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62화 (562/1,307)

# 562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그간의 마음고생을 다독이는 의미에서 회식을 하고자 모인 것이다.

조 사장은 KS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할 때 로드매니저였다.

그러던 그가 사표를 내고 연예기획사를 낸 이유는 만연해 있던 성상납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이다.

KS엔터테인먼트가 연예계 빅3 안에 들 수 있었던 것은 무명 연예인의 성상납 덕분이라는 풍문이 나돈다.

PD는 물론이고, 방송국 국장, CF와 관련된 광고대행사 임원, 광고주 등에게 바쳐졌다 몸만 버린 지망생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KS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룸살롱이 몇 군데 있다. 이곳의 새끼 마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걸 어찌 그렇게 잘 아십니까?”

현수의 물음에 매니저가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실 사장님이 우리 형이라 그러는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럼 성함이…….”

“네, 전 조환이라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근데 작곡가들도 연예 기획사의 압력을 받나 보죠?”

아까부터 좋은 곡은 못 받는다는 말에 궁금했던 것이다.

“저쪽에서 손을 써서 그렇습니다. 우리보다 곡을 훨씬 많이 사가니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연과 조환 형제는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하여 한마디 더 물었다.

“근데 작곡가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들 전부가 그래요?”

“작곡가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닙니다. 자기 곡을 자기만 부르는 사람도 있고, 한 사람만 전적으로 밀어주기도 하거든요.”

“그렇군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 사장의 말이 끝나자 매니저 조환이 입을 연다.

“히트 칠 수 있는 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는 실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압력을 가하기 쉽죠.”

“그렇군요. 참 힘드시겠습니다.”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연이 입을 연다.

“그런데 전무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뭐죠?”

“정말 IQ가 255인 거예요?”

“어떤가 싶어 검사해 봤는데 결과가 그렇다더군요.”

“그럼 머리가 엄청 좋다는 건데 그 좋은 머리로 작곡은 못하나요? 하실 수 있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그냥 한번 물어본 말이다.

“작곡이요? 그건…….”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멜로디가 있다. 아드리안 공국에 당도했을 때 울려 퍼지던 마탑주 찬가가 그것이다.

유구한 역사의 땅 아드리안!

이 땅의 시조께서 세우신 이실리프 마탑이여.

공국을 수호하사

길이길이 역사를 이어가게 하소서.

탑주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고

넘치는 미녀들이 있어 많은 후손을 보소서.

오래오래 이 땅 아드리안에 계셔서

이실리프 그 이름 영원히 유지되게 하소서.

찬란히 빛날 이름 이실리프!

마탑주시여, 영원한 영광받으소서.

세 개의 메인 테마가 교묘히 엮어져 하나의 멜로디가 된 노래이다. 이걸 따로 떼어내 노래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주 아름다운 멜로디라 생각한 것이다.

“흐음, 작곡이라…….”

현수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서연이 반색한다.

“그쵸? 작곡하실 수 있죠? 그 좋은 머리로 우리 노래 좀 작곡해 주시면 안 돼요? 네?”

“멜로디는 생각나는 게 있는데 가사가 아직 없어요.”

마탑주 찬가의 가사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특히 ‘넘치는 미녀들이 있어 많은 후손을 보소서’라는 구절은 안 된다.

틀림없이 여성가족부에서 딴죽을 걸며, 그 결과 방송 불가 판정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남스타일로 국제가수가 된 싸이의 노래 가운데 ‘라잇 나우’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는 여성가족부에 의해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았다. 하여 유투브에서 감상하려면 성인인증을 해야만 했다.

여성가족부가 19금 판정을 내린 이유는 가사 중 ‘술’과 ‘생쇼를 하네’, 그리고 ‘웃기고 앉았네. 아주 놀고 자빠졌네’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술이라는 단어는 ‘인생은 독한 술’이라는 문구가 전부이다.

뉴스를 검색해 보면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인 조원진 의원이 ‘생쇼할 겁니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딴죽이나 거니 해군참모총장에게 여성가족부의 해체를 요구한 것이다.

아무튼 마탑주 찬가의 가사는 쓸 수 없다.

“적당한 가사를 만들어보죠. 연락처를 주십시오.”

현수의 시선을 받은 조 사장이 얼른 명함을 건넨다.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 출장을 갑니다. 시간 나면 곡을 만들어보죠.”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평범 이하일 수도 있으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멜로디이다. 가요로 쓰기엔 너무 아름다운 선율이다.

현수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만든 클래식 명곡이 될 수도 있는 곡이다.

“평범 이하라도 괜찮습니다. 곡만 주시면 됩니다.”

조 사장의 얼굴이 환히 피어난다. 현수로부터 곡을 받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대박이기 때문이다.

그 곡이 평범 이하일지라도 일단 대중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천지건설 김현수 전무이사 작사, 작곡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일단 먹어주기 때문이다.

곡까지 좋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된다. 다이안의 뛰어난 가창력이 요구되는 곡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나 가거든’이란 곡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는 것이다.

다이안 멤버들도 모두 웃고 있다. 어쩌면 고대하던 음악방송 1위 자리를 다시 거머쥘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출장 잘 다녀오십시오.”

“네에.”

시선을 돌리니 까차가 바라보고 있다.

“왜?”

“무슨 얘길 그렇게 심각하게 하다 환히 웃고 끝내요?”

