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8
태어나 처음으로 온 나이트클럽이다. 섹시댄스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남자들은 최대가 상의 탈의였지만 여자들은 점점 더 많은 걸 벗는다. 이기려면 일곱 번째 팀보다 더 많이 벗는 수밖에 없다. 벗을수록 환호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여덟 번째 팀이 등장한다.
사내는 이미 상의를 탈의한 상태이다. 조명 덕분에 발달한 가슴 근육이 여자들의 시선을 끈다.
음악이 시작하려는 순간 여자가 손을 번쩍 들어 제지하고는 상의와 하의, 그리고 브래지어까지 벗는다.
아예 처음부터 벗고 시작하려는 것이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한 쌍의 남녀는 교미하는 수컷과 암컷의 몸짓을 보여준다. 휘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작렬한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는 듯 스테이지 가까이 다가선다. 그렇게 3분쯤 흘렀다.
그 3분 사이에 남녀 모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격렬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비벼댄 때문이다.
“자, 방금 멋진 댄스를 보여준 여덟 번째 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나왔을까요, 여러분?”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드러머가 긴장감을 돋우기 위한 북을 친다. 이 소리가 잦아들자 DJ가 말을 잇는다.
“와우! 놀라운 결과군요. 여덟 번째 참가 팀의 소음도는 95데시벨입니다. 1등이 바뀌었습니다.”
“와와와와와와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들자 DJ의 멘트가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아홉 번째 참가자와 열 번째 참가자의 부담이 크겠습니다. 자, 과연 아홉 번째 참가 팀의 댄스는 얼마나 섹시할까요? 기대를 하면서 아홉 번째 참가자를 모시겠습니다. 테이블 넘버 17! 스테이지로 나와 주십시오.”
“와와와와와와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다. 누가 나와 얼마나 벗을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우리 나가지 말죠. 기권하면 되니까요.”
“아뇨! 제 사전에 기권이란 단어는 없어요. 나가요, 우리!”
“……!”
심히 부담스러웠기에 기권하려던 현수는 까차의 결의에 찬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와와와와와와와와!”
백인인 까차가 스테이지에 먼저 올라서자 남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신장 172㎝, 몸무게 50㎏의 절세미녀가 올랐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모든 수컷의 시선이 까차에게 쏠린다.
가슴이 푹 파인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벗기 나쁘겠지만 곧 벗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눈빛들이다.
그걸 벗으면 감춰진 훌륭한 몸매를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들을 하는지 눈들이 시뻘겋다.
현수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스테이지에 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니 왠지 쑥스러운 느낌이다.
“자, 그럼 아홉 번째 참가 팀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를 하면서, 음악 갑니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격렬한 비트 음이 홀 안을 메우자 현수와 까차의 떡춤이 시작되었다. 춤을 추던 까차가 상의를 좌우로 잡아당긴다.
국제변호사인 까차의 이런 모습을 본 현수는 당황했다. 전 팀들이 벗었다 하더라도 이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원피스가 벗겨지자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는다.
휘이이이익! 휘이이이익―!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작렬한다. 범상치 않은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난 때문이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사람의 피를 뜨겁게 달구는 요란한 음악 소리에 심취되었는지 까차의 몸놀림은 점점 대담해져 간다.
요염한 몸짓으로 현수에게 오더니 목을 휘어 감는다.
다음 순간, 이제 곧 부비부비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현수의 눈이 커진다.
까차의 느닷없는 키스가 시작된 때문이다. 하체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어찌 보면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모습이다.
까차가 꿈틀거릴 때마다 심한 자극이 느껴진다. 혈기왕성한 시기이니 당연히 신체의 일부가 금방 반응한다.
다행히 와이셔츠 자락이 앞을 가리고 있기에 관중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으음! 하음! 흐으음!”
현수는 원지 않던 키스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단단히 감싼 두 팔 때문이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드는 듯하다.
물론 현수만의 생각이다.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퍼지고 있고, 관객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더한 볼거리를 제공하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동양 남자들은 서양 여자, 특히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눈앞에서 백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와의 격렬한 키스가 이어지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물론 속으론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입술을 뗀 까차가 요염한 눈빛과 몸짓으로 현수를 유혹한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참가 팀을 보고 나름대로 응용한 몸짓이다. 마치 성행위를 갈구하는 듯한 모습에 장내는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그러다 음악이 끝났다.
휘이이익! 휘이이이익!
“잘했다! 잘했어! 부러워 죽겠다!”
“와와와와와와!”
“자, 대단했던 아홉 번째 팀의 퍼포먼스도 끝났습니다. 이제 점수가 얼마나 될지 측정할 시간입니다. 방금 전 댄스가 섹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리 지르며 박수쳐 주십시오.”
“우와와와와와와! 최고다!”
짜짜짜짜짜짜짜짝!
“그만, 그만! 이제 그만해 주십시오. 충분히 측정하였습니다. 이제 측정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요란한 북소리가 잦아들자 DJ가 마이크를 든다.
“아홉 번째 참가팀의 점수는! 와우, 대단하십니다! 98.5데시벨입니다! 1등이 또 바뀌었습니다!”
“와와와와와와와!”
“자, 이제 마지막 참가 팀만 남았습니다. 이 팀이 얼마나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DJ 개인적 생각으론 마지막 참가 팀의 여자 분이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는 한 1등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와와와와! 물론이다! 다 벗어야 이긴다!”
“크크, 당근이야! 누군지 몰라도 홀딱 벗어라!”
“발가벗으면 인정해 준다! 나와라!”
“하하! 여러분의 생각도 저와 같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참가 팀을 스테이지로 모시겠습니다. 테이블 넘버 81!”
