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51화 (551/1,307)

# 551

1장 어서 체포해!

이 경사와 김 순경, 그리고 박 경위의 낯빛이 대번에 창백해진다. 너무도 껄끄러운 직속상관의 등장이기 때문이다.

“아, 김현수 전무님, 저희 서에 어떻게……. 이 경사, 어찌 된 일인가? 천지건설의 김현수 전무님이 왜 여기서 이러고 계셔?”

“네? 아, 네에. 그, 그게…….”

이 경사가 너무도 당황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때 지금껏 곁에 있던 까차가 나선다.

“Mr. Kim in unfair now. He was…….”

잠시 까차의 말이 이어졌다. 현수가 무죄라는 내용이다. 다행히 서장은 영어를 알아듣는 듯 간간이 반문까지 한다.

말하는 도중 정당방위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게 뭐냐고 하자 핸드폰을 내민다.

“This is the evidence.”

“이게 증거라고요? 흐음, 어디 좀 봅시다.”

서장은 까차가 내민 휴대폰의 동영상을 보았다.

홀에서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상황부터 강을석 변호사가 막말을 하는 것까지 모두 녹화되어 있다.

“……!”

모두 말없이 동영상을 보았다.

처음엔 집단 폭행을 당하는 것 같더니 혼자서 각목을 든 상대 여섯을 때려눕히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이 경사와 김 경장, 그리고 박 경위와 강 변호사의 얼굴과 발언도 모두 녹화되어 있다.

“어떻게 이걸……?”

이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여 경찰서장이 묻자 까차가 증명서를 내민다.

“나도 변호사예요.”

“……!”

현수의 애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렇듯 아름다운 여인이 변호사라니 하는 표정이다.

“맞습니다. 예카테리나 양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삽니다. 아울러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브레즈네프의 증손녀입니다. 함부로 대했다간 큰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이라 까차만 못 알아들었다.

어쨌거나 모두 맙소사 하는 표정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데다 공산당 서기장의 증손녀라는 말에 넋이 나간 듯 모두 입을 벌리고 있다.

이 와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서장이다.

“미스 브레즈네프,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이 경사, 내가 보기엔 김현수 전무님이 피해자야. 그리고 정당방위가 확실해.”

“네, 맞습니다. 분명한 정당방위입니다. 저기 있는 저놈들이 조직적으로 흉기를 들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 경사가 얼른 대꾸하자 경찰서장이 지시를 내린다.

“폭력조직 결성 및 폭력 행사로 조치하게.”

“알겠습니다.”

“참, 무고죄도 추가하게. 그리고 여기 있는 브레즈네프 변호사님을 성추행하려 했던 것도 추가하고.”

“네, 물론입니다.”

이 경사가 얼른 고개를 숙여 동의한다. 자칫 현수의 눈 밖에 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경사에게서 시선을 뗀 서장은 현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표정을 바꾼다. 더없이 부드러운 모습이고 싶을 것이다.

“김 전무님은 어디 다치신 데 없으시죠?”

“네, 다행히도.”

“그럼 제 방으로 가서 차나 한잔하시죠. 참, 강을석 변호사님, 우리 서의 조치에 혹시 이의 있으십니까?”

“아, 아뇨. 없습니다. 서장님 말씀대로 최민기와 일당은 폭력조직을 결성하였으며,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을 납치하여 성폭력하려고 모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훌륭하군요. 이 경사, 들었지? 성폭력 모의 혐의까지 추가하게. 조서 꾸밀 때 각별히 주의하여 김 전무님이 다시 출두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박 경위, 자넨 내일 시말서 써서 제출해.”

“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비협조적이었던 박 경위는 좋은 세월 다 갔음을 직감했다.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린 죗값이기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경찰이라는 자리만이라도 지킬 수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다.

아마도 견책, 감봉은 필수일 것이다. 심하면 해직이나 파면 통보를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서장이 자기 살기 위해 그런 짓을 할 것이다. 그래도 찍소리 못하고 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현수와 까차가 서장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주효진 변호사가 당도하였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김세윤 검사도 왔다.

둘의 얼굴을 본 강을석 변호사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잠시 후 밖으로 불려 나갔던 강 변호사의 모습은 초췌 그 자체이다.

벤치에 앉았는데 강 변호사의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다.

아까 한 말 때문이다. 힘 있는 집안의 자식이냐고 물었을 때 현수는 아니라고 답했다. 하여 함부로 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힘 있는 집안의 자식 정도가 아니라 힘 있는 본인이시다. 그것도 평범한 힘이 아니다.

대통령, 국방장관, 해군참모총장, 검사, 변호사, 기자, 국회의원, 재벌사 회장들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조만간 고검장의 사위가 될 사람이기도 하다.

다른 건 다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권철현 고검장의 사위가 되는 순간부터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고검장이 나서지 않아도 밑에서 알아서 긴다. 그런 사람에게 패악을 부렸으니 불안하기 그지없어 절로 다리가 떨리는 것이다.

잠시 후, 해군참모총장과 부관이 나타났다. 어떤 자식들이 김현수 전무를 건드렸느냐며 역정을 낸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오정섭 국방장관이 당도했다.

경찰서는 당연히 초비상 상태가 된다. 서장을 비롯한 모두가 전전긍긍하며 눈치만 본다.

곧이어 홍진표 의원이 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따졌다.

그다음은 강민경 기자이다. 모처럼의 특종을 잡으러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그리고 특종 중의 특종인 독종을 잡는다.

중기업인 K사 사장 아들과 거기에 빌붙어 먹고살던 찌질이 다섯이 하버드 대학 로스쿨 출신 국제변호사를 어찌하려다 현수에게 제지당한 기사가 뜬다.

