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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31화 (531/1,307)

# 531

“고맙습니다. 국왕 전하와 테리안 왕국의 후덕함을 우리 이실리프 마탑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마탑주께서 원하시는 바이니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언제든 우리 테리안 왕국이 필요하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로렌스 국왕은 환히 웃고 있다.

알베제 마을을 포함한 인근 영토는 누구나 테리안 왕국의 영토라 인정한다. 하지만 행정력은 그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너무나 궁벽하여 인구가 적은 때문도 있지만 몬스터의 출몰이 극심하여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국 입장에서 보면 세금 한 푼 걷히지 않는 척박한 땅이다.

그것을 주고 이실리프 마탑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면 당연히 내놓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기에 길게 생각할 것 없이 결정한 것이다.

“나 역시 테리안 왕국에 도움이 되길 바라니 언제든 우리 마탑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로렌스 국왕을 비롯한 공작 모두 환히 웃는다. 마치 오래토록 염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듯한 표정이다.

잠시 후, 헤센 공작이 작은 지도를 가져온다. 그리곤 이실리프 마탑에 할양할 부분을 선으로 그어 보여주었다.

원하던 대로 알베제 마을에서 올테른 인근까지 이르는 바세른 산맥 아랫자락이다.

“이 지역은 이실리프 마탑의 소유가 됩니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우리 왕국 사람들이 출입코자 할 때엔 미리 연락을 드릴 터이니 출입을 허가하여 주십시오.”

“기꺼이 그러지요.”

“이곳뿐만 아니라 쉐리엔은 어느 곳에나 널려 있는 잡초이니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채집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주면 고맙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 필요하신 건지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흐음, 그래요?”

국왕이 틱을 쓰다듬는다. 어떻게 하나 생각 중인 것이다.

“기왕이면 채집 용기에 담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도 있습니까?”

“한번 보시겠습니까?”

말 나온 김에 밖으로 나가 A급 컨테이너를 꺼내 보여주었다. 모두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과연 이실리프 마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이처럼 큰 물건을 정교하고 반듯하게 만든 것이 신기한 것이다.

보존 마법과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 상당히 많이 담을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그리곤 공짜로 받을 수 없으니 하나를 채워주면 그에 합당한 것을 주기로 했다.

돈은 줘도 안 받을 것이라 잠시 생각한 끝에 내놓은 것은 테리안 왕국에선 구하기 힘든 소금이다. 그리고 몸에서 나는 악취를 제거하고 살라는 뜻으로 비누를 꺼냈다.

이것을 본 헤센 공작이 아는 척을 한다. 오래전 써본 물건이기 때문이다.

세실리아가 시집간 집안이 헤센 공작가의 방계였던 것이다.

라면 공장을 털 때 가져온 소금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렇기에 5톤 트럭 석 대 분의 소금을 꺼냈음에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지금은 몇 개 남지 않아 하나당 5골드에 거래되는 비누 역시 상당히 많이 꺼내주었다.

땅을 거저 할양해 준 것에 대한 대가라 생각한 것이다.

국왕과 귀족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린다. 비누와 소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마어마한 용량의 아공간을 보고 놀란 것이다.

많던 비누와 소금의 상당량은 국왕이 귀족들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분배된다. 물론 당장은 왕실 창고로 옮겨진다.

“마탑주님 덕분에 귀한 물건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국왕이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하기에 같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이때 누군가의 급박한 발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쿵, 쿵!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기사 하나가 황급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친다.

“국, 국왕 전하, 급보이옵니다!”

“어허! 귀빈이 와 계신데 이 무슨 실례이더냐?”

헤센 공작의 꾸짖음에도 기사는 대꾸하지 않고 로렌스 국왕만 바라보며 소리친다.

“전하, 어젯밤부터 헨탈 영지가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무어라? 그렇다면 브론테 왕국이 침공했단 말이냐?”

모두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 그러하옵니다. 간악한 브론테 놈들이 기어이, 기어이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이옵니다.”

