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21화 (521/1,307)

# 521

저마다 눈을 부릅뜬 채 현수의 몸놀림을 머릿속에 각인하려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마법사 둘이 메모리 마법으로 현수의 움직임을 모두 담고 있다. 캐플렛 백작의 명이다.

이윽고 검을 회수하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력적인 검법을 배웠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수는 캐플렛 백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 검법을 캐플렛 백작가에 하사한다. 나는 이 검법을 아이 오브 타이푼(Eye of typhoon)이라 명명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캐플렛 백작과 기사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인다.

방문 기념으로 태풍의 눈 검법이 하사된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 검법이 있어 캐플렛 백작가는 한 번의 시련을 무사히 넘긴다. 마탑주의 비호를 받는 영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때문이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또 오십시오.”

“그러지.”

캐플렛 백작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뒤쪽의 모든 사람의 허리가 꺾인다. 삼국연합과의 전쟁을 종식시켜 나라의 안정을 찾아줄 사람에게 보이는 최상의 예이다.

“카트린느, 더 가까이 서.”

“네, 마탑주님!”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바싹 다가서는 카트린느이다. 하지만 밀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메스 텔레포트 마법을 처음 써보기에 어느 정도까지가 구현 범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좋아, 메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받는 순간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밝아왔다. 이때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충―! 어서 오십시오!”

“……!”

“마탑주님의 왕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뿌옇던 시선이 또렷해지자 사람들이 보인다.

눈앞을 시작으로 저 멀리까지 끝없는 사람들의 물결이다. 모두 허리를 직각으로 꺾고 있다.

“반갑다! 모두 고개를 들도록!”

스승의 하나뿐인 제자이기에 엄숙한 음성으로 말했다.

“……!”

“누가 로레알 공작이고 누구 필립스 공작인가?”

“제가 로레알 파드린느 폰 아젤란입니다.”

“저는 필립스 아인테스 반 크리엘입니다.”

실제 나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보기엔 둘 다 60세 중반 정도로 보인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현수가 입을 열었다.

“반갑다.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라 한다.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탑주이다.”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공작의 허리가 꺾인다. 더 이상 공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꺾여 있다.

“헉! 마탑주님의 용안을 처음 뵙습니다.”

그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두 공작이 이토록 극고의 예를 보이는 이유는 현수의 나이 때문이다.

아드리안 공국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이 살아 있다면 거의 700살에 가깝다.

그런데 현수는 방금 2대 마탑주라 하였다. 시조의 직계제자라는 뜻이다. 겉보기엔 25세 정도 된 청년이다.

마법사들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바디체인지를 겪는다. 이때 훨씬 더 젊어 보이게 변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두 공작은 지금 현수를 최소 300살로 보고 있다.

세상에 소문난 대로 10서클 마법사이면서 그랜드 마스터라면 분명 그럴 것이란 생각인 것이다.

직급은 공왕과 버금가고 나이는 자신들의 다섯 배 정도는 되기에 깊숙하게 허리를 꺾은 것이다.

“흐음, 일단 왕궁으로 가세.”

“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필립스 공작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린다. 이때 로레알 공작이 나직이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마탑주님께서 왕궁으로 가실 것이다! 길을 열어라!”

“충―!”

공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사들이 좌우로 비켜선다.

그러자 바닥에 깔린 붉은 융단이 드러난다. 이곳에서도 최상의 귀빈을 맞이하는 예로써 레드 카펫을 까는 모양이다.

“카트린느, 같이 가겠나?”

“허락하신다면 저도 왕궁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같이 이동하는 동안 친분이 쌓였다 생각하는지 카트린느가 당차게 대답한다.

변경백 본인도 아니고 겨우 손녀이면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두 공작의 안내를 받아 가겠다니 어찌 당차지 않은가!

“좋아, 같이 가지. 길을 안내하라.”

“네, 알겠습니다.”

