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6
아래층으로 내려간 현수는 3국 정상들에게 와주셔서 고맙다며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먼저 신부들이 소개되었고, 부모님들도 소개되었다.
언어가 다르기에 많은 말은 오갈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만으로도 축하한다는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보스, 오랜만입니다.”
“으잉? 안톤?”
크로츠키 안토비오비치 브레즈네프는 러시아 저택을 총괄하는 집사장이다. 그런데 이곳 킨샤사에 있으니 놀란 것이다.
“네, 안톤입니다. 보스, 먼저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아! 그래요. 근데 안톤이 어떻게 여길……?”
“대보스께서 결혼식을 도우라며 저를 파견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대보스는 어디 계시죠?”
“저 안쪽에 계십니다. 지르코프 보스와 대화 중이십니다.”
“아, 그래요?”
반가운 마음에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과 지르코프를 만나려 발걸음을 뗄 때 안톤이 앞을 막는다.
“지금은 가시면 안 됩니다.”
“왜?”
“이제 곧 결혼식입니다. 안에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아! 그래? 알겠네.”
안톤에 의해 다시 2층으로 올라간 현수는 신랑 예복을 갖춰 입었다. 시간 많이 걸릴 일이 아니기에 금방 끝났지만 기다려야 했다. 조금 전에 당도한 지현이 신부화장 중이기 때문이다.
시중 들어주던 알리사 등을 내보내곤 아공간의 보석들을 꺼냈다.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약지에 낄 반지를 준비했다. 재질은 미스릴이다. 겉보기엔 은처럼 보이는 광물이다.
안쪽엔 바디 리프레쉬와 임프로빙 이뮤너티, 그리고 오토 리차지와 인비저빌러티 마법진이 새겨졌다.
이 모든 마법을 구현시킬 마나석은 보석처럼 보일 것이다.
반지의 겉에는 한글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겼다.
늘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김현수
러시아 사람은 푸틴과 메드베데프, 그리고 크렘린 궁 공보실장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비서실장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데니소프가 이것을 받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조제프 카빌라와 가에탄 카구지를 비롯한 각부 장관, 그리고 킨샤사 경찰청장 후조토 쿠아레와 경찰차장 아델 쿠아레가 받는다.
에티오피아 인사는 기르마 올데 기오르기스와 의무장관 로마우 바이할,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 비아니 아자한이다.
추가로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와 부인인 베르세네바 마리아 이바노비치, 그리고 두 딸 올가와 나타샤 부부에게 줄 것을 만들었다. 지르코프와 그의 부인을 위한 것도 만들었다.
만들다 보니 이춘만 본부장 부부가 떠오른다. 이 밖에 안톤과 피터스 가가바, 엘린 가가바도 있다.
40여 개의 반지는 제각기 디자인이 다르고 알의 크기와 색깔도 다르다.
하여 받는 사람의 위치를 고려하여 이름표를 붙였다.
모든 준비가 맞춰졌을 때 알리사가 들어선다.
“주인님, 이제 시작입니다. 후원으로 가시죠.”
“그래.”
알리사의 뒤를 따라가니 너른 잔디밭에 하객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다. 2,000여 좌석이 꽉 찬 것이다.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한 흰색 차양막이 바람에 슬쩍슬쩍 흔들리고 있다.
신랑, 신부가 행진할 통로엔 순결을 상징하는 흰 천이 깔려 있다. 통로 좌우엔 예쁜 꽃다발들이 꽂혀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하객들에게 나눠 줄 것이라고 한다.
사회는 민주영이 한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기에 차마 감출 수 없어 털어놓고 데려온 것이다.
아폰테 사장의 제트기에 동승해 왔다. 자리가 남아서였는지 이은정 실장도 보인다.
“자자, 이제부터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토록 하겠습니다.”
주영의 말이 끝나자 곁에 있던 통역사가 차례로 입을 연다.
프랑스와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이다.
“먼저 신랑 입장!”
