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4
같은 순간, 좌측 기사는 현수의 목을 노리며 쇄도했다. 우측 기사는 현수의 빠른 발을 잡겠다는 듯 하반신을 쓸어온다.
좌로 한 보 피하면서 상체를 뒤로 살짝 제쳤다. 다음엔 오른 다리를 슬쩍 올리다 내렸다.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이 동작에 검 세 개는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앞쪽에 있던 기사 둘이 찔러온다.
아직 뒤로 젖힌 상체가 복구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스르르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결과 두 공격 모두 무위가 되었다.
“멈춰! 뒤로 물러서!”
눈썰미가 있는지 사바트 단장이 기사들을 뒤로 물린다. 훈련이 잘된 듯 원래의 진형을 유지하며 물러선다.
“지금 즉시 제2호위단 호출하라!”
“네, 알겠습니다.”
기사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허공으로 던져 올린다.
퍼엉―!
약 20m 상공까지 올라간 무엇인가가 터지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쐐에에에에엑―!
“……?”
현수가 이것을 바라볼 때 사바트 단장이 검을 뽑아 든다.
“황태자님! 황태자비님! 물러서십시오! 위험한 놈입니다!”
둘이 움찔하며 물러서자 단장이 다시 입을 연다.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이곳을 쉽게 빠져나가진 못할 것이다. 검을 뽑아라.”
“…내가 검을 뽑으면 많이 죽을 텐데요?”
“이놈이 감히! 지금 우릴 능멸하려는 것이더냐?”
사바트 단장이 들고 있던 검집을 저쪽으로 던진다.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죽기 살기로 휘두르겠다는 뜻이다.
“능멸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원수지간도 아닌데 조금 심한 것 아닙니까?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왔습니다. 그리고 중지라 하니 순순히 나가주겠다는데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이놈! 지금 세 치 혓바닥으로 누굴 놀리느냐?”
사바트 단장은 대노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은 외부로부터 최소한 40개의 문을 거쳐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황성의 벽 가운데 가장 가까운 것이 약 2,000m쯤 떨어져 있다. 황성의 한복판이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하니 분기탱천한 것이다.
“야아압!”
쐐에에에엑―!
황태자 호위단의 단장답게 상당한 위력을 지닌 솜씨이다.
하지만 어찌 그랜드 마스터와 같은 반열에 있는 존재를 상대하겠는가!
현수는 검도 뽑지 않고 슬쩍 한 발짝 물러났다. 당연히 사바트 자작의 검은 허공만 가른다.
“이놈! 야아압!”
슈아아아악―!
이번은 마치 알파벳 Z자 같은 검로를 그리며 쇄도한다. 허초와 실초를 교묘히 섞은 제법 괜찮은 공격이다.
좌로 일 보 비켜섰다가 검이 지남과 동시에 원위치 했다. 어찌 보면 검에 당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다.
하지만 검을 휘두른 당사자는 허공을 갈랐다는 것을 안다.
“이놈이! 이이익!”
휘이이익―!
이를 악물고 휘두른다. 하지만 여전히 허공만 가를 뿐이다.
슬쩍 무릎을 굽혔다 다시 펴는 것으로 회심의 일격을 피해 버린 것이다. 이때 일단의 무리가 헐레벌떡 다가온다. 황태자궁을 호위하는 제2호위단 단장과 기사들인 모양이다.
“사바트 경!”
“어서 오시오, 스미던 경! 이놈을 잡아야 하오. 어서 검을 뽑아 같이 공격합시다.”
“……?”
기사들에겐 명예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협공은 거의 하지 않는다. 상대는 하나인데 이쪽이 둘이라는 이유이다.
그런데 기사 중의 기사라 할 수 있는 사바트 자작이 대놓고 협공을 하자 하니 의아한 눈빛이다.
“놈이 황태자비 마마에게 위해를 가했소. 어서요!”
