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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27화 (527/1,307)

# 527

“오냐! 그렇지 않아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이를 갈았는데 잘되었구나. 이보게, 동료들! 오늘 저놈에게 내 치욕을 되갚아줄 것이네. 그러니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위해 주게.”

데이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기사가 흩어진다. 현수의 전후좌우를 가로막은 것이다. 하지만 몇몇은 뒤로 물러선다.

지난 2월, 이곳에 마법사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영주를 방문했고, 평온하게 떠났다. 그날 영주는 하나뿐인 아들을 개잡듯이 잡았다.

하마터면 올테른 전체를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데이몬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운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이의 정체를 모른다.

병석을 털고 일어날 때쯤엔 그때의 일들이 까마득하게 잊힌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처럼 이를 가는 것이다.

현재 현수의 주위를 에워싸는 기사들은 그날 이후 외부에서 흘러든 자유기사들이다. 당연히 그때의 일을 모른다.

“이놈!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덤벼!”

스르르르릉―!

데이몬이 성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든다. 그와 동시에 모두 뒤로 몇 발짝씩 물러선다. 이제 곧 피와 살이 튀고 뼈가 바스러지는 참혹한 현장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수는 여전히 태연자약하다.

“어서 덤벼라, 이놈! 오늘 네놈의 목을 베어 그날의 치욕을 씻을 것이다!”

데이몬은 마애기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떠올리는지 격동에 겨워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런 그의 눈에는 성난 빛이 가득하다.

“……!”

한편, 현수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데이몬을 보고 웃음이 나온다. 하여 피식 웃어주었다.

이게 상대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다. 버럭 화를 낸다.

“네 이놈, 네놈이 감히 기사인 나를 보고 웃어?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좋아, 네놈 이름이 뭐냐? 내가 어떤 놈을 죽였는지 알아야겠다!”

“그래? 이름을 가르쳐 주면? 그러면 곧바로 덤벼들 건가?”

“그렇다, 이놈아! 어서 썩 이름을 밝혀라! 네놈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곧바로 목을 베어주마!”

데이몬은 흉흉한 기세로 현수를 노려본다. 하지만 현수는 여전히 태연자약하다.

“좋아, 내 정체가 궁금하다니 가르쳐 주지. 뚫린 귀로 잘 들어라. 나는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인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라 한다.”

“뭐, 뭐라고?”

데이몬이 자신의 귀를 의심할 때 현수가 다가가며 주먹을 내지른다.

“자, 그럼 간다. 헤비 펀치!”

쿠앙―!

마법이 구현되자 데이몬의 훌훌 날아간다.

자력으로 나는 게 아니다. 강력한 펀치에 맞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오래전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최소 7m는 날려갔다.

와당탕, 탕탕―!

“크으윽! 끄응!”

저만치 나가떨어진 데이몬이 신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절해 버린다. 현수만 만나면 기절하는 셈이다.

모두의 시선이 현수에게 쏠린다. 질린다는 표정이다.

한편, 현수는 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전과 같은 정도로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런데 걷어차인 강아지처럼 멀리 날려가니 이상한 것이다.

물론 켈레모라니의 비늘 때문이다.

“컴플리트 힐!”

현수가 손을 내밀며 마법을 시전하자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데이몬의 체내로 스며든다.

단 한 번의 가격에 부러졌던 다섯 개의 갈비뼈가 순식간에 아문다. 하지만 찌그러진 갑옷은 그대로이다.

컴플리트 힐은 치료 마법이기 때문이다.

“끄으으응!”

“어때, 아직도 내게 유감이 있나?”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데이몬이 무릎을 꿇는다. 그리곤 크게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크윽! 아, 아닙니다! 소, 소인이 눈이 삐어 감히 마탑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거망동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

이웃나라인 미판테 왕국 케발로 영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은 이곳에도 전해졌다.