“끄응!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브론테 이 잡놈들이!”

로렌스 국왕이 뒷목을 잡으며 털썩 주저앉는다.

“전하, 헨탈 영지가 총력을 기울여 놈들의 발길을 붙잡고는 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보고이옵니다. 한시바삐 지원군을 파병하셔야 하옵니다.”

보고하는 기사의 눈이 시뻘겋다.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놈들의 수효는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파, 팔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기사의 보고를 받은 국왕이 국방을 책임진 헤센 공작에게 시선을 돌린다.

“팔만? 끄응! 공작, 누마 백작이 얼마나 버티겠소?”

“전하, 누마 백작의 병사 수는 불과 일만이옵니다. 단단히 준비한 수성전이겠지만 적의 병력이 여덟 배나 많으니 길어야 사흘일 것이옵니다. 게다가…….”

헤센 공작이 추가로 이르려는 순간 국왕이 아돌프 공작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돌프 공작, 헨탈 영지 인근의 영지 병사들을 총동원하면 그 수효가 얼마나 되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

말을 마친 아돌프 공작이 시종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커튼을 젖혀라!”

“네, 공작 각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벽면을 가리고 있던 커다란 커튼이 활짝 열린다. 거기엔 테리안 왕궁을 비롯한 이웃나라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물론 정확한 지도는 아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그러는지 국왕과 공작 등은 현수의 존재를 잊은 듯 지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전하, 헨탈 영지 부근 영지는 라쿠텐 영지, 주알린 영지, 그리고 휴턴스 영지가 있습니다. 라쿠텐엔 기사 50과 병사 5,000이, 주알린엔 기사 60과 병사 6,000, 그리고 휴턴스 영지엔 기사 40과 병사 4,000이 있습니다.”

“흐음, 다 해봐야 기사 150에 병사 15,000이구려. 그 병력으로는 간악한 브론테 놈들의 더러운 발길을 막을 수 없소.”

“전하,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제 영지에 기사 300에 병사 30,000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내겠습니다.”

“전하, 제게도 같은 수의 병력이 있습니다. 일단 이들을 보내겠습니다. 그런 후 총동원령을 내리시옵소서.”

두 공작이 보유한 사병을 다 내놓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에 현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자신의 힘은 최대한 감추고 다른 귀족가의 병력을 빼려는 게 상식이다.

혼란기가 지난 이후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방책이다.

그런데 두 공작은 솔선수범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려는 듯 보유 사병 전원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여 새삼스레 둘을 바라보았다. 이때 로렌스 국왕의 말이 이어진다.

“왕국의 병사들을 긁어모으면 얼마나 되오?”

“총동원령이 내려지면 기사 4,000에 병사 40만은 됩니다.”

“흐음! 문제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놈들에게 축차 소모만 될 것이오.”

“그렇다면 전하, 일단 후퇴를 하여 중부의 멘티온 평지에서 대회전을 준비하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헤센 공작이 지도의 한 면을 가리킨다. 보아하니 헨탈 영지로부터 왕국에 이르는 두 산맥 사이의 분지이다.

초록색으로 그려놓은 것을 보면 왕국의 곡창지대인 듯하다.

“으으음!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올해 농사는 완전히 망치게 되오.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식량이 부족하게 되오.”

로렌스 국왕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다.

군주로서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하, 저와 헤센 공작 등 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곡식을 모두 풀면 올해는 버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돌프 공작이 헤센 공작을 바라본다. 동의하느냐는 뜻이다. 이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헤센이 한마디 보탠다.

“국왕 전하, 이번 기회에 간악한 브론테 놈들의 씨를 말려야 하옵니다. 그간 얼마나 당해왔습니까? 이젠 더 이상 양보하면 안 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사옵니다. 이번엔 놈들의 간악한 행태를 결코 그냥 넘기지 마시옵소서.”

