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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33화 (533/1,307)

# 533

흑마법사 중 하나로 분류되는 네크로맨서 계열 마법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현수는 이 느낌을 잊지 않으려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순간에도 흑마법사들의 걸음은 늦춰지지 않았다. 같은 순간 베르나는 다른 곳을 살피고 있다.

딱 한 번 더 마법을 구현시킬 마나가 남아 있으니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한 적재적소를 찾는 것이다.

이를 눈여겨본 현수가 한 발짝을 내디디려는 순간 이상한 것이 보인다. 도주하던 적병들이 모두 되돌아와 동료의 시신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

전우애가 남달라 그런가 싶었는데 아닌 듯하다. 병사들 뒤쪽에 준비된 마차로 부상자와 시신을 마구잡이로 얹어놓고 있다. 마차 곁에는 검은색 로브를 걸친 자들이 서 있다.

“이브즈드랍!”

마법을 구현시키자 적어도 200m 이상 떨어진 곳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빨리빨리! 어서 움직여! 빨리 움직여야 이놈들을 좀비로 만들 수 있다! 어서! 어서 움직이란 말이야!”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잽싸게 시신을 옮기고 있다.

“전장에서 시체로 좀비로 만들어? 이실리프 오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공에서 솟은 이실리프 마법서가 열린다. 색인에서 좀비 부분을 찾아 손을 대니 곧바로 하이퍼링크된 부분으로 넘어간다.

“흐음, 좀비 제조 방법이라…….”

마법서에는 실제로 좀비를 제조 방법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참고 사항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재료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간략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체를 좀비로 만들려면 당연히 흑마법사의 주문이 필요하다. 이때 가장 주된 재료는 여섯 살을 넘지 않은 아이의 선혈이다.

여섯 살의 표준 체중은 25㎏ 정도이고 혈액량은 약 2∼3리터 정도이다. 그런데 좀비 하나를 만들려면 1리터 이상의 신선한 혈액이 필요하다. 이를 감안하면 좀비 300구를 만들 때 아이 200명 이상이 희생된다.

어린아이 선혈을 대체할 것으로 여자의 선혈도 있다.

다만 일반 선혈은 안 되고 원한을 품고 죽은 여자의 피여야 한다. 또한 아이들에 비해 두 배가량이 소요된다.

이실리프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피를 얻기 위해 여자의 가족 모두를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뒤에 동맥을 끊어 얻는다고 되어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감당하기 힘든 치욕을 겪게 한 뒤 심리적으로 원독에 찼을 때 살해한 뒤 얻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만한 잔인한 수법이다. 현수 역시 그러하기에 나직한 침음을 냈다.

스승이 남긴 글대로 흑마법사들은 절대 악인 것이다.

그러면서 전장을 두루 살폈다. 이제부터 흑마법사들을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에 일단의 무리가 베르나 아래쪽에 당도한다.

그런데 베르나의 시선은 뒤쪽으로 고정되어 있다. 적병을 하나라도 더 제거하려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블링크!”

드디어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1초 후 베르나 곁에 나타나선 지체없이 흑마법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번쩍―!

“캐액! 아악! 크윽! 캑! 끄윽! 아아악!”

베르나에게 마법을 쓰려던 흑마법사들이 단말마를 내며 쓰러진다. 단 한 놈도 도주하지 못한 것이다.

“헉! 마탑주님!”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흑마법사들을 본 베르나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 마나부터 모으게. 우리가 참여할 전투는 아무래도 해가 져야 할 것이니 말이네.”

“네, 알겠습니다.”

매지션 로드의 명인지라 찍소리 않고 내성 쪽으로 향한다.

이쪽은 피해 상황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저쪽은 널려 있는 시신들을 수거하느라 여념없는 상황이다.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현수는 예리한 시선으로 적진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 느꼈던 흑마법사들의 느낌을 살려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흐으음! 삼백이라…….”

