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56화 (556/1,307)

# 556

이런 면에서 보면 이실리프 은행은 여타 은행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이기에 근저당 설정을 한다든지 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담보가 있어야 대출해 준다.

그런데 담보로 잡은 부동산 등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게 되면 손실이 발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실리프 은행은 그럴 일이 없다.

담보가 없으니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상환 의지는 담보대출보다 훨씬 강하다.

이를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시중 은행 담보대출 상환율은 96.9%이다. 이실리프 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99.9%이다.

담보만 없을 뿐 서민들의 신용도는 최고인 셈이다.

“자칫 모럴 해저드가 오면 자본 잠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서민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져도 걱정이 없고요.”

“그건 어째서 그런 거죠?”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확하게 될 각종 곡물과 축산물 등을 판매했을 때 발생되는 이익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흐으음! 그 양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처음엔 절반 정도이겠지만 조금씩 늘려서 대한민국에서 필요로 하는 양 전부를 충족시킬 수준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으으음!”

은행장은 생각이 더 많아진 듯하다.

대한민국이 식량을 수입하기 위해 매년 지출하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2009년 통계 자료를 보면 연간 곡물 수입 비용이 283억 8천만 달러이다. 축산물의 경우는 약 20억 5천만 달러이다.

이 둘을 합치면 대략 304억 3천만 달러이다.

곡물 가격이 급등했으니 현재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아마도 400억 달러 이상일 것이다.

현수의 말처럼 막대한 양의 곡물과 축산물이 들어온다면 외화 유출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대금을 국내에서 한화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며 외환 운용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중 상당액은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되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 액수가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차액만으로도 큰 이득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한국은행장의 이런 생각은 기우가 된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진출한 천지그룹, 태백그룹, 백두그룹 등의 활약과 현수의 영향력 덕에 현지에서 한화가 유통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실리프 그룹에서 종업원의 급여를 한화로 지급한다. 이게 차츰 번져 천지그룹, 태백그룹, 백두그룹과 관련된 직원들의 급여 역시 한화로 결제된다. 그 결과 일반 상점에서도 한국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무지막지한 양의 농산물이 한국으로 수입되지만 외화는 거의 반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 경제를 아우르는 한국은행장으로선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다.

아무튼 이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기에 현재는 잴 게 많다는 듯한 표정이다.

“농축산물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는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고 있습니까?”

“앞으로 2∼3년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금괴는 매입하는 것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저희 직원을 파견하여 인수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십시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대금은 금괴 인수 후 이실리프 상사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러지요.”

“이실리프 금융, 또는 이실리프 은행 설립도 잘 검토해 주십시오. 자본금은 일단 5조 원으로 할 겁니다.”

“새로운 대형 은행의 탄생이군요. 알겠습니다. 그것도 신경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행장과 악수를 하고 헤어진 현수는 곧장 이실리프 상사로 향했다.

* * *

“어서 와라!”

“그래, 근데 대체 뭐 때문에 날 오라고 한 거야? 뭐 급한 일이라도 있어?”

“얼굴 보고 싶어서. 그나저나 결혼식 준비는 잘돼가?”

“그런가 보더라.”

“뭐? 그런가 보더라? 에구, 무심한 놈! 암튼 결혼 축하한다. 참, 신혼집은 어디로 하기로 했냐?”

“그거? 그러고 보니 그걸 생각 안 해봤네.”

“야! 결혼식이 코앞인데 아직 신혼집도 준비 안 한 거야?”

“좀 바빠서.”

“어휴! 제수씨 앞날이 훤하다, 훤해!”

“가만, 그러고 보니……. 잠깐만.”

현수는 얼른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라라랑!

지현의 착신음은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신나고 빠른 곡이다.

요즘 지현의 마음과 같기에 선택된 것이다.

주영은 이야기하다 말고 웬 통화냐는 표정이다.

“현수 씨, 저예요.”

“응, 뭐 좀 물어보려고.”

“네, 말씀하세요.”

“우리 신혼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설마… 그걸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미안. 요즘 내가 너무 바빠서.”

“쳇! 미워요.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도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너무 무심해요.”

“미안, 미안! 아무튼 우리 신혼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어떻게 하긴요, 우미내 집 텅텅 비어 있잖아요. 2층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서 도배, 장판 모두 새로 했는데 몰랐어요?”

“그랬구나.”

현수는 이제야 벽지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살림살이는 다 있으니까 몸만 들어오래요. 장롱도 현수 씨 쓰던 거 쓰면 된다고 하셨어요.”

“알았어. 나중에 다시 통화해.”

“쳇! 알았어요. 또 바쁘신 거죠? 그래도 고맙네요.”

“뭐가?”

“이제라도 신혼집이 어디냐고 물어봐 줘서요.”

“미안, 미안해. 아무튼 이따 다시 통화해. 전화할게.”

“네.”

통화를 마치자 주영이 너 같은 놈 처음 본다는 표정이다.

“왜?”

“살다 살다 너처럼 무심한 놈은 처음 봐서. 난 너처럼 되지 말아야지.”

“에구, 어쩌다 한 번 그런 건데.”

“얌마, 어쩌다 한 번이 왜 하필이면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 직전이냐? 정신 차려! 제수씨한테 평생 잔소리 안 들으려면.”

“알았어. 나 전화 한 통화만 더 할게.”

현수는 주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한창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착신음이 들린다.

시간이 느려지는 순간이었어.

이제껏 배웠던, 느꼈던, 믿었던 아름다움을 넌 바꿨어.

눈앞이 새벽처럼 어두워지고

한줄기 빛처럼 마침내 찾았어.

나의 그녀, 나의 운명

땅을 쿵쿵 밟으며 터질 것 같은 숨을 가누면서…….