“이 사람들은 아주 유명한 걸 그룹인데…….”

잠시 설명이 이어졌다. 까차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현수와 다이안 멤버들을 눈여겨 바라본다.

“그래서 작곡을 해주기로 했어요?”

“일단 세 곡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서. 참!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현수는 화장실로 가서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고색창연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언젠가 꺼냈던 것인데 이상한 기호들로 점철된 것이다. 당시엔 이게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덮었다.

익혀야 할 마법이 수두룩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역시……! 하아, 이건 정말…….”

예상대로 괴상한 기호는 악보였다.

지구와는 표현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에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비약적으로 좋아진 두뇌는 이내 요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머릿속으로 음표를 따라 노래를 불러보았다. 고요하면서도 전율이 일만큼 아름다운 멜로디이다.

표지를 보니 ‘엘프의 노래’라 쓰여 있다. 숲의 종족 엘프들에게 전승되는 노래를 누군가 악보로 옮겨놓은 것이다.

‘시간 될 때 확인해 봐야겠군.’

악보를 후르륵 넘기며 살펴보니 대략 200여 곡이다.

7장 지나로 출발!

“보스! 은근히 긴장되네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관광 간다 치면 되니까요.”

“그래도 긴장돼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현수와 까차, 그리고 드미트리 사이의 대화이다.

러시아 사람임에도 둘은 미지의 국가 북한 입국을 앞두고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근데 왜 북경을 안 거치고 천진을 거치죠?”

“맞습니다. 주로 연길이나 장춘을 거치는 거 아닌가요?”

까차와 드미트리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진에 잠시 볼일이 있어서요. 하룻밤 묵고 갈 거예요.”

“그래요?”

“둘은 빈장따오2)에 가보세요. 거기 가면 구브리쭝디엔이라는 곳이 있는데 구부리빠오즈 맛이 괜찮다고 합니다.”

“그게 뭔데요?”

“만두예요.”

“만두요?”

“청나라 때 서태후에게 진상되어 명성을 떨친 겁니다. 국빈급 인사들도 꼭 한 번 들릴 정도로 유명하다네요.”

“아! 그래요?”

“만두가 싫으면 스파지에마화 총본점에서 꽈배기같이 생긴 마화를 먹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래요?”

둘은 멍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분명 지나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나어 발음이 너무도 능숙하게 들린 때문이다.

“빈장따오 입구에 있는 시카이텐쥬자오탕이란 성당에도 가보세요. 조계시절 프랑스 사람들이 지은 천진 최대 성당입니다.”

드미트리와 까차 모두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라는 것을 알기에 한 말이다.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교황청 간에 해묵은 반목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무심코 거론한 것이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아는 거예요?”

“그야 책에서 본 거지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어쨌든 천진엔 볼거리가 많다더군요.”

“나는 괜찮지만 미스 까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 불편할 듯싶은데. 어때요?”

“네? 제가 왜 불편해요?”

무슨 의도로 한 말이냐는 표정으로 드리트리를 바라본다.

“아마 미스 까차가 너무 미인이라 그러는 걸 겁니다.”

“어머! 정말요?”

시선을 받은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까차는 전성기 때 도트젠 크로즈(Doutzen Kroes)보다도 아름다운 외모이다. 참고로 크로즈는 1985년생으로 네덜란드 모델이다.

2004년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이었고, 2005년엔 보그 선정 ‘올해의 모델’이었던 미녀이다.

이 정도 미모의 여인이라면 치안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염려스럽다. 현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드미트리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다.

“전무님 일은 늦게 끝나나요?”

“글쎄요? 그건 가봐야 알아요.”

“일찍 끝나면 에스코트해 주실 거죠? 천진은 어떤 도시일지 궁금해요.”

“네, 그럴게요. 아무튼 도착해선 절대 혼자서 움직이지 마세요. 미스터 드미트리! 까차 혼자 다니지 않게 할 거죠?”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동안 줄이 점점 짧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셋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싣고 있었다.

“후와, 여기가 천진이군요.”

입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빈하이 국제공항 밖으로 나온 까차의 첫 마디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예약해 둔 웨스틴 천진호텔로 향했다. 약 30분이 지나자 목적지에 당도한다.

셋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로비에서 재집결했다.

관광 겸 식사를 하러 남시식품가(南市食品街)라는 식당가로 향했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지나의 요리엔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다.

요리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서, 어패류의 나쁜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향을 즐기기 위해서 등의 이유이다.

이 향은 한국인에겐 익숙하지 않다. 하여 시켜놓은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현수는 주문을 하면서 어떤 어떤 향신료는 빼달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음식을 먹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주문한 것은 하얼빈 맥주이다. 우리나라의 카프리처럼 가볍고, 순하면서, 뒷맛이 깨끗한 녀석이다.

까차가 일정을 묻기에 오늘과 내일, 이틀쯤 머물 것 같다는 이야길 했다. 드미트리와 까차는 내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여행 스케줄을 짜느라 여념이 없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수는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시끄럽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정도이다.

옆에 누가 있든 말든 엄청 떠든다.

해도 너무한다 싶어 한마디 하려는 순간 누군가의 말소리가 귀에 박힌다. 하여 잠시 귀 기울였다.

“그러니까 말야. 조선돼지를 사면 되잖아.”

“조선돼지……? 그거 요즘은 얼마나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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