따따따땅! 띠띠띠띵! 따따따, 딴따라따라라라!
오케스트라의 우렁찬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현수가 입장했다.
다음은 신부 입장이다.
서열에 따라 권지현이 권철현 고검장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찬사가 터져 나온다.
두 번째는 연희이다. 이연서 회장의 손을 잡은 채 사뿐사뿐 걷는다. 살아서 걸어 다니는 여신과 다를 바 없다.
마지막은 이리냐이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의 손을 잡고 바들바들 떨면서 입장했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신부들이 입장할 때마다 하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그리고 격려의 말이 쏟아진다. 이렇게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모든 예식 절차를 마친 후 성대한 피로연이 열렸다.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는 킨샤사이기에 현수의 결혼은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될 대단한 뉴스이다.
그런데 그러면 소문이 번진다. 킨샤사엔 천지그룹과 이실리프 상사 소속 한국인들이 많다.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한국까지 전해지는 데 불과 1분이면 된다. 하여 가급적 적은 인원이 동원되도록 애썼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의견이 모든 경호원의 웨이터화이다.
다시 말해 킨샤사와 모스크바 저택 소속 경호원들이 일일 웨이터가 되어 정상들을 위한 서빙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뷔페식에 익숙지 않은 각국 정상들을 위한 배려이다.
천지약품 소매점 사장님들은 별도의 자리로 안내되었다. 워낙 인원수가 많기 때문이고, 정상들의 보안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소문이 틀렸다.
피로연장에는 엄청난 음식이 차려졌다. 모두 킨샤사 주요 호텔 주방에서 만든 것이다. 이것을 가져오기 위해 백 대가 넘는 냉동, 냉장 트럭이 동원되었다.
어쨌거나 결혼식은 끝났다. 별도의 자리에서 주요 내빈들께 인사를 하고 준비했던 답례품을 주었다.
모두들 이게 뭐냐며 좋아한다. 아르센 대륙식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다.
푸틴 일행은 러시아로 되돌아갔다. 국정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대통령 일행은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대통령궁으로 이동했다.
기왕 만난 김에 양국의 우호를 위한 정상회담이나 하자면서 데리고 갔다.
하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경호원들이 치우고 있다. 모두들 제 일처럼 열심이다. 높은 급여와 주택 제공 등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춘만 본부장도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신부를 셋이나 둔 현수에게 부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부인과 떨어져 산 게 제법 오래되었다. 그런데 몸은 엄청 건강해졌다. 사내로서 당연히 솟구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게 해결되지 않으니 불편한 모양이다.
“아들 다 컸다면서요. 사모님 불러들이세요. 이 근처에 집 하나 짓고 사시면 되잖아요.”
이춘만 본부장도 큰 부자가 되었다. 현수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2,000평짜리 저택을 짓고 살 정도는 된다.
“그럴까?”
“사모님께 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안 오시면 첩 하나 얻어야겠다고 말씀해보세요.”
“그래, 그래야겠어.”
마음을 굳힌 듯 환히 웃으며 갔다.
원래는 결혼식을 마치는 대로 융프라우로 가려 했다. 그런데 식이 늦게 끝났다. 워낙 하객이 많아서이다.
결국 하룻밤 자기로 했다.
부모님들은 새로 지은 빈관으로 모셨다.
둘러보니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어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보다 훨씬 넓고 아늑하며 편리하다.
방마다 하녀가 배속되어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부모님은 온 김에 한 달 정도 머무신다고 한다. 권철현 고검장 부부도 보름 휴가라면서 푹 쉬겠다고 하셨다.
이연서 회장도 한 달은 머물겠다고 하셨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부부는 보름, 두 딸인 올가와 나타샤 부부는 열흘, 지르코프는 일주일을 머물 예정이다.
현수는 피터스 가가바를 불러 이들에 대한 접대를 지시했다.
이젠 경호팀장이 아니라 저택 총괄 집사장이기 때문이다.
