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3
손속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었기에 현수의 주먹은 매서웠다.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갈 운동력으로 갈긴 주먹에 놈들의 이빨이 튀어나오고 뼈가 부러졌다.
걷어차인 놈 중에는 정강이뼈가 부러진 녀석도 있다.
지독한 통증에 비명만 지를 수 있을 뿐 상처를 보호하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
“흐음, 메탈 디텍션!”
마법을 구현시키자 놈들의 품속에 감춰둔 각종 흉기가 감지된다. 단도, 도끼, 식칼 등이다.
그냥 놔두면 평생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죽일 놈들이다. 한 놈만 남겨두고 나머진 모두 아공간에 넣어버렸다.
“누가 시켰나?”
동료들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겁에 질린 녀석이 말을 더듬는다.
“혀, 형님이! 형님이 시켰습니다!”
“그 형님은 누구냐?”
“삼합회 산하 화승화(和勝和)의 마충량 대형입니다.”
“마충량? 카지노에서 포커하던 놈?”
“네, 맞습니다. 대형이 잃은 돈을 찾아오라고…….”
“날 죽이고?”
“네? 아, 네. 아, 아닙니다. 죽이진 말고 돈만…….”
무심코 진실을 털어놓은 녀석이 얼른 말을 주워 담으려 한다.
“아공간 오픈!”
시커먼 구멍이 열리자 겁에 질린 표정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집에 병든 노모와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하, 한 번만 살려주시면 진짜 착하게 살겠습니다.”
“누군가 너에게 지금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을 때 너는 놔주었나?”
“네? 그, 그게…….”
“입고!”
녀석이 말을 더듬을 때 아공간으로 넣어버렸다. 살려둘 가치가 없다 판단한 것이다.
“흐음, 마충량이라고?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플라이!”
투명 은신 마법으로 몸을 감춘 뒤 조금 전 나왔던 호텔 14층으로 날아올랐다.
“이브즈드랍!”
트리플 캐스팅을 했지만 여전히 여유가 있다. 희미하나마 9번째 서클이 형성된 이후에 가능해진 일이다.
“대형, 지금쯤 살려달라고 빌고 있겠죠?”
“크흐흐! 그렇겠지. 놈을 살려두지 말라고 했지?”
“지시대로 돈을 빼앗은 뒤 죽여서 암매장하라고 했습니다.”
“귀찮게 암매장은 왜, 그냥 아무 데나 버리지.”
“그럼, 경찰들이 귀찮게 하잖습니까.”
“뭐가 무서워? 경무관이 우리 사람이라는 거 몰라?”
“그래도요. 아무튼 조금 있으면 애들 올 겁니다.”
“그래, 수표 가져오면 바로 입금시켜.”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객실로 내려가실 겁니까?”
“그래. 괜찮은 애 데려다 놨지?”
“네, 저번에 텔레비전 보시다 괜찮다고 말씀하셨던 아이 잡아다 놨습니다.”
“크흐흐! 오늘 밤은 심심치 않겠군.”
“네, 좋은 밤 즐기십시오, 대형!”
“알았어.”
창문으로 들어선 현수는 마충량의 뒤를 따라갔다.
놈이 향한 곳은 10층에 위치한 객실이다.
“흐흑! 흐흐흑!”
객실 침대엔 반라가 된 채 울고 있는 여인이 있다.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브래지어와 팬티뿐이라 몸매가 드러나 있다.
얼굴을 보니 모델 겸 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연예인 유가려이다.
“후후! 후후후!”
하나는 울고 하나는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짓는다.
느긋한 걸음으로 소파에 당도한 사내가 자리에 앉으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 밤 얼마나 서비스가 좋으냐에 따라 연예계에서 네 위치가 달라질 수 있음은 알고 있겠지?”
“흐흑! 흐흐흑!”
여자는 대답 대신 흐느끼기만 한다.
“할 수 있으면 마음껏 반항해도 된다. 크흐흐!”
아무래도 변태 성향이 있는 놈인 듯하다.
사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로 다가갈 때 그의 귓가로 나직한 속삭임이 들린다.
“홀드 퍼슨!”
“으윽! 몸이 왜 이래? 으윽! 으으윽!”
애써 힘을 줘보지만 어찌 평범한 인간이 마법을 깨겠는가!
마충량이 나직한 소리를 내는 것이 이상했는지 울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든다.
과연 인형 같은 미모로 이름날 만한 예쁜 얼굴이다.
“흐흑……?”
마충량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꼼짝도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훌쩍! 저, 가고 싶어요. 가도 돼요?”
“으으! 안 되지. 거기서 꼼짝도 하지 마.”
마충량의 말에 유가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오늘 이곳에서 험한 꼴을 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순간, 현수는 어찌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공간 오픈! 입고!”
시커먼 구멍이 허공에 생기고 꿈틀거리던 마충량이 그곳으로 사라지자 유가려의 눈이 커진다.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라 아무도 없는데도 소리를 친다.
“누, 누구세요?”
“슬립!”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가려의 교구가 침대로 무너져 내린다.
“흐음, 일단은 이것부터…….”
현수는 아공간의 노트북을 꺼내 검색을 시도했다. 잠시 후에 할 말에 대한 자료를 찾은 것이다.
“어웨이크!”
“끄응―! 헉! 누, 누구세요?”
간신히 눈을 뜨던 유가려는 도포 차림의 노인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고대 지나의 도사 복장을 한 노인은 아무리 적제 잡아도 최소 아흔은 넘어 보인다.
이것은 일루전 마법으로 이루어낸 환상이다.
“나는 저승의 삶을 판단하는 판관이니라.”
은은히 울리는 창노한 음성에 유가려의 눈이 커진다.
