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91화 (591/1,307)

# 591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더 이상의 마나석이 나오지 않아 폐쇄된 것이라 하였다.

느낌대로라면 누군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갱도가 무너지더라도 텔레포트 마법으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지만 조심스레 살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점점 더 마나의 농도가 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갈수록 갱도의 색깔이 달라진다. 마나석이 채굴되는 곳은 자색을 띤다. 그런데 평범한 흙색으로 바뀌어 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마나석이 있어서 마나 농도가 진해지는 것 같은데 왜 점점 더 평범한 흙색이 되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나의 농도는 더 진해지는데 마나석은 보이지 않는다. 폐광될 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마나의 농도가 진할수록 더 많은 마나를 빨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들어가 결국 갱도의 끝에 당도했다. 입구로부터 2,600m쯤 떨어진 곳이다.

들고 있던 횃불을 거치대에 올려놓으며 주위를 살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마나석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흐음, 이상하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마나집적진을 꺼냈다. 그 위에 이십여 개의 자수정을 올려놓았다. 마나가 몰려드는 것이 확연하다.

“이제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군.”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현수는 갱도 벽면을 더듬어보았다. 분명 평범한 암석이다. 그럼에도 마나는 엄청 진하다.

마나집적진으로 몰려드는 마나가 정체 현상을 빚을 정도이다.

“기다리는 동안 마나심법이나 운용해야겠군.”

또 하나의 마나집적진을 꺼냈다. 자세를 잡자 마나가 해일처럼 몰려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흐으음!”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심법을 끝냈다.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눈을 뜨고는 자수정을 살폈다.

여전히 마나가 들어가고 있다. 안에서 빨아들이는 마나심법 같은 것이 있다면 더 빠를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다.

“흐음, 시간이 좀 더 걸리겠군.”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삽 한 자루를 꺼냈다. 시간이 남으니 갱도를 조금 더 파볼 생각인 것이다.

퍽, 퍽, 퍽, 퍽―!

제법 단단했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갈 능력자의 삽질은 당해내지 못한다.

퍽, 퍽, 퍽, 퍽―!

삽질을 할 때마다 마나 농도가 조금씩 짙어졌기에 쉬지 않고 팠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갱도는 이전보다 약 6m쯤 더 길어져 있다.

퍽!

“으차!”

퍼억!

“으잇차!”

두 시간이 넘는 고된 삽질을 하니 모처럼 땀이 솟는다. 현수는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왠지 반가웠다.

바디체인지 이후엔 웬만해선 볼 수 없던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두 시간이 지났을 때 갱도는 5m 정도 더 깊어졌다.

퍽!

“읏차! 이제 다 됐어.”

퍽―!

“으이차! 몇 삽만 더 파면 돼.”

퍼억―! 우르르!

“헉!”

힘차게 삽을 박아 넣는 순간 갑자기 앞쪽이 무너진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현수는 커다란 동혈 안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으와! 이 마나! 엄청나구나!”

동혈은 높이 30m, 폭 20m, 길이 200m 정도 된다. 현수가 들어온 곳을 제외하면 입구가 없다.

“이렇게 마나 농도가 높은 곳에서 마나심법을 운용하면 뭐가 다를까? 일단 한번 해보자.”

아까의 마나심법으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채웠지만 궁금해서 자리에 앉았다. 습관처럼 마나집적진을 깔고 앉은 채이다.

마나심법을 운용하자 기다렸다는 듯 마나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수용할 공간이 없다. 체내로 들어온 마나는 전신을 샅샅이 뒤지며 자신이 차지할 곳을 찾는다.

그런데 그런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던 중 희미하게 형성된 아홉 번째 고리 쪽으로 몰려든다.

마나는 무리하게 고리 속을 비집고 들어가려 한다. 자칫하면 깨질 수도 있다. 현수는 괜히 시도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나는 계속해서 밀려든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이다.

“으으으!”

등과 이마에서 식은땀이 솟는다. 무협 쪽 표현을 빌자면 주화입마되기 직전인 때문이다.

‘침착해. 그리고 정신 집중. 어떻게든 견뎌내야 해.’

현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는 마나의 움직임을 제어하려 애썼다. 하지만 별무소용이다.

체내로 스며든 마나는 막무가내로 심장 쪽으로 밀려든다. 그리곤 아홉 번째 고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흘렀지만 마나의 양만 늘어날 뿐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는다. 절망적이다. 아홉 번째 마나 링이 점점 굵어짐이 느껴진다. 놔두면 곧 폭발할 것이다.

‘이제 끝인가? 마나 링이 다 깨져도 전능의 팔찌가 건재하니 지구로 귀환할 수는 있겠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9장 기연(奇緣)!

“아, 아니다. 전능의 팔찌는 마법사가 아니면 사용 못해. 아! 어떻게 하지? 그냥 이곳에 남게 되나? 지현인, 연희는, 이리냐는, 부모님은 어쩌지?’

현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 순간 아홉 번째 마나 링이 산산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퍼어엉―!

실제로는 나지 않는 소리이다. 그런데 현수는 이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의식이 사라져 간다.

이제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무너지는 순간에도 마나는 끊임없이 쇄도했다. 그런 현수의 밑에는 마나집적진이 깔려 있다.

