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46화 (546/1,307)

# 546

“후후, 그건 비밀!”

“치이, 비밀이 너무 많아요.”

“결혼하면 지현이 것 될 텐데 뭘 그리 조급히 생각해? 참, 이건 장인, 장모님, 그리고 조부님께 드릴 예물이야.”

현수가 핸드폰을 디밀자 또 그것을 들여다보는 지현이다.

사진 감상을 끝날 때쯤 피자와 파스타가 나와서 맛있게 식사했다. 그리곤 헤어졌다. 8시가 다 되어갔기 때문이다.

* * *

“우리 오랜만에 만나네요. 그죠?”

“호호! 네,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예카테리나는 세련된 커리어우먼다운 차림이다.

“저녁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클라이언트와 조금 전에 했어요.”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까차는 웃음 띤 얼굴이다.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하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를 보자고 하셨는데, 중요한 일이라도…….”

“네, 두 가지 용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의류 회사 모델로 나서 달라는 겁니다.”

“의류 회사 모델이요?”

“내가 관여된 회사 중 의류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는…….”

현수는 이실리프 어패럴의 항온 의류에 대한 설명을 했다. 준비해 온 브로셔도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몹시 춥다. 그런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체온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의류라니 관심을 갖는다.

이리냐가 모델이 되어 찍은 화보를 보더니 호승심이 돋는 듯하다. 단정한 투피스 차림이지만 안에 감춰둔 몸매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델료는 얼마나 주실 건지요?”

“원하시는 금액이 있습니까?”

“10만 달러 어때요?”

모델 일을 해본 적이 없기에 부른 금액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계약서에 사인하겠습니까?”

박근홍 사장이 준비해 준 서류를 꺼내 건넸다. 한글과 영문이 병기된 것이다.

까차는 변호사답게 꼼꼼하게 자구를 읽어 내린다.

“좋습니다. 할게요.”

말을 마치곤 망설임없이 쓱쓱 사인을 한다. 박 사장의 사인은 이미 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계약은 성사된 것이다.

“미스 까차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 친구들이 광고를 보면 많이 놀라겠네요. 호호호!”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벌레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당연히 연애 경험도 없고 미용이나 패션에 관한 감각도 친구들에 비해 떨어진다.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기 전엔 청바지에 펑퍼짐한 셔츠만 걸치고 다녔다. 일을 할 땐 무조건 투피스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늘 묶고 다녔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이다.

이번에 광고를 찍게 되면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 이처럼 쉽게 사인한 것이다.

“자, 계약을 되었고, 두 번째 용무는 뭐지요?”

대답하기 전에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운드 인슐레이션(Sound Insulation)!”

지금부터 하는 말이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음 마법을 구현시킨 것이다.

“네? 뭐라 하셨죠?”

나직한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본다. 문득 에메랄드빛 눈이 매우 예쁘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 말을 끊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요? 아무튼 두 번째 용무는 뭐죠?”

“조만간 지나를 거쳐 북한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때 동행하여 법률 자문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네? 어딜 들어가요?”

“북한입니다.”

“북한이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이다. 남한과 북한이 어떤 관계인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동시베리아 야쿠티아 자치공화국에 위치한 카얀다 가스전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남한에 이르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습니다.”

“……!”

소문만 무성하던 공사이다. 한국은 이 가스전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지난 1992년 이전부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껏 성사되지 않던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수주했다고 하니 놀랍다는 눈빛이다.

까차는 처음 현수를 만나 계약을 할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신과 동갑인데도 풍기는 카리스마 때문에 압도당했다.

사실 까차는 상당히 도도한 여인이다.

실제로 그럴 만하기도 하다. 두뇌가 명석하여 최상의 학벌을 가졌고, 몸매와 얼굴 모두 최상급이다.

뿐만 아니라 출신 배경도 상당히 좋다.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증손녀이다. 변호사로의 일 처리 역시 최상급에 속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내가 구애했지만 모조리 거절하고 지금껏 천연기념물로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현수를 만나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그런 도도함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날 밤 현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쨌거나 까차는 현수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여 현수에 대해 이것저것을 알아보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이루어낸 것은 업적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성과이다. 별다른 비용 없이 혼자서 이루어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런데 그보다 더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째로 수주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여 현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중이다.

하지만 현수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잇고 있다.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면담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법률 자문을 해줬으면 합니다.”

“한국인 변호사들도 있을 텐데 왜 저를 선택했지요?”

“첫째는 미스 까차의 업무 능력입니다. 둘째는 북한 사람들이 러시아를 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까차의 미모 때문입니다.”

“네? 뭐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려 아름다운 까차의 미모가 이번 면담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미인계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풋!”

현수가 당혹해하는 표정을 짓자 까차가 웃음을 터뜨린다.

“자문료 비싼 건 아시죠?”

“당연히 그렇겠죠. 얼마나 되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건 현수가 지불할 돈이 아니다. 천지건설에서 낼 것이니 금액만 적당하면 된다. 그렇기에 편한 표정으로 물은 것이다.

“북한에 얼마나 머물러야 하죠?”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들어가 봐야 아는 거니까요.”

“으음, 그럼 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워요.”

“그렇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죠?”

까차는 현수를 바라보며 장난스런 웃음을 짓는다.