대륙 어디에도 없는 9서클 대마법사가 나타났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시전한 헬 파이어는 8서클 마법의 위력을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것이라 한다.

웬만한 기사단 하나는 한 방에 잿더미로 만들 위력이다.

그곳 영주인 하렌 폰 케발로 자작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지시했다. 대륙 전체에서 마법사들이 쇄도할 것임을 짐작한 때문이다.

덕분에 마법의 위력은 적나라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마법사가 바로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일 것이라는 것도 전해졌다.

소드 마스터가 일인군단이라면 이실리프 마탑주는 혼자서도 국가 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풍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런 마탑주를 상대로 온갖 패악을 부렸다. 단 한 방에 나가떨어졌지만 그걸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데이몬은 일가붙이 전체가 목숨을 잃고 주군인 에릭 마이스진 백작까지 자신 때문에 징치당할 수도 있는 생각에 필사적이다. 하여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현수의 다리를 붙잡는다.

“마, 마탑주님, 부디 소인의 눈을 뽑으소서. 그리고 죄 없는 다른 이들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소인 평생 마탑주님의 종이 되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사옵니다.”

기세등등한 기사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버릴 테니 용서해 달라는 말이다.

“마탑주님, 제발… 제발……!”

데이몬이 현수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는 사이, 내성으로 뛰어가는 사내가 있다. 피어슨 마이스진에게 세실리아를 희롱하도록 인도했던 테리라는 시종이다.

테리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하다. 어쩌면 오늘이 세상을 사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때문이다.

그날 이후 피어슨 마이스진은 고고한 신관 같은 삶을 산다. 그 좋아하던 술과 여자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에게 문안을 여쭙고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 오전 내내 책을 읽는다.

점심을 먹고는 기사 수련장을 찾아 검술을 익히고, 저녁 식사 후엔 다시 서재에서 독서로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아무리 어여쁜 시녀가 곁을 지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테리는 소영주가 고자가 되었음을 눈치챘다. 혈기 왕성한 사내라면 새벽마다 거시기가 힘을 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늘 축 늘어져 있다.

그때 만났던 마법사가 농간을 부린 것이라 생각했지만 묻지도 않았고 보고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인간 망종인 소영주를 세실리아에게 데려가지만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받을 처벌이 두려워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그 마법사를 다시 보았다. 그런데 신분이 어마어마하다. 올테른의 총독인 에릭 마이스진 백작 정도는 발길에 차이는 존재로 여길 정도로 존귀하신 분이다.

그렇기에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다. 가장 먼저 보고하여 이전의 죄를 상쇄받을 기회를 갖기 위함이다.

그런 테리의 눈에 마이스진 백작이 보인다. 부인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한가롭게 정원을 산책하는 중이다.

“헉헉! 여, 영주님! 헉헉! 여, 영주님! 여기요. 일루 오세요.”

“네, 이놈! 네놈이 지금 어디서 감히……!”

테리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영지 기사단장이다.

마이스진 백작은 부인과의 산책을 상당히 중요한 시간으로 여긴다. 권력 실세 중 하나인 바론 후작의 딸이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재채기를 하면 이곳 올테른엔 태풍이 불어닥친다. 수도에서 볼 때 이곳은 변경 중의 변경이기 때문이다.

미판테 왕국과는 일찌감치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바 있다.

국왕의 제1왕후는 미판테 국왕의 여동생이다. 그리고 미판테 제1왕자의 왕자비는 테리안 국왕의 친조카이다.

서로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게다가 두 나라 사이엔 물결 거센 바벨 강이 흐르고 있다.

평균 강폭이 8㎞인데 올테른에서 건너편 테세린으로 가려면 30㎞ 정도를 가야 한다. 가장 폭이 넓은 부분이다.

이쯤 되면 강이 아니라 바다나 다름없다. 그래서 반대쪽이 보이지도 않는다. 수평선만 있을 뿐이다.

