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7
“귓구멍에 안개 꼈냐, 사람 하는 말도 못 알아듣게? 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 2천억 원이다.”
“헉! 뭐, 뭐라고? 지, 지, 지, 진짜?”
“이놈이 속고만 살았나? 내가 전에 그랬잖아. 마음 놓고 돈 써도 되게 될 거라고. 돈 걱정하지 말라고.”
“헐! 세상에! 맙소사! 헐! 헐! 헐!”
주영은 상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거금에 입을 딱 벌린다. 그 순간 맥이 풀리는지 풀썩 주저앉기까지 한다.
현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한국은행에서 5조 400억 원 정도를 추가로 보내줄 거야.”
“뭐, 뭐라고? 어디서 얼마를 보내?”
“아! 그놈 참 말귀 못 알아듣네. 한국은행에서 이실리프 상사 계좌로 5조 400억 원을 현금으로 보낸다고.”
너무도 놀란 주영의 눈알이 튀어나오려 한다.
“헐!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돼! 헐! 헐! 헐!”
“야야, 진정해. 그러다 턱뼈 빠지고 눈알 튀어나오겠다.”
“야, 지금 진정하게 됐냐, 12조 2,400억 원이 통장으로 들어온다는데? 너 같으면 안 그래?”
“응, 난 안 그래.”
현수의 천연덕스런 반응에 주영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휴우! 그래, 진정하자, 진정해. 내 돈도 아니니.”
“그래, 진정하는 게 몸에 이롭지.”
“근데 그 돈 다 어디에 쓰냐?”
“쓸 데야 많지. 그렇지 않아도 그 돈 좀 쓰려고 왔어.”
말을 마친 현수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낸다. 이때 주영은 뒤로 물러앉는다.
“뭔데? 또 뭔 일을 시키려고 그런 표정이야?”
“뭐 별일은 아냐. 돈이 왕창 생겼으니까 은행 하나 만들어보려고.”
“뭐라고? 뭘 만들어? 은행? 그거 만들려면 자본금이……. 끄응! 자본금은 넘치고도 남는구나. 그래, 무슨 은행?”
“고금리 사채를 쓰는 서민들이 보다 저렴한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하는 좋은 은행.”
“그런 은행을 나더러 만들라고?”
주영은 질린다는 표정이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이겠는가!
“너무 힘들면 다른 사람 시킬게.”
“그래, 난 감당할 수 없다. 지금도 일이 너무 많단 말이야. 그러니 다른 사람 있으면 시켜라.”
“알았어. 하지만 최초의 틀은 잡아줘야지.”
“끄으응! 알았어. 그것까지만 내가 한다.”
“좋아, 상호는 이실리프 은행이다. 금융계에 있던 사람들을 뽑는 게 네 일이야. 유능하지 않아도 된다. 정직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다. 또 사람 뽑는 일을 시키는구나.”
주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사람 뽑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실리프 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모두 취급하는 은행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
“그럼 대출만 해준단 말이야?”
“그래, 처음엔 고금리 신용대출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만 취급할 생각이야.”
“왜?”
“고금리 사채라는 걸 없애려고.”
“으음, 고금리 사채 그거 심각하지. 좋아, 대출 금리는 얼마로 정했는데?”
“일단은 연 6%로 생각하고 있어.”
“겨우 6%? 신용대출인데?”
“그래, 담보를 제공할 수 없는 서민을 위한 대출이야.”
“끄으응!”
주영은 대체 어디까지 나갈 생각인지를 묻는 표정이다. 현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람 뽑으면서 대도시 단위로 지점을 만들어. 지점장과 대출 상담하는 직원 몇 명만 있으면 되니까 사무실이 클 필요는 없어. 그리고 금고도 필요 없고.”
“왜?”
“대출과 상환 모두 인터넷 뱅킹으로 처리할 거니까.”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기는 한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나라 사채업의 자본금 중 얼마가 일본 자금인지 아니?”
“어마어마하다는 말은 들었다.”
“너 같으면 돈 있는데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단물 쪽쪽 빨아먹는 걸 보고만 있을 거니?”
“알았다, 알았어.”
주영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체계를 갖추려면 IT 전문가를 고용해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거야. 울림정보통신 사장과 상의해. 참, 전산실도 갖춰야 하는구나. 이쪽 사람들도 뽑아.”
“알았어. 또 다른 지시 사항은?”
“자금 달리는 일 없을 테니까 본격적으로 밀어붙여. 농장이 빨리 조성되어야 과실을 딸 수 있는 거잖아.”
“알았다. 최고 속도로 달려볼게.”
“내 결혼식엔 올 거지?”
“당연하지. 참, 그날 수부 볼 사람 없으면 내가 봐줄까?”
“축의금은 사양하기로 했어. 장인어른이 그러자고 하셔서.”
“그래? 그럼 가서 구경하고 먹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냐?”
“오냐! 와서 잘 보고 내년에 결혼할 때 버벅대지 마라.”
“짜식! 얼마나 안 그러나 두고 보자.”
이실리프 상사를 나서니 어느새 어둑어둑한 밤이다.
“주영이하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할 걸 그랬나?”
현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자식 일에 미쳐서 안 나간다고 했을 거야.”
자리에서 일어서자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던 모습이 떠오른다. 현수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실리프 은행을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점은 100개, 직원은 400명이면 된다.
지점장 한 명에 대출 상담 두 명, 그리고 업무 보조 한 명씩이다.
