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2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다국적 제약사가 아닌 토종 제약사들만 골라낸다면 제약업계 전반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게 여의치 않으면 대한의약품을 키우면 된다.
돈은 거의 무한정으로 있으니 지금의 10배, 100배로 키워 약을 만들게 하면 된다.
지난 번 죠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들은 말이 있다.
지난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브릭스(BRICS)7)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때 아프리카 주요국 정상들도 대거 집결했다.
에티오피아, 리비아, 알제리,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차드, 우간다, 모잠비크, 이집트 등이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지닌 국가이다. 이번 정상회의와 포럼을 통해 남아공이야말로 아프리카 대륙 경제의 중추이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점을 새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대통령 죠제프 카빌라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군들과의 교전 상황이 있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기오르기스 대통령과의 통화는 한 바 있다. 천지약품에 관한 문의가 있은 이후 부쩍 가까워진 사이이기에 그곳이 어땠나를 묻기 위해 전화했던 것이다.
기르마 올데 기오르기스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현지 정상들과의 환담 도중 천지약품이 아디스아바바에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자랑이다.
이때 각국 정상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다양하며, 뛰어난 약효를 지닌 한국의 의약품과 양심적인 기업 운영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모두 지나의 가짜 약에 치를 떨던 중이었던 것이다.
각국 정상들은 어떻게 하여 현수와 인연을 맺어 그런 결과를 도출해 냈는지를 물었으며, 연결해 달라는 청을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현수에게 연락해 주지 않은 이유는 혹시라도 그것 때문에 아디스아바바에 투자되는 것이 줄어들까 싶었던 때문이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선 무한정에 가깝게 시장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의 호황은 매우 오래 지속될 것이다.
지나처럼 팔아만 먹고 쏙 빠질 생각은 없다. 대한의약품의 경우는 각국마다 지사를 설립하고 공장을 만들 생각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의약품 제조를 위한 원료 공급 공장이 우선이다. 그러면서 차츰 비료나 종자 등을 취급하는 회사를 만들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주거를 위한 건축이나 토목 관련 회사를 만들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도로, 항만, 공항 같은 인프라 확장이 이루어진다. 천지건설 등이 투입될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북한에도 의약품이 필요하다. 일단은 국내 제약사들이 제조한 약품을 공급하면 급한 불은 끄게 된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다.
따라서 나진 선봉지구나 개성공단의 공장들을 인수하여 제약공장을 만들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12장 무엇이 필요하지요?
지나는 지난 3월에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나진 선봉지구 등 북한의 특구 공동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5월엔 조선무역은행 계좌를 폐쇄했다.
같은 달 파견된 북한 특사단은 전례 없는 푸대접을 받았다.
최룡해 북한 특사가 김정은의 친서를 소지했음에도 시진핑 주석 면담도 당일 오후에 통보받을 정도로 냉대당한 것이다.
북한과 지나 사이에 금이 가 있는 상황이다.
이를 잘만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한결 마음이 든든해졌기에 현수의 입가엔 웃음이 배었다.
“뭐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응! 아무것도 아냐.”
“하아, 그나저나 언제 도착해요.”
창밖 풍경은 변하는 것이 별로 없다.
지루해진 까차는 자리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더니 현수의 팔을 잡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
이게 웬 상황이람 하는 표정을 짓는데 까차가 입을 연다.
“하암! 졸려요. 조금만 잘게요. 어깨 빌려주실 거죠?”
“응? 그, 그럼!”
“고마워요.”
대답을 하며 팔을 조금 더 끌어안는다. 팔뚝으로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졌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김현수 동지! 도착했습네다. 내리시라요.”
“아! 그래요? 여긴 어디죠?”
차문을 열고 내리는데 최철 소좌의 말이 이어진다.
“여긴 러시아 대사관입네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말씀이 끝나면 모시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네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어쩌지요? 그래도 기다리겠습니까?”
“상부의 명령입네다.”
최철 소좌는 군인다운 대답을 하곤 부동자세를 취한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이다.
대사관 정문으로 다가가니 근무하던 위병이 시선을 돌린다.
“Это посольство России. Что сказать вам?." ?”
여기는 러시아 대사관인데 무슨 일로 왔느냐는 물음이다.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특임대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한국의 천지건설에서 온 김현수 전무이사입니다.”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하며 명함을 건네자 받아서 살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지요.”
현수의 대답을 들은 위병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되돌아온다.
“어서 오십시오. 특임대사께서 기다리십니다.”
끼이이익―!
자주 열리는 문은 아닌지 경첩음이 들린다.
“두 사람은 누구십니까?”
“나는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입니다.”
“나는 드미트리 알렉세이 다닐로프입니다.”
둘은 각각의 여권을 제시했다. 이를 받아 살핀 위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국민의 대사관 방문이기 때문이다.
“세 분의 관계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일행입니다. 까차는 법률 고문이고, 드미트리는 형제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정문을 통과하니 안내직원이 대기하고 있다.
“미스트르 킴! 이쪽으로 오십시오.”
“흠, 고맙습니다.”
