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5
현수와 지현은 어른들과 담소를 나눴다.
고검장 부부는 사위 덕분에 호강한다며 웃음꽃을 피웠다.
언제든 해외여행을 가고 싶으면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말했더니 정말이냐면서 반문한다. 하긴 주변에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사람을 친지로 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당 8천만 달러짜리 비행기를 가진 사위가 생겼다.
껄껄 웃으며 은퇴 후엔 종종 이용하겠다고 한다.
부모님도 아들 소유가 된 비행기를 어루만지느라 여념이 없다. 스튜어디스가 피곤할 정도로 이것저것 많이 물으셨다.
이연서 회장은 양가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곤 잠이 들었다.
조금 피곤해 보여 바디 리프레쉬 마법을 걸어주려다 말았다. 별다른 변화 없는 지루한 비행보다는 차라리 잠자는 게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자 기장은 자동 항법 장치로 전환하고 객실로 나왔다. 그 결과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윌리엄 스테판은 스위스 공군 출신이다. 그렇기에 융프라우 별장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반둔두, 비날리아, 킨샤사, 아디스아바바, 모스크바, 서울이 주요 목적지가 될 것이니 항로를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모두들 피곤한지 잠에 빠져든다.
“딥 슬립!”
샤르르르르릉―!
기장을 제외한 일곱 명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든다. 현수는 아공간에 담겨 있던 것들을 꺼냈다.
각종 곡물 종자와 육종 재배에 관한 전문 서적들이다.
책을 펼쳐 들자 담겨 있던 내용이 현수의 뇌로 다운로드 되는 것 같다. 비약적으로 좋아진 두뇌 덕분이다.
몇 권의 책을 잃는 동안 기장이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한다.
그런데 모두 잠들어 있고 현수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방해 받지 않고 식물 재배 전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 * *
“어웨이크! 어웨이크! 어웨이크! 어웨이크!”
“하암, 잘 잤다.”
“끄으응! 여긴……?”
“아하암!”
잠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킨샤사 공항에 당도했으니 깨운 것이다.
“바디 리프레쉬! 바디 리프레쉬! 바디 리프레쉬!”
“아함! 개운해. 모처럼 잘 잤네.”
가장 먼저 일어난 장인께서 흡족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곧이어 모두들 생기발랄한 표정이 된다.
역시 효과 만점의 마법의 위력이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장인, 장모님, 처조부님, 킨샤사 공항입니다.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
“벌써? 벌써 도착한 거야?”
“에구, 벌써라니요. 아주 오래 주무셨어요.”
김포공항에서 킨샤사까지 직선거리는 14,000㎞이다.
현수의 자가용 제트기가 된 Aerion SBJ는 마하 1.6까지 속력을 낼 수 있다.
소닉붐 없는 순항 속도는 마하 1.1∼1.2이다.
이것의 평균값을 취하면 시속 1,400㎞ 정도 된다.
그런데 비행기라 하여 남의 나라 영공을 제멋대로 통과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돌아서 왔다. 그렇게 하여 이동한 거리가 대략 16,800㎞이다.
열두 시간 이상 비행을 한 것이다.
그 시간 내내 깊은 잠을 잤으니 금방 온 것 같은 것이다.
“현수야, 우리가 얼마나 잔 거냐?”
어머니의 물음에 대꾸한 이는 이연서 회장이다.
“사돈, 이 비행기는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는 동안 12시간 45분 걸렸습니다.”
“어머! 그래요? 그런데 왜 금방 온 거 같죠?”
“그거야 어머니께서 푹 주무셔서 그렇지요. 결혼식 때문에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그래, 그랬구나. 아무튼 편히 왔다.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으면 몸이 찌뿌듯해야 하는데 안 그러는구나.”
“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자, 이제 내리세요.”
기장이 먼저 내려 기다렸고, 전속 스튜어디스는 어르신들이 내리는 것을 도왔다.
“여긴… 아직도 여름이네요.”
“그럼, 적도 바로 아래잖아. 일 년 내내 더운 데야, 여긴.”
“그렇군요.”
따가운 햇살이 내리쬔다. 이 정도면 금방 더위를 느껴야 한다. 그늘 하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일행 중 어느 누구도 덥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현수가 항온 마법진을 주머니에 넣어준 때문이다.
“자, 가시지요.”
“그래.”
막 발을 떼려는데 25인승 버스 한 대가 다가온다.
“누구지?”
“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춘만입니다.”
버스에선 내린 이는 이춘만 본부장이다. 그룹 회장이자 연장자인 이연서 회장에게 가장 먼저 깊은 절을 한다.
현수가 아니었다면 만나볼 영광조차 없는 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이 현수를 바라본다. 본 적이 있지만 잊은 것이다.
“회장님, 이곳 킨샤사 본부의 이춘만 본부장입니다.
“아, 이춘만 본부장! 맞아. 미안하네.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서 자네 얼굴을 깜박했네. 더운 데서 수고가 많네.”
“아, 네, 감사합니다.”
이 본부장의 허리가 또 한 번 꺾인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뜻이다. 이때 현수가 끼어들었다.
“본부장님, 차 가지고 오신 거예요?”
“그래. 아니,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얼른 이 회장의 눈치를 본다. 같은 임원이라도 이사와 부사장은 차이가 많다.
평이사에서 상무이사로 진급하고 또 전무이사로 올라간 뒤에야 될 수 있는 것이 부사장이다.
그런데 평이사가 부사장에게 반말을 했다.
그래서 꾸중이 떨어질 것만 같다 느낀 때문이다. 하여 이연서 회장의 표정이 변하려 할 때 현수가 먼저 선수 쳤다.
