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60화 (560/1,307)

# 560

“이실리프 무역상사의 직원으로 들어와 무역 활성화에 이바지하라는 뜻입니다.”

한국엔 있지만 러시아에 없는 상품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과 러시아에도 있지만 한국의 것이 싸고, 질 좋은 것을 발굴해 내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반대로 러시아엔 있지만 한국엔 부족하거나 없는 상품을 추천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

“아울러 러시아와 한국의 국익을 위한 일에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원 중 똑똑한 이들은 곧 신설된 천지기획에 채용되도록 힘쓸 겁니다.”

북한 내부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한국인이 파견되어 관리한다면 분명 문제점이 발생된다. 러시아 민간인과 레드 마피아의 조직원이라면 오히려 괜찮을 것이다.

북한 군부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작당하려 해도 언어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보스……!”

드미트리는 현수가 하는 말의 요점을 대번에 파악했다. 그것은 조직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주려는 것이다.

“내일 출국합니다. 지나를 거쳐 갈 것이니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드리트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공손히 고개 숙이고 물러갔다. 진짜 보스 대하듯 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사장님! 미스 브레즈네프가 방문했습니다.”

“네, 들여보내세요.”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린다.

짙은 감색 투피스는 육감적인 몸매를 돋보이도록 하고 있다.

“Kак деЛа? Вам понравился твой день?”

안녕하냐, 오늘 하루 즐거웠느냐는 뜻의 러시아어이다.

현수는 환히 웃으며 러시아어로 대꾸했다.

“하하, 물론입니다. 미스 까차도 즐거운 하루였나요?”

“네! 근데 그 사건은 종결된 건가요?”

“그럼요. 담당 변호사가 알아서 다 처리했습니다. 그날 동영상 촬영하느라 애썼어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호호, 그건 직업적인 습관이라 그런 거예요. 아무튼 도움이 돼서 즐거웠어요. 언제 시간 되면 또 가요.”

“나이트클럽에요?”

갈 때마다 사건이 벌어지는 나이트클럽엔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진심이냐는 표정이다. 이번엔 까차도 성추행을 당했다. 그런데 밝게 웃는다.

“네! 홍대입구라는 델 가보고 싶어요. 거기 괜찮은 인디밴드1)들이 많다면서요?”

“네, 그렇게 들었지만 나도 가본 적은 없어요.”

“아무튼 다음에 시간이 나면 데리고 가줘요. 아시죠? 저를 그런 곳에 데리고 가줄 사람이 김 전무님뿐이라는 걸.”

“하하! 알았어요.”

“그나저나 거긴 언제 가나요?”

까차가 북한이라는 표현 대신 거기라고 한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를 누군가의 도청이 우려된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도청장치를 어딘가에 숨겨놓지 않아도 감청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어느 사무실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접근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도 레이저를 이용하면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원리는 회의실 유리창이 목소리로 인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레이저를 쏘아 감지해 내는 것이다.

유리창에 레이저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파를 통해 음파를 검출해 내고 이것을 음성으로 변환하면 된다.

까차가 생각하기에 현수는 세상의 이목을 받는 사람이다.

혼자서 잉가댐 공사를 수주했고, 킨샤사―비날리아 간 4차선 고속도로 공사도 수주했다.

게다가 항온의류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오늘 아침 신문엔 세계 최고의 IQ라는 기사도 떴다.

이쯤 되면 정보 관계자들이 한 번쯤은 관심 가질 대상이다. 따라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현수가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져서 좋을 일이 무엇 있겠는가!

그렇기에 북한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거기라고 말한 것이다. 머리 좋은 여자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다.

현수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이실리프 상사의 모든 통화 내용은 감청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에셜론(Echelon)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다.

국가안보국(NSA)의 주도하에 영국, 캐나다 등의 정보기관이 참여한 국제 통신감청망이다.

현재 120여 개의 위성을 기반으로 전화 통화를 감청하며, 팩스와 E―mail까지 들여다본다.

한반도에는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 미군비행장으로 알려진 험프레이 캠프에 관련된 기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리무진 승용차를 타고 차 안에서 나눈 밀담까지 도청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에셜론은 전쟁, 테러, 폭탄 등 특정 단어가 포함되면 즉각 감청하는 시스템이다.

이밖에 특정 건물이나 인물에 대한 감청도 시도되고 있다.

현수는 감청 대상자로 분류되어 있다. 청와대를 다녀오면서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하여 현재 모든 대화가 도청되는 중이다. 따라서 까차의 어휘 선택은 아주 적절한 것이다.

까차가 이렇게 현수를 배려하는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현수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공부만 하느라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난생처음 나이트클럽이란 곳을 갔다. 그리고 섹시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여러 팀의 퍼포먼스를 종합한 까차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기는 무리수를 뒀다. 유달리 호승심이 강한 결과이다.

당시의 까차는 그곳을 수영장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스스럼없이 비키니 차림을 감수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앞 커플은 여자는 비키니 차림, 남자는 토플리스였다. 그런데 현수는 와이셔츠의 단추만 몇 개 풀었을 뿐이다.

