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1
현수는 북한에 갈 때 자신을 데리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라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소 계면쩍은 표정이다. 대사관 무관과 6자회담 차석대사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기 때문이다.
“여기 온 김에 동생도 보면 되겠네요.”
“네, 보스께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구, 그런 뜻이 아니라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를 나눠보라는 말씀입니다.”
“아! 네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 동생은…….”
드미트리는 잠시 아우에 대한 이야길 했다.
드미트리의 아우 표도르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고 한다. 자신이야 어쩌다 암흑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동생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다.
하여 훈계도 하고, 도움도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대사관의 무관이 된 것이라면서 자랑스러워한다.
동생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과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레드 마피아 단원이 아니라 순박한 아저씨인 듯하다.
벌컥―!
“기다리시라 하여 미안합네다. 중앙에 연결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네다. 김현수 동지와 두 분을 날래 피양으로 모시라는 지시가 있었습네다. 가시디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입니까? 교통편은 뭐죠?”
“나가면 준비되어 있을 겁네다. 교통편은 휘파람이라고 우리 공화국에서 제작한 차량입네다.”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현수가 일어나자 눈치빠른 까차와 드미트리 또한 일어난다.
나가보니 두 대의 중형차가 대기하고 있다.
“이쪽 분은 저 차를 이용하시고, 두 분은 이 차에 탑승하시라요. 저는 저 차를 타고 안내하도록 하겠습네다.”
최철 소좌는 현수와 까차를 한 차에 태우고 자신은 드미트리와 타겠다고 한다. 덩치 큰 드미트리와 뒷좌석에 셋이 타면 좁을 것 같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미스터 드미트리! 저쪽 차에 타요. 우리 둘은 이 차를 탈 테니.”
“네? 아, 알겠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려던 드미트리가 얼른 앞차로 향한다. 까차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기 싫어서이다.
텅, 텅―!
차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발했다.
아다시피 북한은 교통량이 매우 적다. 그렇기에 금방 뻥 뚫린 도로를 따라 질주하기 시작한다.
창밖 풍경을 보니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반의 시골 풍경이다. 도로 곁으로 우마차를 끌고 가는 노인이 보인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두툼한 옷차림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거의 모두 키가 작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기 못해 그럴 것이다.
“김 전무님! 북한이 어떤 요구를 할지 생각해 보셨어요?”
“생각은 해봤지만 예상이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운전자가 룸 미러로 힐끔 바라본다. 유창한 러시아어 대화에 약간 놀란 듯하다.
“제 생각엔 식량일 것 같아요. 오기 전에 확인해 보니 50만 7천 톤 정도 부족하다네요.”
“그렇게나 많답니까? 최근 농경지가 많이 늘어서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뇨! 제 말이 맞아요. 북한의 경지면적은 2011년에 173만 6,000㏊였어요. 2012년엔 204만 1,000㏊가 되었구요. 경사지가 2011년엔 30만㏊였는데 2012년엔 55만㏊로 늘어난 것이 주요 요인이에요.”
“흐음, 자체적으로 가꿔서 식량을 수급하는 경사지가 크게 늘어났고, 곡물 생산성도 향상되었다는데 그 정도라면…….”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북한의 식량 수입량은 2011년엔 37만 톤이다. 2012년엔 28만 톤으로 줄었다. 경지가 늘고 생산성이 좋아져 그렇게 된 것이라 판단하여 25만 톤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추산했다.
그런데 예상의 두 배가 필요하다니 골치가 아픈 것이다.
“아마 연료도 필요할 거예요. 기차의 연료가 부족하여 폐타이어를 잘게 잘라 쓴다잖아요.”
까차는 북한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공부하고 온 듯하다. 하여 힐끔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겠지요.”
이 순간 번뜩이는 상념이 있다. 목재 펠릿(Wood pellet)이 그것이다. 친환경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식물이나 나무 등을 수집해서 톱밥과 같은 작은 입자 형태로 분쇄한 후, 고온, 고압에서 성형 제작한 연료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 연료비도 경유와 비교해서 57%, 등유와 비교하면 41%나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온실가스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유황, 질소 등 대기 오염물질이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
타고 남은 재는 텃밭, 화분 등의 비료로 활용할 수 있어 진정한 친환경 청정연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가 발생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가공하여 건축 자재 등으로 사용되겠지만 상당히 많은 양이 버려질 것이다. 그 양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이걸 가공하여 펠릿으로 공급한다면 몇 가지 이득이 있다.
등유 또는 경유를 공급할 경우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눈길을 받을 수 있다.
목재 펠릿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다.
둘째, 반둔두 및 비날리아 지역에 쌓일 쓰레기가 대폭 줄어든다. 이는 경작지 증가를 의미한다.
세 번째는 펠릿 제조를 위한 고용이 발생된다. 다시 말해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진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개발이 진행 중인 국가이다. 따라서 숲을 개간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진다.
현재는 마땅한 처리 방법이 없어 한쪽에 적치하고 있다. 이것들까지 수거하여 펠릿을 제조한다면 북한 전역의 민간용 난방을 책임지고도 남을 것이다.
부족하다면 아르센 대륙의 숲을 개간하는 방법도 있다.
면적에 인구에 비해 인구가 확연히 적은 곳이다.
