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84화 (584/1,307)

# 584

계속해서 움직이기에 괜한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다. 그럼 곧바로 경찰의 수색이 시작된다.

어쨌든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놈을 찾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고 숨죽이고 있을 테니 어찌 찾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저격은 없었다.

현수를 노리던 흑룡이 너무나 많은 인파가 몰리자 일찌감치 다음을 기약하고 현장을 떠난 때문이다.

신부 쪽 하객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거의 모두 법조계 사람들이다. 검사는 거의 전원이 왔다. 고검장의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이니 모두 참석한 것이다.

판사와 변호사도 엄청 많이 왔다. 권철현 고검장이 나온 학교 출신은 거의 다 온 것이다.

워낙 신망이 두터운 인사라 그럴 것이다.

이 밖에 고검장 부부의 친척과 지인들이 참석해 있고, 신부 친구들도 많이 와 있다.

성당 입구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보낸 대형 화환과 천지그룹 이연서 회장의 화환만 세워져 있다.

나머지는 모두 쌀 화환이다.

현수의 결혼은 방송을 탔다. 그때 축의금은 받지 않을 것이며 꼭 축하해 주고 싶다면 쌀 화환을 보내달라고 했다.

혼배미사가 끝나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눠 줄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쌀 화환이 도착했다.

현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보낸 것이다.

쌀 포대는 가능한 높이 쌓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배달되는 중이다. 벌써 5톤 트럭 40대 분량이 왔다고 한다.

20㎏짜리 10,000포대이다. 한 포대에 4∼6만 원 정도 하니 중간 가격으로 계산해도 5억 원어치이다.

봉사 나온 성당 청년들이 부지런히 옮기는 중이지만 양이 너무 많아 헉헉대고 있다. 하여 일부 하객이 돕는 중이다.

한쪽에선 잔치국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인원이 너무나 많다. 하여 부랴부랴 성당 식구들을 동원하여 판을 키우는 중이다. 덕분에 성당 신자들은 물론이고 이웃 주민들까지 와서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다.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도 한 그릇씩 돌아갔다.

나중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현수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4,000명이 넘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온 것이다.

“현수야, 오늘 멋졌다. 잘살아라.”

“그래, 고맙다.”

민주영이 어깨를 두드린다.

“야, 오늘 같은 날 부조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 하객들 봐라. 일인당 5만 원씩만 받아도 대박이겠다.”

김상렬이 한 말이다.

“괜찮아. 나 많이 벌잖아. 그나저나 넌 어때? 나아졌어?”

“그래, 고맙다. 그렇게 많은 돈을 찔러줬는데도 이제야 얼굴을 보네. 미안하다.”

지난번에 돈이 필요하다 하여 50억 원을 송금해 준 바 있다. 신세계마리타임에 신용대출해 준 것이다.

“아니, 괜찮아. 그리고 나아졌다니 다행이다. 돈이 더 필요하면 또 말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알았지?”

“그래, 그럴게. 고맙다, 친구야.”

상렬과 굳은 악수를 나눴다.

“현수야, 오랜만이다.”

“아, 그래. 너희 진짜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내지?”

우르르 몰려온 이들은 현수의 대학 동기들이다.

학창 시절의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4년간 동문수학하며 정든 녀석들이다. 3류 대학 수학과 출신이라 다들 먹고살기 바빠 서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현수야, 결혼 축하한다.”

“짜식, 마누라 한번 기차다. 축하한다. 잘살아라.”

“그래, 고맙다. 너희들은 장가갔지? 아직 안 갔으면 나중에 꼭 청첩장 보내라. 알았지?”

“고맙다. 꼭 와라. 그리고 네가 우리 중 처음으로 장가가는 놈이다.”

“뭐? 아무도 안 갔어? 이제 곧 서른인데.”

“아무도 못 간 거지. 학벌이 시원치 않아 돈을 제대로 못 버는데 누가 시집을 오겠냐?”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2013년 5월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25∼29세 남성의 85.4%가 미혼이다. 30∼34세도 50.2%에 이른다.

여성은 25∼29세가 69.3%, 30∼34세 29.1%가 미혼이다.

학업 기간이 늘고 취업이 늦어지면서 남성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한 것이 요인이다.

또한 여성의 학력 상승 및 경제 활동 참여 증가가 저학력 미혼 남성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가가 분석한 내용은 이것이지만 실제론 경제력 때문이다. 돈 벌기 힘든 세상이 되었기에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들 뭐 하는데?”

“난 자동차 영업해. 잰 여전히 PC방 알바고.”

“너는?”

“난 학원 강사야. 얘는 교습소 운영하고.”

다들 학벌이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확실히 자리 잡은 녀석이 드물다. 이러니 장가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아무튼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번 뭉치자. 너 보고 싶었는데 솔직히 네가 너무 출세해서 연락 못했다.”

“알았다. 나중에 보자.”

친구들과의 만남 이후 현수는 하객들과 인사했다.

너무 쟁쟁한 사람들이 많아서 누군 인사하고 누군 안 하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장님, 공항으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이기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사람을 몰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때 주영이 입을 연다.

“이실리프 상사 운송 책임자야.”

“뭐?”

“그런 거 있어. 자꾸 알려고 하면 다친다. 일단 차에 타라. 공항까지 길이나 안 막혔으면 좋겠다. 신혼여행 안 갈래?”

“아! 그래? 알았어. 가야지.”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저쪽에 모셨어. 네 장인 장모님도. 근데 무슨 신혼여행을 부모님이랑 같이 가냐? 이런 신혼여행은 또 처음이다.”

민주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해도 너무나 이상했던 때문이다.

“얌마, 이때까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셨다. 당연히 모시고 가야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외여행을 하시겠냐? 앞으론 결혼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예단이나 혼수, 이바지 음식 이런 거 대신…….”

