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9
“네,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현수는 지나에 관한 검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뵈니 반갑네요.”
사장실로 들어서며 정중히 예를 갖춘 이는 국정원 엄규백 팀장이다. 항온 전투복으로 돈 좀 벌어보려다 연금까지 잃게 된 예비역 대령 강철환을 연행한 사람이다.
아울러 지나 국안부와 삼합회에서 현수에게 테러를 가하려 한다는 첩보를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저희 차장님께서 북한에 들어갈 때 숙지하셔야 할 것이 있다면서 이 서류를 주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엄규백 팀장이 건네는 서류를 받아 펼쳐 보니 현재 북한의 상황이 기록된 문서들이다.
“김정일 사후 정권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과 혁명열사 후손인 최룡해 그룹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서류를 읽는 동안 엄 팀장의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들은 신군부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군부를 보다 공고히 장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엄 팀장의 말대로 이들 두 그룹은 신군부의 리더 격인 리영호 참모총장을 끌어내린 바 있다.
인민무력부장 김정각도 실각하였다.
“겉보기엔 권력 재편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듯하지만 실제 속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엄 팀장의 말대로 북한 군부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래서 미국, 지나, 남한과의 관계보다 내부 상황 때문에 갑작스런 군사 도발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지난 5월 미국과 지나의 공조로 북한의 대외 금융 업무를 총괄하던 조선무역은행 계좌가 폐쇄된 건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현재는 지나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까지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라 상당히 예민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저희는 김 전무님이 무사히 볼일을 보고 귀환하길 바랍니다. 따라서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알려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현수는 러시아 가스전 개발 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이것이 실현되면 어느 정도 에너지 확보가 된다. 그렇기에 대통령이 직접 국정원장에게 지시하여 엄 팀장이 와 있는 것이다.
만일 해군 전함들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북에 가는 걸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북한에 가시면…….”
엄 팀장은 아주 자세히 북한 내부 상황을 설명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만 주의하시면 별탈 없이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아셨지요?”
“알겠습니다. 주의하죠. 참, 제가 당부 드린 자료도 가져오셨나요?”
“아, 그거요? 물론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하신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현수가 엄 팀장에게 요청한 자료는 지나건축공정총공사와 삼합회, 그리고 지나 국안부에 관한 것이다.
말을 하며 꺼내는 걸 보니 제법 두툼하다.
자세히 살피려면 시간깨나 걸리게 생겼다. 현수는 별다른 내색 없이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지나건축공정총공사는 건설사입니다. 당연히 알아야 할 경쟁 상대지요. 삼합회는 한국으로 치면 조폭들이니 지나에 머무는 동안 주의하려 하는 겁니다.”
“그럼 지나 국안부(MSS)의 자료를 요청한 이유는 뭡니까?”
“이실리프 어패럴의 항온 전투복이 뭔지는 아시죠?”
“압니다.”
엄규백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온 전투복 관련 기술을 빼돌리려던 강철환을 직접 체포한 사람이니 어찌 모르겠는가!
“자료를 보니 대단한 물건입니다. 우리 국정원의 현장 요원들에게도 지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실리프 어패럴의 최대 주주입니다. 따라서 항온 전투복과 관련된 기술을 접한 바 있습니다. 만일 제가 납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건……! 저희가 보호하겠습니다.”
“지나에선 그렇게 한다고 쳐도 북한에 들어갔을 땐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기서도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네? 그건……!”
조금 전의 ‘그건’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말이다. 하지만 이번의 ‘그건’은 자신의 능력 밖이라는 무언의 뜻이다.
“국안부 사람들은 북한 내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의하십니까?”
“으음, 그렇습니다.”
“그들을 조심하기 위해 필요하다 생각되어 자료를 요청 드린 겁니다.”
“알겠습니다. 용의주도하시군요. 자료를 다 보신 후 저희에게 반환하여 주십시오.”
엄 팀장이 들고 있던 두툼한 파일을 현수에게 건넨다.
“아직도 저를 경호하는 요원들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중 한 분에게 이 자료들을 반납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경호팀장을 부르겠습니다.”
현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통신기를 꺼내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현수는 인터컴을 눌러 창광상사 엄 과장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5분쯤 지나자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네, 들여보내세요.”
문이 열리자 전에 봤던 얼굴이 보인다.
“또 보네요.”
“네, 반갑습니다.”
“이 친구 이름이 최인하입니다. 보신 자료는 꼭 이 친구를 통해서 반납해 주십시오.”
“그러지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최인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밖에 사람 많습니까?”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 있습니다. 100명이 넘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수는 극성스런 기자들의 등쌀을 어찌 견디냐고 엄살을 피웠다. 엄 팀장은 진짜 IQ가 255냐고 묻는다.
“네! 대학 졸업 후 머리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 측정해 봤는데 그렇다는군요.”
“대단하십니다. 세계 최고의 IQ라니……!”
진심으로 감탄하는 빛을 보인다. 잠시 후 둘은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손님이 온다는 전화가 온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네, 보스!”