“한국에 와서 한 번도 나이트클럽이라는 데를 못 가봤어요. 이 호텔에도 클럽이 있나 본데 거길 데려가 주세요.”

“네? 뭐라고요?”

“한 번은 가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서 갈 수가 없었어요. 같이 갈 사람도 없고요. 김 전무님과 함께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데려가 주실 거죠?”

“……?”

대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나 싶어 바라보니 기대에 찬 눈빛이다.

“대신 북한에 가줄게요. 법률 자문비는 체류 일정 3일 기준 10만 달러를 시작으로 해서 하루가 늘 때마다 5천 달러씩 더하는 걸로 하죠.”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위험도에 비하면 자문료는 비싸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은 더 불렀어도 된다. 지금 현수는 금전 감각이 무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카오에서 도박으로 딴 돈만 5천만 달러를 상회한다.

그날은 100만 달러가 넘는 베팅도 여러 번 했다. 그렇기에 더 불렀어도 흔쾌히 오케이했을 것이다.

“김 전무님 덕분에 드디어 나이트클럽이라는 데를 가보게 되는군요.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이렇게 입고 가면 좀 그렇잖아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

“아, 네. 그럼 그러시죠.”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까차가 발딱 일어난다.

그리곤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놀러 가겠다고 마음먹고 사놓은 옷을 가지러 간 것이다.

잠시 혼자 있게 된 현수는 다이어리를 꺼내 해야 할 일들을 체크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흘렀다.

“흐음, 저 어때요?”

“네? 아!”

무심코 고개를 든 현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했다. 까차는 가슴이 푹 파인 붉은색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글래머인데다 조금 깊게 파인 옷 때문에 가슴골이 제법 드러나 있다. 검정색 단화는 베이지색 하이힐로 바뀌어 있다.

질끈 묶었던 머리는 풍성하게 늘어진 상태이다. 곱슬머리인지 굽실굽실하여 섹시한 느낌이다.

고탄력 스타킹은 늘씬한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저, 보기 흉해요?”

현수가 잠시 말을 않자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이다. 나름 꾸미고 왔는데 남자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생각한 것이다.

사실 현수는 실망한 게 하니라 감탄하는 중이다.

옷만 바꿔 입으면 섹시할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아, 아뇨! 보기 좋아요. 아름답네요.”

“어머! 정말요?”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니 더욱 예쁘다.

커피숍에 들어설 때부터 손님들의 시선을 받는 중이다. 그런데 미소까지 지으니 남자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자, 이제 에스코트해 주세요.”

“네, 그러죠.”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까차가 내민 손을 잡았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나이트클럽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묵직한 음향이 들린다.

“사실 나이트클럽은 처음이에요. 엄청 기대돼요.”

진짜인 듯 살짝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공부하느라 한 번도 못 놀아본 모양이네.’

현수는 괜히 흔쾌한 기분이 든다.

이제껏 공부만 하느라 청춘을 책상 앞에 붙잡아놓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픈 마음이 든 것이다.

“어서 옵쇼!”

입구에 들어서니 웨이터 보조가 고개를 숙이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는 짧은 감탄사를 터뜨린다.

“아!”

많은 손님이 드나들지만 까차 같은 외국인 미인은 거의 없었기에 저도 모르게 낸 소리이다.

“손님, 아는 웨이터 있습니까?”

“없네요. 우릴 안내해 주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저만 따라오십시오.”

웨이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묻는다. 그렇게 하여 안내된 곳은 홀이다.

사람들이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여 부스나 룸이 아닌 홀을 선택한 것이다.

술은 양주이다.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테이블 세팅이 끝나자 웨이터가 팁을 받아 챙기곤 사라진다.

“우리 나가요.”

“그러죠.”

까차가 먼저 일어서 홀로 나갔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큰 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효능이 있는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까차가 리듬에 맞춰 흔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현수를 바라보며 신난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짓는다.

11장 좀 비켜주시죠!

현수는 까차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을 살폈다.

방금 나왔음에도 늑대 여섯 마리가 주변을 에워싼다. 왜 이러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헛물켜는 것에 웃음이 나와 빙그레 웃었다.

“우와! 신나요! 진짜 신나요!”

조금 전보다 동작이 커진 까차가 현수의 귀에 소리를 친다. 웬만한 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요. 즐겨요.”

한동안 댄스 타임이 지속되었다.

늑대 여섯 마리는 현수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신호를 보낸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현수와 까차 사이로 끼어든다. 그러자 나머지 녀석들이 그 옆에 붙어 서서 둘을 완전히 차단했다.

까차는 댄스 삼매경에 빠져 열심히 흔드느라 여념이 없다. 현수는 실소를 짓고는 옆으로 돌아 까차 앞으로 다가갔다.

늑대 중 하나가 팔꿈치를 대더니 슬쩍 밀어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까차 앞으로 파고들었다.

한 녀석이 몸통으로 가리고 다른 놈이 엉덩이로 민다.

“조금만 비켜주세요. 제 일행입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계속 앞을 가로막는다. 할 수 없이 어깨로 한 녀석을 슬쩍 밀었다. 사실 슬쩍은 아니다.

옆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없도록 제법 강하게 밀었다.

“어쭈! 이게 지금 어디서?”

밀려났던 놈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치켜든다. 하지만 때리려는 의도는 없다. 위협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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