또각, 또각, 또각!
앞서서 걷는 아가씨의 둔부가 너무도 육감적으로 실룩이기에 현수는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하여 두리번거리다 까차와 시선이 마주쳤다.
환히 웃는다. 왜 시선을 돌렸는지 안다는 뜻이다. 괜히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계면쩍은 마음이 든다.
드미트리 역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민망해서가 아니다. 동생인 표도르를 볼 수 있을까 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여직원의 뒤를 따라 커다란 문 앞에 섰다.
똑, 똑, 똑―!
“특임대사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그런가? 안으로 모시게.”
딸깍―!
여직원이 문을 열고는 한쪽으로 비켜선다. 먼저 들어가라는 뜻이다. 하여 현수가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
이제까지완 달리 푹신한 양탄자가 깔려 있어 촉감이 좋다.
“아아! 어서 오십시오. 미스트르 킴!”
풍채 좋은 대머리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벌린다. 환영한다는 뜻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김현수라 합니다.”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입니다.”
“드미트리 알렉세이 다닐로프입니다.”
“반갑습니다. 세 분! 자자,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소피아! 끄바스 준비되지?”
“네, 특임대사님! 준비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소피아가 고개를 살짝 숙이곤 밖으로 나간다.
끄바스(KBAC)는 러시아 전통음료이다.
맥주와 비슷하지만 보리호밀가루(맥아), 설탕, 박하의 비율을 정해 만드는 발효 보리 음료이다.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갈증을 해소해 주며, 음식을 쉽게 소화시켜 주고, 식욕을 증진해 주는 것이다.
“끄바스가 오면 보드카에 섞어 먹읍시다.”
“하하, 네에.”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한 얼굴이다. 그렇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드미트리도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이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엔 끄바스를 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까차도 마찬가지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 환히 웃고 있다.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조금 늦게 오셨군요.”
“네, 제가 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늦게 와 죄송합니다.”
정중히 고개 숙이자 펄쩍 뛴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언제 오실지 몰라 기다리느라 애먹었다는 뜻……. 에구 아닙니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로그비노프 특임대사는 푸틴과 메드베데프 둘 모두에게서 전화를 받은 바 있다. 그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다음과 같다.
첫째, 언젠가 천지건설의 김현수 전무가 당도할 것이다.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결례하지 않도록 하라.
둘째, 현수가 의도하는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라.
셋째, 머무는 동안 조금의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라.
넷째, 현수에게 러시아 시민권이 있으며 준외교관 신분임을 북한 당국에 고지하라.
다섯째, 현수의 신상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발생되면 어떠한 무력이라도 동원해도 좋다.
하루 간격으로 둘에게 전화를 받은 로그비노프는 대체 김현수가 누구이기에 이런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북한에 있으면서 어찌 현수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겠는가! 하여 오랜 벗인 크렘린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인들은 알 수 없는 러시아의 위기를 한 방에 해결해 준 은인이며, 곧 레드 마피아를 총괄하게 될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사위라는 답변을 들었다.
천지건설 직원으로서 잉가댐 공사를 수주했으며, 킨샤사―비날리아 간 고속도로 건설을 따냈음도 들었다.
아울러 차얀다 가스전 개발공사 및 파이프라인 연결공사까지 턴키베이스로 수주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것도 알았다.
공보실장과의 통화를 마친 로그비노프는 보드카부터 한 잔 스트레이트로 비웠다.
자신이 뭘 잘못 들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도 될까 말까 한 일을 개인이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해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리고 공보실장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도 나름 거물이지만 현수는 거물 중의 거물이 될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친해두어 손해 볼 일 무엇 있겠는가!
그렇기에 파안대소를 하며 손을 흔든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왔으면 되는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가 무엇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의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아울러 이분들과의 면담도 추진해 주십시오.”
현수가 내민 쪽지를 살핀 로그비노프가 인터컴을 누른다.
삐이이잉―!
“네, 특임대사님.”
“안으로 들어와 보게.”
“네.”
잠시 후 서른 중반쯤 된 사내가 노크에 이어 들어섰다. 로그비노프에게 곧장 다가가려던 사내가 흠칫거린다.
드미트리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이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바로 하고 로그비노프 앞에 선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여기 있는 이 명단 사람들을 대사관으로 초빙해.”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십시오.”
로그비노프는 대꾸하지 않고 현수를 바라본다.
“미스트르 킴! 언제가 좋겠습니까?”
“오늘 저녁 때 가능하겠습니까?”
대답을 듣고는 사내에게 시선을 돌린다.
“들었지? 오늘 밤 10시 대사관 리셉션 장으로 초빙해. 주방에 연락해서 음식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곤 절도 있는 자세로 돌아선다. 곧장 출입구로 향하려 발을 떼려는 순간 현수가 입을 열었다.
“혹시 표도르 알렉세이 다닐로프 씨입니까?”
대답은 사내가 하지 않고 로그비노프가 했다.
“어라? 미스트르 킴이 어떻게 그걸 아는 겁니까?”
현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드미트리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