엘린은 시녀들을 맡고, 피터스는 전부를 지휘하는 것이다.
현수와 이리냐가 이곳에 있기에 모스크바 저택의 경호원과 집사, 그리고 시녀들도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휴우! 이제 끝이군. 피곤하지?”
“아뇨. 괜찮아요. 오늘 손님 접대 많이 하셔서 피곤하시죠?”
“그래요. 피곤하면 좀 주물러 줄까요?”
지현과 연희의 말이다.
“전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이건 이리냐의 말이다. 아직 어려서 이러는 것이다.
이곳은 급히 꾸민 신방이다. 현수가 쓰던 방이다.
이제 가족이 된 넷은 평안한 소파에 앉아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대답하곤 말이 없다.
오늘은 201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신혼 첫날밤이다. 그런데 누가 가장 먼저 거사를 치를 것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로 눈치만 보는 중이다. 결국 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어. 아공간 오픈!”
현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생성된 일렁이는 시커먼 공간을 셋 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공간에 손을 쑥 집어넣어 세 개의 유리관을 꺼냈다. 하나당 아홉 개씩 둥근 환단이 들어 있다.
“그게 뭐예요?”
“지금부터 이것에 대한 설명을 할 거야. 아주 중요하니까 잘 들어. 알았지?”
“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대체 저건 뭘까 하는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이게 뭐냐 하면…….”
현수는 차근차근 환단에 대한 설명을 했다.
세 여인은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하다. 이것만 복용하면 아주 뛰어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본인의 수명이 대폭 늘어나고 젊음을 유지한다는데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만일 이걸 약으로 만들어 판다면 돈 있는 집에선 100억을 들여서라고 기꺼이 구입할 것이다.
“이걸 먹는 동안 매일 내가 추궁과혈이란 걸 해줄 거야.”
“추궁과혈이요? 그게 뭔데요?”
호기심 많은 이리냐의 물음이다. 하긴 한자어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추궁과혈이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옷을 모두 벗은 상태에서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그렇게 주물럭거릴 것이란 말에 얼굴이 빨개진다.
연희와 이리냐는 순결한 처녀의 몸이다. 지현도 딱 한 번의 경험밖에 없다. 그러니 아직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렇게 아흐레를 추궁과혈하면 열흘째 되는 날 바디체인지가 일어나.”
“그건 또 뭐예요? 몸을 바꿔요?”
이번엔 연희가 직역하여 묻는다.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몸의 상태를 바꾸는 거야. 체내의 모든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불균형한 모든 것을 바로잡는 거지. 그것이 이루어지면 어떠한 병원균의 침입에도 끄떡없는 완전한 면역 체계를 갖게 될 거야.”
“불균형이 바로 잡힌다면 예를 들어 좌우 턱의 크기가 다르거나 짝눈, 또는 짝궁댕이가 고쳐진다는 거예요?”
“아마도.”
“말도 안 돼요. 수술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되요?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요.”
지현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마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추궁과혈이라 표현한 것도 마나 샤워의 일종일 뿐이다. 따라서 칼 대지 않고 짝눈을 고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법 아닌 것 맞아. 근데 약효가 몸의 근육을 움직여 밸런스를 조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까지 매일 마나심법이란 것을 수련해야 해.”
“그게 뭐예요?”
“체내의 기운을 조절하는 거야. 한국으로 치면 내공심법이라는 것과 비슷해. 이건 알지?”
“그럼요. 무협영화에서 봤어요.”
지현이 배시시 웃음 짓는다.
“좋아, 내가 조금 있다 마나심법을 가르쳐 줄 건데 그건 아흐레만 하는 게 아니라 평생 동안 해야 해.”
“왜 그래야 하는데요?”
“꼭 그래야 해요?”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그래야 할 이유를 알려달라는 표정이다.
“그걸 하면 젊음이 더 오래 유지돼. 그러니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무튼 아흐레 동안은 꼭 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