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37화 (537/1,307)

# 537

연희가 반색하며 달려든다.

“이제 막.”

지난 10월 27일에 한국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오늘은 11월 15일이다. 보름 이상 지났다. 그렇기에 반색을 하며 안긴다.

“자기야!”

“그래!”

쪼오오옥―!

연인 간의 진한 입맞춤이 잠시 이어졌다.

연희와의 포옹을 풀자 기다렸다는 듯 이리냐가 달려든다.

“나두, 나두!”

“응? 그래, 그래! 근데 잠시만.”

현수는 얼른 욕실로 갔다. 아르센에서 입었던 의복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머리의 물기를 털며 나오니 알리사가 음식 운반용 테이블을 밀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응! 알리사도 잘 있었지?”

“그럼요. 근데 식사는 어디에 차려 드릴까요?”

이제 막 도착했다고 하니 혹시 배가 고플까 싶어 차려 오라고 한 모양이다.

“저기, 저 테이블에…….”

“네, 주인님!”

알리사가 낯을 붉힌다. 현수의 조각 같은 상체 때문이다. 곁에 있는 샤워 가운을 걸치지 않을 수 없다.

자리에 앉고 보니 싱싱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눈에 띈다. 닭 가슴살과 양상추 등으로 만든 것이다.

포크를 들고 기분 좋게 먹고 있는데 이리냐가 다가온다.

“그건 뭐야?”

“샴페인이요. 자기야랑 마시고 싶어서 아끼던 거예요.”

“그래? 샴페인 좋지.”

잔을 받아 내려놓고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막 닭 가슴살을 찍으려는데 이리야가 머리를 기댄다.

“이리냐는 자기야랑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여기 오래 계실 거죠?”

“응? 아마도. 근데 별일 없는 거지?”

“네. 아니, 별일 있어요.”

“있어? 뭔데?”

생각보다 음식 맛이 있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님과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님의 결혼 선물이요.”

“결혼 선물? 그걸 벌써 보냈어?”

결혼식은 크리스마스에 할 계획이고 아직 11월이다.

한 달 하고도 열흘이나 남았다. 그런데 결혼 선물이라니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이 저택 좌우에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요.”

“공사? 무슨 공사?”

“잘은 모르는데, 이 저택의 규모를 늘리는 거래요.”

“그래? 그건 피터스 가가바가 알까?”

“아마도요.”

이리냐가 깜찍한 표정을 짓는다. 원래 예쁜데 하는 짓까지 이러니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샴페인 한잔을 마시고 입술에 묻은 마요네즈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곧장 이리냐의 입술을 찾았다.

기다렸다는 듯 폭 안기면서 입술을 벌린다.

“으음! 으으으음!”

이리냐가 두 팔을 움직여 현수의 목을 휘감는다.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자 연희가 음료수를 건넨다.

“자기야, 이거 마셔요. 이리냐도.”

“네, 언니. 고마워요.”

“……!”

우리 속담에 시앗을 보면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연희는 참으로 살갑게 군다.

사람이 다시 보일 정도이다.

“이리 와.”

“네.”

현수가 한쪽 팔을 들자 냉큼 다가와 안긴다. 양쪽에 미녀를 안은 셈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반둔두 지역으로 갈 생각이야. 둘 다 데리고 가고 싶지만 거긴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서 위험해. 그러니 다음에 같이 가. 알았지?”

“그래요. 그럴게요.”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잘해줘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흐뭇함을 느꼈다.

“참, 결혼 예물 골라야지. 잠깐만.”

아공간에서 반지, 목걸이, 팔찌, 귀고리, 팔찌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멀린이 남긴 것도 있고, 빌모아 일족이 준 것도 있으며, 마트 보석 코너에 있던 것들도 있다.

연희와 이리냐는 눈빛을 빛내며 계속해서 나오는 각종 패물을 살피고 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보석이 작으면 더 큰 걸로 바꿔줄 수도 있으니까.”

“보석이 얼마나 많은데요?”

대체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하냐는 표정이다. 이쯤 되면 한 번쯤 기대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호두알보다 큰 다이아몬드가 수백 개라면 믿겠어?”

