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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24화 (524/1,307)

# 524

귀족들의 뜻을 받아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후원에 안식처를 마련하는 작업은 두 공작이 진두지휘하기로 했다.

현수는 작업이 웬만큼 진행되었을 때 그곳에 들어가 도굴 방지를 위한 마법진을 그려 넣기로 했다.

“마탑주님, 이제 좀 쉬셔야지요.”

“그래야지요. 이제 금방 해가 지겠습니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에 처소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시종들의 뒤를 따라간 곳은 왕궁 바로 옆에 조성된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여인들이 마중 나와 있다.

선두엔 여섯 여인이 있다. 그녀들의 뒤쪽도 모두 여인이다. 세어보니 합계 42명이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에는 마탑주의 성은을 기다리는 여섯 여인이 기거한다.

각자에게 여섯 명씩의 시녀가 배정된 모양이다.

마탑주는 이들 중 누구라도 취할 수 있다. 마탑주 찬가의 가사처럼 미녀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어서 오십시오, 마탑주님. 소피아라 하옵니다.”

“환영하옵니다. 어서 드소서. 소녀는 아이리스이옵니다.”

“마탑주님을 환영하옵니다. 아그네스라 하옵니다.”

“소녀는 이사벨이옵니다. 마탑주님을 환영합니다.”

“나오미가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마샤라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섯 여인이 차례로 예를 갖춘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군. 그만 쉬었으면 한다.”

“네, 안으로 드시지요.”

그리스 여신같이 하늘하늘한 천으로 몸을 감싼 소피아가 안을 가리킨다. 제1왕후의 소생인 듯싶다.

“그러지.”

성큼성큼 걸어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전에도 그러했지만 이 시간 이후 이곳은 특별 경호 구역이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면적은 대략 10만 평이다.

경복궁 면적이 13만 평 정도이니 거의 왕궁 규모이다.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면적은 실제 아드리안 왕국의 넓이와 비슷하다. 동등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마탑주를 위한 공간이 중심부에 자리하고 여섯 방위로 여인들을 위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엔 각종 부속실이 포함된다.

그리고 시녀들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배치되어 있다. 그곳에도 각기 세 명씩 시녀가 있다.

이렇게 하여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엔 150명이 있는 것이다. 모두 마탑주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라 쓰여 있는 방을 보곤 피식 웃었다. 이들에겐 그럴 것이라 여긴 것이다.

현수가 중앙 소파에 자리 잡자 여인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일견하니 열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이다.

“소피아!”

“네, 마탑주님.”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그대의 모후가 제1왕후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열다섯 살이라는데 제법 발육이 좋다.

“그럼 아이리스는 제2왕후가 모후인가?”

“그러하옵니다.”

열여섯 살짜리이다. 한국으로 치면 고1이다. 그럼에도 치장해 놓으니 성인 같다.

“흐음, 아그네스는 로레알 공작과 닮았고, 이사벨은 필립스 공작과 닮았군. 손녀들이지?”

“네, 마탑주님.”

이구동성으로 소리 낸다. 각기 열일곱 살과 열여덟 살이다.

“흐음, 나오미와 마샤는 어느 귀족가 소생인가?”

열아홉 살의 나오미가 먼저 입을 연다. 마샤는 스무 살이다.

“소녀는 할렌 후작의 손녀이옵니다.”

“저는 화이트 후작의 딸이옵니다.”

“흐음, 그렇군. 알았다. 오늘은 이만 쉴 테니 모두 물러가라.”

“네, 마탑주님.”

여섯 여인이 모두 공손히 절을 하곤 뒷걸음질로 물러난다.

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날 뭐로 보는 거야? 설마 로리타로 본 건가? 쩝!’

주위를 둘러보니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보인다. 모두 기름진 음식이다. 당기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다 발걸음을 멈췄다.

“어이하여 물러가지 않고 이곳에 있는가?”

“저희는 마탑주님께서 침소에 드실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옵니다. 마탑주님께서 저희 가운데 하나를 택하셔야 물러갈 수 있사옵니다.”

“끄응!”

