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29화 (529/1,307)

# 529

“알베제 마을을 영지로 받을 것이네. 그곳에 필요한 모든 생필품을 케이상단에서 알아서 조달해 주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베제 마을을 영지로 받는다니요? 그곳은 화전민이나 사는 작은 촌락입니다.”

“그래,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조만간 나아질 것이네. 아무튼 알베제 마을에서 필요한 것들을 자네가 조달해 주게.”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알론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중간 정산은 품목 판매 일지와…….”

“내 수익금은 알베제 마을로 들어오는 각종 생필품 가격으로 제하게. 그리고도 남는 것은 일단 쌓아두고.”

“네? 그게 무슨……?”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쯤 되면 알기 쉬운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케이상단의 규모가 웬만해져야 나도 편하니 투자하겠다는 뜻이네.”

“네?”

알론과 말링코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마이스진 백작에게 케이상단을 돌봐달라고 했으니 앞으로 장사하긴 편할 것이네.”

“……!”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들이다.

“내년에도 쉐리엔 채집에 총력을 기울여 주게.”

“아! 그야 물론입죠.”

얼마 전 케이상단 제7지부인 이곳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물량이 본점 쪽으로 이송되었다.

현수가 준 접시 등을 소화시키기엔 올테른이 궁박한 때문이다. 영주인 마이스진 백작을 빼곤 비싼 접시를 살 능력자가 드문 것이다.

본점에서는 자신들이 수도에서 판매 개시를 선언할 때까지 물건을 풀지 말라고 했다. 그렇기에 마이스진 백작은 아직 화사한 꽃무늬가 그려진 접시를 구경조차 못했다.

쇠로 만들어진 각종 농기구 역시 전체의 3% 정도만 남기고 수도로 보내졌다. 이것 역시 아직 출시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수익금 운운한 것은 본점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상품 대금의 일부로 보내준 때문이다.

“참, 마법사님, 전에 제게 주셨던 이거 혹시 고장입니까?”

“……?”

알론이 내민 것은 모나미153 볼펜이다. 알베제 마을에서 이곳까지 올 때 무심코 주었던 물건이다.

하여 눈여겨보는데 알론이 입을 연다.

“이게 잘 써졌는데 얼마 전부터 아무것도 써지지 않습니다.”

“그건 고장이 아니라 잉크를 다 써서 그런 거네.”

“네? 잉크요?”

“그래, 그런 게 있지. 가만있어 보게.”

아공간을 뒤져 볼펜심 하나를 꺼냈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갈아서 쓰는 거네. 이거 보이지? 이제 다 사라지면 이렇게 하게.”

볼펜심 가는 법을 알려주자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저어, 혹시 이거 더 있으십니까?”

“왜? 이것도 팔아보게?”

“네. 이거 쓸 때 너무나 편했습니다. 물이 묻어도 지워지지 않고 깨끗하게 써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하긴 이곳에서 쓰는 깃털 달린 펜보다는 월등히 필기감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주기는 하겠다만 다 쓴 것은 반드시 회수해야 하네.”

“아이고, 물론입죠.”

얼른 고개를 조아린다. 한눈에 보기에도 볼펜심은 심상치 않다. 투명한 무언가는 아주 매끈하다. 끝에 달린 것은 확대경으로 확대해 보자 미세한 선이 보였다.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건 장인 종족이라는 드워프도 못 만든다. 그렇기에 다 쓴 것이라도 회수가 당연하다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자넬 믿고 내놓지.”

아공간에 담겨 있는 것 중 12,000자루를 꺼냈다. 검정색 6,000자루, 파란색 3,000자루, 빨간색 3,000자루이다.

내친김에 교체용 심도 같은 숫자만큼 꺼냈다.

“이게 다네. 그리고 이건 판매 후 반드시 회수하게.”

현수는 볼펜심을 싸고 있는 비닐을 가리켰다. 아르센 대륙의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배려이다.

“그럼요. 그럼요. 당연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요.”

