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7
현수보다도 키가 크고 체구도 크다. 근육을 자랑하려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는데 제법 볼륨이 크다.
슬쩍 바라보니 헬스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몸이다. 이쯤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현수에게 어디 이런 수작이 먹히겠는가!
하여 다시 밀치려는데 이번엔 두 녀석이 동시에 부딪쳐 온다.
바로 옆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교묘한 동작이다.
“좀 비켜주시죠. 앞에 일행이 있습니다.”
“글쎄, 그건 네 사정이고…….”
현수의 말에 대꾸한 늑대가 썩 물러가라는 표정을 짓는다.
두 녀석 틈으로 바라보니 한 녀석이 까차 바로 앞에 서서 부비부비를 시도하는 중이다.
까차는 여전히 댄스 삼매경에 빠져 정신없이 흔드느라 생판 모르는 녀석이 앞에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에이, 클럽에만 오면…….’
현수는 슬쩍 짜증이 났다. 장소가 모두 달랐음에도 클럽에 올 때마다 시비 붙는 것이 불쾌한 것이다.
“좀 비키시죠.”
“우리가 왜?”
자리를 바꿔 까차에게 다가가려 할 때마다 녀석들이 히죽거리면서 앞을 가로막는다.
“제 일행입니다. 좀 비켜달라면 비켜주시죠.”
앞의 녀석을 조금 강하게 밀쳤다. 그와 동시에 몸이 휘청거린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뭐야, 이거! 왜 사람을 밀어? 죽고 싶어? 엉!”
또 주먹을 치켜든다, 현수는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행에게 가야겠습니다. 막지 마십시오.”
녀석의 옆으로 가려는 순간 곁에 있던 놈의 주먹이 현수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한다.
팍, 퍼억―!
“크흑!”
녀석의 주먹을 팔꿈치로 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녀석의 복부를 가격했더니 허리를 꺾으며 신음을 토한다.
그 순간 녀석을 밀고 까차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다.
부비부비를 시도하던 녀석이 까차의 둔부를 움켜쥔다. 놀란 까차가 물러서며 녀석의 뺨따귀를 때렸다.
“꺄아악―!”
촤악―!
“이 쌍! 이 기집애가 누구에게 감히……! 너는 뭐야?”
늑대가 까차의 뺨을 가격하기 직전 현수에 의해 손목을 잡혔다. 녀석은 성난 표정으로 현수를 노려본다.
“나, 이 아가씨 일행이야.”
“일행?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았네. 일행은 무슨. 야! 니들은 뭐냐? 이런 거 하나 처리 못하고.”
늑대의 시선을 받은 다른 녀석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알았어. 우리가 처리할게. 야, 뭐해? 이 새끼 어서 끌어내.”
녀석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개의 손이 현수의 양팔을 잡는다. 그리곤 세게 잡아당긴다.
“으읏!”
하지만 끌려 나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현수가 힘을 쓰자 두 녀석이 거꾸로 밀려나며 다른 손님들과 충돌한다.
“에이, 뭐예요? 잘 놀고 있는데.”
춤추다 부딪친 녀석이 투덜거린다.
“아, 미안합니다.”
다른 손님에게 사과한 녀석들이 다시 현수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현수가 움직였다. 요리조리 빠져 까차에게 다가가자 어디에 갔었느냐는 듯 환히 웃는다.
“미스 까차, 아무래도 잠시 피해야겠어요.”
“네, 그래요.”
현수의 에스코트를 받아 좌석으로 돌아온 까차는 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둠 속에서도 인형 같은 미모라 그런지 빛이 나는 듯하다.
“아까 그 사람, 왜 그런 거예요?”
“미스 까차가 너무 예뻐서 그래요.”
“어머! 정말요? 김 전무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칭찬하는 소리로 들었는지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기분 좋아하는데 돈 안 드는 립서비스를 왜 못하겠는가!
