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77화 (577/1,307)

# 577

평양 시내에 대한 느낌은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다는 것과 교통량이 적어 황량하다는 것이다.

“저거이 주체사상탑입네다.”

최 소좌의 손짓을 따라가 보니 높은 탑이 보인다.

앞에는 동상이 서 있고 탑의 맨 위엔 붉은 횃불 같은 조형물이 올려 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항상 안내하는 곳이다.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맞아 건립된 것으로 탑신 150m, 봉화 높이 20m이니 총 170m짜리 탑이다.

“김일성 주석님과 주체사상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길이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겁네다.”

“아! 그래요? 꽤 높네요.”

“길티요. 다음은 만경대를 보여 드리겠습네다.”

“만경대요?”

“네, 거기 가면 김일성 주석님의 생가가 있습네다. 1947년부터 ‘만경대 혁명 사적지’로 성역화 되었습네다.”

“그런가요? 근데 그렇게 돌아가도 됩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습네다. 길구 상부에서 주체사상탑과 만경대를 꼭 관람시켜 드리라는 하명이 있었습네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외부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면 꼭 방문하게 하는 곳이 있다.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이다.

그렇기에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의 신분이니 주인이 베푸는 걸 일단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만경대에 당도하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내원이 건물을 구경시키며 설명을 한다. 겨우 하룻밤을 머물렀음에도 북한 특유의 억양이 이상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자, 이제 제1청사로 모시갔습네다.”

“네, 그러시죠.”

만경대를 떠난 휘파람은 곧장 제1청사로 달려갔다.

텅, 텅―!

“어서 오시라요. 안으로 모시갔습네다.”

차에서 내리자 대좌와 부관인 듯한 자가 다가와 한 말이다.

“아! 그래요.”

아마도 호위총국 소속일 것이다. 계급에서도 눌렸기에 최 소좌는 신병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북한의 호위총국은 규모가 방대하다.

호위국은 1∼3국까지 있으며 1국은 다시 1, 2, 3호위부로 나뉘어 있다.

1호위부는 김정은 제1위원장 및 그 가계의 호위를 전담한다. 2호위부는 당중앙위원회와 금수산 기념 궁전을 호위한다.

3호위부는 당정의 요인들에 대한 호위를 담당한다.

호위총국은 3개 군단 12만 명 규모이다.

이중 정예 3,000여 명이 1호위부 요인이다. 그리고 이들이 나머지 인원 전체를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이곳은 제1청사이다. 그리고 정복을 입을 대좌는 1호위부 소속일 것이다. 국경수비대 정치위원인 최철 소좌는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잔뜩 쫄아 있는 것이다.

“저는 제1호위부 소속 강인국 대좌입네다.”

“저는 안경호 소좌입네다.”

“아! 반갑습니다. 김현수라고 합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알갔습네다. 저를 따르시디요.”

말을 마친 강인국 대좌가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간다. 현수는 까차의 손을 잡아당겨 곁에 서게 하곤 그 뒤를 따랐다.

두어 발짝 뒤를 안경호 소좌가 따른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최철 소좌가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다.

“최 소좌는 같이 안 갑니까?”

“네, 최 소좌의 임무는 여기까지 모시는 것입네다.”

“흠, 그렇군요.”

강인국 대좌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으며 좌우의 그림 및 조형물들을 보았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화풍이다.

특히 대형 파도 그림이 인상적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때 ‘총석정의 파도’라는 대형 파도 그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또 다른 파도 그림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이 그림은 제목이 뭔가요?”

“아! 그 그림은 ‘해금강의 파도’라는 겁네다. 돌아가신 국방위원장 동지께서 걸작이라 인정하신 거디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림이 참 마음에 드는군요.”

“그렇습네까? 그럼 잠시 감상하셔도 좋습네다.”

“그럼 그럴까요?”

현수는 순수한 마음으로 파도 그림을 감상했다.

겨울이라 그렇지 여름에 보았다면 보는 순간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자, 이제 가시지요.”

“네, 그럼 따라오십시오.”

복도를 따라 조금 더 걷더니 꽤 높이가 높은 문을 연다.

“안으로 드시디요.”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서니 로그비노프 특임대사가 환히 웃으며 서 있다. 그 곁에는 장성택이 서 있다.

“어서 오시라요. 잠자리는 편했습네까?”

“아, 네. 아주 편히 잘 쉬었습니다.”

장성택이 흡족한 대답이라는 듯 환히 웃는다.

“자, 안으로 드시디요.”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방이 나온다.

커다란 탁자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현재의 북한을 이끌고 있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이다. 1983년생이니 올해 서른 살이다.

가까이 다가간 현수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천지건설 전무이사 김현수입니다.”

“어서 오시라요. 말씀 많이 들었습네다. 일단 앉으시라요.”

“네, 그럼!”

말을 마친 김정은이 먼저 착석하자 장성택이 그의 좌측에 앉는다. 우측엔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이 앉았다.

이곳에 오기 전 국정원에서 제공한 사진 속의 인물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김정은의 맞은편엔 현수가 앉았다. 우측엔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특임대사가, 좌측엔 까차가 앉았다.

그러고 보니 완벽한 회담장 분위기이다.

“공화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가져오셨다고 들었습네다. 그 말을 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김현수 동지의 올해 나이가 얼맙니까?”

“네? 아, 네.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제1위원장님보다 한 살이 어리지요.”