주변의 마나를 집중적으로 빨아들이는 마법진이다. 그렇기에 의식을 잃었지만 여전히 마나가 모여드는 것이다.

마나는 이제야 살판났다는 듯 현수의 체내로 무한정 진입을 시도했다. 의식이 있다면 차단하려는 노력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면 유입량이 확실히 줄어든다.

마나 조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수는 의식이 없다. 그렇기에 동혈 속에 정체되어 있던 마나 전부가 현수에게 스며드는 중이다.

켈레모라니의 비늘은 이미 가득 채워진 상황이다. 그렇기에 모든 마나는 현수의 심장과 단전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우우우우우우웅―!

빠른 속도로 회전하던 마나 링이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냥 놔두면 현수는 평범한 사람이 된다.

마나 링이 모두 깨지면 다시 생성시킬 수 없으므로 전능의 팔찌는 사용 불가능해진다.

아무튼 여덟 번째 마나 링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마나는 흩어지지 않는다. 현수가 마나집적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일곱 번째도 깨졌다. 그리고 차례대로 깨진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첫 번째 링마저 깨졌지만 마나는 여전히 심장 부근에서 회전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심장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가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마나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공간은 좁은데 자꾸 들어오기에 빚어진 상황이다.

처음엔 심장 한가운데에 겨자씨만 한 크기였다.

이것이 점점 커진다. 현수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황이고, 마나는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시간이 흐른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나흘째 되던 날, 동혈 속의 모든 마나가 현수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마나 유입 현상이 끊기자 전신 곳곳을 누비던 이것이 심장 쪽으로 몰린다. 그리곤 형상이 없던 이것이 심장과 같은 모양을 이루며 자리 잡아간다.

우우우우우우웅―! 팟!

마지막 압축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마나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러자 현수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의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다. 여전히 의식이 없으니 자의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전신 근육이 동시다발적으로 제멋대로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혈맥 또한 확장과 축소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우드득! 뿌드득! 와지지직! 우드드득!

뼈마디가 근육에 의해 이탈했다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현상도 계속되었다. 그렇게 24시간이 흘렀다.

“끄으으응! 끄으으응! 끄으응!”

쓰러져 있던 현수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눈이 떠진다.

“여긴……?”

몸을 일으킨 현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위치를 파악했다.

“그렇군. 근데 마나는? 다 어디로 갔지?”

끈적거릴 것처럼 진했던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마나 링은? 없다! 모두 사라졌어.”

현수는 언제나 힘차게 돌던 마나 링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곤 절망했다.

다행히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지구로의 귀환은 없다. 전능의 팔찌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들과 부모님, 친구, 친지들과 영원히 이별이다. 어찌 담담할 수 있겠는가!

이때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어라? 이건 뭐지?”

심장 부근에서 같은 크기와 모양의 마나 덩어리가 느껴진다. 순간, 번뜩이는 상념이 있다.

‘이건 혹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리고 똥인지 된장인지를 찍어서 맛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륵! 쐐에에엑! 퍼퍼퍼펑! 우르르! 꽈꽈꽈꽝―!

분명 1서클 마법인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했다.

그런데 굵디굵은 화염창 한 자루가 섬전의 속도로 날아가 동혈 벽에 박힌다. 그와 동시에 집채만 한 암반이 부서지며 쏟아져 내린다. 곧이어 자욱한 먼지가 생성되었다.

“으읏! 배리어!”

샤르릉―!

현수의 입이 달싹이자 투명한 장막이 전신을 가린다.

방금 전의 붕괴로 형성된 자욱한 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 바깥쪽에서 멈춘다. 신기한 모습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는 이 모습을 보고 호신강기를 떠올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횃불도 없는 지하의 캄캄한 공간이다. 그런데 대낮 정도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식별할 정도로 환히 보인다.

“왜 이러지? 아! 그거구나.”

현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비로소 깨달았다.

아홉 개의 마나 링이 깨진 것이 분명하다. 대신 심장 모양의 마나 덩어리가 자리 잡았다.

아르센 대륙에도 이런 것이 있다. 드래곤 하트이다.

현수는 드래곤이 아닌 인간이니 휴먼 하트가 생성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또한 어떠한 기연으로도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일어난 기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수는 서클이라는 개념에서 초월하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마법을 구사하든 9서클 마스터 이상의 위력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마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10서클 마스터가 되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현수가 파고든 이 동혈은 오래전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던 두 드래곤의 영원한 안식처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함께하길 바랐던 드래곤 부부는 지저에 형성된 이 공간을 마법으로 도배하였다.

드래곤들은 수명이 다할 때가 되면 스스로 무덤을 찾아든다. 그러다 죽으면 육신은 썩어서 사라지고 드래곤 하트의 막대한 마나는 대기로 흩어진다.

두 드래곤은 죽어서 자신들의 마나가 영원히 섞이길 바랐다.

하여 사방이 막힌 이 동혈을 안식처로 택했다. 그리고 봉인 마법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마나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함께 영면(永眠)에 들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육신은 썩어서 문드러졌다.

그때 준비된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강력한 화염으로 썩은 시신을 태워 버린 것이다.

의도하던 대로 두 드래곤의 마나는 섞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났다. 그 결과 몇몇 틈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약간의 마나가 새어 나갔다.

그렇게 빠져나간 마나는 평범했던 암석을 마나석으로 바뀌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마나석 광맥이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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