“에이, 왜 이러세요. 우리끼리는 그냥 예전처럼 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참! 이쪽은 저희 부모님이세요.”
“응! 아, 안녕하십니까?”
“이쪽은 장인, 장모님이시구요.”
“아! 안녕하십니까? 이춘만입니다.”
이 본부장은 절절맸다. 모두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인데 이 회장이 떡하니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그, 그러세. 아니, 그러세요.”
“에이, 그러지 말라니까요. 회장님도 괜찮다고 하실 거니까 그냥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셨죠?”
“그, 그래도 어떻게…….”
“그럼 우리끼리 그냥 갑니다.”
“아, 알았네. 어서 버스에 올라타시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반 공대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차를 타고 저택을 향해 출발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지만 워낙 더운 곳이라 시원하진 않았다.
“현수야, 저거냐?”
큰 도로에서 작은 도로로 접어든 지 대략 10여 분쯤 지나자 웅장한 저택이 드러난다. 이걸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엔 기대감이 어려 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네, 어머니.”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큰 집을……! 지르코프라는 사람 정말 통이 큰 모양이다.”
“하하! 네, 그럼요.”
말을 하는 동안 현관 앞으로 버스가 들어간다. 곧 있을 결혼식 때문에 온갖 치장이 되어 있어 아주 화려해 보인다.
들어오는 입구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5㎞ 정도 된다. 그 도로의 양쪽에 군인들이 서 있다.
현수 일행이 탄 버스엔 천지약품 로고가 그려져 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두 개의 나뭇잎을 물고 있는 그림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고, 두 잎사귀는 의료와 복지를 의미한다. 적어도 킨샤사에선 이 로고를 모르는 이가 없다.
모든 소매점 간판에 이것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 번이나 언론에 노출되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제지 없이 긴 진입도로를 질주할 수 있었다. 나머지 차들은 입구에서부터 검문검색을 받는다.
이곳에 정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해 있기 때문이다.
“어머! 자기야!”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이는 이리냐이다.
심플한 하얀 웨딩드레스에 흰 면사포를 썼으니 영락없는 오늘의 주인공이다.
“어머, 언니!”
“그래, 이리냐!”
지현과 이리냐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눈빛 교환을 한다.
“이리냐, 이쪽은 내 부모님이셔. 이쪽은 큰언니인 지현이의 부모님이시고, 이분은 연희 언니의 할아버지셔.”
“어머!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또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저, 이리냐라고 해요. 많이 예뻐해 주세요.”
“오냐, 그래. 참 예쁘구나.”
어머니가 먼저 이리냐의 손을 잡는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하여 선 채로 몇 마디 물어볼 때 또 하나의 인영이 당도했다.
“현수 씨!”
“아! 연희! 인사해. 할아버지 모셔왔으니까.”
“네.”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연희는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연희예요.”
“오!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네에.”
연희는 부인하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처절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아직 잊지 않은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땐 수업료 낼 돈이 부족하여 장학회의 보조를 받아야 했으며 급식비도 못 내서 내내 눈칫밥을 먹었다.
이를 눈치챈 싸가지 없는 학우들의 모멸 찬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연희야!”
이 회장은 준비한 말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손녀의 손을 잡고 서니 그 말 모두를 잊은 듯하다. 이럴 땐 말보다 행동이다.
6장 거사를 치르다!
“이리 오너라. 한번 안아보자.”
말을 하며 잡아끈다. 예상치 못했던 연희는 휘청이며 이 회장의 품으로 빨려들었다.
“이제부턴 내가 네 애비 노릇까지 하마. 네 애비는 마음껏 미워해도 된다. 알았지?”
“흐흑! 네, 할아버지,”
연희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쏟아진다. 서러움이 북받친 것이다. 이때 조용히 다가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이리냐의 모친인 안나 게라시모바 체홉과 강진숙이다.
실제 나이는 50대이지만 현수 덕에 각기 20년씩 젊어 보여 30대로 보인다.
“아, 장모님들. 이쪽은 저희 부모님이세요. 이분들은 지현이의 부모님이시고, 이분은 연희의 친조부님이세요.”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빠르게 설명하자 얼른 시선을 맞추며 절을 한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아! 그러세.”
일행 모두 저택 2층의 현수의 방에 모였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는지 열두 명이 앉을 소파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에 이르는 계단과 복도에도 화려한 치장이 되어 있다.
잠시 수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익힐 때다.
“보스,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님과 내무장관 등 정부 요인들이 당도하셨습니다.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을 때 현수가 일어났다.
이때 알리사가 쪼르르 달려와 입을 연다.
“주인님, 에티오피아의 대통령님과 의무장관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일개 회사원의 결혼에 두 나라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말이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을 때 가가바의 아내인 엘린 가가바가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온다.
엘린은 이 저택의 시녀장이라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하는데 온 것이다.
“주인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님과 메드베데프 총리께서 당도하셨습니다.”
“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진다.
“알았습니다.”
현수는 나는 듯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수의 부모님과 처가 식구들 모두 우르르 따라나섰다.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아닌데 3국 대통령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에 신기한 것이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의 등장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이다. 러시아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럼에도 참석했다는 것은 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정을 하루 동안 완전히 팽개쳤다는 뜻이다.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의미이기에 권철현 고검장과 이연서 회장은 현수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이러하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딸이 결혼한다 해도 푸틴은 움직이지 않는다. 영국의 왕세손이 결혼할 때에도 축하한다는 인사만 보냈을 뿐이다.
결국 현수가 오바마의 딸보다, 영국 왕세손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