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2
“네? 구, 국가 기밀 누설죄라니요?”
박 중령의 말을 반박하고 싶다.
그런데 사실이 아닌 게 없다. 실제로 강철환과 항온 전투복 제조 기술을 지나에 팔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귀관이 예비역 대령 강철환과 모의한 통화 녹음을 들어야 시인하겠나?”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좋아, 선 소령을 체포하라!”
“네!”
기무사 요원들이 달려들어 선 소령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하지만 일체의 반항은 없었다. 그래 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귀관은 우리 기무사의 수치이다.”
연행되어 가는 선 소령 뒤에서 박 중령이 한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선진식 소령의 고개가 떨궈진다.
선 소령은 현역이기에 최세창 대령처럼 군사 재판에 처해진다. 그 결과 이등병으로 강등되고 불명예제대를 하게 된다.
물론 그러기 전에 육군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썩는다.
* * *
“예비역 대령 강철환! 당신을 국가 기밀 누설 음모 및 협박죄 등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누구야?”
“국정원 엄규백 요원입니다.”
엄규백 팀장이 신분증을 꺼내 보였지만 강철환은 여전하다.
“내가? 내가 무슨 국가 기밀 누설 음모를 꾸몄다는 건가?”
아직도 현역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강철환은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로 노려본다.
“귀하는 이실리프 어패럴에서 개발한 항온 전투복 제조 기술을 빼앗아 지나 등지에 관련 기술을 팔아넘기려는 음모를 꾸민 바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건……!”
강철환이 쉽게 대꾸하지 않자 엄규백 요원이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뒤에 있던 요원이 MP3를 가동한다.
“크흐흐! 그거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강철환의 음성이다.
“모르긴 해도 최소 500억은 받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받아야지요. 근데 어디에 팔죠?”
선진식 소령의 음성이다. 강철환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공간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500억? 크흐흐, 지나에서 700억을 준다고 했네.”
“지나에 넘기시려고요? 거기에 기술을 넘기면 그게 북한으로 전해질 수도 있잖습니까?”
“그러면 어때? 기껏해야 군복인데. 우린 돈만 벌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해도 지나는… 에이, 그러지요. 뭐, 돈만 많이 주면 어디에 넘기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찬성입니다. 근데 얼마씩 나누죠?”
“나하고 자넨 일단 200억씩 먼저 나누세. 나머지 300억으로 부하들과 공평하게 나누는 걸로 하자고.”
700억 중 400억은 떼어내고 300억만 받은 것처럼 한 뒤 똑같이 나누겠다는 소리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부하들은 엄청 감동받을 것이다. 둘은 이런 내용의 대화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 녹음된 것이다.
물론 이 녹음은 기무사에서 한 것이다. 강철환이 민간인 신분인지라 국정원에 넘긴 것이다.
“이래도 부인한다면 강제력을 동원하겠습니다. 순순히 따라오시지요.”
“으으음!”
강철환이 생각하는 척하며 눈알을 굴린다. 어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가! 틈을 보아 도주하려는 의도이다.
이에 엄규백이 엄한 표정으로 소리친다.
“당장 체포해!”
“네!”
“비켜라,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나 기무사 강철환 대령이야! 비켜!”
“콩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뭐해! 어서 제압해!”
강철환은 거세게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수갑을 찬 채 국정원으로 끌려갔다.
비슷한 시각, 강철환 밑에서 활동하던 예비역들도 굴비처럼 엮이고 있었다.
국가 기밀 누설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어버렸기에 비교적 쉽게 체포되었다.
강철환과 그의 부하들은 오랫동안 교도소에 몸담게 된다. 그간 저지른 비리가 모두 종합되었기 때문이다.
교소도 안에서 반성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코 편하게 지내진 못했다는 것이다.
강철환과 그 부하들은 착실한 군 생활 덕에 받을 수 있는 연금 수혜 대상자에서 빠졌다. 다시 말해 범죄에 연루되어 연금 받을 자격을 잃은 것이다.
남겨놓은 가족들 걱정하느라 반성을 못했을 수도 있다.
* * *
경찰서를 나선 현수는 해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습니다. 서까지 와주셔서.”
“아닐세. 당연히 가야지. 자넨 우리 해군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지 않는가!”
“그래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참, 지금은 좀 바쁘니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시게. 미리 연락 주면 양만춘함의 엔진을 미리 분해해 놓겠다고 하더군.”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해군참모총장의 이번 행차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이루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현수의 요구 조건이 완화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국방장관님, 저 때문에 발걸음하게 하여 죄송합니다.”
“아닐세. 죄 없는 자네가 위기에 처했으니 나라도 나서야지. 그런데 언제 대통령님까지 선이 닿았나?”
“아, 네. 회사 일 때문에 어쩌다 보니…….”
현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가스전 개발 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는 아직 극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욕봤네. 훌훌 털어버리시게.”
“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납품 건은 잘 진행되고 있나?”
“그럼요. 제 날짜에 보내질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알겠네. 그럼 수고해 주게.”
“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국방장관과의 통화를 끝으로 웬만한 사람에겐 다 전화한 셈이다.
“참, 강민경 기자……. 흐음, 전화번호가…….”
번호 검색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아! 김현수 전무님, 괜찮으세요?”
“그럼요. 강 기자님이 도와주셨으니 당연히 괜찮아야지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국방장관님까지 출동하셨는데 저 같은 기자가 무슨……. 지금 데스크에 기사 송고했어요. 아마 내일 신문에 실리게 될 거예요.”
