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0
“이봐요! 누가 가해자라는 겁니까? 나는 피해잡니다!”
“이 사람이! 사람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뻔뻔스럽게 피해자라고 우기는 거야?”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게 신경을 거스른다.
“근데 누군데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겁니까?”
알면서 묻는 말이기에 전혀 공손하지 않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저기 있는 최민기 씨 변호사야.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뭐요? 너? 이것 보세요. 변호사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하고 이래도 됩니까?”
“뭐야?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어디서! 두고 봐. 폭행죄로 최소 교도소에서 10년은 썩게 만들어줄 테니.”
“이 경사님, 변호사가 이래도 됩니까?”
“…꼬면 자네도 변호사 선임해.”
“정당방위인데도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요?”
“그래야 할걸.”
이 경위는 불꽃을 찾아 달려드는 불나방을 떠올렸다. 빛을 찾아왔다 제 한 몸 태우는 줄 모르는 것이 불나방이다.
지금의 현수가 그러하다. 나이 29세라는데 겉보기엔 25세로 보인다. 이 나이엔 사회적으로 이뤄놓은 게 별로 없다.
잘나가 봐야 대기업 대리 정도가 끝이다. 만일 힘있는 뒷배가 있다면 경찰서에 오자마자 전화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최민기가 그러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나머지 둘도 그러하다.
그래놓고는 진술서 작성에 들어간 것이다.
설사 현수의 말대로라고 할지라도 피해자는 최민기 일당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돈 좀 있는 회사의 회장은 호텔 로비 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려도 된다. 이게 사회문제가 되면 폐업하면 그만이다.
데리고 있던 종업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되는 건 관심도 없다.
또한 힘있는 회사의 임원이 되면 비행기 승무원이 끓여온 라면이 덜 익었다면서 패악을 부려도 되고, 얼굴을 때려도 된다. 이게 문제가 되면 사표를 쓰면 된다.
굳이 임원까지 갈 것도 없다.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 영업사원은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는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욕을 하고 강매를 강요해도 된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놈들이 저지른 죄는 대부분 감춰진다. 자기들끼리 상부상조하니 웬만해선 알려지지도 않는다.
어쩌다 재수 없어 신문이나 방송에 기사가 되어야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성접대를 받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그런 일 없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증거가 된 동영상과 음문이 95% 일치해도 나머지 5%를 이용하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반면,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이 저지른 죄는 일벌백계하듯 엄한 처벌을 내린다.
영화 홀리데이의 실제 주인공인 지강헌은 556만 원을 훔쳤다. 검거된 뒤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형을 받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당시 새마을운동협회 총재로서 73억 원을 횡령했다.
현재의 화폐 가치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지강헌이 훔친 돈의 1,300배가 넘는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횡령과 탈세, 그리고 뇌물 수수 등의 중대 범죄에 대한 그의 형량은 고작 징역 7년이다.
그것도 3년만 살고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듬해에 대통령 특사로 사면복권까지 되었다.
지강헌은 가석방 대상이 아니었다.
하여 호송 버스에서 탈주하였다. 경찰에 쫓긴 지강헌은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이때 국민에게 할 말이 있다며 TV 생중계를 요구했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했다.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으면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법률소비자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량이 이 말에 동의한다고 한다.
어쨌든 1988년에 일어난 일이다.
올해는 2013년이다. 지강헌 사건 이후 25년이 흘렀다.
그런데 변한 게 없어 보인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집 자식들은 애꿎은 서민에게 패악을 부리고도 피해자라 우긴다.
그리고 엄정해야 할 공권력은 권력 또는 돈 있는 자 편에 붙어 중립 유지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부아가 치민 현수는 경찰서 내의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조서를 작성한 이 경사는 물론이고 그에게 지시를 내린 박 경위와 녀석들에게 조사를 받은 김 순경이 보인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경찰이 되어 공권력을 행사하는지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변호사님, 조금 전 제게 10년간 교도소에서 썩게 한다고 말하셨습니까?”
“당연하지. 무고한 사람을 여섯이나 두들겨 패 병원에 입원케 했는데 그 정도 처벌은 받아야지.”
“우리 쪽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 판단을 내린 겁니까?”
“아! 그쪽 말은 들어서 뭐해? 안 봐도 비디온데. 너는 도주한 일당을 미리 호텔 지하주차장에 있도록 했어. 그리고 최민기 씨와 친구들을 유인했고.”
“그리고요?”
“그리고는 무슨, 니가 의도적으로 유인한 뒤 숨어 있던 일당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했잖아. 이건 조직적인 폭력이야. 따라서 넌 특가법 적용을 받아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 현수가 웃는다.
“차암, 열심히 공부해서 사시 합격했는데 안 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앞으로 밥 먹고살기 힘들 거라는 말입니다.”
“이놈의 자식이!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왜? 너도 힘 있는 집 자식이라고 우기고 싶어?”
“아뇨. 힘 있는 집 자식은 아닙니다.”
“그럼 인마, 찌그러져 있어.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싸가지 없이. 힘도 없는 집 자식이면서!”
대놓고 무시하는 눈빛이며 행동이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내가 가해자인 것으로 확정한 듯한데 증거 있습니까?”
“증거?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야, 너 같은 건 증거 없이도 10년형은 받게 할 수 있어!”
“그래요? 검사나 판사 중에 친구가 있나 보죠?”