“네? 기 말이 정말입네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누가 봐도 스물다섯인데 이제 며칠만 지나면 서른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네, 스물아홉 맞습니다. 곧 서른이 되죠.”

“허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어제저녁, 장성택 부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남조선의 천지건설 전무이사인 김현수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민권 보유자이며 푸틴에 의해 준외교관 신분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법률자문으로 수행하고 있는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는 하버드 대학 로스쿨 출신 변호사이며 구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의 증손녀라 한다.

또 다른 수행원인 드미트리 알렉세이 다닐로프는 레드마피아 총 보스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다고 한다.

누구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호위총국 엘리트들에 의해 현수에 관한 자료들이 모아졌다. 브리핑을 받아보니 비상한 재주를 가진 자이다.

아무런 지원 없이 두 개의 큰 공사를 수주했다.

개인적으론 충청북도(7,433.01㎢)보다 넓은 대단위 농장을 설립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 농장은 200년간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치된 상태이다.

개인이 이 큰 농장을 혼자 운영한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공화국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부모 잘 만난 덕에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현수는 맨주먹으로 그 큰 땅덩이를 일궈냈다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 밖에 이실리프 무역상사와 이실리프 상사, 그리고 이실리프 어패럴과 대한의약품에 관한 보고도 받았다.

남한의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해댔기에 자료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김정은이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현수가 세계 최고의 IQ 보유자라는 것이다.

이건 권력이나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대체 어떤 인물일까 궁금했다.

신화창조 티저 영상을 보았을 때 저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조선의 CG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 인물이 당도했다. 화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CG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젊다. 동생도 한참 동생뻘로 보인다. 그렇기에 나이를 물은 것이다.

“김현수 동지, 푸틴 대통령님의 친서를 전해주시디요.”

장성택의 말이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안주머니에서 친서를 꺼내 김정은에게 건넸다.

“흐음!”

나지막하게 침음을 내며 봉투를 뒤집어본다. 붉은 밀납과 그 위에 찍힌 쌍두독수리가 인상적이다. 옆을 슬쩍 바라보자 준비했다는 듯 장성택이 레터 나이프를 건넨다.

“위원장 동지, 역사적인 기록물이 될 수 있으니 밀납의 밑을 개봉하는 거이 좋겠습네다.”

“…그렇군요. 알겠습네다.”

어제 장성택이 그러했듯 김정은도 쌍두독수리가 파손되지 않도록 밀납의 아랫부분을 떼어냈다.

봉투를 열고 안에 담긴 친서를 꺼내 든 김정은은 러시아어로 쓰인 것을 슬쩍 보고는 장성택에게 시선을 돌린다.

“부위원장 동지.”

“네, 위원장 동지.”

공식적인 자리인지라 고모부이지만 깍듯이 예를 갖춘다.

“러시아어 잘하시디요? 이 편지 읽어주시라요.”

“알갔습네다.”

친서를 받아 든 장성택은 잠시 내용을 읽는 척했다.

“험험, 그럼 읽갔습네다. 그냥 번역할 테니 알아서 들으시라요. 험험! 친애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동지께…….”

친서의 내용을 모두 들은 김정은이 현수에게 시선을 돌린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름까지 콕 집어서 기록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푸틴 대통령님과 친분이 매우 깊은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사소한 일로 맺은 인연을 너무 높이 평가해 주셔서 그런 겁니다.”

“겸손하시군요. 그럼 이제 그쪽 제안을 들어보겠습니다.”

“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구 소련 시절 차관해 온 것에 대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푸틴 대통령님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있었다. 다음은 러시아의 제안이다.

1. 파이프라인이 북한을 통과하면 구소련에서 차입한 채무 110억 달러에 대한 이자 100%를 탕감해 준다.

2. 파이프라인 설치로 인한 토지 점유 비용으로 매년 2억 달러를 채무 원금에서 탕감해 준다.

3. 북한이 원할 경우 적정량의 가스를 남한 공급가의 8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공급한다.

“이것이 푸틴 대통령님의 제안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성택과 장정남을 교대로 바라보며 대화한다. 엿듣기 마법으로 들을까 하다가 말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러시아의 제안은 잘 들었습네다. 이제 남조선 기업인 천지건설은 무엇을 제시하겠습네까?”

“파이프라인의 주인은 러시아입니다. 저희 천지건설은 공사만 하는 겁니다.”

“기거야 기렇겠디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다는 겁네까?”

“아뇨. 저희도 제시할 것은 있습니다. 대신 저희 기술 인력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해 주셔야 합니다.”

“남조선 기술자들을 입북시키란 말입네까?”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의 물음이다.

2장 파티장에서 생긴 일

“그러합니다.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의 정밀 시공을 위해 기술자들이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기럼 그들이 들어와 우리 공화국 안을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말씀이십네까?”

장정남은 현수가 훨씬 어리지만 말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리 로그비노프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회담 상황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사항까지도 밀고 당기는 상황이 계속되어 회담은 중간에 점심 식사를 먹어야 할 정도로 길어졌다.

다음은 러시아 쪽 제안의 결과이다.

1. 대 러시아 채무에 관한 이자 100% 탕감.

2. 파이프라인 보존 및 관리 비용 연 2억 달러. 이 돈은 채무 원금 110억 달러에서 탕감해 나감.

3. 매년 150만 톤의 가스 남한 공급가의 80%로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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