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
“그건…….”
카구지는 잠시 말을 끊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힘없는 어투로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해 아직 마땅한 대책이 없네. 자원은 많지만 개발할 능력이 안 되네. 지금껏 지나 정부와 많은 일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손에 떨어진 것은 별로 없지.”
가에칸 카구지의 말처럼 지나는 단물만 쏙 빼먹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 계획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뭔가?”
흥미가 돋는다는 듯 안경을 고쳐 쓰는 내무장관이다.
“천지정유 및 천지자원이 이곳에서 개발한 유전 및 광산의 지분을 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국유 지분을?”
“시세대로 쳐서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자네가? 그걸 전부?”
“아뇨. 일단 30억 달러어치만 매입하겠습니다.”
“뭐?”
30억 달러는 3조 6천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멍한 표정이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무슨 조건?”
“대금은 전액 금괴로 지불하겠습니다. 아울러 추가로 30억 달러어치 금을 처분해 주십시오.”
“그럼 금괴를 60억 달러어치나?”
“네, 그만큼의 금을 가져올 겁니다. 그걸 처분해 주십시오.”
“끄으으응!”
가에탄 카구지는 나직한 침음을 낸다. 너무나 엄청난 금액에 질려 버린 것이다.
“대통령님을 비롯한 각료 회의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기다릴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처리해 주십시오. 참고로 추가로 처분해 달라는 금괴는 반둔두 및 비날리아 지역 개발에 쓰일 재원입니다.”
“……!”
결국 60억 달러 전부 콩고민주공화국을 위해 쓰인다는 뜻이다. 가에탄 카구지는 눈으로 진의를 물었다.
방금 한 말, 혹시 농담은 아니냐는 뜻이다.
60억 달러면 황금으로 약 98.25톤이다. 하나당 12.5㎏짜리 금괴로 계산해보면 7,860개나 된다.
2011년까지 대한민국 금 보유량은 불과 14.4톤이다. 그러다 2013년이 되어서야 보유량이 100톤을 간신히 넘겼다.
세계 경제 순위 15위 국가인 한국이 이러하다.
그러니 어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매각 의뢰는 영국의 로스차일드 뱅크가 좋을 겁니다. 그만한 건 쉽게 처분되지 않으니까요.”
“그 정도면 국제 금 시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겠지.”
“황금의 출처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새로 발견한 금광으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의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한국은행에도 같은 양의 금을 처분하고자 합니다. 출처를 이곳으로 하고 싶습니다.”
“……!”
현수의 말대로라면 황금 보유량이 196.5톤이라는 뜻이다. 대체 그 엄청난 황금이 어디에서 났느냐는 무언의 물음이다.
“제 조상님이 후손들을 위해 남겨주신 겁니다. 그냥 그 정도만 알아주십시오.”
“좋아, 자네가 범죄에 연루되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하지. 말 나온 김에 대통령님을 뵈러 가세.”
“그럼 그럴까요?”
현수와 가에탄 카구지를 접견한 조제프 카빌라 역시 대경실색한다. 황금 196.5톤은 상상도 못해본 때문이다.
아무튼 둘은 현수가 비날리아와 반둔두 지역에 대규모 농장을 어떻게 설립하려는지 알게 되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실제론 엄청난 부자였던 것이다.
현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대통령은 즉각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 물론 최측근으로 구성된 각료들이다.
이곳에서 현수의 제안이 토론되었고, 결론적으로 모두 받아들여졌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지분은 넉넉한 가격에 매입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현수는 원유와 콜탄, 그리고 구리와 철광석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 가치에 비해 지불하는 액수가 크지만 금괴를 처분하는 수수료로 생각하기로 했기에 모두에게 득이 된 거래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사실은 현수가 더 큰 이익을 얻었다. 매장량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한국을 출발하여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오고 있는 상선에 금괴가 실려 있다고 했다.
한시바삐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에탄 카구지는 심복을 영국으로 보내 금괴 매입 의사를 타진키로 했다.