두 공작이 몸을 돌려 발을 떼는 순간 사방으로부터 나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빰빠라! 빰빰! 빠라라! 빰빰! 빨빠라! 빠라빠라! 빰빰빰!

“……!”

현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필립스 공작이 다가온다.

“마탑주님, 지금 연주되는 곡은 마탑주 찬가라는 곡입니다. 마탑주님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연주되는 것입니다.”

“흐음, 그런가? 알겠네. 그만 가지.”

“네, 그럼.”

두 공작이 나란히 앞장서서 걷고 있고 그러는 동안 마탑주 찬가는 계속 연주되었다. 상당히 긴 듯하다. 듣고 있자니 상당히 서정적이란 느낌이다.

걸으며 생각해 보니 세 곡을 차례로 연주하는 것 같다. 세 가지 멜로디가 마치 캐논 변주곡처럼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걸으며 살피니 좌우로 잘 손질된 저택들이 보인다.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인 듯싶다.

그렇게 200여 m를 걷고 코너를 돌자 멀지 않은 곳에 웅장한 왕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보리색 돌을 정교하게 깎아 지은 듯하다.

전체적인 느낌은 인도에 있는 타지마할과 유사하다. 그런 건물을 여러 채 지어 하나의 왕궁을 이루는 모양이다.

“와와와와! 이실리프 마탑주님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와와와와와!”

구름처럼 운집한 백성들이 두 손을 들고 열렬히 환호한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잘 닦인 갑옷을 걸친 병사들이 양팔을 벌린 채 도열해 있다.

마탑주가 지나갈 길에 혹시라도 정신 나간 누군가가 튀어나올까 싶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현수는 근엄한 표정을 지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살며시 미소 띤 얼굴로 사방을 살피며 가볍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와와와와! 마탑주님 만세! 만세! 만세!”

“와아아! 웃으신다! 이실리프 마탑 만세!”

“봐봐! 날 보고 손을 흔드셨어! 마탑주님 만세! 만세!

저마다 소리치기에 무슨 뜻인지 쉽게 식별되지는 않기만 대략 이런 뜻이다. 환호성이 끝나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마탑주 찬가가 연주되고 있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참 듣기 좋다는 느낌이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허밍으로 마탑주 찬가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 어느 지점을 지나자 우렁찬 합창이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의 땅 아드리안!

이 땅의 시조께서 세우신 이실리프 마탑이여,

공국을 수호하사,

길이길이 역사를 이어가게 하소서.

탑주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고,

넘치는 미녀들이 있어 많은 후손을 보소서.

오래오래 이 땅 아드리안에 계셔서,

이실리프 그 이름 영원히 유지되게 하소서.

찬란히 빛날 이름 이실리프!

마탑주시여, 영원한 영광 받으소서.

가사를 듣던 현수가 피식 웃는다. ‘넘치는 미녀들이 있어 많은 후손 보소서’라는 구절 때문이다.

‘뭐야? 마탑주를 대체 뭐로 보는 거지? 애나 많이 나으라고? 후후! 후후후후! 하지만 미녀들이 넘쳐나라는 소리는 괜찮네.’

혼자 웃던 중 카트린느와 시선이 마주쳤다.

방금 전의 상상을 들킨 듯하여 움찔하는 순간 부드러운 뭔가가 느껴진다. 카트린느가 슬며시 팔짱을 낀 것이다.

“……!”

“와와와! 와와와! 만세! 만세! 만세!”

열렬한 환호성이 들리는데 매몰차게 뿌리칠 수 없어 가만히 놔두니 더 깊숙이 팔짱을 낀다.

“……!”

움찔하는 순간 카트린느의 나직한 속삭임이 들린다.

“마탑주님,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어주세요. 네? 잠시만이요.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애절한 눈빛이다. 이러니 어찌 손을 빼겠는가!

현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붉은 융단의 끄트머리 부근에는 일단의 무리가 도열해 있다.

