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9
이 과장은 현수보다 열 살쯤 많다. 현수가 젊어 보이니 열다섯 살쯤 많아 보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깍듯한 존댓말이다.
하늘같이 높은 전무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운송 컨테이너 식별자의 ISO 규격은 네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송 회사 코드, 일련번호, 검사 숫자, 컨테이너 유형 코드 순이다. 이중 일련번호와 검사 숫자만 알면 된다.
현수는 올려놓았던 컨테이너의 식별자를 불러주었다. 가장 위에 올려놓은 것이기에 하역 작업은 금방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어디로 보내는 겁니까?”
“제가 동행할 거구요, 회사 재산 아니니까 따로 기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인해 보니 현수의 말처럼 이곳으로 보내진다는 화물 목록에 없는 컨테이너들이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이철수 과장의 배웅을 받으며 트레일러들이 통과했다. 이것들은 곧장 대통령궁 경비대로 향했다. 가는 동안 통화했기에 가에탄 카구지 내무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네, 장관님.”
그동안은 거의 반말이었다. 그런데 어투가 약간 달라졌다. 조금은 높여주는 느낌이다.
현수에게 엄청난 금괴가 있기에 다시 본 모양이다.
둘이 악수하는 동안 크레인으로 들어 내린 컨테이너들은 25톤짜리 지게차에 실린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창고에 넣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주변엔 대통령궁 경비대원들이 삼엄한 경계태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참, 로스차일드와는 어떻게 이야기되었습니까?”
“다행히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네. 30억 달러는 우리 정부 이름으로 현지에서 채권국에 상환되고 나머지 30억 달러는 일단 우리 정부 계좌로 들어올 것이네.”
“그래요? 가격은 어찌 받기로 했습니까?”
“현 시세대로 하기로 했네. 다만 보안을 요구하더군. 자기네가 금 매입한 걸 비밀로 해달라더군.”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니 은밀하게 채워 넣으려는 듯하다.
“혹시 더 매입하겠다는 말은 않던가요?”
“어! 그걸 어찌 알았나?”
“그냥 여쭤본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에 팔기로 했던 것도 넘기겠다고 해보세요.”
“그래도 되나?”
“그럼요. 어디에 팔든 저는 팔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 그럼 그러지. 근데 이번 건 수수료를 좀 주게.”
가에탄 카구지가 슬쩍 욕심이 남을 감추지 않는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 좀 해왔습니다. 오늘 들여온 건 200톤입니다. 350㎏에 해당하는 28개가 남을 겁니다. 두 분이 알아서 나누십시오.”
“아, 그런가? 하하, 내가 이래서 김 전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고맙네. 잘 쓰지.”
가에탄 카구지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현수가 매입한 국가 지분 30억 달러에도 약간의 거품이 섞여 있다.
이건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이 나눠 갖게 될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금괴 28개가 생긴다.
계급 차가 있으니 대통령이 15개, 본인이 13개를 나눠 가질 생각이다. 물론 본인이 받았다는 말은 뺄 것이다.
아무튼 12.5㎏짜리 금괴 13개의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달한다. 한화로 12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렇기에 현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이다. 현수 역시 환히 웃는다. 이번 거래를 통해 손해는커녕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로 갈 금괴 196.5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전부 아공간으로 회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20억 달러나 지불한 피터 로스차일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아무리 돈 많은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할지라도 연이은 타격은 꽤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현수에게서 나가는 건 조제프 카빌라와 가에탄 카구지에게 준 금괴 28개뿐이다. 이건 저택 주변에 지어주는 별관과 경호관에 대한 공사 대금으로 치면 된다.
결국 금괴 28개를 두 동의 저택과 현금 90억 달러, 그리고 30억에 근접한 광산 지분으로 바꾸는 것이니 엄청난 이득이다.
컨테이너가 모두 창고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둘은 곧장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조제프 카빌라는 현수로부터 선물 받게 될 금괴를 기꺼이 받겠다며 환히 웃는다. 다음은 콩고민주공화국 내부의 각종 이권에 관한 내용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천지정유, 천지자원 등 천지그룹 계열사들과 백두화학 이외에도 다양한 회사들이 들어오길 바란다.
하나에 묶이는 것보다 여럿으로 나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현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곤 긴급 현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로와 철도, 공항, 항만 같은 인프라뿐만 아니라 식량이 문제이다. 다국적 곡물 회사의 횡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뾰족한 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현수가 식물학자도 아닌데 어찌 당장 해결할 수 있겠는가!
참고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옥수수 박사라 불리는 경북대 교수가 기존 사료용 옥수수 품종보다 최고 50% 이상 수확량을 보이는 사료용 슈퍼 옥수수를 개발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아르센 대륙의 토지 가운데 몬스터 때문에 개간하지 못하고 있는 곳은 매우 비옥하다.
알베제 마을 인근이 이에 속한다.
언젠가 읽었던 책엔 전통 방식을 통한 교배육종 방법이 있다.