“네? 저, 저승판관이요? 그, 그럼 저 이제 죽는 건가요? 흐흑! 억울해요.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흐흐흑!”
유가려가 놀라며 물러앉는다.
“아니다. 네 혼을 거두러 온 것이 아니니 마음 편히 먹거라.”
“……!”
“조금 전 저승으로 혼 하나를 보냈느니라. 마충량이라는 자로 악행이 극에 달해 곧바로 지옥행을 하였느니라.”
“마, 마충량 보스가 지옥으로 갔다고요?”
유가려는 현수의 말을 무조건 믿는 듯하다.
“그러하느니라. 18층 지옥 중 가장 뜨거운 대초열지옥으로 보내졌느니라.”
“……!”
“내 그의 기억을 더듬던 중 그의 조상과 아주 오래전에 한 약속이 있어 이곳에 현신하였으니 겁먹지 말거라.”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저승으로 끌고 갈까 싶은지 얼른 무릎 꿇고 두 손은 공손히 무릎 위에 얹는다. 그 바람에 젖가슴이 반쯤 드러난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인지라 현수는 고개를 돌렸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여야 할 것이니라.”
“네, 저승판관님!”
“저 서랍을 열면 이승에서 사용하는 돈이 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한국에 있는 한민족연구소로 모두 보내도록 하라.”
“네? 무슨 연구소요?”
“한민족연구소라는 곳이니라. 내 기록을 살펴보니 친일파 인명사전이라는 것을 편찬해 낸 곳이다. 한 푼도 빠짐없이 그곳으로 보내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저승판관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오냐. 그래야지. 정해진 너의 수명은 98세이니라. 하지만 본 저승판관의 명을 어기면 사흘 후에 내 너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날이 밝는 대로 그곳으로 돈을 보내거라.”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느니라.”
샤르르르르릉―!
눈앞에 있던 노인이 사라지자 유가려가 놀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심호흡을 한다.
“휴우! 휴우! 세상에, 저승판관님이라니……. 꿈인가? 아야!”
허벅지를 꼬집었던 유가려는 통증에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리곤 저승판관이 말한 협탁의 서랍을 열었다.
하얀 봉투 속에는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표가 들어 있다. 한화로 60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이다.
하지만 유가려는 돈을 보고도 전혀 욕심내지 않았다. 이 중 한 푼이라도 빠지면 사흘 후 목숨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유가려는 은행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한민족연구소가 급히 만든 시티뱅크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있었다.
은행에 도착해서 수표를 들이밀자 창구 직원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지점장이 직접 나서서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수표의 진위를 파악했음은 물론이다.
적지 않은 송금 수수료가 들었지만 유가려는 개의치 않았다. 돈보다는 목숨이 귀중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유가려는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휴우! 이제 끝났어.”
엄청난 돈을 들고 있었기에 심적 부담이 컸던 것이다.
실수로 잃어버리거나 강도를 만나 빼앗기게 되면 사흘 후 저승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송금이 이루어진 후 유가려는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5천만 달러라는 거금이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추궁받은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투명 은신 마법으로 몸을 감추고 있던 현수 때문이다.
다음 날 오후, 한민족연구소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만세! 만세! 만세!”
어제 아침, 마카오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대화해 보니 후원금을 보낼 테니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것이다. 하여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더니 시티뱅크 외환 계좌는 없느냐고 묻는다.
대체 얼마나 후원하려는지 몰라도 돈을 보내준다니 일부러 시티뱅크를 찾아 계좌를 만들었다.
그리곤 현장에서 계좌번호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으로 송금할 경우 실시간으로 돈이 보내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내일 두고 보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계좌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5,000만 달러가 송금되어 있다고 한다.
1999년 한민족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 사업을 추진했다. 하여 2001년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공식 출범되었다. 이때 각종 조사와 집필, 출판 등에 들어갈 돈은 150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2002년과 2003년엔 교육부 배정 예산에 ‘한일역사연구’라는 항목이 있어 각각 2억 원씩 지원받았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잘못된 지원이라는 결의를 한다. 그 결과 2004년 교육부의 지원이 끊겼다.
2003년 12월, 국회 예결위의 예산조정소위에선 5개년으로 추진되고 있던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 사업과 관련된 예산 전액을 삭감하는 일을 저질렀다.
어느 당 국회의원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즉시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행정자치부에서 기부금품 모집규제법에 저촉된다면서 모금운동 중단을 요구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결국 네 시간 만에 중단요구 철회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2005년, 일부 시민 단체에서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을 이적 행위로 적시하고 비판적인 기자회견, 시위 등을 벌였다.
이 단체들 역시 어떤 집단인지 뻔하다.
어쨌거나 한민족연구소는 이 모든 난관을 뚫고 1차로 친일파 인명사전에 실린 인물 3,09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나중에 추가되어 최종적으론 4,776명의 이름이 명단에 실렸다. 이 명단에는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등이 있다.
현재 이 단체는 시민역사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진실한 역사를 지키는 기지로서 민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살아 숨 쉬는 역사 문화 공간이다.
이를 위해 많은 후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건립 비용을 충당하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5천만 달러, 한화로 6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 입금되었다.
무리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그렇기에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만세! 만세! 만세!”
다음 날, 한민족연구소 역시 누군가의 방문을 받는다.
외국에서 송금된 5천만 달러의 출처를 알기 위한 방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전화로 돈 부쳐준다고 해서 계좌 만들어 번호 가르쳐 준 것이 전부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 * *
“어머, 사장님, 오셨어요?”
“네, 수고들 하네요.”
이실리프 무역상사 이은정 실장이 반색하며 일어선다.
“사장님, 까차라는 분으로부터 여러 번 전화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