“뭐야?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그래, 있다! 근데 지금 나하고 말장난하자는 거야? 엉? 그런 거야?”
약간 다혈질인 듯 별말 아닌데도 금방 달아오른다.
“말장난이 아니라 너무 자신있게 말해서 그러느냐고 물은 겁니다. 근데 그 친구란 분이 대체 누구입니까?”
“니가 말하면 알아? 좋아, 말해주지. 서울중앙지검의 이 검사가 사법연수원 동기다. 어때, 이제 겁 좀 나지? 너같이 싸가지 없는 새끼는 내가 책임지고 10년은 썩게 해주지.”
현수는 문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어 반문했다.
“중앙지검의 이 검사라는 분이 혹시 이경천 검사입니까?”
“뭐?”
변호사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니가 어떻게 이 검사를 알아? 혹시 아는 사이야?”
말투가 현저하게 바뀐다. 말하는 걸 보면 이경천과 친척일 수도 있다. 그럼 조금 전같이 대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아뇨. 잘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죠.”
“이 새끼가! 아무튼 넌 교도소에서 최하 10년은 썩을 거야. 그러니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그렇겐 못하겠는데요.”
“야! 시끄러!”
현수의 말에 대꾸한 이는 이 경사이다. 변호사와 계속 말장난 비슷하게 떠드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 것이다.
“더 이상 떠들지 말고 너도 변호사 선임하든지 그래. 돈 없으면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알지?”
“알았습니다. 변호사 선임하죠. 전화 한 통 써도 되죠?”
“써!”
이 경사는 별 웃기는 자식을 다 본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휴대폰에 입력된 번호 중 주효진을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딩딩, 디디디디, 딩딩, 디디디디, 딩딩, 디디디!
“아! 김현수 전무님. 오랜만입니다.”
일부러 들으라고 한뼘통화 버튼을 눌렀기에 주효진 변호사의 음성이 들린다.
“주 변호사님, 저 지금 경찰서에 와 있는데 좀 와주시죠.”
“물론입니다. 어느 경찰서에 계십니까? 강남 쪽에 계시면 20분 내로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여긴…….”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인 이 경사와 김 경장, 그리고 박 경위와 강을석 변호사의 낯빛이 달라진다.
폭행 가해자로 입건할 사람이 너무도 유명한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내려놓으려는데 진동을 한다.
“아, 회장님. 네? 지금은 곤란한데요.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잡혀와 있는데 이 사람들이 놔주지 않아서요. 네? 그럼요. 제가 어디 그럴 사람입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한뼘통화이다. 통화한 상대자는 천지그룹의 이연서 총회장이다. 뉴스에 많이 나와 웬만한 국민이라면 다 아는 음성이기에 금방 알 수 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또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아, 참모총장님! 네, 네! 지금은 곤란한데요. 아뇨. 바빠서가 아니라 사소한 시비로 경찰서에 잡혀와 있어서요. 제가 피해자인데 자꾸 가해자로 모네요. 네? 아, 네.”
통화를 마치곤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또 진동을 한다.
이번에도 한뼘통화 버튼을 누르고 받았다.
“김 전무, 나 홍진표 의원일세. 늦은 시각이지만 바쁘지 않으면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시간 좀 내주시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 가해자로 몰려 있는 상황이라서요.”
“가해자로 몰려? 무슨 일이신가?”
“그게… 말하자면 깁니다. 여섯 놈이 덤벼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제압을 했는데 여기 경찰과 상대방 변호사가 저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중입니다.”
“알겠네. 내 금방 가겠네.”
홍진표 의원이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에는 강민경 기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김 전무님, 좋은 일 있으시다면서요? 인터뷰 좀 해주세요.”
강 기자와 통화를 마치자 드라마 신화창조로 주가를 올리는 이인철 PD의 전화가 걸려왔다.
현수가 경찰서에 있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도국 기자를 보내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이것만으로도 이 경사와 김 경장, 그리고 박 경위와 강 변호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
특히 변호사의 얼굴이 하얗다.
개인적으론 주효진 변호사 직계 후배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깐깐하기로 이름났던 그 선배가 온다고 한다. 주효진의 곁에는 항상 김세윤 검사가 있다. 다혈질로 유명한 선배이다.
문제는 이들 둘이 아니다.
김현수와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하게 될 권지현의 부친이 서울고검장인 권철현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늘같은 선배이며 동창들의 롤 모델인 사람이다.
그에게 쓰레기로 낙인찍히면 평생 동창회조차 참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창백해진 표정으로 현수가 통화하는 것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전화들이 걸려온다.
현수는 모르는 번호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백두그룹 조연호 총회장으로부터 걸려온 것이다.
다음 것은 천지건설 이창진 회장, 사장 신형섭, 백두화학 조인성 회장, 태백그룹 최인섭 총회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의 전화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전화였다.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뼘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님 전화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대통령 비서실 공인규 서기관입니다. 대통령님께서 통화하고 싶어하시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얼른 한뼘통화 버튼을 다시 눌렀다. 지금부터 하는 통화는 남이 들어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대통령의 음성이 들린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오후 3시 경에 청와대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린다. 그리고 들어선 이의 어깨엔 무궁화 네 개가 얹혀 있다.
경찰서장이 나타난 것이다.
『전능의 팔찌』 23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