 등으로 꾸며진 오솔길이다. 잡지사에서도 취재를 나올 정도로 호젓하면서도 멋스러운 공간이다.
이런 회사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문제는 대한의약품에서 직원을 뽑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하긴 이 좋은 회사를 누가 그만두겠는가!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퇴직하는 사원이 있을 때만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흐음! 쉐리엔의 원료라…….”
현수는 라세안과 다프네, 그리고 알베제 마을과 케이상단의 알론을 차례로 떠올렸다.
이들이 채취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급될 것이다.
“가야겠군. 그곳으로.”
현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다.
이제 지구에서의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즐거운 휴가를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차를 버리고 갈 수 없기에 가장 가까운 이실리프 어패럴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기왕에 온 것이니 잠시 들르자는 마음이다.
“어서 오십시오.”
막 외근 나가려던 박근홍 사장이 반색하며 웃는다.
“네, 샘플이 좀 필요해서요.”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참, 전에 말씀하셨던 것들 디자인이 끝나 시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한번 보시죠.”
“네, 그러죠.”
박 사장의 뒤를 따라 디자인실로 들어가자 일하던 디자이너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활기찬 표정이라는 것이다.
하긴 이실리프 어패럴로 명칭을 변경하고 난 이후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밀렸던 급여가 한몫에 지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로금 명목으로 각자에게 석 달치 급여가 특별 지급되었다.
그리고 어제 박근홍 사장의 환호할 만한 발표가 있었다. 물론 현수와 의논한 바로 그 내용이다.
하여 이실리프 어패럴 직원으로서 자부심이 한껏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의 빌미가 바로 김현수 전무이다.
그러니 모두 웃는 낯으로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10장 알았어! 돈 보내줄게
“아이고, 뭐 대단한 사람이 왔다고 이러십니까? 그냥 편히 앉아서 일하세요.”
디자인실 뒤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니 아랍 쪽 의류가 즐비하게 걸려 있다.
“와! 그쪽 의상이 이렇게 종류가 다양합니까?”
“네,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우리로 치면 여름용이 주겠군요.”
“아닙니다. 사막의 밤은 춥습니다. 그렇기에 여름용과 겨울용 모두 필요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참, 강철환이나 최세창 대령으로부터 연락이 옵니까?”
“아뇨. 딱 끊겼습니다. 전무님이 손쓰신 거죠?”
박근홍 사장이 웃음 짓는다. 앓던 이 빠진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골치 아팠다.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 협박하곤 했다. 그래서 유학 보낸 아들에게 틈날 때마다 전화하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아마 다시는 발걸음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 편히 일하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는군요.”
박근홍 사장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온 김에 샘플 좀 챙기겠습니다.”
“아이고, 그럼요.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현수는 이 옷 저 옷 살피다가 몇몇 의류를 챙겨 들었다.
* * *
“야, 인마!”
“왜?”
“너, 나 말려 죽일 셈이냐?”
“왜? 무슨 소리야?”
윤성희 비서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나가자 민주영이 볼멘소리를 한다. 이에 왜 그러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회사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근데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 들르면 어쩌라는 거야?”
“일이 그렇게 많아?”
“그걸 말이라고 해? 하나는 1,500㎢, 또 다른 하나는 3,000㎢짜리 대단위 농장이다. 서울보다도 훨씬 크다고! 아무것도 없는 정글에 그거 만드는 일이 쉽겠냐?”
“…미안,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너무 바빠서…….”
“알아, 너 바쁜 거. 그래도 그렇지, 너무 오랜만에 오는 거 아니야? 내가 나쁜 맘 먹고 중간에서 다 해먹고 도망갈 수 있다는 거 몰라?”
“해먹고 싶으면 해먹어도 돼.”
“나쁜 자식! 사람을 데려다 이렇게 개고생을 시켜? 얌마, 최소한 퇴근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월화수목금은 물론이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야근을 하게 만들어?”
“끄응! 그러게 너 혼자 하지 말고 사람 좀 뽑아서 쓰지.”
“헐! 사람 뽑으면, 월급 나가는 건 생각 안 하냐?”
민주영이 핏대를 세우며 노려본다.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생각하는지 화가 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