“그럼요! 오늘 여기 온 손님 중 아마 미스 까차가 제일 예쁘고 섹시할 거예요. 그래서 사내놈들이 뭣 모르고 들이댄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호호! 네, 그럼요! 전 괜찮아요. 그나저나 여기 정말 재미있네요. 호호! 몸에서 땀이 막 나요.”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요란한 음악 소리가 여전히 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때 DJ가 마이크를 잡는다.
“와우! 오늘 오신 손님들, 정말 물이 좋군요. 모두가 선남선녀이십니다. 오, 저쪽에 계신 싸장님이 기분 좋다고 타이틀을 걸라고 하십니다. 자, 그럼 잠시 후부터 섹시댄스 경연대회가 열리겠습니다. 1등 커플에게는 상금이 100만 원! 2등 커플 테이블엔 양주 한 병을 서비스합니다.”
“와아아아아―!”
손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린다. 클럽에서 하는 섹시댄스 경연대회는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자자, 이제 조금씩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그리고 섹시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할 커플은 담당 웨이터를 통해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 열 팀으로 한정하니 얼른 신청하십시오.”
헐벗은 남의 여인들의 나신을 기대하는 사내들이 일제히 홀 밖으로 물러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많이 벗는 팀이 이길 확률이 크다. 하여 아슬아슬한 볼거리가 많다.
실제로 대구의 모 클럽에서는 미리 돈을 주고 고용한 여자가 섹시댄스 경연대회에 나와 전라로 춤을 추기도 했다.
발각되어 처벌받기는 했지만 당시 클럽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 광란의 댄스가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웨이터를 부르는 듯 전광판의 테이블 번호에 불이 켜진다. 이 순간 까차는 테이블 오른쪽 끝에 있는 17이라는 숫자가 쓰인 이상한 것을 만져 보고 있다.
이런 데가 처음이라 그게 웨이터를 부르는 장치라는 걸 모른다. 이게 뭔가 싶어 만지더니 꾹 눌러 버린다.
하지만 현수는 이걸 모른다. 조금 전 시비가 붙었던 늑대들이 찾아올까 싶어 주위를 살피는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늑대 팀들은 현재 룸과 부스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홀 근처 좌석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때 DJ의 음성이 들린다.
“자, 마감되었습니다. 참가 팀은 총 열 팀입니다. 잠시 후 제비뽑기를 만들어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DJ가 음악을 키웠다가 줄이며 멘트를 잇는다.
“그럼 지금부터 10분간 광란의 댄스를 즐겨주십시오. 자, Conrado의 Make the floor burn입니다. 노래 제목처럼 플로어를 뜨겁게 달궈주십시오. 이어지는 음악은 J8ck의 Gypsy woman입니다. 렛 잇 고우∼!”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요란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현란한 조명이 플로어와 홀의 객석을 비춘다.
까차는 넋을 잃고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데 담당 웨이터가 온다.
“손님, 손님은 아홉 번째 참가자로 결정되었습니다. 테이블 번호를 부르면 플로어로 나가십시오.”
“네? 뭐라고요?”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반문하니 제대로 못 들었나 싶었는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같은 이야길 한다.
“어, 우리 신청한 적 없는데요? 미스 까차, 섹시댄스 경연대회 참가한다고 했어요?”
“네?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본인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생각하고 있기에 한 말이다.
“그럴 리가요. 저기 저 버튼 안 눌렀어요?”
웨이터의 말에 까차가 번호가 쓰인 것을 본다.
“이거요? 이게 뭔가 싶어 만져 보긴 했는데…….”
“거봐요. 신청하셨잖아요. 아무튼 아홉 번째 참가자로 결정되었으니 준비해 주십시오. 꼭 나가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웨이터가 임무 끝이라는 듯 휑하니 가버린다.
“미스 까차!”
“어머, 미안해요. 이게 그런 건지 모르고……. 이게 뭔가 만져 본 것뿐이에요.”
