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61화 (561/1,307)

# 561

그 이야길 하자마자 이 말을 한 것이다.

현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못 들어줄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옆 좌석에 누군가가 앉는다. 여자 다섯에 남자 둘이다.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기에 현수는 까차의 형편없는 젓가락질을 보고 있었다. 잠시 둘의 대화가 끊긴 사이에 옆 좌석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장님! 좀 괜찮은 작곡가 섭외해 주시면 안 돼요? 네?”

“요즘 음악방송 1등 못하는 이유가 곡 때문이에요.”

“맞아요. 우리도 좀 좋은 노래 부르게 해주세요.”

“으음! 그게…….”

사장이라는 사람이 난처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자 곁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연다.

“얘들아, 일단 밥부터 먹자.”

“매니저 오빠! 지금 밥이 문제예요? 우린 올해 한 번도 1등을 못해봤잖아요. 그거 다 곡이 그저 그래서 그래요.”

“맞아요! 이건 우리 생각이 아니에요. 팬 카페 들어가 보면 곡 때문이라는 글이 수두룩하단 말이에요.”

“사장니임! 저번에 언니 후원해 준 사람 있잖아요. 언니가 그 돈 우리 그룹 발전을 위해 쓴다고 했잖아요. 그 돈으로 어떻게 안 돼요? 네?”

“그래요. 우리 이렇게 비싼 거 안 먹어도 괜찮으니까. 그 돈으로 좋은 곡 사요. 네?”

“으으음……!”

“얘들아! 일단 밥부터 먹자.”

보아하니 5인조 걸 그룹의 매니저와 소속사 사장의 행차인 듯싶다. 그룹원들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좋은 곡을 구해달라는 청을 했다.

이야길 들어보니 작년까지는 음악방송에서 1위도 해본 모양이다. 하지만 올핸 한 번도 1위를 못했다. 그 이유는 곡이다.

작곡가로부터 받아온 곡이 너무 평범하거나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다고 투덜거린다.

현수는 신경 쓰지 않고 까차의 미숙한 젓가락질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옆 좌석 사정까지 시시콜콜 알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음식이 나온 이후 잠시 조용해졌다. 배가 고팠는지 먹느라 정신없는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어머! 어머머머……! 얘들아!”

“왜?”

“저기 저 테이블의 저분,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님 맞지?”

“뭐라고? 어머! 맞아.”

“응? 뭐라고? 어머머, 김 전무님이셔.”

“응……? 어디?”

현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아직 익숙지 못하다.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어, 김 전무님 맞으시죠?”

“네……? 아, 네에. 맞습니다.”

누군가 밥 먹다 말고 다가와 말을 거는데 어찌 아니라 하겠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죄송한데 이따 식사 끝나고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냥 지금 주세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작은 노트와 볼펜을 들이민다.

“고맙습니다. 근데 저 아시죠? 다이안의 리더 서연이에요.”

“누구……?”

시선을 돌려보니 정말 서연이다. 청순함과 섹시함 외에도 가창력을 겸비한 가수이다.

“아! 서연 씨군요.”

“알아봐 주시네요. 전무님 덕분에 스폰서가 생겼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자꾸 안 된다고 해서 인사도 못 드렸어요. 고맙습니다.”

서연은 세계적인 컨테이너선사인 CMA 오머런의 크리스티앙 부회장으로부터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받은 바 있다.

그때 고마움의 뜻으로 콘서트 맨 앞좌석을 내줬고, 공연이 끝난 후엔 기념 촬영과 식사를 했다.

물론 다이안 그룹 전원이 참석한 식사이다.

당시 크리스티앙 부회장은 어떤 연유로 후원하게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하여 현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실리프 무역상사로 전화를 걸면 이 실장이 차단했기 때문이다. 속사정을 모르기에 서연이 돈 잘 버는 현수에게 접근하려는 수작으로 오인한 까닭이다.

사인을 해서 노트를 건네자 멤버들 것도 해달라고 한다.

하여 이름을 물어가며 하나하나 사인해 줬다.

그래서 다이안이 서연, 예린, 정민, 연진, 세란, 이렇게 다섯 멤버로 이루어진 걸 그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어, 죄송한데 저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시선을 돌려보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노트를 내민다.

“그러죠. 성함이……?”

“네, 저는 조연이라 합니다. 해주시는 김에 제 아들 녀석 것도 부탁드립니다. 조성환이라 합니다. 요즘 노는데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한 말씀 써주십시오.”

“하하! 네에, 그러죠.”

조성환 군에게.

노력하는 자만이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있어.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고!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는 알지?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려면 어찌해야 될지 고민 좀 해!

가장 빠른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라 생각한다.

― 천지건설 김현수.

문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 사장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린다.

“고맙습니다. 아들 녀석이 이걸 보면 공부를 하겠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둘이 마주 보며 환히 웃자 매니저가 삐죽거리며 다가와 종이를 내민다. 마다하지 않고 사인해 주었다.

“전무님! 제가 술 한 잔 드려도 될까요?”

“네에, 고맙습니다.”

조 사장이 내미는 잔을 받자 가득히 따라준다. 단숨에 비우고 잔을 채워주자 다 마시고 탈탈 털어낸다.

마땅히 대화할 화제가 없기에 머쓱한 상황이다. 친분이 있어 계속해서 술잔을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참! 크리스티앙 부회장님으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립니다.”