지점장은 제1금융권에서 정년퇴직했거나 명예퇴직한 사람들을 뽑아 쓸 생각이다. 대출 상담 직원은 고졸, 대졸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업무 보조도 마찬가지이다.
5조 원을 대출하면 월 250억 원의 이자가 들어온다.
지점장급 100명의 급여를 월 800만 원, 대출 상담 및 업무 보조 300명에겐 월 500만 원을 지급할 생각이다.
각 지점의 유지 비용은 300만 원이면 될 것이다.
총액 26억 원의 지출이다.
전산실 비용이 매월 4억이라면 매달 220억씩 이익이다.
연 수익률이 5.3%에서 조금 빠지니 시중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큰 이득이다.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대출 여력이 늘어나니 고금리 사채는 잡을 수 있겠구나.”
스스로 생각해 봐도 괜찮은 아이디어였는지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때 휴대폰이 진동을 한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번호를 보니 해군 2함대 사령관 심흥수 소장이다.
“네, 김현수입니다.”
“김 전무, 시간 좀 내주시게.”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오늘 총장님께서 함대사령관 회의를 소집하셨네.”
“그런데요?”
“그 자리에서 양만춘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네. 다른 함대에서도 손을 봐달라고 난리네.”
“끄으응!”
현수는 대답 대신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해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걸 해주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손봐주기로 한 게 29척이다. 한 척당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여덟 시간씩은 소요되는 척해야 한다.
꼬박 열흘쯤 걸리는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한다는 것도 아네.”
“……!”
“KD―2 이순신급 구축함 여섯 대만 우선 손봐주면 안 되겠나?”
이것은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에 비해 방공 능력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구축함이다. 그래서 먼저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
현수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심 소장의 말이 이어진다.
“해준다고만 하면 여섯 척 모두 이곳 평택에 집결시키겠네. 바쁜 거 알지만 손 좀 봐주시게.”
“사령관님.”
“말씀하시게.”
“저는 내일쯤 중요한 일로 출국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걸 다녀와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출국해야 한다고? 끄으응!”
하루라도 빨리 고성능 무기를 갖고 싶은 것이 군인의 마음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는가! 봉사나 다름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우격다짐으로 오라 할 수도 없다.
“알겠네. 그럼 얼른 다녀오시게. 근데 얼마나 걸리는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봐야 아는 일이라서요.”
“그런가?”
“제 말이 섭섭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군함 엔진 개조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아무튼 약속했네. 다녀와서 해준다고.”
“말씀드린 29척 중 가까이 있는 것부터 봐드리겠습니다.”
수상함은 세종대왕함급 세 척, 이순신함급 여섯 척, 천지함급 세 척, 그리고 고준봉함급 네 척과 독도함이다.
잠수함은 장보고함급 아홉 척과 손원일함급 세 척이다.
“그래, 꼭 좀 부탁하네.”
“저도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지?”
“가급적 평택항에서 작업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개조 작업은 가능한 한 적은 사람만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겠네.”
“참모총장님께서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흘리신 것 같은데 그것도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접한다.
국무회의를 하거나 여당 의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릴 수 있다.
그러면 문제될 수 있기에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의식이 결여된 개새끼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을사오적이 대표적인 예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정치권 인사 중엔 친일파가 많다.
국회의 지난 기록을 확인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16대 국회 친일청산법 반대자 현황
열린우리당 : 반대자 없음
한나라당 : 149명 중 100명 반대
자민련 : 9명 반대
민주당 : 3명 반대
제17대 국회 친일파 재산 환수법 서명 현황
열린우리당 : 149명 전원 서명
민주노동당 : 10명 전원 서명
한나라당 : 121명 중 6명 서명
민주당 : 9명 중 3명 서명
제17대 국회 친일파 재산 환수법 입법 현황
열린우리당 : 100% 찬성
민주노동당 : 100% 찬성
민주당 : 100% 찬성
한나라당 : 100% 반대(입법을 막기 위해 전원 불참)
우리 민족을 34년 11개월간 억압하고 착취했던 일본이다.
그 길고 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잃어버린 주권을 찾으려던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이봉창, 이육사 같은 분들이 목숨을 잃으셨다.
친일파 재산 환수법은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고 권력을 누렸던 개새끼들의 후손이 부당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게 하자는 법안이다.
그런데 특정 당파 소속 의원들이 내놓고 반대했다.
친일파가 아니라면, 그리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같은 행위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반대했던 자들 중 상당수가 현재의 집권 여당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대한민국 해군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즉각 일본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좋을 일 없다. 단단한 대비를 하거나 군비를 증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정치권과 군부에는 친미주의자도 많다.
최세창 대령도 그중 하나이다. 어째서 대한민국 무기 대부분이 미국산인지를 살펴보면 금방 알게 된다.
그렇기에 정치권, 또는 군부에 알려지면 미국 또한 아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언젠가는 대한민국 해군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겠지만 그 시간을 늦추려 보안 유지를 당부한 것이다.
“그럼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게. 얼른 다녀오시게.”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현수는 29척에 달하는 전함과 잠수함을 손볼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된다.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작업, 선체의 음파 및 전파 흡수 마법진 설치, 추진기 변동 압력 저감 등의 작업을 해야 한다.
헬기를 싣고 있으면 그것 또한 손봐야 한다. 아울러 어뢰 추진기 소음을 줄여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실제 작업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논 노이즈 마법진이나 음파 및 전파 흡수 마법진은 퍼펙트 카피 마법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걸 부착하고 시동만 걸어주면 된다. 하나당 1분 정도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