1등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과감하게 입술을 들이댔다. 그 덕에 상금을 받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까차에게 있어 그건 첫 키스이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는 현수에게 이미 정신적으로 압도당한 때문이다.

아주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까차는 IQ 160의 천재이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론 어느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다.

이건 천재들이 즐비한 하버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빼어난 미모를 탐낸 수없이 많은 녀석이 대시했지만 까차가 보기엔 덜 여문 놈들일 뿐이다.

당연히 관심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까차의 남자친구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첫 대면 때부터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까차의 정신에 충격을 주었다. 하여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만났다. 이때 현수는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나 기업이었다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거나, 많은 돈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6장 엘프의 노래

둘째는 현수가 러시아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드모비치 상사로 수출되는 의약품은 러시아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 지나산처럼 질 낮은 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쉐리엔은 중년만 되면 뚱뚱해지는 러시아 여성들의 몸매를 되찾아주는 은혜로운 물건이다. 나중의 일이겠지만 까차 본인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 될지 모른다.

물론 현재에도 적정량의 쉐리엔을 복용하고 있다. 과식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 밤의 일이다.

가스전 개발공사와 파이프라인 연결공사 또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많은 고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다시피 까차의 증조부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한 브레즈네프(Leonid Il’ich Brezhnev)이다.

그는 자식들에게 국가를 위해 헌신하라는 교육을 했다.

이런 가정교육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를 두루 이롭게 하는 현수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출발하느냐는 까차의 말에 현수는 빙그레 웃었다.

“내일 출발할 거예요. 문제없죠?”

“물론이에요. 덕분에 좋은 구경하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죠. 그나저나 식사나 같이 해요.”

“그래요!”

사무실을 나선 현수는 한정식집을 찾았다. 이실리프 무역상사가 태동할 때 이은정 실장과 종종 찾던 집이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어서 오시게. 젊은 사장은 오랜만이야.”

나이 드신 할머니가 손님맞이를 하신다.

“하하! 네에. 오랜만이네요.”

“앞으론 자주 와! 젊은 사장이 안 와서 매상이 팍 줄었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앞으론 자주 올게요.”

“그려, 저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가 가리킨 작은 방엔 여러 소품이 놓여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만져서 그런 건지 손때 묻은 물건들이다.

그중 투박한 솜씨로 깎은 목각 기러기 한 쌍이 있다.

“이건 뭐예요?”

“아! 그건 목안(木雁)이라는 거예요. 나무로 깎은 기러기죠. 한국의 전통혼례 때 홍색 보자기에 곱게 싸서 상에 올려놓는 겁니다.”

“근데 이런 걸 왜 상에 올려놔요?”

까차는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먹지도 못하는 것을 상에 올려놓는다니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기러기는 평생 단 하나의 짝과 산다고 해요. 그래서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서로 바람피우지 말면서 살라는 뜻이군요.”

“그건… 뭐, 그렇게 이해를 해도 되겠네요.”

까차는 목안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잠깐만요. 전화 한 통화 하고 올게요.”

“그러세요.”

방 안에 진열되어 있는 이것저것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밖으로 나온 현수는 이은정 실장에게 뭔가를 지시하곤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사이에 떡 벌어진 상이 차려져 있다.

“우와, 정말 먹음직스러워요. 색깔도 정말 예쁘구요.”

“맛도 있습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

“호호! 네에. 오늘 제 입이 호강하겠어요. 고마워요.”

말을 마친 까차는 잡채를 한 젓가락 덜어냈다. 그런데 젓가락질이 서툴러 그러는지 대부분이 떨어진다.

들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꾹 참았다. 기어코 한 입 먹고 말겠다는 듯 입술을 꼭 깨물고 어떻게든 들어 올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 까차! 포크 달라고 할까요?”

“아뇨! 젓가락질을 꼭 배우고 말 거예요.”

불타는 의욕을 감출 수 없다는 듯 눈빛까지 빛낸다. 현수는 열심히 노력하는 까차를 보며 천천히 식사를 했다.

물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주로 까차가 한국에서 겪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화충격이 꽤 있었던 듯하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은 24시간 언제든 배달되는 각종 음식이다. 쉐리엔을 알고부터 밤마다 야식을 즐긴다며 웃는다.

그전엔 살찌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을 했다고 한다.

칼로리 계산은 물론이고, 언제 어떤 식사를 해야 몸매가 유지되는지에 대한 것도 늘 신경 썼다고 한다.

그것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해방되어 너무 좋다고 한다. 대신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쉐리엔 구입 시기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한꺼번에 많이 구입할 수 없다. 한번 구입하면 3개월 동안은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한다.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까차는 현수가 대한약품의 대주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긴 신문에 대서특필된 게 몇 번이던가!

“그래서 말인데요. 쉐리엔 그거 한꺼번에 많이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네?”

까차가 한국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가 빽이 있으면 안 될 일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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