대부분의 나라는 공작들이 권력 암투를 벌인다. 하여 내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르센 대륙의 보편적인 역사이다.

그런데 이곳 테리안 왕국은 공작끼리 불알친구라도 되는지 뜻이 척척 맞는다. 하여 의외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흐으음!”

로렌스 국왕은 시름이 깊은지 나지막한 침음을 낸다.

“전하, 어서 결정하시옵소서. 그냥 놔두면 헨탈 영지는 놈들의 축제장이 되옵니다. 국가의 간성(干城)인 누마 백작의 장례식도 치를 수 없을지 모릅니다.”

“으으음! 정녕 맞붙는 수밖에 없단 말이오?”

“브론테 놈들이 어떤 자식들인지 잊으셨습니까? 그동안 우리 테리안 왕국은 너무나 많은 양보만 하였사옵니다.”

헤센 공작이 목의 핏대를 세운다.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놈들을 깡그리 제거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놈들은 제거해야 마땅할 흑마법사들의 비호를 받습니다. 정녕 우리 테리안 왕국 백성들이 좀비나 구울이 되는 꼴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아돌프 공작도 얼굴을 붉히며 국왕의 결정을 재촉한다.

“공작, 우리가 붙어서 이길 수 있겠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여 병사들의 조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사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조련의 초점은 간악한 브론테 왕국 놈들을 깨부수는 데 맞춰두었습니다. 해볼 만할 것이옵니다.”

아돌프 공작에 이어 헤센 공작이 마무리를 짓는다.

“흐으음, 놈들에겐 흑마법사들이 있지 않소?”

“그, 그건… 전하, 왕실마법사인 베르나가 7서클이 되었으니 해볼 만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렇지. 베르나 마법사가 있었어. 그런데 베르나 혼자의 힘으로 되겠소? 너무 늙은 데다 흑마법사의 수효가 기천이라는 소문이 있질 않소?”

국왕의 발언에 현수가 눈빛을 빛낸다. 흑마법사가 기천이라는 말 때문이다.

스승인 멀린에게도 스승이 있었다.

브리앙이라는 5서클 마법사이다. 흑마법사의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던 브리앙을 어린 멀린이 구완한 바 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마법을 배웠고, 결국 9서클 마법사가 된 것이다.

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에 멀린은 이실리프 마법서를 얻은 사람이라면 흑마법사 보기를 사갈시하라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흑마법사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상세히 기술해 두었다. 그 내용을 몇 마디로 요약해 보면 흑마법사는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절대 악이다.

그리고 개과천선이 안 되는 존재이니 보는 족족 없애는 것이 최상책이라 쓰여 있다.

실제로 멀린은 눈에 띄는 모든 흑마법사를 세상에서 지웠다. 그때 사라진 인원이 전체 중 거의 9할에 가깝다.

저쪽에서 보면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다.

아무튼 현수는 스승의 당부를 읽은 바 있다.

그리고 스승의 스승인 브리앙 마법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이 흑마법사이다. 하여 끼어들 요량으로 물었다.

“국왕 전하, 방금 흑마법사라고 하셨습니까?”

“네? 아, 네. 우리 영토를 침범한 브론테 왕국은 흑마법사들이 활개를 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후작이라는 놈이 우리 공주를 첩으로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여 일언지하에 거절했더니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였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듣자 하니 어젯밤에 공격을 당했다는데 혹시 좀비나 구울을 앞세운 공격입니까?”

“그렇습니다. 놈들은 야간 습격을 선호하는데, 전투 중 사망한 병사들을 좀비나 구울로 만들어 선봉에 세웁니다. 놈들 병력 3만 중 적어도 1만 5천은 될 것입니다.”

“으음! 헨탈 영지의 좌표가 있습니까?”

국왕은 얼른 헤센 공작에게 눈짓으로 묻는다.

“네, 있습니다. 즉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헤센 공작은 마탑주가 전장으로 가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얼른 무언가를 꺼내온다. 거기에 좌표를 기록해 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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