다 돌아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구밀로도만 따지면 지구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매년 아마존 크기만큼 벌채해도 환경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북한의 연료 부족 문제는 펠릿이 해답이었군. 좋아! 목재 보일러는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고. 흐음, 여기에 마법을 적용해 봐?’
전함의 엔진과 마찬가지로 보일러에도 효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론 60%도 넘기기 어렵다.
발생된 열 중 일부가 난방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연통을 통해 빠져나감을 의미한다.
이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졌다지만 일순간에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에 일단 메모해 두었다.
“뭘 쓰는 거예요?”
“으응! 어떻게 하면 보일러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려고 쓰는 거야.”
무심코 한 대답이다. 그런데 반말이다. 순간적으로 까차를 연희나 지현, 또는 이리냐로 착각한 때문이다.
거리감이 확연하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트클럽 섹시댄스 경연대회 때의 키스 때문인지 부쩍 가깝게 느껴졌던 때문이다.
“……!”
이런 걸 느꼈는지 잠시 까차의 말이 끊겼다. 하지만 현수는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상념에 잠겨든 때문이다.
‘식량은 어떻게 하지? 매번 사다가 주는 것보다는 자급할 방도를 마련해 주는 게 좋을 텐데. 흐으음!’
이번 상념은 조금 길었다. 약 2,400만 명이나 되는 북한 인구 전체가 고심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까차의 말이 이어진다.
“북한엔 비료와 의약품도 많이 부족하대요.”
“비료? 맞아. 한 해에 약 155만 톤 정도가 필요하지?”
“네, 그중 상당량을 지나에서 수입하거나 남한으로부터 원조 받아서 썼지요.”
“정국이 경색되어 남한으로부터 원조는 끊겼을 것이고, 돈이 없어 지나로부터 수입하는 양은 줄었겠군.”
“맞아요. 지나에서 수입하던 물량이 4분의 1로 줄었다고 해요. 그리고 흥남 비료공장, 남흥 청년화학공장 등 10여 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시설이 낡고, 전기 공급이 어려워 생산량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해요.”
“흐으음……!”
현수는 나지막한 침음을 내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러고 보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의 산들은 거의 모두 민둥산이다. 만성적인 연료 부족 현상으로 인한 벌채 때문이다.
또한 경작지를 늘리기 위한 개간이 한몫했다.
실제로 다락밭을 만들었던 초기에는 곡식의 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식량 확보에 기여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무 없는 산은 큰 비가 올 때마다 토사를 쏟아내고 강을 넘치게 해 극심한 홍수 피해를 불러왔다.
몇 번의 홍수가 지나간 뒤 많은 산이 흙만 남은 민둥산이 되었다. 평야 역시 강에서 넘쳐난 물로 황폐화되는 일이 반복되는 중이다. 악순환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펠릿이 공급되면 일단 더 이상의 벌목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럼 낙엽 등을 이용한 퇴비 생산이 늘어날 거야. 그리고…….’
현수는 또 다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심시티라는 게임이 있다.
나만의 도시를 원하는 형식으로 제작 가능한 것이다.
지형도 디자인할 수 있고, 지하철까지 포함한 다양한 시설과 상하수도를 건설해서 주민들의 요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게임이다.
이건 하다가 안 되면 다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게임이 아니다. 지도자의 실수는 수많은 아사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북한은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해 있다.
파이프라인 연결공사의 승인을 받으려면 그중 몇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때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일의 진척은 지지부진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북한의 문제점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어쨌거나 비료 문제는 시간이 걸려야 해결될 문제이다.
우선은 울창한 숲이 복원되어야 하며 있는 공장들의 효율이 극대화되어야 할 것이다.
숲의 복원은 펠릿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흥남 비료공장 등에 필요한 전기는 태양광발전을 생각해 보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태양광발전 관련 회사들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일과 연관되어 있다.
하여 서로 경쟁하며 피 흘리던 시절이 아닌 상생을 위해 기꺼이 기술 협력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들에게 숙제로 내놓으면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올 듯싶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까차가 입을 연다.
“북한엔 의약품도 많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면서도 마취 없이 한대요.”
“헐……!”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는 팔에 독화살을 맞았다. 이를 전설의 신의 화타가 수술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관우는 마취도 안 하고 태연하게 마량과 바둑을 두며 수술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뻥이다. 우선 화타는 동시대 사람이 아니다. 관우를 수술한 것은 화타의 제자인 오보라는 인물이다.
어쨌거나 북한의 전 국민이 관우가 아니라면 생살을 찢는 고통을 어찌 견뎌내겠는가!
게다가 어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직한 탄성을 냈다. 말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도 지난 4월 3일에 유진벨 재단이 제공한 의약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네요.”
“흠, 그 기사 나도 봤어. 결핵약이었다면서?”
“네. 맞아요.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분야의 약품이 부족해요. 혹시 이것도 요구하지 않을까요?”
“흐음, 의약품이라…….”
이실리프 무역상사는 많은 제약사와 거래하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의 천지약품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거래량은 단번에 두 배로 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약사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 대부분이 소진될 것이다.
북한에 제공할 의약품 생산까지 의뢰되면 제약사들은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고용창출의 효과를 발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