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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32화 (532/1,307)

# 532

그리곤 혹시 마음이 바뀔까 싶었는지 얼른 다가와 좌표를 불러주곤 묻는다.

“마탑주님, 혹시 저도 데리고 갈 수 있으신지요?”

“……?”

흘깃 바라보니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다. 보아하니 전장에서 한 힘 보태고 싶은 듯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데리고 가는 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친 헤센 공작이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국왕 전하, 전대 마탑주이신 스승께서 흑마법사들은 세상을 해롭게 할 존재이니 반드시 제거하라 하셨습니다. 헨탈 영지로 가려 하는데 허락하시는지요?”

현수가 이렇게 나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승인 멀린의 유지를 이으려는 것이다.

둘째는 두 공작의 솔선수범이 마음에 와 닿은 까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조선의 권력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치열한 권력 다툼을 했다.

선조 22년 12월, 낙향한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여 역모를 꾀한다는 보고가 조정에 들어왔다.

이보다 먼저 안악군수와 재령군수 등이 연명하여 황해도 관찰사 한준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이 보고서를 받은 한준이 왕에게 고한 것이다.

내용은 정여립 일당이 한강이 언 틈을 타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나포된 정여립 일당은 의금부로 호송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여립이 자살한다.

그의 자살은 역모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역모의 고변이 사실인 것으로 굳어진다.

서인 정철은 정여립 모반 사건에 관여하여 정여립과 가깝게 지내던 동인 이발, 이호, 백유양 등을 처단하였다.

그간 동인에게 당했던 복수를 하는 듯했다.

이에 숙청된 인사만 해도 1천여 명에 육박했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 정여립의 자살이다. 그가 죽지 않고 끝까지 억울함을 항변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런데 조사도 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누군가의 조작된 농간이라면 1천여 명의 애꿎은 목숨만 사라진 것이다.

정여립의 자살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서인이 꾸민 간계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세력은 상대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다.

어쨌거나 일본 전국이 하나로 통일되자 선조는 신하들을 통신사로 보내 정찰토록 했다.

서인인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선함의 수를 늘리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반면, 동인인 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 준비를 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며 주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한 그러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시키니 사리에 매우 어긋난다고 했다.

어떻게든 상대를 깎아내리고 보자는 못된 심보였다.

그 결과 조선은 왜놈들의 발길에 더렵혀지고 말았다.

국난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권력 다툼이나 벌이던 개만도 못한 놈들 때문에 애꿎은 백성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도 그러하다.

국회를 가보면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상대가 무슨 일을 하려 하면 사사건건 걸고넘어진다. 어떻게든 상대를 깎아내려야 하고, 서로를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편을 가르고, 그 한편에 서서 정치적인 이익과 권력을 챙기는 정치인들의 집합소가 바로 국회이다.

그래서 무조건 반대와 무조건 보호가 횡행했다.

조금 전, 아돌프 공작과 헤센 공작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힘을 합쳐 국난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유한 사병을 동원할 것이며, 기꺼이 사재를 털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너무도 보기에 좋았기에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될 전쟁에 자원한 것이다.

“마탑주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디 우리 테리안 왕국을 도와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기꺼이 그러지요.”

현수가 싱긋 웃음 지을 때 대전의 문이 열리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걸어 들어온다.

국왕과 아돌프 공작은 대체 누구인가 하는 표정이다.

사내는 현수에게 다가와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마탑주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소인 베르나가 7서클 마법사가 되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국왕과 아돌프 공작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깨달음을 얻어 서클을 올리면서 바디체인지가 일어나 젊어진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노쇠하여 관 속에 누울 일만 남았던 베르나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니 놀란 것이다.

“세상에!”

“우와아! 바디체인지의 결과가……!”

테리안 왕국 역시 아드리안 공국과 마차가지로 소드 마스터가 없다. 그렇기에 바디체인지가 일어나면 어찌 되는지 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 베르나가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것을 축하하네. 그나저나 헨탈 영지가 공격 받고 있다 하니 나와 같이 가세.”

“기꺼이 마탑주님을 수행하겠습니다.”

7서클에 올랐지만 9서클 마스터인 것으로 알려진 하인스 마법사와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더없이 공손한 모습으로 고개를 조아린다.

“헉헉! 마탑주님……!”

헤센 공작이 갑옷 차림으로 달려온다. 그의 손에는 바스타드 소드가 쥐어져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좋아 보인다.

“그럼 가세. 이쪽으로 가까이…….”

현수의 손짓에 따라 헤센 공작과 베르나가 바싹 다가선다.

국왕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곧 있을 텔레포트를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다녀오지요. 매스 텔레포트!”

샤르르르르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셋의 신형이 사라진다.

“……!”

아돌프 공작과 국왕, 그리고 시종장의 눈이 커진다.

사람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장면이 너무도 몽환적으로 느껴진 때문이다.

같은 순간, 현수와 헤센 공작, 그리고 베르나 마법사의 신형은 다른 장소에 나타나고 있었다.

4장 흑마법사

“무엇들 하느냐? 어서 쏘아라! 돌을 더 많이 가져와라!”

“끓는 기름은 왜 이렇게 안 와?”

“한 놈도 못 올라오게 찔러라!”

챙! 챙! 채챙! 채채채챙!

성벽 위로 기어오르려는 병사와 이를 저지하려는 병사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궁병들은 뭐하나? 어서 쏘아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핑! 핑! 핑! 피융! 피융! 악! 쐐애액!