현수는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적당한 곳을 찾았다. 마침 널찍한 공터가 있다.

마법을 익히느라 늘 운동 부족인 탑주를 위한 트랙이다.

아공간에서 컨테이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안에 들어가 그곳을 주방으로 개조했다. 물이야 생수를 쓰면 되는 일이다.

“흐음, 이 정도면 쓸 만하군.”

자신이 만들어놓은 공간을 훑어보곤 피식 웃었다.

“근데 조금 살풍경해. 서울에 가면 제대로 된 걸 하나 장만해야겠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했으니.”

인테리어가 제대로 된 깔끔한 주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오늘은 뭐로 저녁을 때울까?”

이제 슬슬 실력 발휘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두 손을 비비던 현수의 시선이 여섯 여인에게 미쳤다.

모두 안에서 무엇을 하나 하는 표정이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는 밀가루, 계란, 우유, 소금, 베이킹파우더, 쇠고기 분쇄육, 양파, 피망, 양송이버섯, 마늘, 후추, 토마토케첩, 피자치즈 등을 꺼내 손질했다.

먼저 도우를 만들었다. 아르센 대륙에 와서 하도 많이 만들어봐서 그런지 웬만한 피자집 알바보다 훨씬 낫다.

반죽이 잘 숙성되도록 타임 패스트 마법을 구현시켰다.

다음은 순서에 따라 달궈진 프라이팬에 마가린을 넣어 녹인 후 도우를 올려놓고 토핑을 했다.

금방 냄새가 풍긴다. 그러는 동안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에 딱 150명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한 사람당 두 조각쯤 먹을 것이다. 하여 40개를 차례로 만들었다. 물론 만들어지는 즉시 보존 마법을 걸어 따끈따끈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40개를 더 만들었다.

다음은 만두이다. 돼지고기 분쇄육, 숙주나물, 당면, 두부, 쪽파, 당근, 양파, 포기김치, 강장, 마늘, 파, 후춧가루, 만두피를 꺼내 순식간에 손질했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은 후 찜통에 넣고 쪄냈다. 화력 좋은 버너를 써서 그런지 이것도 금방 익는다.

만들어놓고 보니 300인분 정도 된다.

이토록 많이 만든 이유는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 외곽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기사와 병사들의 입도 생각한 때문이다.

만두와 피자가 모두 준비되자 종이컵과 망고주스를 꺼냈다. 시지 않고 달달한 맛이 나는 음료이다.

“소피아, 아이리스, 아그네스, 이사벨, 나오미, 마샤.”

“네, 마탑주님.”

“헥사곤 오브 이실리프의 모든 인원을 다 모으도록.”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컨테이너 앞엔 150명의 여인이 도열해 있다. 직위 순이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영문을 모르고 따라온 시녀들은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고자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에 소피아 공주가 들어선다.

“소피아, 이건 피자라는 것이고, 이건 만두야. 피자는 두 조각을, 만두는 다섯 개를 담아가.”

현수가 내민 접시를 본 소피아는 화들짝 놀란다. 이처럼 정교하고 예쁜 무늬가 그려진 접시는 처음 보기 때문이다.

한국도자기에서 만든 로얄오차드 뷔페 세트 가운데 하나로 딸기가 그려져 있다.

“뭐해? 어서 담아가. 뒷사람들 기다리니.”

“아, 네에. 죄송합니다.”

소피아 공주가 컨테이너 밖으로 나서자 모두 바라본다.

“모두 주목! 이 안에 들어오면 음식을 담을 접시가 있다. 이렇게 생긴 것이다.”

현수가 보여준 것은 블루베리가 그려진 것이다. 다음엔 소피아가 담아온 것을 가리켰다.

“이건 피자라 하는 건데 일인당 두 조각을, 이렇게 생긴 만두는 다섯 개씩 담아다 먹어라. 손으로 집어 먹으면 된다.”

“네에.”

소피아가 나서자 아이리스가 들어선다.

그렇게 여섯 여인이 차례대로 음식 담는 것을 지켜본 현수는 피자 40판과 만두 150인분을 챙겼다.