알론과 말링코는 볼펜의 상품 가치를 알기에 아주 환한 표정이다. 현수는 하나당 최소 1실버는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0만 원이다. 문방구에서 자루당 600원 정도에 팔리니 160배 이상의 폭리이다.

하지만 이건 현수만의 생각이다.

볼펜을 보고 있는 알론은 세트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 장부를 기록하다 보면 검정색만으론 부족할 때가 있다.

이익은 검정색, 손해는 붉은색이나 파란색으로 기록하면 훨씬 보기에 편할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나머지 색으로 기록하면 된다. 늘 장부를 끼고 살기에 단숨에 색깔의 효용성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튼 검정, 파랑, 빨강 한 세트를 1골드에 팔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550배 이상의 폭리가 된다.

이만한 필기구는 세상에 없고 물량도 한정되어 있으니 귀족가 행정관들이 앞다퉈 사려고 줄을 설 것이다. 다른 상단에서도 필요하니 구매할 것이다.

볼펜심 하나의 소매가격은 150∼200원 수준이다. 알론은 이를 1실버에 팔 생각이다. 500∼660배 폭리가 된다.

곁에선 말링코 역시 같은 생각이기에 섬전의 속도로 계산을 하고 있다.

검정, 파랑, 빨강 3,000세트이다. 검정색 단품은 4실버씩 받을 생각이다. 4,200골드이다. 심까지 계산하면 5,400골드가 된다. 한국 돈으로 54억 원 정도의 가치이다.

현수에게 2,300골드를 받은 만드라고라는 매입비용 1,495골드였다. 이 때문에 7지부는 재정난을 겪은 바 있다.

그런데 밑천 한 푼 들이지 않았음에도 2,700골드나 되는 수익이 발생된다. 지부 규모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이익이 된다.

그렇기에 싱글벙글하는 표정이다.

“이걸 판매한 대금 역시 쉐리엔 채집 비용으로 쓰게.”

“네에? 이걸 전부요?”

말링코와 알론의 눈이 또 커진다. 이들에게 있어 쉐리엔 10톤이 1골드쯤으로 여기고 있다.

쉐리엔 값이 그만큼을 채집하는 데 드는 품삯이다. 따라서 2,700골드는 27,000톤의 쉐리엔을 수집해야 한다.

부피만으로도 어마어마하기에 넋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 내가 필요한 것이니 잘해주게.”

“아이고, 물론입니다. 책임지고 제대로 채집해 두겠습니다.”

알론과 말링코가 이구동성으로 합창한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쿵, 쿵, 쿵―!

“누구슈?”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짓고 있던 말링코의 물음에 누군가 대꾸한다.

“어서 문을 여시오. 영주님께서 납시셨습니다.”

“네? 허억!”

화들짝 놀란 말링코가 얼른 문을 연다. 거기엔 올테른의 총독 에릭 마이스진 백작이 서 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께서 어떻게 이곳까지…….”

말링코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동안 마이스진 백작은 현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그리곤 곧바로 허리부터 꺾는다.

“마탑주님, 왕궁으로부터 받은 전갈을 보고하려 왔습니다.”

“흐음, 들게.”

현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할 때 말링코와 알론의 뇌는 텅 비어가는 중이다.

마이스진 백작의 입에서 나온 마탑주라는 세 글자 때문이다.

“거기 앉지.”

“네.”

마이스진 백작이 조심스레 자리에 앉고는 작은 양피지 조각을 건넨다.

“국왕 전하께서 마탑주님 뵙기를 고대한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언제든 오셔도 된답니다. 이건 수도의 좌표입니다.”

“그래? 고맙네, 수고해 주어.”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흐음, 이쪽이 케이상단 7지부장인 말링코이고, 이쪽은 서기인 알론이네. 앞으로 잘 좀 봐주게.”

말링코와 알론의 얼굴을 확인한 백작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흐음, 백작의 아들 말이네.”

“네, 말씀하십시오.”

“이젠 철이 좀 들었다고 들었네.”

“……!”

“사실 지난번 이곳을 방문했을 때 영원히 자식을 볼 수 없도록 금제를 걸어놓았었네.”