“네에? 호두알보다 커요?”

“그래. 이런 것!”

현수가 꺼낸 것들은 호두알보다 훨씬 큰 것이다.

“어머! 엄청 커요.”

“우와아! 진짜 크네. 이게 진짜 다이아몬드예요?”

둘의 모습을 본 현수가 피식 웃는다.

“그래. 오늘 고를 건 우리 결혼 예물이야. 갖고 싶은 건 다 갖게 할 테니 우선은 예물로 쓸 것만 찾아.”

“네. 근데 이것 말고 또 있는 거예요?”

“많이 있어. 다 꺼내서 보여줘?”

“그래 주실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거의 포대 자루로 하나 가득이다.

다이아몬드를 시작으로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오팔 등 종류도 다양하다.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지 않다. 그렇기에 둘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덕분에 닭 가슴살 샐러드를 여유있게 먹을 수 있었다.

“놔두고 갈 테니 천천히 골라도 돼, 없어지는 거 아니니까.”

“자기야, 이런 건 다 어디서 난 거예요?”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이다.

“스승님이 남기신 유물이야.”

“우와! 정말요?”

이리냐는 순순히 믿는다. 하긴 안 믿고 싶어도 눈앞에 있는 보석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고르고 있어. 가가바 좀 보고 올게.”

“네.”

둘을 놔두고 밖으로 나가자 경호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한국식 인사를 배운 모양이다.

“미스터 가가바 좀 불러주겠나?”

“네, 보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목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무전기 마이크가 거기에 숨겨진 모양이다.

“오랜만입니다, 보스.”

“그래, 잘 있었지?”

“그럼요. 얼굴이 조금 마른 듯 보입니다.”

“그래? 살이 조금 빠졌나?”

별일 아니라는 듯 싱긋 웃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이리냐에게 듣기로 저택 인근에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네. 저택 좌우측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뭐지?”

“좌측 공사는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님과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님의 결혼 선물이라고 합니다.”

“……!”

“이 저택의 별관을 지어주시는 겁니다.”

“별관?”

“네, 이 저택과 비슷한 규모로 지어지는데 손님들이 오셨을 때 기거할 수 있도록 짓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우측은?”

“러시아의 미스터 지르코프가 저희 경호원 및 시녀들을 위한 숙소, 그리고 각종 유틸리티를 지어주는 겁니다.”

“흐음, 그래? 규모는?”

“그것 역시 좌측과 거의 비슷합니다. 디자인도 가급적이면 본관을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본관?”

“네, 저희는 이 저택을 본관이라 부르고 좌측은 별관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우측은 경호관이라 부르지요.”

“그래?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구먼.”

“저희 때문에 사모님들께서 불편해하시는 듯하여 저희는 건물 외부 경호만 하는 중입니다.”

“그럼 내부는 알리사가 알아서 하는 건가?”

“아닙니다. 시녀장을 들였습니다.”

가가바는 말을 하며 조금 계면쩍어하는 표정이다.

“시녀장?”

“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찾다 제 아내를 들였습니다.”

“미스터 가가바의 부인?”

“네. 엘린은 일은 잘합니다. 결혼 전에 비슷한 일을 해서 경험도 있구요.”

“그래? 흐음, 그럼 숙소는?”

“현재는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가서 좌우측 설계도를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가져온 설계도 중 배치도를 펼친 현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런 말이 없음에도 가가바는 끈기있게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여기 이쪽의 땅을 매입할 수 있나?”

“네, 가능합니다. 국유지니까요.”

현수가 가리킨 곳은 저택 앞쪽 도로 양편이다. 큰길로부터 저택까지 들어오려면 차로 10분 정도 달려야 한다.

약 5㎞에 달하는 이 도로의 양쪽엔 인공적으로 조성된 가로수가 있고, 그 뒤쪽은 잡목이 자라 있다.

현수는 연필을 들어 양쪽 도로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가가바는 대체 뭔가 하는 표정이다.

