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3
“그래, 그래야지. 참, 저번에 말한 것 아직 기억하지?”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느닷없는 말이기에 대체 무슨 뜻이냐는 표정이다.
“반품은 어떠한 경우라도 불가일세! 알지?”
“네? 아, 네. 그럼요. 제가 왜 반품을 하겠습니까? 그럴 일 절대 없으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그래, 자네에게 부탁하네. 형제 없이 자라서 때론 이기적이거나 버릇이 없을 수도 있어. 그래도 꾹 참고 잘 보듬어주게.”
“네, 걱정 마세요, 장모님.”
“어험! 여보, 사위도 왔으니 영계백숙 얼른 내와.”
“어머, 이이는! 또 사위 핑계대고 술 마시려고…….”
“나 건강해진 거 알지? 이젠 조금 많이 마셔도 돼. 그러니 어서 술상 봐와.”
“쳇! 알았어요.”
안 여사가 주방으로 간 사이에 현수는 안준환 옹을 찾아뵈었다. 가장 어른이시니 먼저 절을 했어야 하는데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하신 것이다.
큰절을 올리고 덕담을 들었다. 현수는 준비했던 반지를 꺼냈다. 건강에 좋은 것이니 빼지 말라고 했다.
마법사라는 것을 모르시기 때문이다.
주안상을 받고 장인, 장모에게 반지를 주었다. 이번엔 상세한 설명을 했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또한 레드마피아와 토탈가드에서 경호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다음은 결혼식 후의 일정이다.
내일 결혼식이 끝나면 곧장 김포공항으로 가서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직행할 것이라고 했다.
현수가 지현의 집을 나선 것은 깊은 밤이다. 내일 결혼식이 있으므로 쉬라면서 보낸 것이다.
“휴우∼! 내일인가?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괜스레 싱숭생숭하다. 지금껏 홀로 밤을 보냈는데 앞으론 사랑스런 여인들과 함께할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던 현수는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어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곧장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창밖을 보니 멀리 경호원들이 경계하고 있음이 보인다.
손을 흔들어 수고한다는 뜻을 표하곤 야식집에 전화를 걸었다. 양념족발과 보쌈 등을 주문해 경호원들에게 보냈다.
물론 약간의 알코올도 주문했다. 자신이 집에 있는 한은 어느 누구도 부모님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마당엔 리노와 셀다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웬만한 침입자들은 얘들도 감당 못할 것이다.
“앱솔루프 배리어!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키곤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는 거 오랜만인 것 같군.”
습관적으로 전능의 팔찌를 살피던 현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법을 쓰면 마나가 소모되므로 색깔이 변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조짐을 보이는 듯하다가 이내 원상이 된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흐음, 왜 이러는지는 나중에 알아보자. 일단은 그거 먼저 준비해야 해. 아공간 오픈!”
시커먼 공간 속에 손을 넣어 몇 권의 마법서를 꺼냈다.
아무리안 델로 폰 타지로칸이라는 9서클 네크로맨서 리치를 제압하고 얻은 것이다.
먼저 신체 개조 마법이 기록된 부분을 찾았다.
이것은 수련을 통해 바디체인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벌모세수시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상당히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만드라고라가 메인 재료이다. 이것의 효능은 100년 묵은 천종산삼과 비슷할 것이다.
일단 30뿌리를 꺼냈다. 아공간을 확인해 보니 세 사람 분을 만들 재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심한 손길로 각종 재료들을 정제하고 배합하였다.
아르센 대륙의 그것보다 월등하게 정밀한 각종 계량 기구들이 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나고야 환단 27개가 완성되었다.
이걸 하루에 하나씩 9일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매일 환단을 복용할 때마다 추궁과혈 비슷한 안마를 해주어야 한다. 전문용어로 체내 마나 샤워라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좋아지던 몸은 10일째가 되는 날 바디체인지가 이루어진다. 이때 모든 부조화가 깨지고 불균형이 바로 잡힌다. 가히 완벽한 신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떠한 세균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신체이다. 극강한 면역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 계열 마법사들이 이 방법을 연구해 낸 이유는 최상의 후손을 얻기 위함이다.
누가 창안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마법을 만든 사람이 바디체인지를 겪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부가 될 여자를 이런 방법으로 탈태환골 내지는 벌모세수 시킨 후 아기를 잉태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자식은 탁월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평생 잔병치레를 겪지 않았다.
게다가 마나에 대한 감응이 뛰어나 마법적 성취가 빨랐다. 남들보다 빠르게 서클을 올릴 수 있는 신체가 된 때문이다.
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줄어들기만 하는 네크로맨서 계열을 중흥시키려는 의도에서 고안된 방법이다.
이제 세 신부에게 환단을 복용시킬 것이다.
아흐레에 걸친 추궁과혈은 바디체인지를 유도해 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완벽한 신체가 되게 한 뒤 임신시키면 이 모든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듯 1년쯤 지나면 완벽했던 균형이 깨지면서 조금씩 불균형이 생기게 될 것이다.
물리학엔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이 항상 전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다시 말해 우주의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보다 더 무질서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의 섭리를 어길 수는 없다. 그래서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효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복용한 환단 덕분에 생명 연장 효과를 얻는다. 기록에 의하면 최소 150년간 생을 유지했다고 되어 있다.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에게 있어 결혼 예물보다 이 환단의 효과가 더 좋은 선물일 것이다.
70살까지는 20대의 모습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아름다움이 70살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그 이후가 되면 자연스럽게 늙는다. 그런데 세월의 반이다.
90살엔 30세로 보일 것이고, 110살엔 40세로 보인다. 130살이 되면 50세쯤으로 보일 것이다.