같은 종 내에서 다른 형질을 갖는 품종을 찾아 서로 유전자를 교환하도록 교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밥맛은 좋은데 수확량은 떨어지는 벼 품종과 밥맛은 없지만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을 교배하여 얻는 자손 중 밥맛 좋고 수확량 많은 새로운 품종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원하는 형질을 얻으려면 몇 세대를 거쳐야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에 걸쳐 해온 일이며, 그 세월 동안 자연 속에서 검증된 것이다.
알베제 마을에 비닐하우스나 유리 온실을 조성한 뒤 타임 패스트 마법을 쓰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번 교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혹시 수확량 좋은 곡물의 종자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현수는 얼른 메모지를 꺼내 잘 기록해 두었다.
벼, 밀, 보리, 콩, 팥, 옥수수, 녹두, 조, 깨, 수수, 기장 등의 종자를 구해야 한다고 썼다.
외래종과 토종 모두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누구에게 시켜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다. 유전자 조작 곡물의 안정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꺼내 확인해 보니 대한민국도 한심한 지경이다.
쌀뿐만 아니라 나머지 곡물 전부 곡물 메이저로부터 구입하고 있다. 카길, 퓨리나 등이다.
그러다 2008년도 곡물 자급 현황이란 표를 보게 되었다.
누구나 즐기는 빵과 라면의 원료인 밀의 자급량이 심각하다. 동물 사료로도 많이 쓰이는 옥수수 역시 그러하다.
이쯤 되면 식량대란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누구든 곡물을 틀어쥐고 내주지 않으면 지극한 곤란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식량이 곧 무기가 된다.
그런 곤란함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곡물 자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농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의 영향이다. 농토가 줄면 당연히 수확량도 줄어든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콩고민주공화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휴우! 할 수 없지. 나라도 나서볼 수밖에.’
인터넷을 연결하여 즉시 메일을 보냈다. 육종교배에 관한 전문 서적들을 구비하라고 지시 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곡물의 종자들도 준비하라고 하였다.
콩이 나지 않던 미국이 세계적인 콩 수출국이 된 것은 콩의 원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종자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개량한 결과이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것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종자를 한 번 쓰면 다음해에는 다시 싹이 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일반 상식이 되어버린 일이기에 현수도 이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종자들은 배제하라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리커버리 마법이 그것을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건실하고 양심적인 회사들과 선을 대주게. 자네를 믿기에 추천하는 회사들과 거래를 시작했지만 언제든지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
“물론입니다. 한국 기업이 이곳에 와서 부당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는 건 저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맙네. 그나저나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으로 중장비는 보내고 있는가?”
“네, 도로가 없기에 길을 내면서 가는 것도 있고, 헬기로 수송하는 것도 있습니다.”
“고맙네, 애써주어.”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진심을 담은 눈빛을 보낸다.
이실리프 농장, 축산, 농산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급여 자체가 기존과 다르기에 너도나도 이실리프 그룹사에 취업하려고 난리이다. 사장이 천지약품 공동 사장 중 하나인 김현수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름만으로도 어떤 회사인지 평가된다는 뜻이다.
대통령궁에서 나온 것은 늦은 오후이다.
만찬을 같이하자고 했지만 오랫동안 집을 비워 피앙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흔쾌히 놓아주었다.
“어머, 자기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2층으로 올라가려던 이리냐가 반색하며 다가온다.
“잠깐! 나 샤워부터 하고. 몸에서 냄새나.”
“괜찮아요, 자기야!”
냄새가 몸에 묻어도 괜찮다는 듯 덥석 안긴다.
현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실제로 몸에서 냄새가 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궁을 떠나 이곳에 오기 전 금괴가 담긴 컨테이너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공간으로 회수되게 하는 마법진을 그려 넣는 일이다.
이번에도 마법진들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이전처럼 금괴 주변 1m 이내의 물품 또한 같이 딸려오도록 했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고, 날씨는 더웠다. 밖에 대통령궁 경비대원들이 있기에 마법을 써서 온도를 낮추는 것이 저어되었다.
하여 제법 많은 땀을 흘린 것이다.
현수는 잠시 포옹 후 시원한 샤워를 즐겼다.
머리의 물기를 털며 인터넷에 접속해 보니 민주영이 메일을 확인하고 답신을 보냈다. 원하는 대로 전문 서적과 각종 종자들을 구비하겠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상의할 일이 있으니 회사로 전화를 주든 들러달라고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것을 모르기에 그런 것이다.
“지나에도 들어가야 하니……. 쩝! 며칠 놀다 가고 싶은데.”
생각은 이렇지만 실제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언제 북한에 들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올 것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드미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카테리나 변호사와 연락이 되었고, 모델 작업을 흔쾌히 하겠다고 한다.
다시 연락하면 지나를 통해 북한으로 가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자기야, 무슨 통화를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해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응? 아, 아니! 별일 없어.”
주스를 가져온 연희가 생긋 웃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셨어요?”
“사실은 말이지, 내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 일체를 턴키베이스로 수주하게 될 것임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성과를 냈음에 크게 기뻐해 준다.
다음은 그것이 북한을 통과함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어떻게 그 공사를 하는 것이냐며 묻는다.
그래서 그 일을 해결하러 북한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신변 안전에 관한 우려를 한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의 친서가 있음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