잠시 현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때 근처에 있던 기자가 슬며시 녹음기를 켠다. 다음날 결혼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기사가 실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결혼식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및 일회성 이벤트로 가득하다. 과다한 지출을 강요하는 예식 문화는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에게 크나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2013년 7월에 결혼한 A씨의 결혼 비용이다.

예식장 꽃 장식 : 600만 원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등 대여료 : 500만 원

식장 대관료 : 200만 원

비디오 및 사진 촬영 : 400만 원

축가 : 50만 원

이렇게 지불하고도 손에 남는 것은 몇 장의 사진과 한 장의 DVD뿐이다. 신혼 때만 잠깐 보고 거의 보지도 않는다.

이 밖에 폐백 비용 50만 원, 이바지 음식 150만 원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출해 가며 결혼식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이런 비용을 지출하느니 새 출발을 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살림 밑천이 될 종자돈으로 주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이제 결혼에서의 허례허식은 사라져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을 할 것이 아니라 부부가 행복하게 살 것을 생각해야 할 시기이다.

작은 결혼식이 곳곳에서 열리는데 이보다 더 작아야 한다.

2013년 12월 24일에 치러진 천지건설 김현수 부사장의 결혼식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성당에서 한 결혼이지만 꽃 장식은 일체 없었다.

예단도 주고받지 않았으며,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빌리지도 않았다. 신랑 댁으로 보내지는 이바지 음식도 없었다.

신부는 흰색 원피스 위에 면사포만 썼고, 신랑은 깔끔한 양복 차림이다. 신부 측 하객의 말에 의하면 혼수로 이불 한 채 준비했다고 한다.

결혼식 준비를 맡았던 이실리프 상사 민주영 전무이사의 말에 의하면 성당에 지불한 비용도 없다.

김현수 부사장의 결혼식은 하객을 위한 잔치국수와 신랑이 신부에게 준 예물, 그리고 이불 한 채가 전부이다.

일가친척 및 하객들이 축의금 대신 보낸 쌀 화환(20㎏짜리 1만여 포대)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허례허식이 배제된 아름다운 결혼식이다.

그리고 신랑, 신부는 결혼식 비용을 줄이는 대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신혼여행을 떠났다.

―박원지 기자 [email protected]

[ⓒ 고려일보(www.koreanew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중에 신혼여행지에서 인터넷으로 이 기사를 접한 현수는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지현에게 준 예물 값만 수백억 원이기 때문이다.

* * *

“어! 똑같은 게 두 대네요. 우리 어떤 거 타요?”

지현은 두 대의 Aerion SBJ를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인다.

둘 중 하나는 MSC사의 아폰테 사장 자가용 비행기일 것이다. 현수로부터 말만 들었을 뿐 실물은 처음이다.

미국의 Aerion Corporation사에서 제작하는 초음속 비즈니스 비행기 Aerion Supersonic Business Jet는 대당 8,000만 달러짜리이다.

똑같이 생긴 것 중 하나엔 MSC라는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응, 저거. MSC라고 쓰여 있잖아.”

“그래요? 근데 우리 언제 출발해요? 출발 시간을 알아야 미리 수속 밟고 해야 하잖아요.”

“아냐. 아무 때나 우리가 타면 그때 출발해. 자가용 좋은 게 그거잖아.”

“……!”

“그럼 갈까?”

현수가 어깨를 감싸 안자 지현은 고개만 끄덕인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공항 관계자가 안내를 해준다.

“김현수 부사장님, 저쪽 비행기에 탑승하십시오.”

“네? 저건 우리가 탈 게 아닌데요?”

“아닙니다. 저게 맞습니다. 저쪽으로 가십시오.”

공항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 올랐다.

“어서 오십시오. 기장 윌리엄 스테판입니다. 반갑습니다, 보스. 처음 뵙는군요.”

정중히 예를 갖추는 사람은 40대의 백인이다.

“그래요? 근데 보스라뇨?”

“제가 알기로 이 비행기는 보스의 것입니다. Aerion에서 갓 만든 따끈따끈한 녀석이죠. 보스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 거라구요?”

“네. 지앙리쥐 아폰테 사장님께서 선물하셨다는 그것입니다.”

“아! 그게 벌써 나온 거예요?”

“사장님께서 손을 쓰셨습니다.”

힘 좀 썼다는 뜻이다. 말을 하며 윌리엄 스테판이 싱긋 웃는다. 다 알면서 왜 이러느냐는 표정이다.

그러다 트랩을 올라온 지현을 본다.

“오! 이분께서 신부님이시군요. 결혼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해요.”

“인사해. 이 비행기의 기장 윌리엄 스테판 씨야.”

“처음 뵈어요.”

“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사모님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현이 왜 이런 표현을 쓰느냐고 현수를 바라본다. 현수는 두 손을 슬쩍 들었다 내렸다.

“이 비행기가 내 거라네. 그리고 스테판 씨가 기장이야.”

“아! 그래요? 근데 이게 진짜 현수 씨 거예요?”

“그래. 자, 일단 자리에 앉지.”

“그래요.”

잠시 후 양가 부모님이 탑승했다. 이연서 회장도 올라탔다.

곁의 비행기엔 아폰테 사장 부부와 비서인 알베르트, 그리고 세바스티앙 부회장이 탑승했다고 한다.

베아트리체는 한국에 온 김에 전호와 데이트를 한다며 한 달짜리 휴가를 내서 자리에 없다.

최대 12인승으로 개조할 수 있는 이 비행기의 현재 좌석은 여덟 개이다. 스튜어디스까지 여덟 명이 탑승했다.

“이제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이 말을 끝으로 Aerion SBJ는 활주로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았다. 길고 긴 비행이 시작된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