상호간의 활 쏘는 소리도 제법 시끄럽다.

성벽 위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도 올라서려는 적병을 연신 베어 넘기는 사내가 있다.

“누마 백작입니다. 저와 같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지요.”

헤센 공작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살폈다.

“좀비와 구울은 보이지 않는군.”

“지금은 대낮이니까요. 좀비와 구울은 밤에만 공격에 가담합니다. 아주 골치 아픈 놈들입니다.”

헤센 공작이 이맛살을 진하게 찌푸린다. 생각만으로도 짜증나기 때문이다.

좀비와 구울은 칼이나 창으로 인한 공격에 타격받지 않는다. 이미 죽은 시체이기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두 다리와 두 팔 모두 베어내지 않으면 쓰러진 상태에서도 공격에 가담한다.

“뭐하나? 어서 사다리를 밀어!”

“끓는 물을 쏟아부어라!”

“여기 돌 떨어졌어! 돌 더 가져와!”

“여긴 화살 떨어졌다! 빨리 가져와!”

여기저기서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젯밤 준비한 돌과 기름, 그리고 화살 대부분을 소모한 때문이다.

침입했던 적병들이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좀비와 구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사용치 않았을 무기이다.

“야아압! 죽어라!”

“이런 개 썅! 죽어! 이이익!”

“어딜 감히 넘어와? 내 칼을 받아라! 야압!”

챵! 챙! 채챙! 채챙! 창! 차창!

혼전도 이런 혼전이 없다. 살펴보니 헨탈 성은 협곡 사이의 비탈 위에 지어진 석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대략 5m 정도 되며, 꼭대기는 두 사람이 교행할 정도의 폭으로 조성되어 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성벽은 대략 500m쯤 된다.

밑에서는 영지민들이 돌과 화살 등을 운반하고 있다.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장정들은 이미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밑에는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만 있을 뿐이다.

마치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모두 고개를 숙여라!”

쐐에엑! 슈아악! 쐐에엑!

콰앙! 쿠웅! 콰지직! 와르르르!

누군가의 고함에 시선을 돌려보니 어른 몸통만 한 돌덩이가 날아온다. 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숨긴다.

날아온 돌덩이는 성벽을 두들기고 떨어진다. 이 와중에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자 적병들이 몰리고 있다.

“성벽이 너무 낮군.”

현수가 중얼거리자 헤센 공작이 입을 연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올 봄에 놈들의 습격이 있어 모두 무너지는 바람에 다시 쌓은 겁니다.”

“흐으음! 두 분도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 합니다. 그럼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그러세요. 나는 잠시 상황을 살피겠습니다.”

“네, 그럼! 베르나 마법사, 같이 가세.”

“네, 공작님!”

헤센 공작이 앞장서서 성벽 위를 내달리며 적병들에게 검을 휘두르자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캐애액! 아악! 커헉! 끄윽!”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라이트닝 볼트! 파이어 애로우!”

“캐액! 크윽! 아아악! 컥! 캐캑!”

베르나 마법사가 날린 마법이 격중될 때마다 적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모두 힘내라! 7서클 마법사가 지원 나오셨다!”

“와아아아!”

뭔 소린가 했던 병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환호한다. 7서클 마법사는 전장의 지배자로 불리기 때문이다.

베르나는 병사들의 환호를 들으며 룬어를 영창한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는 강력하게 외친다.

“적에게 죽음을! 파이어 레인!”

쏴아아아아아아―!

허공에서 생성된 시뻘건 불꽃이 성벽 아래 적병들에게 쏟아져 내린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여기저기서 화염이 솟아오른다.

“아아악! 뜨거워! 크윽! 도망쳐야 해! 아아악! 크으윽!”

적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물러난다.

성벽을 공략하기 위해 방패는 놓고 왔다. 그런데 병장기로는 막을 수 없는 공격이기에 모두가 뒷걸음질 친 것이다.

일부는 전우의 사체를 방패 삼아 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의복에서 불길이 솟기 때문이다.

베르나는 자신이 시전한 마법의 위력을 보고 놀라는 중이다. 6서클 때와는 완연히 다른 강도와 범위이기 때문이다.

잠시 호흡을 고른 베르나는 또 다른 룬어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물러나는 적들이 한곳으로 규합되는 것을 본 것이다.

“마나여, 적에게 죽음을! 익스플로전!”

베르나의 두 손에서 생성된 커다란 구체가 적병들의 중심지로 쇄도한다. 그리곤 굉음을 뿜어내며 폭발하였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소리에 적병들의 비명과 신음이 묻혀 버린다. 그와 동시에 모든 전투가 일순간에 멈춘다.

모두가 폭발음에 시선을 돌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이다. 폭발음에 버금갈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물론 헨탈 성을 수비하는 영지군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다.

“와와와와! 7서클 마법사 만세! 만세! 만세! 와와와와!”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상대 쪽은 혹시 또 다른 공격이 있을까 싶어 그러는지 일제히 산개한다.

그러는 와중에 로브를 걸친 일단의 무리가 달려온다.

성벽 위에 서서 오연한 시선으로 파괴된 적 진지를 살피는 베르나 마법사가 있는 곳을 향한 달음박질이다.

이들의 숫자는 여섯이다.

이 순간 나직이 중얼거리는 존재가 있다.

“흐음, 암울한 마나가 느껴지는군. 흑마법사에게선 이런 느낌이 나는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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