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79화 (579/1,307)

# 579

참고로 중동 산유국인 카타르의 원유 매장량은 150억 배럴, 오만은 50억 배럴밖에 되지 않는다.

1998년 10월 30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 일행을 접견하고 남북공동 유전 개발 사업을 협의하기로 했다.

큰 틀에선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고 세부 사항 조율만이 남았으니 거의 다 된 밥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현대그룹의 돈과 기술로 유전을 개발하고, 그것을 아산에 있는 현대석유화학 제2유화단지로 보내는 것이 주제였다.

그런데 이보다 몇 시간 전,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조지 테닛(George J. Tenet)이 부국장을 비롯하여 일행 다섯 명과 함께 청와대 문을 열고 들어섰다(한겨레 1998년 10월 30일).

그 일이 있은 이후 정주영 회장이 염원하던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의 압력은 이겨낼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미국이 대북경제제재 조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 유전 개발 사업은 불가능한 것이다.

“길티요. 공화국엔 막대한 양이 매장된 유전이 있습네다. 하지만 공화국은 그걸 퍼 올릴 기술과 재원이 부족합네다.”

취기가 올랐는지 김정은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걸 퍼 올리기만 하면 정제할 기술은 있습니까?”

“기술이야 배우면 되지 않갔습네까? 하지만 그 기술을 써먹을 설비가 없디요. 다 돈 들어가는 일입네다.”

김정은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숙천유전만 퍼 올릴 수 있으면 적어도 연료 문제는 해결된다.

그 연료를 바탕으로 화력발전소를 지으면 비료 문제도 큰 장애는 제거되는 셈이다. 이것은 의료 부문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남은 것은 식량 문제가 되는데 이마저도 해결할 수 있다. 원유 판 돈으로 식량을 사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위원장님, 정부 요인들과 상의하신다 하셨지만 파이프라인 연결 공사는 위원장님 의중대로 흘러가겠지요?”

“아마도 그럴 겁네다.”

제법 많이 취한 듯 재고 자시고를 하시 않는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며칠 후에 결혼을 합니다.”

“압네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한다는 것을. 축하합네다.”

“네, 감사합니다.”

“긴데 그건 왜 이야기하는 겁네까?”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위원장님의 고민을 해결할 좋은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래요? 기럼 나야 좋디요.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우리끼리 한잔 더 합시다.”

“하하, 네.”

챙―!

잔을 부딪치고는 또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때 장성택이 끼어든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길 그토록 재미있게 하십니까?”

“아, 부위원장님, 부위원장님도 한잔하시죠.”

“…뭐, 그럽시다.”

챙―!

이번엔 셋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이때 리설주가 김정은에게 다가왔다.

“조금 과하신 것 같아요. 찬물이라도 한 잔 드세요.”

“그래? 그럼 그럴까? 찬물 어딨지?”

김정은이 멀어지자 장성택이 시선을 맞춘다. 어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는가!

“오늘 회담은 부위원장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기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래 기분 됴티요.”

“하하, 네. 물론입니다. 우리끼리 있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네다. 김 전무 동지가 우리 공화국의 발전을 위해 애를 쓰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디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하갔습네까?”

“물론입니다. 부위원장님께서 들자고 하시니 당연히 들어야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참 고마웠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길케 생각해 듀니 고맙습네다. 자, 한잔합시다. 우리 공화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하여!”

“장성택 부위원장님의 건강과 영달을 위하여!”

쭈우욱―!

잔을 비워 다 마셨음을 보여주자 환히 웃는다. 이때 그리고리 로그비노프가 나가왔다.

“미스트르 킴, 회담 결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다 특임대사님께서 도와주신 덕입니다. 나중에 푸틴 대통령님과 메드베데프 총리님을 뵈면 큰 은덕을 입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나야 좋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합시다. 근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제 저보다 특임대사님이 먼저 잠자리에 드신 걸 잊지는 않으셨지요?”

“하하! 그럼요. 자, 한잔합시다.”

챙―!

잔을 부딪치고 또 잔을 비웠다. 이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던 북한의 고위직들이 하나하나 다가오며 건배를 제의한다.

그때마다 오늘 회담에서 있었던 사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다.

현수를 곯아떨어지게 하려는 일종의 차륜전을 벌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 측 고위인사들의 패배이다.

술자리가 끝나도록 현수만 말짱했던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앉으시죠.”

“네.”

이곳은 통일부 안가 중 하나이다. 현수의 앞에는 낯이 익은 엄규백 팀장 외에 세 명이 자리하고 있다.

세 명 모두 통일부 소속이다.

“김현수 씨, 지금부터 하는 대화를 모두 녹음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현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말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녹음기를 켠다.

“북한을 방문하셨는데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현수는 대답 대신 엄규백 요원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현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흐음, 말을 하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확실히 할 것이 있습니다.”

“뭔지 말씀하십시오.”