“에구, 그게 언젯적 일인데요.”

“그래도요, 저희에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다이안 3집 앨범도 못 낼 뻔했던 때니까요.”

“네? 제가 알기로 다이안은 꽤 잘나가는 그룹인데 왜 그랬던 거죠?”

“그건…….”

조 사장은 잠시 말을 끊는다.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적으로 스친 상념 때문이다.

그러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을 잇는다.

“그건 연예계 알력 때문입니다. 다이안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그룹이 속한 소속사에서 방송국 등에 압력을 넣어…….”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는 듯 조 사장의 얼굴이 금방 붉어진다.

“그게 무슨 말이죠?”

현수의 시선을 받은 매니저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다이안보다 두 달 늦게 데뷔한 그룹이 있어요. 평균 나이는 그쪽이 우리보다 한 살쯤 많고요. 어느 날 같은 대기실을 쓰게 되었는데 걔들이 우리 애들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잠시 흥분한 매니저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가요계는 선후배 관계를 데뷔 기준으로 한다. 다시 말해 나이가 많더라도 데뷔가 늦으면 선배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 하여 나이 어린 선배가 나이 많은 후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니다. 후배지만 나이가 많으면 그만한 대접을 해준다.

만일 나이 차이가 한두 살이 아니라 열 살, 스무 살쯤 많으면 이런 관행은 적용되지 않는다. 차이가 나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겨우 한 살 많은 후배가 선배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다이안의 리더 서연은 한번 밀리면 계속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기에 단호히 거절했다. 상대 쪽에선 싸가지가 없다느니, 어린 게 버릇이 없다느니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팀의 막내이자 가장 다혈질인 세란이 나서서 대들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그 팀과 다이안은 얼굴조차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툼이 있던 그날 다이안은 음악방송에서 1위를 했고, 그들은 2위에 머물렀다.

그날 이후 그쪽 소속사의 집요한 방해가 시작되었다.

케이원 엔터테인먼트엔 다이안 이외에 활동 중인 연예인이 없다. 가수를 지망하는 연습생 넷과 중견 연기자 둘뿐이다.

반면 그쪽 소속사는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연예기획사이다.

방송국 PD는 만나기 힘들어졌고, 만나도 성과가 없었다.

만일 다이안이 완전히 자리 잡은 그룹이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두터운 팬층이 커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다이안은 성장단계에 있던 그만그만한 그룹이다. 운 좋게 1위를 몇 번 했지만 그건 상대적인 것이다.

노래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이슈 덕분에 반사 이익을 얻은 경우였다.

예를 들어 아주 강력한 상대인 어떤 그룹에서 왕따 사건이 벌어졌다. 팬이 아닌 사람들은 물론이고 팬들까지 등을 돌려 버렸다. 잘못했음에도 용서를 빌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그룹은 한창 잘나가 음악방송 1위를 할 찬스였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인기가 급전직하하여 국내에선 방송 활동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은 그룹이 바로 다이안이다. 하지만 인기는 거품 같은 것이다.

활동하던 곡이 바뀌자 아예 순위권 밖으로 밀렸다. 거대 연예기획사의 입김이 미친 결과이다.

이때부터 케이원 엔터테인먼트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3집 음반을 내야 하는데 제작비가 부족하여 절절매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이안 멤버들은 살던 숙소를 떠나야 했다. 직원들은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크리스티앙 부회장의 후원이 있었다.

리더인 서연에게 써달라고 기탁한 돈은 기획사 전체를 위해 쓰기로 했다. 서연이 그렇게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대신 나중에 형편이 풀리면 그 액수만큼 서연을 위해 쓰기로 했다.

아무튼 다이안은 그 사건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이안은 좋은 곡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가창력이 아무리 좋아도 원곡이 후지니 인기를 얻기 힘들게 되었다.

방송 타는 것도 그러하다.

PD들은 만나준다고 해놓곤 여간해선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만나서 이야길 해도 시원스런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어떤 PD는 대놓고 다이안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소리를 했다. 다시 말해 방송출연 불가라는 뜻이다.

조 사장은 종편방송이라도 출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멤버들이 반대했다.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종편에 출현했다가 괜한 덤터기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정부패한 자들이 많고, 막무가내로 횡포를 부리는 놈들도 많으며, 권력자에 의한 비리가 만연하다.

얼핏 보면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유지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되면 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군대를 가겠노라 약속해 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영구입국 금지조치를 당하게 된다.

왕따 사건을 일으킨 그룹도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힘없는 을(乙)을 핍박한 슈퍼 갑(甲)에겐 불매운동을 전개한다.

이처럼 드러난 것은 가히 철퇴라 할 수 있는 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감춰진 곳에선 여전히 불편부당한 일이 횡행한다.

다이안이 속한 케이원 엔터테인먼트와 껄끄러운 관계가 된 KS엔터테인먼트가 가하는 전방위 압박이 그중 하나이다.

소속 연예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에 영향력이 크다.

그들은 다이안을 출연시킬 경우 자사 연예인들을 섭외하지 못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PD 입장에선 다이안 하나를 희생시키고 나머지를 얻는 것이 속편하고 손쉽다. 그렇기에 다이안이 설 무대는 점점 좁아지는 중이다.

결국 지방의 밤무대를 전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속사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곡이 없는 다이안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