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80화 (580/1,307)

# 580

3장 뭔가 수를 쓰긴 써야겠네

“대통령님은 언제 만나셨습니까?”

“방북하기 전에 잠시 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대통령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엄 팀장은 말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현수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정리했다.

“어서 오십시오.”

“네, 또 뵙네요.”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쪽으로…….”

공 서기관의 안내를 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시지요?”

현수의 인사를 받은 대통령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소파에 앉자 대통령의 표정이 바뀐다. 업무 이야길 하려는 것이다.

“전하셨습니까?”

“네,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이거…….”

품속에 지니고 있던 봉투를 꺼내서 건넸다.

봉투의 겉에는 별, 산, 수력발전소, 그리고 벼가 그려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글귀도 있다.

이것은 북한의 국가 문장이다. 공식 문서에만 표기되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은 손수 레터 나이프를 꺼내 봉투를 개봉하고는 내용물을 꺼낸다. 그리곤 그 내용을 읽었다.

이것은 대통령이 준 친서를 김정은에게 주었을 때 그가 직접 작성한 친서로 현수도 내용을 모른다.

“수고가 많으셨네요. 가셨던 일은 성과가 있었나요?”

대통령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네, 원칙적인 합의는 이루어졌습니다. 누군가의 방해만 없으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이번에 가신 일은 북한에 직접적인 이득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며 러시아가 개입된 일이라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미국의 방해가 없을 것이란 우회적인 표현이다.

모르긴 몰라도 방북 기간 동안 대통령은 이 문제를 미국과 상의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네, 그래야지요.”

“김 전무님 덕에 천지건설이 또 한 번 도약하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주어진 일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요. 어쨌든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바쁘시죠?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이제 볼일 다 봤으니 웬만하면 돌아가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 내년 초에 다시 한 번 북한을 다녀와야 합니다.”

“그래요? 이유는 뭐죠?”

“세부 사항에 대한 의견 차가 아직 좁혀지지 않은 때문입니다. 큰 줄기는 정해졌으니 곁가지 정리를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부가 협조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청와대를 나서는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북한 정상들이 주고받은 친서의 내용이 뭘까 궁금했던 것이다.

방금 헤어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강경 대응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3월과 4월엔 전쟁 불사 발언이 있었다.

그런데 친서를 주고받았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읽어볼걸.’

마법을 쓰면 봉투 속의 내용을 읽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생각하였기에 그러지 않은 것이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 엄 팀장이 차 안에 앉아 있다.

“어! 아직 안 가셨습니까?”

“차 안 가져오셨잖습니까. 가시죠.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에구,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저 택시 타면 됩니다.”

“김 전무님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타세요. 가는 데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신세 지겠습니다.”

텅, 텅―!

차에 올라타자 천천히 출발한다. 운전 솜씨가 매우 부드럽다.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으로 이동했을 때 현수가 물었다.

“혹시 말입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국정원에선 어떻게 정보를 습득합니까? 해외에서요.”

“정보원으로부터 얻거나 우리 첩보원들이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스파이인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는 따로 분류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죠?”

“물론입니다. 정보는 정확성이 생명이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아뇨,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현수가 내린 곳은 천지건설 사옥 앞이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술 한잔하지요.”

“네, 그럽시다.”

엄규백 팀장이 사라진 후 현수는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부사장님!”

조인경 대리가 깍듯이 고개 숙여 예를 취한다.

“네? 부사장님이라니요?”

“모르셨어요? 안 계시는 동안 천지건설 부사장님으로 승진되셨어요. 초고속 승진도 이런 건 없대요.”

“에구……!”

어찌 된 영문인지 짐작이 된다.

“게다가 천지기획 사장님도 겸임하신다면서요?”

“그것도 소문난 겁니까?”

“어머, 그럼요! 1층 로비에 대문짝만 하게 붙여놨는데 들어오시면서 못 보셨나 봐요.”

“네, 조 대리님. 아니, 이제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하죠?”

“아직은 아니에요. 현재는 그냥 형수 후보지요. 내년엔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좋은 분 소개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뺨은 안 맞겠군요.”

“호호! 그럼요. 창호 씨에게 양복 한 벌 해달라고 하세요.”

“하하, 네. 이제 그래야지요. 근데 창호 형에게만 받는 겁니까? 조 대리님은 입 싹 씻으실 거예요?”

“전 평생 도련님으로 모시잖아요.”

“헐! 너무 짜다. 나도 평생 형수님이라 불러야 하는데.”

현수의 농담에 조 대리가 예쁘게 흘긴다.

“어라? 지금 도련님 유혹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예쁜 눈으로 바라봐요?”

“쳇! 알았어요. 나도 양복 해줄게요. 됐어요?”

“당연하죠. 그나저나 사장님 계시죠?”

“아뇨. 여긴 안 계셔요. 하지만 금방 오실 거예요. 아래층에 내려가셨거든요.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제가 연락할게요.”

“네, 고맙습니다.”

장차 형수 될 여자이기에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헐!”

현수가 사장실에 발을 들여놓고 내뱉은 첫 마디이다.

“이게 다 뭐람!”

신형섭 사장이 사용하는 사장실은 사면의 벽을 모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사진 및 도면 등으로 완전히 도배되어 있었다.