현수가 로스차일드를 언급한 이유는 또 한 번의 금괴 회수 작전을 벌이기 위함이다. 유태 자본이 줄어들어야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다.
98.25톤이면 피터 로스차일드가 잃어버린 양의 절반 정도 된다. 그렇기에 나머지 98.25톤까지 매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기로 했다.
처분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은 한국은행에 100톤 정도의 금괴를 매각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의 친서를 만들어주었다.
만일 이를 받아들이면 금괴는 한국이 아닌 영국으로 보내진다. 한국은행은 안전을 위해 보유한 금괴를 영국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하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는 금괴가 처분되면 보다 많은 현금을 쓸 수 있기에 현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저택으로 돌아오니 시녀장이 인사한다.
피터스 가가바의 부인 엘린 가가바는 40대 초반으로 차분한 인상이다.
잠시 후 현수와 연희, 그리고 이리냐와 두 분 장모님을 모신 만찬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엔 피터스 가가바 내외도 자리했다. 현수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보안 총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두 여인이 고른 예물들을 살폈다.
연희는 에메랄드 세트를 골랐고, 이리냐는 사파이어 세트를 골랐다. 반지의 알은 5캐럿 정도 된다.
시가로 10억이 넘는다. 목걸이와 브로치의 알은 이보다 더 크다. 결혼식 날 머리에 쓸 티아라의 중앙엔 20캐럿이 넘는 것들이 박혀 있다. 수십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둘은 가격보다 디자인 위주로 골랐다. 그것들 모두 빌모아 일족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품이다.
사실 빌모아 일족이 만든 패물은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걸 골라낸 걸 보면 안목이 제법이다.
사실 현수가 남긴 패물 가운데에는 이보다 알이 더 큰 것도 많았기에 실제 가치는 모르고 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슬립 마법을 걸었다. 기회만 되면 육탄돌격을 할 눈치였기 때문이다.
7장 식량 자급을 위하여
“다녀올게.”
“네, 조심하세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올게.”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던 현수가 랜드로바의 시동을 건다.
부르르르르릉!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모님! Я иду. теша!”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연희와 이리냐의 모친에게 인사를 하곤 곧바로 출발했다.
이목을 고려하여 킨샤사 외곽까지 차를 몰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하여 하차하여 아공간에 차를 넣었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투명 은신 마법과 비행 마법을 더블 캐스팅하고는 곧장 반둔두 지역으로 날아갔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마나가 부족하진 않았다.
켈라모라니의 비늘이 끊임없이 정제된 마나를 채워주었기 때문이지만 현수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흐음! 여긴가 보군.”
비행하는 동안 지도를 꺼내 수시로 방향과 위치를 확인했기에 개발 현장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휴우! 엄청난 정글이군.”
끝도 없이 펼쳐진 정글은 아르센 대륙의 울창한 수림을 연상케 했다.
땅에 내려서니 인근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총을 꺼내려던 현수는 싱긋 미소 지었다.
“드래곤 피어!”
9서클 마법이 구현되었다. 8서클이지만 마나량만 많으면 시전될 수 있는 것이다.
드래곤과 비슷한 존재감이 정글로 번져 가자 으르렁대던 맹수들의 소리가 사라진다. 겁먹은 것이다.
“와이드 센스!”
예민해진 감각에 가장 먼저 잡힌 것은 커다란 고릴라이다. 반대쪽엔 검은 표범이 있다.
천천히 걸어 고릴라에게 먼저 다가갔다.
“홀드 퍼슨!”
마법 구현 거리에 있던 고릴라는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공포를 느낀 듯 눈빛이 변한다.
백과사전에는 고릴라 수컷의 신장은 170∼185㎝이고 체중은 135∼275㎏ 정도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눈앞의 놈은 그보다 훨씬 크다. 신장 230㎝, 체중 350㎏은 너끈히 되는 듯싶다.