이 강엔 수중 몬스터 엘리터가 서식한다. 웬만한 배는 단숨에 뒤집고 물에 빠진 사람을 잡아먹는 흉포한 놈들이다.

따라서 올테른이 공격당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변경백이지만 마이스진 백작은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중앙의 관심을 가끔 받는 이유는 바론 후작의 사랑하는 딸이 백작부인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백작은 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 테리라는 시종 놈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며 소리를 지른다. 당연히 신경이 거슬린다.

호위를 담당한 기사단장이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놈은 기사단장을 밀친다. 그리곤 소리쳤다.

“영주님! 영주님! 헉헉! 영주님! 여기 좀 봐주세요!”

“네 이놈! 썩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감히 어느 안전에서 소리를 지르느냐? 미친 것이냐, 아님 죽고 싶은 것이더냐?”

기사단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리의 말이 이어진다.

“영주님, 어서요! 어서 이쪽으로 와보세요!”

“……?”

시종 주제에 감히 하늘같은 영주님에게 오라고 소리치자 기사단장이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르르릉―!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누구에게 감히! 싸가지 없는 놈! 단숨에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그러거나 말거나 테리의 음성은 더 커진다.

“영주님, 어서 오시라구요! 어서요! 어서 오셔야 합니다!”

“네 이놈……!”

자신의 말을 단숨에 씹어버리자 분노한 기사단장이 칼을 쥔 손에 힘을 줄 때이다.

“잠깐! 기사단장은 잠시 멈춰라!”

“…네, 마이 로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테리에게 화가 난 마이스진 백작이 성큼성큼 걸어 테리 앞으로 다가선다.

기사단장은 테리의 완력으론 영주에게 조금의 위해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네 이놈! 네놈이 지금 감히 내게 오라고 하였더냐?”

“네, 영주님. 어서 가셔야 합니다. 어서요.”

“가다니? 어딜? 내가 왜? 테리 네 이놈! 미쳤느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무튼 어서 가셔야 합니다요.”

테리가 고개를 심하게 좌우로 흔든다. 거의 미친놈처럼 보인다. 하여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이냐?”

“네. 지, 지, 진짜 크, 큰일이 벌어졌습니다요. 서, 성문 앞에, 성문 앞에, 성문 앞에……!”

“네 이놈, 왜 이리 말을 더듬느냐? 어서 말을 해보아라. 날 왜 오라고 하였느냐? 만일 허튼수작이라면 네놈의 목은 떨어질 것이다. 알겠느냐? 그러니 어서 고하라.”

“네, 영주님! 지, 지금 밖에 이, 이, 이실리프 마, 마탑의 타, 탑주님께서 와 계십니다.”

“뭐? 바, 바, 바, 방금 뭐라 하였느냐?”

“이, 이,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님께서 와 계십니다.”

“저, 저, 저, 정말이냐?”

“네, 지, 지, 진짜입니다. 그, 그런데…….”

“그런데 왜? 누, 누, 누가 무례라도 저질렀느냐?”

대화를 듣고 있으면 말더듬이 둘인 듯하다. 어찌 보면 상당히 웃긴다. 하지만 웃는 이는 아무도 없다.

늘 근엄한 얼굴이던 기사단장을 비롯한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때 테리의 말이 이어진다.

“그, 그게, 기사 데이몬님이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었다가, 덤벼들었다가 호, 호되게 혼나고 계십니다요.”

“허어! 이, 이런…….”

털썩―!

순간 마이스진 백작이 다리가 풀리는지 주저앉는다.

“어머! 여보!”

뒤쪽에 서 있던 백작부인이 황급히 다가와 일으켜 세우려 한다. 이 순간 백작의 시선이 멍하다. 지금 뇌의 모든 활동이 멈춰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백작이 기사단장에게 소리친다.

“어, 어서 날 그곳으로 안내하라! 어서!”

“네, 영주님! 무엇들 하느냐? 어서 영주님을 모셔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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