그리곤 정문으로 다가갔다.

“충―!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그래, 수고한다. 이건 내가 내리는 하사품이니 근무 중인 병사와 기사들에게 똑같이 나눠 주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마탑주님!”

“병사와 기사 모두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이만큼씩 가져가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현수는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접시 150장을 꺼냈다.

“이것 또한 내 특별 하사품이니 하나씩 가져가도록 하라.”

“이 접시를 정말 주시는 겁니까?”

근무 중이던 기사의 눈에도 접시는 대단히 세련되고 기품 있어 보이는 물건이다. 웬만한 귀족가에도 없을 귀품이다.

“가져가서 집에 보관해도 좋고 팔아서 써도 된다고 전하라. 알았는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냄새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다. 고소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모두가 피자와 만두를 먹느라 여념이 없을 때 현수는 본인의 거처로 되돌아왔다.

아주 세련되게 만든 침대가 있기는 한데 조금 딱딱하다. 하여 그건 아공간에 넣고 쿠션이 괜찮은 것으로 하나 꺼냈다.

침구도 전부 바꿨다.

다음엔 초음파 마법진을 만들어서 부착시켰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벌레가 밖으로 나간다.

“쩝! 마탑주가 머무는 곳이 이러니 다른 곳은……. 에잉, 일만 많아졌어.”

나직이 투덜거리고는 항온 마법진을 꺼냈다. 온도는 25℃에 맞췄다. 그 정도가 적당하다 여긴 것이다.

세상의 중심이라 명명된 방의 출입구는 세 개이다. 모두 락 마법으로 닫았다. 그리곤 욕실로 들어갔다.

다음은 따끈한 물에 목욕이다. 따뜻함이 느껴지니 절로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현수가 부르는 노래는 마탑주 찬가이다.

그러다 낄낄대며 웃었다.

“큭큭, 미녀가 넘쳐나 많은 후손을 보라고?”

낄낄대던 현수는 문득 백제의 의자왕을 떠올렸다. 3천 궁녀를 거느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00∼300명으로 추산된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영조 때를 살펴보면 약 600명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기록된 숫자이다.

참고로 고종 때엔 480명쯤 되었다.

조선 인구와 이곳 인구를 대비해 보면 현수는 왕 대접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너무 어리잖아. 흐음, 갑자기 카이로시아가 보고 싶네.”

카이로시아는 스물세 살이다. 만으로 따진 나이이니 한국식으로 하면 스물넷, 또는 스물다섯 살이 된다. 아르센에서 인연 맺은 여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다.

“생각난 김에 가볼까? 에라, 모르겠다.”

현수는 쪽지 하나를 써서 문 앞에 내놓았다.

내용은 피곤하여 잠잘 것이니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좋아, 가자! 마나여, 나를 테세린으로.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사라졌다.

“여긴 여전하군. 그나저나 로니안 자작은 백작으로 승작하셨을까?”

영지전이 벌어진 것은 9월 12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10월 16일이다. 한 달이 조금 넘었다.

한국 같으면 그사이에 별의별 일이 다 빚어졌겠지만 이곳은 통신과 교통이 열악한 아르센 대륙이다.

게다가 테세린은 미판테 왕궁에서 가장 먼 곳 중 하나이다.

“일단은 카이로시아부터 먼저. 플라이!”

비행 마법으로 영주성을 벗어나는 순간 영지 마법사인 롤랑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3서클이었다가 4서클로 오르면서 마나에 조금 더 민감해졌기에 현수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다.

“누구냐? 이 시간에 무슨 용무냐?”

어느새 해가 져 어둑어둑해서 그런지 잔뜩 긴장한 음성이다.

“날세, 발루네.”

“대체 누가 이 시각에……? 아, 백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겨눴던 창을 얼른 내려놓으며 환히 웃는다. 이젠 얼굴이 익어 친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카이로시아는 잘 있지?”

“그럼요.”

“요즘도 불나방들이 많이 오나?”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어찌나 많이 오는지 귀찮아 죽을 지경입니다요. 담장을 높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월담하는 놈도 있었을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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