반경 2㎞ 내에 존재하는 흑마법사 기운의 숫자이다. 좀비와 구울의 수도 파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이 있는 곳에 존재할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다.

“좀비나 구울을 쓰려면 흑마법사들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 했겠다. 좋아, 그렇다면 잠시 기다려 주지.”

현수의 말대로 좀비와 구울을 조종하여 공격케 하려면 흑마법사들이 200m 내에 있어야 한다는 구절을 떠올린 것이다.

“누마 백작, 인사드리게. 이실리프 마탑주이시네.”

“네? 헉! 아, 안녕하십니까?”

오십 줄에 접어든 누마 백작이 얼른 허리를 꺾는다. 헤센 공작조차 존대를 쓰는 존재이니 당연한 일이다.

“반갑네, 누마 백작.”

“제 영지를 찾아주셔서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마탑주님!”

“도움이 될까 해서 왔네. 참, 이쪽은 궁정마법사인 베르나이네. 깨달음을 얻어 7서클 대마법사가 되었지.”

“네에? 지, 진짜 베르나 대마법사님이십니까?”

“대마법사라니? 누구 앞에서. 그냥 마법사일 뿐이네. 그리고 로드의 은혜를 입어 이렇게 되었다네. 나도 거들러 왔네.”

“아아!”

베르나는 아흔 살의 호호백발 늙은이였다. 전신에 퍼진 검버섯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누마 백작은 베르나를 신년 하례식 때 보았다. 그때의 생각은 ‘길어야 일 년쯤 더 살 것이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보다도 더 팔팔해 보인다. 그래서 조금 전 현수의 곁에 있을 땐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허! 누마 백작, 마탑주님을 이렇게 세워둘 건가? 어서 내성으로 안내하게.”

“헉! 아, 아닙니다. 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원래는 시종들이 할 일이다. 그런데 당황한 나머지 손수 안내를 시작한다.

헤센 공작과 베르나, 그리고 현수는 백작의 안내를 받아 내성으로 들어갔다.

“듣자 하니 어젯밤에 첫 습격이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낌새가 이상하여 병사들에게 단단히 준비하고 경비하라 일러둔 것이 주효하여 큰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누마 백작의 말대로 어젯밤의 공격은 피해가 크지 않았다.

공격해 온 좀비와 구울은 성벽을 기어오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들어보니 화살 등은 다 소진한 것 같은데…….”

“어젯밤의 습격 때 병사들이 너무 많이 소모하여……. 죄송합니다.”

변명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누마 백작이다.

브론테 왕국의 어젯밤 습격엔 노림수가 있었다. 헨탈 영지가 보유하고 있는 화살 및 돌멩이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좀비와 구울은 이런 공격엔 별다른 피해가 입지 않기에 성벽을 넘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공격이 있었습니까?”

현수의 물음에 헤센 공작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네, 처음엔 좀비와 구울을 동원하여 아군의 화살 등을 소모시킵니다. 둘이 섞여 있으면 산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날이면 이쪽의 군세를 파악하기 위한 공격이 있지요. 연후에…….”

헤센 공작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브론테 왕국군은 접전을 벌이면서 군세를 파악하면 일단 물러간다. 이때 시체들을 모두 수거한다. 적아의 구별은 없다.

모두 좀비와 구울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러기 위해 브론테 왕국군은 출정 이전부터 은밀한 준비를 한다. 이때 납치되는 아이와 여자들은 모두 이웃나라에서 구한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전쟁에 나서기 직전 모든 노예의 자식들을 징발한다. 그리고도 눈에 뜨이는 모든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납치한다.

애들은 심부름을 시키고 여자들은 밤마다 치욕을 겪게 된다.

아무튼 다음 날쯤 공성무기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공격한다. 좀비와 구울을 성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되는 돌멩이 중에는 이쪽에서 저쪽에 사용했던 것들이 포함된다. 적에게 무기를 준 셈이 된다.