“……!”
이런 데 처음 왔다는 걸 눈치챘기에 뭐라 야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안해요.”
“나는 괜찮은데, 미스 까차는 어때요? 기왕에 놀러 온 거니 한번 나가볼까요?”
모처럼 놀러 왔는데 침체된 분위기로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 말이다.
“정말요? 근데 저 춤 못 추는데 어쩌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표정이다. 이럴 땐 자신감 북돋우기 신공이 필요하다.
“사람들 추는 거 유심히 봐뒀다가 따라 해봐요. 아까 보니까 아주 몸치는 아닌 것 같으니 금방 흉내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될까요? 네, 알았어요. 한번 해볼게요.”
까차가 마음을 정했다는 듯 환히 웃으며 시선을 돌린다. 말한 대로 사람들이 춤추는 것을 유심히 보기 위함이다.
현수도 춤추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신 유행 춤을 따라 배우기 위함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바운스에 맞춰 목과 허리를 흔들어주는 게 전부이다. 소위 떡춤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 정도면 충분히 따라 하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춤을 살폈다.
모두가 떡춤이고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섹시댄스 경연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테이지에 계신 손님들! 죄송하지만 가운데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DJ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웨이터 몇이 들어와 중앙에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럼 첫 번째 팀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참가 순서는 제비뽑기로 공정하게 정한 것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자, 테이블 넘버 61! 스테이지 중앙으로 나오십시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커플 한 쌍이 들어선다.
남자 여자 모두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차림이다. 남자는 제법 근육이 있고, 여자는 몸매가 아주 좋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음악이 시작되자 광란의 댄스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조금 전 너도나도 추던 그런 춤이 아니다.
완전히 밀착되어 부비부비를 하고 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도 있다. 서로 상대의 몸을 심하게 더듬는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여기저기서 휘파람이 터져 나온다.
“와우, 잘한다!”
누군가의 함성 속에서 커플의 춤이 이어졌다. 격렬하면서도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이 드는 야한 춤이다.
까차는 눈빛을 빛내며 커플을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첫 번째 팀의 춤이 끝났다.
“자, 첫 번째 팀이 끝났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업소엔 음량 계측 장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응을 측정하여 점수로 매기겠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참가자가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분,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쳐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측정 결과는 잠시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다음 두 번째 참가 팀은 테이블 넘버 33입니다. 입장해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이번에도 환호성 속에서 커플이 입장한다. 그리곤 춤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곱 번째 팀까지 춤을 췄다.
클럽의 소음은 대략 120데시벨 정도 된다. 1m 떨어진 곳에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또는 천둥소리와 같은 크기이다.
여섯 팀의 데시벨 측정 결과는 최고가 89데시벨이다. 댄스 음악을 끈 상태에서 측정한 값이다.
참고로 80데시벨은 차가 많은 매우 시끄러운 도로의 소음 크기이다. 90데시벨은 여덟 시간 이상 지속되면 청력을 상실할 수도 있는 대형트럭, 또는 지하철 소음과 같다.
“자, 방금 공연을 마치신 일곱 번째 팀! 놀랍군요. 무려 90.5데시벨이 나왔습니다. 현재 스코어 1등입니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방금 전 참가했던 팀의 여자가 팬티만 남기고 모두 벗었기 때문이다.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의 아가씨가 작은 천 한 조각만 걸친 채 끈적거리는 춤을 추었다.
여섯 번째 팀은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겼다. 여기서 하나를 더 벗었으니 상금에 눈이 멀어 점점 과열되어 가는 것이다.
여덟 번째 팀도 팬티만 남기면 아홉 번째와 열 번째는 다 벗기 전에는 이길 수 없다.
한편, 까차는 심란한 듯 손톱을 깨물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승부욕의 화신이라 불렸다.
무엇이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여 어떻게든 이기려고 일주일 내내 한 잠도 자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