사장실로 들어선 이는 드미트리이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네, 이걸 봐주십시오.”
드미트리가 가방에서 꺼낸 것 또한 두툼한 파일이다. 표지엔 다음과 같은 표찰이 붙어 있다.
한국 내 활동 중인 삼합회 현황.
“으음!”
현수는 낮은 침음을 내곤 표지를 넘겼다.
삼합회는 50개 파 4,000여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0만여 명인 것으로 파악되어 있다.
이 중 죽련방, 신이안파, 14K파가 국내로 들어와 있으며, 1,000여 명이 수시로 드나든다.
정림은 죽련방 소속 한국지부장이다.
다음 장을 넘기니 녀석의 인적 사항이 보인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놈은 전형적인 짱꼴라 얼굴이다.
아래쪽엔 쿵푸 실력이 대단하므로 일대일 접근전은 가급적 피할 것이라는 주의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쿵푸의 신이 와도 상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마법은 딱 하나, 홀드 퍼슨이면 충분하다.
세워놓고 샌드백 두들기듯 팰 수 있으니 쿵푸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그 아래를 보니 사격술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되어 있다.
“흐음, 권총이라…….”
일반적인 권총은 사거리가 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열 발을 쏘면 한 발 정도 맞는다.
사용하는 총기는 38구경 리볼버라 되어 있다.
현수에겐 별로 무섭지 않은 무기이다. 실드 마법만으로도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게 테러를 명령했으니 제 명에 못 죽게 해주지.’
현수는 정림의 얼굴을 또렷이 바라보고는 다음 장을 넘겼다.
정림이 현재 기거하는 곳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송모텔이다. 이 모텔엔 삼합회 깡패새끼 여럿이 머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인은 화교이다.
한(漢)은 유방이 세운 국가이고, 송(宋)은 조광윤이 만든 나라이다. 물론 둘 다 한족(漢族)이다. 한국 땅에 머물면서 대놓고 한족임을 나타낸 상호를 쓴 것이다.
또 넘기니 한송모텔을 드나드는 인물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대략 300여 명이다. 현수는 일일이 사진 속의 인물들을 살폈다. 한국 땅에 머무는 기생충만도 못한 놈들이기에 제거할 생각을 품은 것이다.
선량하고 우유부단하던 현수가 이토록 쉽게 인명을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아르센 대륙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흑마법사는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인간들이다. 보는 즉시 제거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300이 넘는 흑마법사들이 한 줌 재가 되었지만 양심의 가책 따윈 전혀 없다. 오히려 유해한 세균을 박멸한 것 같은 시원함만이 있을 뿐이다.
지구에서의 깡패 역시 흑마법사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납치, 폭행, 강간, 인신매매, 마약, 협박, 강탈 등 온갖 안 좋은 짓만 골라 하는 놈들이다.
특히 삼합회는 더하다.
사람을 납치한 후 집단 강간, 또는 집단 폭행 후 안구 및 신장과 간 등 장기 적출까지 자행한다.
최근엔 보이스 피싱까지 영역을 확대했으며 국내 폭력조직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국내 벤처기업에 사업 자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폭력과 협박이 난무한다.
따라서 삼합회와 관련된 자들은 당연히 제거 대상이다. 그렇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없앨 것을 결정한 것이다.
현수는 천천히 파일을 끝까지 살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삼합회 조직원은 인천, 목포, 부산, 안산 등지에서 활개 치고 있다.
부산은 죽련방이, 목포는 신이안파가, 안산은 14K파 머물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엔 세 파 모두 거점이 있다.
한송모텔은 죽련방의 거점 가운데 하나이다.
“드미트리, 이거 죽련방 자료만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조사 기간이 짧아 그렇습니다. 신이안파와 14K파에 관한 자료도 수집 중에 있습니다.”
“그래요? 다 되면 내게 줄 거지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레드 마피아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현수가 말하는 레드 마피아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레드 마피아는 체첸에서 형성된 조직이다. 탈레반 지원과 무기 거래 등에 관여되어 있다.
러시아엔 순수 토종 마피아인 오르가니자치아(조직원 50만 명)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직은 모두 오르가니자치아다.
외국인들은 이들 둘의 구분이 모호하여 모두 레드 마피아라 부르는 것이다. 현수 역시 그들 중 하나이다.
“네? 초기엔 인터걸(러시아 윤락 여성) 공급과 총기 밀매 등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국내 수산물 시장을 중심으로 합법적인 사업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부산에 많죠?”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럼 부산의 국내 조직과 연계되어 있습니까?”
“네, 초기엔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덜합니다. 저희가 합법적인 사업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부터 부딪칠 일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드모비치 상사와의 거래 규모가 더 커지려면 미스터 드미트리와 부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도 드모비치 상사와 이실리프 무역상사와의 거래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순풍에 돛 단 듯 별다른 장애 없이 술술 잘 진행되는 일에 왜 도움이 필요하느냐는 표정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인원 중 일부는 러시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일에 종사했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