“네, 그건 그렇고,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근데 전화로 이야기할 게 못 돼요. 내일 시간 되면 저녁 식사나 같이해요.”
“아앗! 그럼 데이트 신청인 건가요?”
지레 반색하는 척하는 강 기자이다.
“에구, 그건 아니고요, 긴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요.”
“쳇! 좋다 말았어요. 알았어요.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H일보 근처로 가서 전화 드릴게요. 아마 여섯 시 이후에나 가게 될 거예요.”
“알았어요. 내일 문자로 제 동선 보고 드릴게요.”
“네, 그럼 내일 만나요.”
현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 * *
“에구, 이 녀석아,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네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집에 전화 한 통화 해주면 어디 덧나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무슨 놈의 회사가 일을 그렇게 많이 시켜? 그러고 보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아뇨. 몸무게는 그대로예요.”
“그대로긴 이 녀석아! 어미가 보기에 빠졌으면 빠진 거야. 조금 기다려 봐. 맛있는 불고기 해줄게.”
“…네.”
“안방에 가봐라. 아버지 계시다.”
“네, 알겠습니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 왔냐?”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무덤덤한 표정이다.
“네, 집에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이제 곧 장가갈 거고, 그러면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그거 연습한 셈 치자.”
“죄송합니다.”
“오랜만인데 술 한잔할까?”
“네, 어머니께 준비해 달라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술상 준비하는 동안 샤워하고 오너라.”
“네, 아버지.”
결혼 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찍소리 않고 고개를 숙였다.
“벌써 다 했어? 시장하지?”
“네? 아, 그럼요.”
“먼저 고기부터 먹어. 술은 찬찬히. 알지?”
어머니가 눈짓을 하신다. 아버지의 술 빨리 마시는 습관을 제어해 달라는 뜻이다.
“자, 한잔 받아라!”
“아뇨. 제가 먼저 올릴게요. 아버지.”
“그럼, 그럴래? 오냐, 한잔 따르거라.”
쪼르르르륵―!
빈 잔에 술 채워지는 모습을 어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계신다. 모처럼 가족 모두가 모인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현수의 잔에도 술이 채워졌다.
“자, 우리 아들의 결혼과 행복을 위하여 한잔하자.”
“네, 아버지. 고맙습니다.”
“참, 당신도 한잔해야지. 잔 들어.”
술을 즐기지 않는 어머니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결국 잔을 든다.
쪼르르르르륵―!
“근데 이거 술이 달착지근하네요.”
“그래, 그거 사돈집에서 온 거야. 복분자로 담가서 단 거고. 안사돈께서 직접 만드신 거라고 하더구나.”
“아, 그래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모님을 보았다. 아주 흡족하다는 표정이다.
“안주도 먹어가며 마셔.”
“네, 아버지. 한잔 더 하셔야죠?”
“당연하지. 자, 한잔 더 따라라.”
“네.”
잠시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술과 안주를 즐기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결혼식 준비는 잘되고 있다. 어머니는 인생에 한 번뿐이니 웨딩 촬영을 하란다. 지현이도 은근히 바랄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연희와 이리냐도 해야 한다. 문제는 현수의 얼굴이 팔려 있어서 지현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에 웨딩 촬영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자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예단도 문제이다. 신부가 셋이다 보니 모두에게서 받지 않으면 형평에 어긋난다. 하여 예단을 받은 셈 치기로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별로 섭섭해하지 않는다.
천지건설에서 들어오는 월급 통장을 어머니께서 관리하신다.
워낙 연봉이 높아서 다 쓰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매달 같은 액수의 돈이 들어온다. 늘 어렵게 살았는데 이젠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잔고가 늘어만 간다.
하여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잠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고 하시며 기분 좋아한다.
게다가 남들에겐 말 못할 일이지만 꽃다운 며느리가 셋이다. 하나는 고검장의 딸이자 5급 사무관이고, 하나는 재벌의 친손녀이며, 마지막 하나는 레드 마피아 보스의 딸이다.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들 세 며느리 모두 효도를 하겠다고 하니 행복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2장 양복 안 맞춰?
“얘야, 아무리 회사 일로 바쁘더라도 결혼식 때 입을 양복은 맞춰야 하지 않겠니?”
“그냥 입던 거 입으면 안 되나요?”
양복을 맞추면 처음엔 기장을 잰다. 그때 잰 걸로 끝이면 좋은데 중간에 가봉하러 가야 한다.
이게 두 번이 될 수도 있다. 엄청 번거로운 일이다.
하여 슬쩍 빠져나가려 했는데 안 된다고 한다.
어머닌 아무리 바빠도 예복은 꼭 맞추라고 신신당부하신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에 입을 만한 양복이 없기는 하다.
입사 후 옷을 산 적이 없기에 조금은 꼬질꼬질하다.
할 수 없이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선 턱시도를 입어야 할 것이다.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있을 것이다. 그때 튀지 않고 무난하게 지낼 방법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한복을 입어볼 생각이다. 그게 더 뜻 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덥지만 항온 마법을 적용하면 될 것이다. 연희와 이리냐, 그리고 지현의 한복도 맞추면 된다. 양복과 달리 가봉이라는 중간 과정이 없으니 치수만 재서 주면 된다.
끝나지 않는 연회가 없듯 현수네 가족의 단란한 한때도 밤이 깊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