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69화 (569/1,307)

# 569

“잘됐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네.”

간단히 대꾸한 까차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준다. 어둠이 내려와 볼 것도 없건만 좀처럼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특별히 할 말이 없기에 시선을 돌리던 현수는 유리창에 비친 까차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이지적이면서도 고혹스런 모습이다.

침묵이 길어지자 이를 깨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까차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현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것이다.

“……!”

현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까차가 여전히 상념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까차의 이런 행동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딸깍―!

“보스! 맥주 사왔습… 아! 조금 있다 오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드미트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서려 한다. 한창 오붓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본인이 깼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아닙니다. 들어오세요.”

“어머! 제가……. 미안해요.”

“아닙니다.”

까차에게 개의치 말라는 표정을 지어주곤 드미트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미스터 드미트리! 들어오세요. 맥주 기다리던 참입니다.”

“아! 네에.”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선 드미트리가 현수와 까차의 맞은편에 앉으며 맥주를 꺼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타기 전에 더 많이 사오는 건데 그랬습니다. 그쵸?”

“우리가 비운 게 벌써 열두 캔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현수는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까차가 하나를 비울 때 둘이 나머지 열한 개를 게 눈 감추듯 비워 버린 때문이다.

“이번엔 그렇게 빨리 마시기 없기예요. 아셨죠?”

“하하! 네에, 안주 먹어가며 천천히 마실게요. 자, 건배!”

팅! 팅!

셋은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천진에서 관광한 것을 시작으로 화제가 수시로 바뀌었다.

시간이 흘러 12시 경이 되자 까차가 졸립다며 눕는다.

“미스터 드미트리!”

“네! 보스.”

혼자 마신 양만 열 캔이 넘지만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는지 드미트리는 멀쩡하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디체인지 후 웬만큼 마셔선 취하지 않는다. 간의 알코올 분해 기능이 엄청 좋아진 모양이다.

“한국에 계속 머물 겁니까?”

“네, 그럴 생각입니다.”

“왜죠? 고향에 있는 게 더 낫지 않나요? 가족 없어요?”

“고향은… 고향보다 한국이 더 다이내믹해요. 물자도 풍부하고 위험하지도 않고. 한국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있습니다. 아내와 아들 녀석이 있죠.”

“미인이겠죠?”

현수의 은근한 시선에 드미트리가 파안대소한다.

“하하! 물론입니다. 제겐 누구보다도 미인입니다.”

“전에 모스크바의 장인께서 내 경호를 지시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대보스께서 직접 제게 내린 명령입니다.”

말을 하며 약간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한다. 섬기는 보스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의인 듯하다.

“한국에서의 일은 어때요? 재미있나요?”

“지금은 부하들이 맡아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럼 관리만 하는 건가요?”

“네, 얼마 전에 지부로 승격이 되었고,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보스 덕분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대보스께서 말씀하시길 한국은 우리 조직에 매우 도움이 되는 국가라 하셨습니다. 또한 사위가 되신 보스가 있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지위를 격상하여 지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요? 하긴 드모비치 상사와의 교역 규모가 점점 커지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보스의 안위도 중요하다면서 조직원들을 추가로 파견하셨습니다.”

“그런가요?”

사람을 또 보내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드미트리의 말이 이어진다.

“이번에 오는 대원들은 모두 보스의 경호를 전담합니다. 전원 전직 스페츠나츠 대원이지요.”

“그래요? 얼마나 옵니까?”

“총원 36명입니다. 12명이 1개 조가 되어 일일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니까요.”

“끄응! 너무 많군요. 근데 그들은 어디에 머무나요?”

“양평에 보스의 저택이 지어지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입주하시면 그 인근에 집을 얻을 계획입니다.”

“흐으음……!”

현수는 긴 침음을 냈다. 자신을 위해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사람을 보냈다. 필요없다면서 보낼 수 없는 인원이다.

그들의 주요 임무가 경호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돌려보내면 자칫 호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리냐의 대부가 되었고, 오펜시브 참 마법에 걸려 있지만 그건 경우가 아니다. 따라서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킨샤사와 모스크바 저택의 경호 인력들에겐 모두 주거가 제공된다. 그쪽보다 이쪽에 더 인원이 많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 그리고 처조부가 있다. 이연서 회장 부부도 처조부이다. 그리고 권지현도 있다.

유사시엔 박근홍 사장 부부랄지 민주영과 이은정 등 이실리프 그룹사 임직원들에 대한 경호도 필요할 수 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까지 파견될 그들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하여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긴 침음을 낸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 드미트리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리곤 많은 것을 메모했다.

이번에 입국하는 36명 가운데 21명이 기혼이다. 자녀가 있는 자도 있다. 나머지 15명에겐 애인이 있다.

결국 36채의 집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양평에 지어지고 있는 저택 인근의 토지를 추가로 매입하거나 부지 외곽에 보기 좋은 주택을 짓자고 마음먹었다.