비투비라는 그룹의 ‘그 입술을 뺏었어’라는 곡이다.

“헐! 이 형이 진짜……!”

현수는 조인경 대리와 한창호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였다. 진도가 그만큼 나가지 않곤 이런 곡을 착신음으로 쓰긴 어렵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형, 나 현순데, 조 대리님하고 벌써 키스까지 한 거야?”

“응? 그, 그게… 그래, 그렇게 됐다.”

“헐! 진도 한번 빠르네. 역시 능력자야.”

“근데 이 시각에 왜 전화한 건데?”

한창호의 음성과 시끌벅적한 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형, 지금 조 대리님하고 데이트 중이야?”

“그래, 조금 놀고 있다. 나올래?”

“아니, 그건 아니고, 뭐 좀 물어보려고.”

“뭔데? 말해!”

“우리 집 말이야, 그거 설계 어떻게 되었어?”

“아, 그거? 건축 허가 받아서 천지건설 주택사업부에 도면 줬다. 최우선적으로 짓는다니 금방 지어질 거야.”

“뭐라고?”

“유니콘 아일랜드를 조성한 팀이라 금방 짓는대.”

“장소는 어디고 규모는 얼만 한데? 어떻게 나한텐 도면도 안 보여주고 지으라고 도면을 줬어?”

“너, 내 실력 믿지? 그리고 너 도면 볼 줄 아냐? 그런데 도면은 봐서 뭐해?”

“그래도……. 아무튼 장소랑 규모나 알려줘.”

“잠깐만. 안 되겠다. 문자로 넣어줄게.”

현수가 통화를 마치자 주영이 묻는다.

“너 집 짓고 있었어? 하긴… 네가 그렇게 무심한 놈은 아니지. 그나저나 어디에 짓는지, 얼마만 한지도 모르는 거야?”

“대강은 알지만 아무튼 조금 이상해.”

“뭐가?”

“집을 지으려면 땅을 사야 하는데 나한테 돈 달라는 소리를 안 했거든.”

“일단 자기 돈으로 사고 나중에 달라고 하려 했나 보지.”

“그럴 돈이 어디 있냐? 땅만 2만 평인데.”

“뭐? 2만 평? 그게 주택이야, 대궐이지?”

문자 왔숑! 문자 왔숑!

휴대폰을 보니 한창호가 보낸 것이다.

위치 : 경기도 양평군

대지 면적 : 임야 포함 2만여 평

본관 건축 면적 750평, 연면적 2,000평(3층)

빈관 건축 면적 200평, 연면적 800평(4층)

친부모님 댁 건축 면적 100평, 연면적 150평(2층)

처부모님 댁 건축 면적 100평, 연면적 150평(2층)

경호동 건축 면적 200평, 연면적 1,200평(6층)

사용인 숙소 건축 면적 200평, 연면적 1,200평(6층)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설계 사무소로 출두할 것!

토, 일요일엔 데이트해야 하니 오지 말 것!

“우와! 건축비 엄청나겠다.”

주영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듯하다.

“땅값도 땅값이지만 건축비도 만만치 않겠는데? 다 합치면 5,500평이야. 평당 300만 원씩 잡아도 165억이야.”

“으으음!”

평당 60만 원으로 잡으면 땅값도 120억 원이나 된다.

현수는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으려 문자를 보냈다.

―형! 땅값은 어떻게 치렀어? 몽땅 외상이야?

그리고 건축비는 어떻게 주기로 했는데?

잠시 후 답신이 왔다.

―부지는 이연서 천지그룹 회장님이 제공, 건축비는 천지건설에서 부담한다고 함. 이제 데이트 방해하지 말 것.

“으으음!”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처조부인 이 회장은 얼마 전 유니콘 아일랜드의 별장 50채에 관한 권리를 주었다. 500억 원 이상의 가치이다.

여기에 추가로 285억짜리 저택을 지어주는 셈이다.

전화를 걸까 하다 말았다. 이런 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주영은 현수의 휴대폰에 기록된 문자를 옮겨 적고 있다.

참 성실한 녀석이다. 이은정 실장과 곧 결혼을 하니 괜찮은 선물을 주어야 할 것이다.

‘주영이에겐 이실리프 무역상사 건물을 주면 되겠군. 창호 형도 결혼할 텐데 뭘 주나?’

이때 문득 이연서 회장의 말이 생각난다. 유니콘 아일랜드의 별장 50채를 주던 날 한 말이다.

4장 은행 좀 만들어봐!

“자네도 사업을 하니 아랫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때가 있을 거네. 내 선물이니 유용하게 쓰게.”

‘주영이, 창호 형, 그리고 이춘만 이사님에게 한 채씩 고르라고 하면 좋아할 거야. 흐흐, 입이 찢어지겠지? 후후!’

현수가 빙그레 웃자 주영이 쪽지를 내민다.

“이건 뭐냐?”

“당장 필요한 돈. 자금이 다 떨어져 가거든. 너 전에 돈 좀 보낸다더니 그건 어떻게 되었냐? 뻥이지?”

“아니. 돈은 금방 들어올 거야. 그러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추진할 일 있으면 추진해.”

“정말이지? 정글 개간 사업도 돈만 많이 들어가면 빠른 진척을 보일 거라고 하더라.”

주영은 한시름 놓는다는 표정이다. 그간 돈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써야 할 돈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돈은 걱정 말고 추진해. 조만간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우리 계좌로 돈을 보낼 거니까.”

“야, 그 액수 내가 좀 알면 안 되겠냐?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아야 계획을 잡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아, 말해봐. 얼마나 오는데? 얼마 안 되지? 그치?”

“응, 60억 달러밖에 안 돼. 네 말대로 얼마 안 되지?”

“뭐, 뭐, 뭐라고? 바, 바, 방금 60억 뭐라고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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