물어보니 저택에 기거하는 경호원은 조제프 카빌라가 보낸 경호원 24명과 지르코프가 보낸 경호원 24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인원은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하여 도로 양쪽에 이들을 위한 주거 시설을 지으려는 것이다.

더 늘어날 경호원뿐만 아니라 본관, 별관, 경호관에 추가로 배속될 여직원들을 위함이기도 하다.

현재의 킨샤사는 주택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하여 많은 수가 빈민굴 수준의 주택에 기거하고 있다.

경호원 및 여직원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낮에는 호사스런 저택에서 근무하고 밤엔 그런 곳에서 생활한다면 위화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수가 그려 넣은 것은 주택 100여 채이다. 각각 정원 내지는 작은 텃밭이 딸린 단독주택이다.

이 밖에 놀이터와 슈퍼마켓 등도 그려 넣었다.

“주택은 목조이고 태양광발전 설비가 적용되도록 하게.”

“네?”

가가바는 자신의 임무와는 동떨어진 건축에 관한 지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상하수도를 설비하고 정화조도 설치하도록 하게.”

“……!”

“가구는 전부 새로 구입해서 채워 넣도록 하고, 식기 등도 넉넉하게 넣게.”

“보스, 이게 대체 무슨……?”

“자네와 경호원, 그리고 시녀들이 들어와서 살 집들이야.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설계할 때 이야기하도록.”

“네? 그럼 저희에게 집을 지어주신다는 겁니까?”

가가바의 눈에 흰자가 많이 보인다.

“싫어? 가족들과 같이 지내는 게 좋잖아. 안 그래?”

“보스……!”

이제야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가가바의 눈이 금방 축축해진다. 눈두덩은 뜨거워지고 콧날은 시큰한 모양이다.

놔두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뽑을 기세이다.

“나는 자네들의 보스야. 가족들을 잘 보살피는 게 보스의 도리이고. 안 그런가?”

“보스… 보스……!”

기어코 가가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가볍게 가가바의 어깨를 두들긴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이들 학교 보내기 힘들 테니 버스도 몇 대 사도록.”

나중의 일이지만 저택의 앞쪽 도로 좌우로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선다.

처음엔 주택만 지어졌지만 그 뒤로 빌라가 지어지고, 다시 그 뒤엔 아파트도 생긴다.

도로 입구 양쪽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생기고, 목욕탕, 도서관, 영화관, 대형 슈퍼마켓, 미장원, 이발소 등 각종 편의시설도 생겨난다.

저택 입구에 작은 마을 하나가 형성되는 것이다.

처음엔 저택과 관련된 사람들만 살았으나 이곳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타지 사람들도 들어온다.

“오랜만입니다, 내무장관님.”

“하하! 그래, 오랜만일세. 자, 어서 앉지.”

“네, 감사합니다. 이건 사모님께 드리는 작은 정성입니다.”

“오, 그런가? 고맙네. 집사람에게 전해주지.”

현수가 내민 작은 상자를 가에탄 카구지는 열어보지 않는다. 포장이 너무나 예쁘기 때문이다.

하긴 킨샤사에선 리본 달린 포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게 큰 집 하나를 지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거 대통령님과 내가 주는 결혼 선물이네. 거기 가거든 가끔 재워나 주게.”

“하하, 물론입니다.”

“그래, 그런 인사치레나 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용무가 있나?”

가에탄 카구지는 무엇이든 돕겠다는 듯 환히 웃는다.

“제가 알기로 콩고민주공화국은 지난 2009년에 국제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으로부터 73억 5천만 달러의 채무를 탕감 받은 바 있습니다. 맞죠?”

“그래, 맞네. 외채 부담에서 벗어나 민생 안정을 위한 공공 지출을 확대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해줬지.”

“그래도 아직 30억 달러 정도 부채가 남아 있죠?”

“그것도 그러하네. 그리고 우리 공화국은 지하자원이 풍부한데 동부지역 반군 때문에 거버넌스(Governance)가 취약해서 아직 최빈국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지.”

부끄러운 일이지만 굳이 감출 일은 아니라는 표정이다.

“외채 상환 계획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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