통일부 직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자신들에게 뭔가 다짐을 받아내려 한다는 뉘앙스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법률에 따라 북한을 방문했으면 결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졌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이 외부로 알려지면 북한에서 추진하는 일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 경우 여러분은 국가 기밀 누설죄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뭐라 했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뭐야, 이 사람?”

“이 사람이 지금 누구에게……? 이봐, 천지건설 전무가 뭐 대단한 것 같아? 뭐라고? 국가 기밀 누설죄?”

통일부 직원 셋이 발끈하며 째려본다. 이 순간 현수는 엄규백 요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 팀장님, 이분들 앞에선 이야기 못하겠습니다.”

현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조금 전 자리에 앉기 전에 이들 셋이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북 결과를 청취하기 위해 왔다. 그게 법이다.

남한의 주민이 북한을 방문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 장관의 방문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통일부장관이 발급한 북한 방문 증명서를 소지하고 방북하여야 한다.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그러하다.

방북을 마치면 10일 이내에 육하원칙에 따라 정확하고 자세하게 작성, 제출하여야 하며 접촉 결과에 따른 향후 계획을 정부와 협의, 추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규정된 기간이 지나기에 도착하자마자 엄 팀장에게 전화하여 이 자리를 만들었다.

어쨌거나 법률이 정한 바를 이행하기 위해 왔는데 통일부에서 온 이들 세 사람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

이러니 좋게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현수의 말에 셋 모두 발끈한다.

“뭐야?”

“뭐라고? 지금 어디서……!”

“이런!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통일부 직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다시 엄규백을 바라본다.

“엄 팀장님!”

현수의 시선을 받은 엄 팀장이 입을 연다.

“맞습니다. 김현수 전무님의 말씀대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옮길 경우 세 분은 국가 기밀 누설죄로 처벌받을 것입니다.”

“뭡니까? 국정원 소속이라고 겁주는 겁니까?”

“국정원이 그렇게 대단한 부섭니까?”

“지금 어디서 누구에게……. 이봐, 내가 누군지 알아?”

또 발끈한다.

현수가 왔다는 소릴 듣고 통일부 고만섭 차관은 측근 셋을 보내 방북 결과를 청취토록 하였다. 그렇기에 마주해 있는 것이다. 엄 팀장은 참관인 자격으로 동석한 상태이다.

어쨌거나 통일부 소속 공무원들이 엄 팀장을 노려본다. 어디서 망발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전화 한 통만 써도 되겠습니까?”

“…쓰십시오.”

“고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이름 검색을 하여 공인규 서기관의 번호를 찾아냈다. 그리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한뼘통화를 선택했다. 스피커폰 모드이다.

딴, 딴, 따라라라, 딴라, 따라라라, 딴딴!

E.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은 현임 대통령이 세종로 광장 행사에서 입장할 때 흘러나온 것이다.

“여보세요. 김현수 전무님이십니까?”

“아, 네. 김현수 맞습니다. 공인규 서기관님이시죠?”

현수의 통화 내용을 들은 통일부 직원들은 냉랭한 코웃음을 쳤다. 서기관은 4급 공무원이다. 이 자리에 있는 자신들은 3급 부이사관이 두 명이고, 2급 이사관이 책임자이다.

참고로 3급은 대령급이고, 2급은 준장에 해당된다.

이들 셋은 현수가 고작 4급 공무원에게 전화를 거니 웃기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네, 공인규 맞습니다. 무슨 용무로 전화 주셨습니까?”

통일부 직원들은 현수가 공 서기관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때 말이 이어진다.

“대통령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가능합니까?”

“……!”

엄규백 팀장도 그러하지만 통일부 직원 셋 또한 멍한 표정이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와 통화를 요청한 때문이다.

이때 공 서기관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전화 끊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통령님께 보고하고 곧장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신 건지요?”

“……!”

요 대목에서 현수는 대꾸 대신 통일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모두 고개를 숙인다.

“북한에 다녀온 것에 대한 보고를 드리려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통화하지 마시고 곧장 청와대로 들어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하시니까요.”

“그럴까요?”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신 건 아니지요? 대통령님께서 그건 아주 중요한 국가 기밀이 될 수 있다면서 누설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라 하셨습니다.”

또 통일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아예 시선조차 피한다.

“물론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지금 바로 들어오시겠습니까?”

“네, 여기 일을 마치면 그리하지요.”

“알겠습니다. 볼일 다 보신 후 연락 주십시오.”

딸깍―!

전화를 내려놓고 통일부 이사관을 바라보았다.

“통화 내용을 다 들으셨습니다. 북한에 왜 다녀왔는지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보안을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사안이니 저희에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근데 얼른 청와대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압적이던 통일부 직원들이 깨갱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심한 모습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통일부엔 방북 결과를 말한 것으로 기록되겠지요? 뭐 필요하다면 또다시 와서 진술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알아서 기록해 두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네, 얼른 청와대로 가십시오.”

“그럼 이만 일어납니다. 엄 팀장님, 차를 안 가져왔는데 태워주실 거죠?”

“네? 아, 네, 그럼요. 가시죠.”

엄 팀장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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