“이걸 꼭 따내고 싶으신 모양이네. 흐음! 뭔가 수를 쓰긴 써야겠네. 어떻게 하지?”

공사를 따내기만 하면 천지건설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건설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문제는 경쟁 상대가 너무나 쟁쟁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Vinci, 독일의 Hochtief, 스페인의 ACS그룹, 호주의 Leighton Holdings, 미국의 Bechtel, 지나의 건축공정총공사는 모두 세계 10위 안에 드는 거대 건설사들이다.

이들이 몸길이 90m, 키 60m 정도 되는 프시타코사우루스(Psittacosaurus)라면 천지건설은 길이 30m, 키 15m짜리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쯤 될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이란 큼지막한 먹이를 놓고 싸우기엔 덩치 차이가 너무 난다. 기술력이야 비슷하다고 우길 수 있지만 브라질 당국이 믿어 줄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그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 한다.

신형섭 사장의 제안처럼 항온 마법진이 적용된다면 100%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기엔 마나석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남의 나라 공사에 그걸 쓰고 싶은 마음도 없다.

‘흐음, 그나저나 마나석을 확보해야겠군. 유카리안 영지에 또 들러야겠네. 근데 그건 인위적으로 못 만드나?’

다이아몬드도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마나석이라 하여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생각난 김에 아공간의 마나석을 꺼내보았다.

여러 색상이 있지만 자색이 많은 듯하다.

‘응? 그러고 보니 자수정과 비슷하네.’

수정은 다른 보석과 달리 흔하기에 준보석으로 취급된다.

색깔에 따라 Amethyst(보라색), Citrine(황색), Rock Crystal(무색), Smoky Quartz(회색), Rose Quartz(분홍), Ametrine(황색 & 자색) 등이다.

내친김에 노트북을 꺼내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마나석의 등급은 순도에 따라 다르다. 마나석 내부에 이물질 내포 함량과 투명도가 등급을 좌우하는 것이다.

같은 등급이라도 크기가 클수록 많은 마나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크고 맑을수록 좋은 것이다.

“흐음, 내게 수정이 있었지? 아공간 오픈!”

일렁이는 시커먼 공간 속에 손을 넣어 반지와 목걸이 등을 꺼냈다. 백두마트 서초점 등을 털 때 주얼리 코너에 진열되어 있던 것들이다.

‘흐음, 어디 보자.’

여러 개의 마나석과 나란히 놓고 두 가지를 비교해 보았다.

겉보기엔 비슷하다. 마나석은 자연 그대로인 반면 장신구에 박힌 수정은 커팅되고 연마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스승님의 스태프! 그래, 거기 박힌 것은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이었어.”

멀린은 9서클 대마법사가 되면서 쓰던 스태프를 아공간에 처박아두었다. 그것이 있으나 마나 비슷한 위력을 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칭호를 얻게 한 광룡을 제거했을 때이다.

어쨌든 그것의 끝에는 보라색 마나석이 끼워져 있다. 잘 연마되어 광채가 나며 오리 알보다 조금 더 크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역시 자수정 비슷하다. 얼른 아공간에 넣었다. 언제 신 사장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흐음, 자수정이 마나를 담을 수 있을까?”

자수정은 원적외선을 방사하여 혈액 순환과 같은 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촉진시켜 주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피부 세포에 생기와 탄력을 부여해 주고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 효능도 있다.

자수정이 함유하고 있는 미네랄 성분이 피부의 정화 작용 및 해독 작용을 해준다는 것이다. 하여 여드름 치료에도 좋고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다.

게다가 음이온을 발생하는 효능도 있어 에너지 생성을 돕는다고 보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자수정을 담았던 물을 마시면 변비까지 해결된다는 의견이 있다.

온통 몸에 이롭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마나석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하여 꺼낸 자수정을 손에 쥐고 마나를 밀어 넣어보았다.

‘어라? 이건…….’

약간의 저항이 있는가 싶더니 마나가 쑥 빨려들어 간다.

2∼3분간 마나를 넣어보았다. 계속해서 들어간다. 언제까지고 그럴 수 없어 일단 멈췄다. 그리곤 느껴보았다.

불어넣은 마나가 조금씩 배어나온다. 가만 놔두면 언젠가는 거의 모든 마나를 잃을 듯하다.

“흐음! 이것 봐라?”

자수정의 이모저모를 살피다가 세공 도구를 꺼냈다.

아버지가 다니는 추씨 공방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현수가 대학교 1∼2학년 때 주말마다 아버지를 도와 작업할 때 이걸 썼다. 그때 추씨 사장님이 열심히 일한다면서 기념으로 준 건데 혹시 몰라 아공간에 담아두었었다.

아르센 대륙에서 쓸 일이 있을까 해서이다.

어쨌거나 자수정의 경도는 7이다. 그 위에 마법진 하나를 그려보았다. 봉인마법진이다.

“바리탈리제이션!”

샤르르르릉―!

마법이 구현된다. 자수정 자체가 마나를 갖고 있기에 별도의 마나석은 필요 없다.

“흐음, 어디 보자.”

자수정을 손에 쥐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조금씩 흘러나오던 마나가 자수정 안에 갇혀 있다.

“오오, 유레카!”

현수는 본인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자 환히 웃는다. 수정이 마나석을 대체할 수 있다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제 색깔별로, 순도별로 마나를 넣어보고 얼마나 들어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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