현수가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가가자 반항하려던 눈빛이 순해진다. 대들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오베이!”
샤르르르릉―!
마나가 스며들자 고개를 앞뒤로 흔든다. 녀석의 뒤쪽을 보니 공포에 질린 고릴라들이 떼로 서 있다.
대략 20여 마리이다.
“내게로 오라!”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 고릴라들이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다가선다. 실제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전음을 보낸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가 다르지만 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오베이!”
이십여 마리 고릴라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거나 팔다리를 깔고 큰절하듯 푹 엎드린다. 상위자에 대한 복종의 표시이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어.”
고릴라를 뒤로한 현수는 검은 표범 쪽으로 이동했다.
가장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상태이기에 바르르 떨고 있다.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은 것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귀신을 보거나 하면 오금이 저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녀석의 뒤쪽에도 많은 표범이 있다.
오늘 고릴라와 표범은 이곳의 영역 다툼을 하려던 중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현수가 내려오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오베이!”
긴말이 필요 없다. 마법 한 방으로 검은 표범의 두목도 복종시켰다. 다음은 뒤쪽 표범들이다.
두 무리의 맹수들을 제압한 현수는 녀석들에게 이곳을 떠날 것을 명했다. 아울러 사람을 보더라도 공격하지 않도록 했다.
동물의 세계에선 상위자의 명령이 곧 법이다.
표범과 고릴라들은 자신의 서식지를 버리고 명령한 대로 반둔두 지역 밖으로 이동했다.
이런 방법으로 맹수들을 볼 때마다 교육시켜 내보냈다. 하지만 파충류에 속하는 뱀과 악어들은 아니다.
보는 족족 죽여 없앴다.
이들은 지능이 낮아 교육되지 않기 때문이다.
1,500㎢에 달하는 반둔두 지역을 이런 식으로 모두 돌아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이틀이 지난 다음이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 현수는 플라이와 드래곤 피어 마법으로 동물들을 몰았다. 그리곤 단체 교육을 시켰다.
녀석들에겐 추가 임무가 부여되었는데, 반둔두 지역을 벗어나는 동안 만나는 동족들을 데리고 나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7일이 지났다. 그제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맹수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다음은 비날리아 지역이다.
초고속 비행 마법을 썼지만 가는 데만 나흘이 걸린 이곳은 맹수도 맹수지만 반군의 습격이 우려되는 곳이다.
어쨌거나 맹수가 먼저이다. 반둔두 지역에서 숙달된 솜씨로 3,000㎢에 달하는 엄청난 정글을 비웠다.
아나콘다와 악어들은 죽이는 것이 귀찮아 멀리 쫓아냈다.
다시는 비날리아 지역으로 올 수 없도록 최소 1,000㎞는 떨어진 곳으로 텔레포트시킨 것이다.
반둔두에서 비날리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봐둔 곳이다. 덕분에 그곳은 아나콘다와 악어가 바글거리는 동네가 되었다.
반군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파견해 줄 군대와 비날리아에 세워질 이실리프 농산 자경대가 맡아야 할 일이다.
이곳에서 머문 기간만 14일이다. 너무나 넓어서 제대로 다 쫓아냈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개발팀 직원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고 킨샤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저택으로 간 것은 아니다.
마타디 항에 도착한 현수는 야음을 틈타 부두 접안을 대기하고 있는 상선으로 스며들어 컨테이너 몇 개를 꺼내놓았다.
196.5톤의 황금이 담긴 컨테이너이다.
다음 날 새벽에 접안한 상선의 하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아! 오래간만입니다, 전무님!”
“네, 이 과장님도 오랜만이네요.”
반갑게 인사한 이는 전에 만났던 천지건설 마타디항 통관 담당 이철수 과장이다.
“이 새벽에 웬일이십니까?”
“저 배에 개인 컨테이너가 실려 있어서요. 먼저 내려줬으면 하는데 가능하죠?”
“그럼요. 컨테이너 식별 번호만 아시면 됩니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