불행히도 최민기의 부친이 운영하는 기업은 태백그룹 및 백두그룹과 연관이 있는 회사이다.

강민경 기자가 속해 있는 H일보에서 기사가 나간 이후 거래 중단 통지를 받는다. 당연히 K사 주주들이 난리를 피운다.

회사에 큰 손실을 끼쳤기에 긴급 이사회가 열렸고, 최민기의 부친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떵떵거리던 최씨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최민기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들 친구 덕에 K사 이사가 되었던 사람은 아들 탓에 직업을 잃는다.

최 사장이 쫓겨날 때 같이 잘린 것이다.

나머지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아들 친구 덕에 K사 회계 업무를 맡아보던 회계사는 거래처를 잃는다. K사에서 하도급을 받던 소기업 사장도 아들 때문에 거래처를 잃는다.

아무튼 최민기와 그 일당은 폭력조직 결성 및 위력 행사, 무고, 성추행, 성폭력 모의 등의 협의로 모두 구속된다.

사실 이들은 그간 상당히 많은 죄를 저질렀다. R사이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수많은 여성을 꼬여내 추행했다.

준재벌쯤 되는 K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말에 스스로 몸을 망친 여자들 이외에도 많은 여자가 추행당했다. 수시로 폭력을 행사했지만 돈으로 막아 처벌받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일당은 범죄 단체 결성 등의 사유로 재판을 받는다. 졸지에 조폭이 된 것이다.

최민기의 1심 형량은 징역 18년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두루 적용된 결과이다.

특히 잭나이프로 현수를 살해하려 했기에 살인미수죄가 추가된 때문이기도 하다. 이 밖에 최민기 일당에게 신세를 망친 여자들의 빗발치는 고소, 고발이 추가되어 중벌이 내려진 것이다.

* * *

“최세창 대령, 당신을 국가 기밀 누설죄 및 뇌물수수와 공여 혐의 등으로 체포합니다.”

“뭐? 당신 누구야?”

“기무사 이철민 중령입니다.”

“뭐? 기무사?”

일순 최 대령의 뇌리로 어떤 기사 하나가 스쳐 지난다. 다음은 최 대령이 본 신문 기사 중 일부이다.

기무 헌병 특별조사팀이 부산 지역 병무 비리에 연루된 기무부대장 J대령에게 소환장을 발부한 적이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J대령은 부산의 한 조합장의 아들 병역을 면제해 주는 등 병역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당시 군, 검찰 사이에서는 이 사건 수사와 관련, 군 고위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기무사 대령은 3성 장군과 같다. 호텔이나 용사의 집 특실(장군 전용)에서 조사하라.”

결국 기무사 J대령은 용사의 집 특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형식적인 문답이 오고갔다.

기무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중령 주제에 반말을 했기에 소리를 지르려던 최 대령이 말을 삼킨다. 계급은 밑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이 중령이 부하들에게 소리친다.

“무엇들 하나? 어서 최 대령을 체포해!”

“네!”

기무사 요원들이 움직이려는 순간 최 대령이 버럭 소리친다.

“뭐라고? 내가 뭘 어쨌다고?”

조금 전 뇌물수수와 공여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보다 먼저 들은 국가 기밀 누설이라는 말이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당신은 국가 기밀을 누설했습니다. 순순히 동행해 주십시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여기는 군수사령부 보급처야! 국가 기밀을 다루는 부서가 아니란 말이야!”

최세창 대령은 처음 보는 기무사 중령을 매서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다. 기 싸움에서 지면 불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열심히 뇌리를 뒤진다. 국가 기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를 찾는 것이다.

“당신은 지난 9월 6일 우체국 택배로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제공한 항온 전투복의 샘플을 9월 9일에 주한미군 제19전구지원 사령관 폴 헐리 준장에게 보낸 바 있습니다. 맞습니까?”

“항온 전투복? 맞소.”

“무엇들 해? 최 대령을 체포해라!”

“네!”

“뭐야? 지금 그거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는 거야? 항온 전투복이 무슨 국가 기밀이야? 그리고 그건 미군에게 준 거라고!”

“미군에겐 무엇이든 주어도 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당연한 거 아냐?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라고!”

최세창 대령이 거세게 반발하며 소리친다.

“미국에겐 무엇을 줘도 된다고? 무엇들 하나? 어서 체포해! 반항하면 힘을 써도 좋다!”

이 중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들어 최 대령의 양팔을 잡는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중령 따위가 어디서……. 나 보급처 최세창 대령이다!”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겁니다. 기무사가 어딘지 아시죠? 아무런 증거 없이 이렇게 할 것 같습니까?”

이번엔 이 중령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같은 순간, 최 대령의 뇌는 텅 비어가고 있다.

국가 기밀 누설죄가 군인에게 있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강제 예편은 당연한 일이다. 군사 재판을 받을 경우 최하가 30년형이고 심하면 사형이다. 이러니 어찌 제정신이겠는가!

최 대령은 군수사령부 보급처 집무실에서 연행되어 갔다.

얼마 후 치러진 군사 재판 결과 이등병으로 강등된다. 그리고 예상대로 징역 30년형에 처해진다.

뇌물 몇 푼 받아 챙기려다 인생 자체를 물 말아먹은 것이다.

* * *

“선진식 소령! 귀관을 체포한다!”

“네? 저를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체포한다는 겁니까?”

직속상관인 기무사 박 중령은 엄한 표정으로 선 소령을 바라보고 있다. 기무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귀관은 예편한 예비역 대령 강철환과 공모하여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제조하는 항온 전투복의 기술을 빼앗아 외국에 팔아넘기려 했다. 이는 국가 기밀 누설죄에 해당된다. 이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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