스미던 경이 황태자비를 바라본다. 평소의 정갈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풀어헤쳐져 봉두난발이고 의복 또한 제멋대로이다. 이마 등에서 솟은 땀으로 푹 젖은 곳에 먼지가 앉아 꾀죄죄한 모습이기도 하다.
스르릉―!
하늘같은 황태자비에게 위해를 가했다면 흉악무도한 놈이다. 당연히 용서 불가이다. 그렇기에 검을 뽑은 것이다.
‘흐음,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군. 계기만 있으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준이군. 역시 제국이란 말인가?’
제국은 지금 전쟁 중이다. 그리고 황성은 더없이 안전한 곳이다. 그럼에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둘씩이나 한가로운 곳에 배치되어 있다.
황태자의 안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조금 과하다.
전장에 배치되면 중요한 전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는 널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미던 자작이라 하오. 검을 뽑으시오.”
“……!”
현수는 어깨만 으쓱거렸다.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시오. 검에는 눈이 없으니.”
“심심했는데 잘되었습니다. 오시죠.”
현수의 말을 도발로 받아들였는지 얼굴이 금방 대춧빛으로 물든다. 하지만 이내 분노를 억제하며 쏘아본다.
“방금 한 말 꼭 후회하게 해주겠소.”
스미던 자작이 곁에 있던 사바트 단장을 바라본다.
“사바트 자작, 범상치 않소.”
“알고 있소. 전력을 다했지만 옷자락조차 베지 못했소. 처음부터 강수를 두어야 하오.”
“알겠소.”
스미던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고쳐 잡는다. 한바탕 검무를 출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같은 순간, 제1호위단은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지근거리를 둘러쌌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함이다.
제2호위대는 출구 쪽을 가로막았다. 현수가 도주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
사바트 자작과 스미던 자작이 서로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시작하자는 뜻이다.
“야아압!”
“챠아압!”
쐐에엑―! 슈아아앙―!
바스타드 소드 두 자루가 허공을 가르며 파공음을 낸다. 하나는 가슴을 노리고 다른 하나는 좌측 팔을 노린다.
현수는 쇄도하는 두 검을 바라보곤 슬쩍 허리를 굽혔다 편다. 이 한 동작에 두 검은 허공만 가르게 된다.
기다렸다는 듯 두 번째 합공이 시도된다.
“으야아압!”
“이이잇!”
쒜에엑―! 피이잉―!
이번엔 베기와 찌르기가 병합되어 있다. 우로 일 보 움직여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너무나 간단한 동작이기에 사바트와 스미던 자작은 어이가 없는 듯 서로를 마주 본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셋의 검무가 계속되었다. 황태자와 황태자비, 그리고 호위단 소속 기사들은 관전자가 되어버렸다.
일진일퇴가 거듭되는 것이 아니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공격만 하고 다른 한쪽은 수적 열세라 피하기만 한다.
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 베지 못한다.
둘은 숨을 헐떡이며 미친놈처럼 날뛰지만 현수는 산책 나온 사람처럼 슬쩍슬쩍 움직이는 것으로 모든 공격을 피한다.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말리지 못한다. 합공을 하고도 패한다면 사바트 자작과 스미던 자작의 명예에 크나큰 손상이 되기 때문이다.
둘 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다. 만일 현수가 소드 마스터라면 합공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현수가 검을 뽑도록 만들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황태자비님도 끼시죠.”
현수의 말에 황태자비가 연검을 고쳐 잡는다.
셋의 결투가 아닌 대련을 보면서 같이 검무를 추고 싶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다. 현수를 위험하지 않다 판단한 것이다.
“황태자비께서 가담하신다면 검을 뽑지요.”
“좋아요!”
황태자비가 즉각 전장에 가담한다. 사바트 자작과 스미던 자작은 대경실색한다.
자신들의 합공으로도 건드리지 못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렇게 끼어들었다가 다치거나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뮤엘라! 대체 어쩌자고……!”
황태자 역시 화들짝 놀라며 제지하려 할 때 황태자비가 먼저 입을 연다.