그렇게 하여 성이 어느 정도 부서지면 일반 병사들이 합세한다. 최전방엔 기사단이 서고 다음엔 중갑보병이 따른다. 그들 바로 뒤를 창병들이 따른다. 일반 보병은 제일 끝이다.

이쪽은 화살을 거의 소모한 상황이기에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조금씩 병력 수를 줄여 나간다.

시체는 당연히 모두 회수한다. 그렇게 하여 만만해졌다 싶으면 야간에 좀비와 구울이 투입된다.

문제는 그간에 벌어진 전투로 얻은 시체를 좀비로 바꾸기 때문에 이쪽에선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당한다.

어제 죽은 아버지가, 그제 죽은 형이 적병이 되어 다가오는데 어찌 쉽사리 공격을 하겠는가!

아군은 계속해서 숫자가 줄어든다. 반면 브론테 왕국 쪽은 늘어나기만 한다. 시체가 병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당해낼 수 없는 전투이다.

이렇기에 브론테 왕국 주변 국가들이 이를 갈면서도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아무튼 브론테 왕국과의 싸움이 시작되면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아군 및 적군의 시체를 전력으로 수거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즉시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적의 병력이 될 수 없도록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럴 만한 상황이 못 되면 눈물을 머금고 모든 시체의 사지를 잘라낸다. 꿈에 나타날까 싶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빼앗기면 적병이 되니 할 수 없다.

따라서 브론테 왕국과의 전쟁은 누구나 싫어한다. 이겨도 찝찝하고 지면 모두가 좀비 내지는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으으음! 역시…….”

현수는 흑마법사는 눈에 띄는 족족 없애야 한다던 스승의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전원 사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마탑주님, 상황이 이래서 제대로 차릴 수는 없지만 식사라도 하시지요.”

누마 백작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성내의 모든 인원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내성 주방장과 시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정말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어낼 수 없기에 한 말이다.

“…그럽시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방장과 시녀들을 찾아…….”

“아니. 전투하느라 힘들었을 터이니 그들은 쉬게 하오. 음식은 내가 만들어보지.”

“네에?”

누마 백작과 헤센 공작, 그리고 베르나 마법사의 시선이 쏠린다. 무슨 말이냐는 뜻이다.

“요리는 내게 맡겨보게. 자, 주방은 어디지?”

“네? 이, 이쪽으로…….”

누마 백작의 안내를 받아 내성 주방으로 가보니 엉망진창이다. 갑작스런 총동원령이 내려졌으니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흐으음! 괜찮군.”

다른 주방과 달리 어둡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양상추 비슷한 것이 썰다 만 상태로 있다.

오이 비슷한 것도 보이고 피망 같은 것도 보인다.

‘좋아, 오늘 메뉴는 핫도그와 햄버거로 해야겠군.’

아공간을 열어 각종 재료를 꺼냈다. 그리곤 미친 듯이 요리를 시작했다. 아공간엔 수제 햄버거 패티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이것들을 펼쳐 놓고는 한 번에 익혔다.

2서클 마법인 파이어 웨이브가 제 역할을 하여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칼집을 낸 수제 소시지도 뜨거움을 이길 수 없다는 듯 익혀지면서 틈을 벌린다. 양배추와 양상추, 그리고 오이와 양파, 당근 등을 꺼내 가늘게 썰었다.

햄버거와 핫도그용 빵을 꺼내 이것들도 살짝 익혔다.

계란 프라이도 넉넉하게 만들었다. 치즈를 꺼내 준비된 재료와 함께 빵 사이에 끼워 넣었다. 다음은 케첩과 겨자 소스, 그리고 꿀 뿌리기이다. 다 해놓고 나니 색상도 아름답다.

마법을 쓰니 불과 한 시간 만에 2,000여 개의 햄버거와 핫도그가 만들어졌다. 이것만 먹으면 뻑뻑할 것이기에 우유를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이곳 사람들은 우유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우유 소화 효소인 락타아제(Lactase)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유를 마시면 복잡한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남는 락토오스가 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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