200명의 풀 메탈 아머를 걸친 왕실기사단이다.

두 열로 도열한 이들은 예식용 검을 뽑아 들고 있다. 허공으로 치켜들어 교차시킨 검의 숲은 기다란 통로가 되어 있다.

그들 앞에 당도하자 기사들이 일제히 소리친다.

“마탑주님 만세! 만세! 만세!”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너무 빨리 지나치는 것도 예가 아니다 싶어 천천히 통로를 걸었다.

그러던 중 기사 하나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그의 시선은 카트린느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앞을 지나쳤다. 그 순간 카트린느는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며 더 단단히 팔짱을 낀다.

천천히 걸었지만 어느새 통로의 끝이다. 거기엔 왕관을 쓴 공왕과 왕후들, 그리고 왕자와 공주들이 서 있다.

“어서 오십시오, 마탑주님!”

왕위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꺾이지 않던 아민 멘데스 폰 아드리안 공왕의 허리가 천천히 숙여진다.

그와 동시에 왕후들과 왕자들, 그리고 공주들 역시 더없이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평상시의 오만함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왕자와 공주라지만 이실리프 마탑주 앞에선 결코 뻣뻣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탑주의 말 한마디면 왕궁에서 쫓겨날 수 있다. 권략 실세인 두 공작은 물론이고 공왕인 아버지도 말릴 수 없다.

소문을 듣기론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오르지 못한 10서클 대마법사이자 지난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그랜드 마스터이다.

눈앞에 도열해 있는 기사단 200명쯤은 한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능력자이다. 검법으로도 마법으로도 모두 가능하다.

“국왕 전하, 이제 그만 허리를 펴십시오. 그래야 인사드리지 않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11장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공왕은 현수가 제2대 마탑주라는 전갈을 들은 이후 입장을 확실히 정했다. 현수는 윗사람이고 자신은 그보다 한 칸 아래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시조의 직계제자이다. 아마도 나이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국왕과 저는 대등하다 들었습니다. 허리를 펴십시오.”

“거듭하여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환영합니다, 마탑주님. 위기에 처한 왕국을 위해 와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마탑주님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왕후들과 왕자, 공주들의 인사이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에, 그런데 곁에 있는 분은 누구신지요? 혹시 마탑주님의 부인이신가요?”

모두의 시선이 카트린느에게 미치자 얼른 팔짱을 뺀다.

“네? 아, 아뇨! 마탑주님의 부인이라니요? 아닙니다. 저는 피리안 영지에서 온 카트린느라 합니다. 레더포드 아물린 폰 피리안 백작의 손녀입니다. 공왕 전하와 왕후님들, 그리고 왕자님과 공주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카트린느는 잠시 말을 더듬었지만 당당했다.

“아! 그, 그런가?”

“국왕 전하, 우리가 얼른 궁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들 팔이 떨어지겠습니다.”

“네? 아, 하하! 네, 그, 그러지요. 자, 안으로 드십시오.”

공왕이 먼저 몸을 돌려 앞장서자 현수가 그 뒤를 따랐다. 이어 왕후와 왕자, 공주들이 뒤를 이었다.

카트린느는 얼떨결에 현수를 따라 궁으로 들어섰다.

“……!”

공왕이 안내한 곳은 정찬장이다. 식탁엔 잘 차려진 음식들로 그득하다. 좌우 양편엔 시중 들어줄 시종들이 흰 천을 팔에 두른 채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있다.

“마탑주님,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실 듯하여 이쪽으로 먼저 모셨습니다. 천천히 드시고 공식 환영 행사를 하도록 하지요.”

“출출하던 차에 잘되었습니다. 왕궁 음식 맛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그럼 사양치 않지요. 자, 자리에 앉으십시다.”

“네, 마탑주께서도 자리해 주십시오.”

현수가 식탁의 끝에 앉자 아민 공왕이 반대쪽 끝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식탁이 너무나 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