레드 마피아 조직에서 급여를 지급한다지만 그건 러시아 기준이다. 한국에서 살림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결국 이실리프 경호라는 회사를 만들어 직원으로 고용해야겠다고 메모했다. 급여를 줄 명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호원들이 받는 것 정도는 지불할 생각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노트북을 꺼내 저택 배치도를 살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부지 외곽에 단층 또는 2층 구조의 펜션형 주택을 충분히 지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이 사용할 차량도 몇 대 구입해야 할 것 같다.

나중의 일이지만 스페츠나츠 출신 레드 마피아 조직원들은 현수에게 충성 맹세를 한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주거 제공에 감격한 때문이고, 너무도 인간적으로 대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을 능가하는 운동 능력에 매료된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선발된 스페츠나츠라 할지라도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갈 현수를 감당해 낼 수 없다.

축구, 족구, 농구, 배구, 심지어 야구와 송구까지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인다. 주특기인 사격과 산악구보마저 현수에게 패한 뒤 일제히 충성 맹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입국하려면 조금 쉬어야 할 겁니다. 거기 들어가면 많이 긴장될 테니까요.”

“네, 그럼 올라가서 자겠습니다.”

“저쪽에서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드미트리는 한국식으로 손사래까지 치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다.

현수는 시건장치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시커먼 창에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들어가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게 될 텐데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장성택은 명실상부한 북한의 권력실세이다. 굳이 서열로 따지면 2위 정도가 될 것이다.

세간엔 김정일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고모부로서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이라는 평도 있다.

현수의 아공간에는 푸틴이 쓴 친서가 담겨 있다. 장성택에게 전해질 것이다.

내용은 김현수에게 중대한 일을 맡겼으니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서 내용의 진위를 확인코자 하면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러시아 6자회담 차석대사 겸 북핵 담당 특임대사를 찾으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북한엔 친 러시아 인사들이 많이 줄었다.

지난 1992년에 일어난 프룬제 아카데미(Военной академии имени М.В.Фрунзе) 출신 군사 쿠데타 모의사건 때문이다.

프룬제 아카데미는 구소련 연방의 군사학교이다.

이곳에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 유가족자녀들이 입교하여 북한군의 엘리트로 양성되었다.

그런데 이곳 출신 엘리트 중 일부가 불만세력으로 조성되자 김정일의 군권장악을 위해 쿠데타로 간주한 사건이다.

그 결과 친 러시아 인사들이 대거 숙청되었다.

그런데 푸틴이 장성택을 선택한 것엔 이유가 있다.

지난 2012년 장성택은 지나와의 경제 협력 활성화를 위해 온가보(溫家寶, 원자바오) 총리를 만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온 총리는 북한에 대한 지나 정부의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을 표했다. 그리고 경협 활성화를 위해 북한이 개선해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때의 상황이 지위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훈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이를 ‘장성택의 굴욕’이라 한다.

외신에 장성택이 지나를 방문하여 참으로 비참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되었을 정도이다.

당연히 지나에 대한 반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모스크바 대학을 나왔으니 러시아가 먼저 손을 내밀면 뿌리치지는 않을 판단을 내린 것이다.

“북한의 권력서열이 급격하게 변한다고 하는데…….”

현수는 엄규백 팀장에 제공했던 북한 내의 상황을 떠올렸다.

최고실세는 리용철, 리제강, 장성택, 김옥, 이렇게 네 명이다.

이들만 아우를 수 있으면 파이프라인 연결공사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흐으음!”

이들이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감잡히지 않으니 현수의 생각은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바로 앞에 잠든 까차가 뒤척이며 점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장성택이 모스크바 대학에 다닌 것은 1969년부터이다.

당시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 바로 까차의 증조부인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이다. 어쩌면 작은 연결 고리가 생길 것이라는 상념이 든다.

하여 까차를 바라보다 얼른 시선을 돌렸다. 봐선 안 될 부분이 보였기 때문이다. 얼른 담요로 덮어주었다.

그때 까차가 또 한 번 뒤척인다.

“으으음!”

“……!”

까차의 팔이 현수의 목을 휘감는다. 그리곤 잡아당겼다.

버팅기면 까차가 침대 밖으로 떨어진다. 그렇기에 허리를 숙인 채 당기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힘이 빠지자 슬쩍 빠져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드미트리의 눈이 떠져 있었다.

추위를 느끼고 담요를 찾다가 우연히 본 것이다.

드미트리가 본 모습은 현수가 다정스레 까차의 담요를 끌어올려주는 것부터이다. 그리곤 잠든 까차의 입술에 키스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전부 오해이다.

드미트리는 떴던 눈을 감고는 몸을 돌렸다. 자신이 깨어 있음을 현수가 알아선 안 된다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까차를 어찌 대해야 할지에 관한 것이다.

현수는 대보스이자 장차 러시아의 모든 밤을 지배할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사위이며 중요한 거래 상대이다.

친구인 지르코프가 보내준 책 속엔 현수가 푸틴 및 메르베데프와도 친분이 있다는 메모지가 끼어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조직 내에서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다가가 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현수로부터 항온 의류에 관한 러시아 판권을 부여받은 직후의 일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지녔기에 항온 의류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줄지 알기에 충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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