DJ의 말이 끝났음에도 열 번째 팀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 넘버 81! 앞으로 나오십시오!”
여전히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겁나서 도망간 거 아냐? 1등 하려면 다 벗어야 하니까.”
“맞아, 웬만해선 이기기 힘들지. 다 벗으면 몰라도.”
“크크, 그럼, 그럼! 다 안 벗으면 박수 안 쳐!”
여기저기서 마지막 참가 팀의 전대미문의 퍼포먼스를 기대한다고 소리를 지른다.
“열 번째 참가 팀! 테이블 넘버 81! 어서 나오십시오! 열 셀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자격 박탈하겠습니다!”
여전히 아무도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할 수 없군요. 그럼 지금부터 카운트다운 합니다. 열, 아홉, 여덟…….”
DJ는 약 3초 간격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이 정도면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있다가도 나타날 시간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참가 팀은 나오지 않는다.
“넷, 셋, 둘, 하나 반, 하나 반의 반, 하나! 반! 반의반! 네, 열 번째 참가팀은 출전을 포기했나 봅니다. 자동 탈락입니다.”
“우우우우우!”
“나와라! 홀딱 벗고 나오란 말이다!”
사람들이 일제히 야유하는 소리를 낸다. 잠시 후 DJ가 다시 마이크를 든다.
“그럼 오늘의 우승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우승 팀은 아홉 번째 참가팀인 테이블 넘버 세븐틴입니다! 박수 주십시오!”
짝짝짝짝짝짝!
“와와와와! 잘했다, 잘했어!”
“오늘 그냥 자지 마라!”
“와와와! 깃발을 꽂아라!”
여기저기서 부러워하면서도 속내를 감추지 않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까차는 그저 환호성인 것으로만 아는지 환히 웃는다.
“2등은 여덟 번째 참가 팀인 테이블 넘버…….”
DJ의 멘트가 잠시 이어졌다.
“그럼 시상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이블 넘버 세븐틴,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시상은 저희 클럽 사장님께서 하시겠습니다. 상금은 100만 원입니다.”
잠시 후, 현수와 까차가 상금이 든 봉투를 흔들며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며 소리친다.
뼈와 살이 노글노글해질 정도로 뜨거운 밤을 보내라는 등 대부분 야한 소리이다.
아무튼 확인해 보니 봉투엔 5만 원권 20장이 들어 있다.
“호호! 돈 벌었네요.”
까차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한다.
“그러네요. 재미있었지요?”
“호호, 네. 정말 재미있어요. 호호호!”
까차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근데 이 상금, 반으로 나눠야죠?”
“아뇨. 까차가 다 가지세요. 내가 한 건 입술 대준 것밖에 없으니까요.”
짐짓 조금 전의 키스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만들어 버리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
“그래도 입술 값은 받으셔야죠. 자, 50만 원 여기 있어요.”
또 거절하는 것도 그래서 돈을 받았다.
어느새 스테이지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조금 전의 자극적인 경연대회 때문인지 아까보다 훨씬 끈적인다는 느낌이다.
“우리 또 나가요.”
“…그래요.”
까차는 신이 제대로 오른 듯 환히 웃으며 현수를 잡아끈다.
접대 차원에서 온 것이니 당연히 손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에 같이 스테이지로 나갔다.
쿵쿵쾅쾅!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쾅쿵쾅!
사람들 틈에서 떡춤을 추니 사내들이 또 몰려든다.
임자 있음을 알면서도 이러는 의도는 대체 뭘까 생각하던 현수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를 까차의 임자로 생각했다는 것이 웃긴 것이다.
하여 아까보다는 훨씬 느슨하게 임했다. 까차는 앞에서 춤추는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옆으로 가라는 손짓을 한다.
사내 녀석들은 영어가 시원치 않은지 말은 걸지 않는다.
아무튼 아까 보았던 늑대 녀석들보다는 매너가 있는지 까차가 가라는 손짓을 하면 순순히 물러난다. 그렇게 10여 명이 물러나자 더 이상 끼어드는 녀석이 없다.
까차는 목과 허리를 흔들며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마주 선 현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까 경연대회 때 정말 멋졌다는 뜻이다.
까차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이때 현수의 앞을 가로막은 녀석들이 있다. 이러다 거절당하면 가겠지 했는데 조금 시간이 길어진다.
이상하다 싶어 틈 사이로 보니 아까 그 늑대 녀석들이다. 까차 앞에 있던 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끄는 모습이 보인다.
“비켜!”
낮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소리치니 움찔거린다.
그 틈을 타 앞으로 이동한 현수는 까차의 손목을 쥔 녀석의 다른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으윽! 너, 넌 뭐야?”
“손 놓고 떨어져.”
“뭐야, 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니가 누군지는 알 바 없어. 그러니 손 놓고 물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금 더 힘을 가했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과 함께 까차를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으으윽! 너 이 새끼……!”
느닷없는 봉변에 당황한 까차가 현수의 뒤로 얼른 이동한다.
“너! 또 한 번 이렇게 찝쩍거리면……. 아무튼 꺼져!”
싸늘한 표정으로 경고의 말을 하려던 현수는 그보다 까차를 다독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미스 까차, 또 놀랐죠? 자리에 가서 좀 쉬죠.”
“네, 가요.”
스테이지를 벗어나 좌석으로 돌아와 앉는데 까차가 자기 자리를 놔두고 현수의 옆에 앉는다.
“여기 좀 있을게요.”
두려움 때문인지 얼굴에 배어 있던 웃음기가 싹 빠져 있다.
“이런 빌어먹을……!”
모처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버린 녀석 때문에 짜증이 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살 달래서 아까같이 화기애애한 상태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여 말을 건네려는데 조금 전의 그 일당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