“이봐요, 황태자님도 끼워줘요.”
“…좋습니다. 끼십시오.”
기꺼이 대련 상대가 되어주겠다는 표정을 짓자 황태자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전하, 뭐해요? 어서 껴요!”
“뮤엘라……!”
“어서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요!”
검을 다루는 이들은 자신보다 높은 화후에 있는 존재와의 대련을 갈망한다. 그러는 가운데 깨우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다.
차기 황제가 되기 위한 교양 수업을 뺀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수련에 할애한 결과이다.
늘 최상급이 되길 바라지만 그러지 못한다. 신하들이라 봐주면서 대련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알면서도 틈만 나면 대련을 청했다. 그렇기에 황족이면서도 얼굴이 구릿빛인 것이다.
“좋소.”
스르릉―!
“황태자님, 아니 되옵니다.”
“맞습니다. 어서 물러서십시오. 위험합니다.”
“저자의 정체를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 물러서십시오.”
“황태자님! 제발……!”
기사들이 말렸지만 소용없다. 검을 뽑아 든 황태자가 황태자비 바로 곁에 섰기 때문이다.
“뮤엘라, 당신이 있는 곳엔 늘 내가 있을 것이오. 지금처럼!”
“전하……!”
황태자비가 감동한 듯 바라본다. 이때 황태자는 현수는 바라보고 있다.
“우리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게.”
“기꺼이.”
지금껏 허리춤에 매놓았던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바스타드 소드이다.
황태자비나 황태자가 끼어든다 하여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검을 뽑은 것은 가르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들어오시지요.”
“좋다. 챠아압!”
황태자의 검이 예리한 각도로 꺾이며 쇄도한다.
“나도 있어요! 야압!”
같은 순간 황태자비 역시 현수의 가슴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는다. 현수는 피하지 않고 황태자의 검을 흘려냈다. 격돌하려는 순간 묘한 각도로 꺾어 힘의 방향을 바꿔 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검은 현수를 노리고 공격하려던 사바트 자작의 인중을 노리게 되었다.
이때 현수의 검은 황태자비의 연검과 닿고 있다.
마찬가지로 황태자비의 검도 방향을 잃게 되었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스미던 자작의 가슴을 노리는 형세가 된다.
“으읏!”
“으아앗!”
“헉!”
“피, 피해욧!”
챙! 창―!
사바트 자작이 먼저 황태자의 검을 쳐냈다. 곧이어 스미던 자작 역시 황태자비의 연검을 막았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이 날아갈 뻔했는지라 둘의 얼굴은 창백하다. 놀란 때문이다.
“으음! 역시. 모두 검을 거두시오.”
황태자의 명에 모두가 한 발짝 물러서며 검을 집어넣는다.
“자네는 누군가?”
완전한 하대였던 황태자의 어투가 바뀌었다.
“지나가던 C급 용병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믿지 못하지. 보아하니 소드 마스터에 이른 듯하군. 아직 연치가 어린 듯 보이는데 바디체인지를 한 건가?”
“어리지 않습니다. 동안이라 그렇지.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으음! 스물아홉이라…….”
“그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이른 인물이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 없다. 우리의 안계를 넓혀주겠나?”
황태자는 차기 황제가 될 지고한 신분이다.
그럼에도 현수에게 완전한 하대를 하지 않고 있다.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조금 전, 나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소드 마스터가 되면서 바디체인지를 이룬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수가 아무리 적어도 60살은 넘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대륙의 사서 중에는 소드 마스터만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 있다. ‘대륙 소드 마스터 연보(年譜)’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의 누가, 누구 밑에서 배워, 언제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며, 그렇게 된 이후 누구와 대결하여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상세히 기술된 책이다.
이것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소드 마스터가 되는 평균 연령은 66세이다. 그렇기에 그런 나이를 추정한 것이다.
66세는 본인 나이의 거의 두 배이다. 그렇기에 완전한 하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보다도 어리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바로 말을 놓을 수는 없다. 황태자 체면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