더 늙어서 150살이 되면 환갑, 170살엔 칠순이다. 그리고 늙어 죽을 때가 되어야 75살로 보일 것이다.
요즘 75살을 생각해 보면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쉐리엔의 등장을 수많은 여성이 환영했다면 이 환단은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 마지않는 불로불사의 영약 대접을 받을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이며, 제발 팔아달라는 애원을 듣게 될 것이다.
“휴우! 이제 끝이군.”
현수는 아홉 알씩 담긴 유리 용기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의 효능을 들었을 때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가 보여줄 표정이 상상된 때문이다.
이것을 아공간에 담고는 내일 할 일들을 메모했다.
날이 밝자마다 사우나에 들러 목욕과 이발부터 해야 한다. 다음엔 양복과 한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스위스 MSC사의 지앙뤼지 아폰테 사장의 자가용 비행기를 확인해야 한다. 이게 없으면 크리스마스에 있을 결혼식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오후 5시인 것이 천만다행이다. 청첩장은 민주영이 대신 발송했으니 올 사람은 올 것이다.
“몇 사람이나 오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날이 밝아온다. 현수는 차를 몰고 사우나로 향했다.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밝은 것이다.
* * *
“이로써 두 사람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가 되었습니다. 박수와 환호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란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
“신랑, 신부! 잘사세요.”
“행복하세요.”
“신부가 정말 예쁘다! 신랑, 부럽습니다.”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축복의 말이 넘친다.
그렇게 혼배미사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성당 밖으로 나서자 플래시 세례가 기다리고 있다. 현수와 지현은 기자들이 요구하는 포즈를 취해주며 환히 웃었다.
그러고 보니 광장동 성당은 수많은 인파로 뒤덮여 있다. 쟁쟁한 하객들이 몰린 때문이다.
청와대에선 대통령 비서실장을 파견하여 축복해 주었다. 공인규 서기관도 왔다.
국방부에선 국방장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참석하였다.
해군의 경우는 1, 2, 3함대사령관뿐만 아니라 장성 대부분이 왔다. 곧 있을 현수의 혜택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복현 대위와 배영원 상사 등의 얼굴도 보인다.
육군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전방 사단장들을 뺀 장성 대부분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항온전투복에 관한 소문이 번진 때문이다.
공군 역시 소장 이상은 거의 다 왔다.
어쩌다 양만춘함에 탑재된 슈퍼링스의 변신을 알게 된 공군참모총장이 동원령을 내린 때문이다.
아무튼 수백 개의 별이 떴다. 모두 정복 차림인지라 누가 보면 장성이 결혼하는 것으로 오인할 지경이다.
여기에 천지그룹, 백두그룹, 태백그룹을 위시한 국내 20대 재벌 총수 전원이 참석했다.
물론 임원진을 대동한 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주도권을 누가 쥐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재벌 쪽 하객만 100명을 훨씬 넘긴다.
이현우와 이수린 사촌 남매, 그리고 조경빈과 이수정, 이수연 자매도 참석했다.
태백조선소는 차장급 이상이 왔다. 강전호 부장은 물론이고 우정훈 과장과 박창민 과장도 있다.
이들 바로 곁에는 CMS 오머런의 세바스티앙 부회장과 베아트리체가 있다. 그리고 MSC사의 지앙뤼지 아폰테 사장과 엘리자베스 부부도 서 있다.
물론 강전호와 베아트리체는 손을 꼭 잡고 있다. 전호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모양이다.
5장 세기의 결혼식
국회의원 홍진표, 국정원 엄규백 팀장, H일보 강민경 기자, 강남경찰서 이현준 경위도 청첩장을 받았는지 와 있다.
이은정을 비롯한 이실리프 무역상사 직원 전부, 민주영을 비롯한 이실리프 상사의 과장급 이상 전원이 참석했다.
대한의약품 역시 과장급 이상 전원이 왔다. 이실리프 어패럴은 아예 사무실 문을 닫고 왔다고 한다.
걸그룹 다이안 멤버 모두 참석했다. 조연 사장과 조환 매니저도 왔다. 축가는 이들이 자청해서 불렀다.
신화창조의 이인철 PD와 한누리 역을 맡은 민채린도 왔다.
현수의 대학 동기들도 거의 다 왔다. 이렇게 각계각층 사람들이 와서 하객만 거의 1,000여 명이다.
현수는 하객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했다. 겉으론 환히 웃고 있지만 실상은 긴장 상태이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흑룡이라는 저격수 때문이다.
수많은 하객에 둘러싸여 있기에 저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목표물이니 무식하게 M99식 12.7㎜ 같은 대물저격소총을 쓰진 않을 것이다.
지나군은 다양한 저격소총을 사용하는데 그중 독일이 만든 DSR―1도 포함되어 있다. 불펍 볼트액션식이다.
7.62×51㎜ 나토탄, 338 라푸아 매그넘, 308 윈체스터, 300윈체스터 매그넘 탄환을 사용할 수 있다.
유효 사거리는 사용하는 탄환에 따라 다르며 800∼1,400m이다. 총구 속도는 850㎧이다.
현재 성당 주변은 인파로 둘러싸여 있다.
워낙 높은 사람들이 많이 왔기에 광장동을 관할하는 광진경찰서의 거의 모든 경찰관이 동원되어 경계 근무 중이다.
이것으로 부족하다 여겨 성동경찰서와 강동경찰서에서도 지원 나와 있다. 이들은 주로 교통 통제 등을 맡고 있다.
흑룡은 가급적 먼 곳에서 저격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본인의 안전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놈이 DSR―1을 사용한다 치고, 1,000m 밖에서 쏠 것이라 가정하면 발사 후 약 1초 뒤에 탄환이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