“그, 그러셨습니까?”

대를 끊어놓았다는 말에도 마이스진 백작은 발작하지 못했다. 감히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백작을 보아 기회를 한번 주려 하네. 그러니 다시는 그때와 같은 난봉질을 못하도록 잘 지도하게.”

“무, 물론입니다. 각골명심하겠습니다.”

또 한 번 고개를 조아리는 백작이다.

“불러오게. 금제를 풀어주겠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개를 숙인 백작이 뒤로 시선을 주자 테리가 잽싼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피어슨 마이스진이 왔다.

이실리프 마탑주라는 말에 얼었는지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내가 누군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고, 나는 앞으로 이곳을 자주 드나들게 될 것 같다. 또 한 번 악행을 저지른다는 소리를 들으면 너는 또다시 신관처럼 살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네 스스로 반성한 듯하니 그간의 금제를 풀어주마. 매직 캔슬!”

샤르르르르릉―!

마나가 피어슨의 몸으로 스며들자 부르르 떤다. 그간 억제되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풀리는 반응이다.

“백작, 신세 많이 졌네.”

“아이고, 아닙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좀 바쁘니 그건 나중에 하세.”

“네, 그러십시오.”

“이건 백작부인에게 주는 선물이네. 받게.”

아공간에 담겨 있던 향수와 오데코롱을 건네며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뭘 이런 걸 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이스진 백작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할 때 현수의 입이 열린다.

“그럼 모두 나중에 또 보세.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진다. 그러자 모두가 경악성을 터뜨린다. 이런 건 처음 보기 때문이다.

“허억! 과연……!”

* * *

샤르르르르릉―!

테리안 왕국의 수도 한편에 마련된 워프게이트에 안개가 어리는가 싶더니 현수가 나타난다.

여전히 C급 용병 차림이다.

“흐음! 이곳이 테리안 왕국의 수도 아르곤인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한 계단 내려서는데 누군가 외친다.

“어서 오십시오, 마탑주님! 테리안 왕실 근위대장 란돌프 체임벌린이 인사드립니다!”

계단 아래엔 왕실근위대 정복을 걸친 기사 300여 명이 일제히 한 무릎을 꿇은 채 주먹을 왼 가슴에 대고 있다.

“방금 왕실근위대장 란돌프 체임벌린이라 했나?”

“네. 마탑주님을 모시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래, 그랬군. 좋아, 왕궁으로 안내해 주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

절도있게 고개 숙여 예를 갖춘 란돌프가 먼저 일어서며 소리친다.

“근위대 기상! 마탑주님께 대하여 예를 갖춰라!”

“마탑주님의 왕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흐음, 그래. 그대들의 환영 인사 잘 받았다.”

“감사합니다.”

군기 바짝 든 이등병처럼 대답한 왕실근위대가 양쪽으로 갈라서며 공간을 만든다.

이번엔 초록색 카펫이다. 시야가 미치는 곳까지 펼쳐진 카펫의 좌우에는 정복 차림의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흐음! 가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란돌프 체임벌린이 검을 뽑아 허공으로 치켜들더니 구령을 외친다.

“전체, 무릎 꿇어!”

“충―!”

300여 근위대는 물론이고 2,000여 병사와 5만이 넘는 백성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가시지요.”

“흐음, 그러지.”

근위대장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아르곤을 살폈다. 아드리안 공국의 수도 멀린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멀리 왕궁이 보이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듯하다.

약 600여m를 걷자 왕궁 정문이 나타난다.

“충―! 마탑주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왕궁수비대장이 목청껏 소리치자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치켜든다.

“충―! 마탑주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현수가 알았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일제히 검을 집어넣고는 한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갖춘다.

초록빛 카펫 위를 걷는 동안 왕궁 안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린다.

또 한참을 걸으니 드디어 카펫의 끝이 보인다.

왕관을 쓴 국왕과 왕비들, 그리고 왕자와 공주들이 도열해 있다. 그들의 좌우엔 공작, 후작 등 귀족들이 시립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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