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96화 (596/1,307)

# 596

결론은 하나다. 영사우스 상단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임의대로 서류를 조작한 것이다.

그렇게 외출을 한 뒤 사모님은 사법 관료들에게 뇌물을 썼다. 그렇게 하여 외출 기간을 계속해서 늘렸다. 이 과정에 남편의 인맥과 권력이 관여되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면서 편히 지냈을 것이다.

“로시아는 영사우스 상단이 망하길 바랐어. 로드선인가 뭔가 하는 나쁜 여자는 엄한 처벌을 받고.”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영사우스 상단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는 분인데 어떻게 오셨는지요?”

현수를 맞이한 자는 50쯤 된 평범한 사내이다.

“이 상단이 밀을 가루 내어 취급한다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상단만의 기술이 적용되어 아주 보드랍게 빻아서 납품합니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좋은 거요?”

“우선은 가루를 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둘째 보관하기가 용이하지요. 오랫동안 썩지도 않구요.”

“그래요? 가루를 내면 그런 효능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 하여 가루를 낸다고 모두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 영사우스 상단만의 기술이 들어가야 그렇습니다.”

“아무튼 좋소. 물건을 가져다 줄 곳이 좀 먼데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제국 안이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그럼 주문합시다. 헌데 밀가루 한 포대에 얼마 합니까?”

“저희가 가져다 드려야 할 곳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요? 메딕 영지까지 가져가야 합니다.”

“휘유∼! 먼 곳이군요. 그럼 주문량은 어찌 됩니까?”

“그건 포대 당 가격을 알아야 하오.”

지출할 돈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2만 포대까지는 5실버 주셔야 합니다. 2만 포대가 넘으면 4실버입니다.”

한국에선 밀가루 한 포대에 27,400원이다. 5실버면 50만 원이라는 뜻이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20㎏짜리 하나당 가격으론 제법 비싸군요.”

“일반 밀이 아니라 곱게 빻은 겁니다. 당연히 비싸지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더 많으면 할인해 주오?”

“얼마나 매입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사내는 계속 깍듯한 존댓말이다. 마법을 써서 나이 지긋한 행정관 모습으로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10만 포대라면 얼마에 주겠소?”

“잠깐만요. 10만 포대라면… 3실버 80쿠퍼까지 드리지요.”

“그렇게 많이 사는데 겨우 20쿠퍼 할인해 준단 말이오?”

“메딕 영지는 제국의 끝입니다.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알겠습니다. 3실버 60쿠퍼 받지요.”

사내는 인심 쓴다는 표정이다.

“메딕 영지라니까 이 가격에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소문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목소리가 낮아진다. 은밀한 소리라는 의미이다.

“흐음, 3실버 60쿠퍼라……. 50만 포대면 3실버에 주겠소?”

“…좋습니다. 거래하죠. 대금은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지금 결제하지요. 50만 포대에 3실버면 15,000골드 맞소?”

“계산이 아주 빠르시군요. 정확합니다.”

“금으로 지불하겠소.”

“좋지요.”

미리 준비한 금괴를 꺼내자 사내의 눈빛이 반짝인다.

잠시 후 금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한다. 이상이 있을 리 없다. 빌모아 일족이 만든 것이니 확실하다.

금괴는 한국 돈으로 약 150억 원어치이다. 현수가 지불한 금괴엔 귀환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피터 로스차일드에게 주었던 것과 동일이다.

영사우스 상단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정도 금액이 사라지면 큰 타격이 될 것이다.

50대 사내는 영사우스 상단의 총관이다. 상단주를 대리하여 서류를 작성하곤 직인을 찍어 내민다.

밀가루는 3개월 이내에 배달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족스런 거래라 하곤 깊숙이 허리 숙이는 총관을 뒤로하고 나섰다.

‘다음은 감옥에 가보는 건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나니세 영지의 위치를 물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다. 비행 마법으로 즉시 이동하였다.

영지 감옥 근처에 당도한 것은 깊은 밤이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로드선 자작부인이 갇혀 있는 지하 뇌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년 때문에 내가 이 꼴이야! 흥! 흥!”

뇌옥 안에 앉아 있던 로드선 부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다.

“그리고 내가 술집에서 몸이나 팔던 년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데 왜 자꾸 집어넣는 거야?”

뇌옥 안에는 로드선 부인 이외에 두 명의 여인이 더 있다. 이들은 뇌옥의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있다.

“왜? 꼽냐? 몸이나 팔던 것들이. 흥! 아까처럼 내게 대들면 나가서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 거야. 내 남편이 누군지 알지?”

“……!”

“또 한 번 까불면 아예 아작을 내버리라고 할 거야. 알아들었어, 이 더러운 년들아?”

“……!”

두 여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게 불만인지 또 한마디 한다.

“니들도 들었지? 나한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은 재수가 없어 여기에 있지만 난 곧 나갈 거야. 알았어? 그러니 내가 나갈 수 있도록 기도나 해. 대답 안 해?”

“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로드선 부인은 차갑고 거만한 시선으로 두 여인을 보곤 중얼거린다.

“내가 저런 천한 것들이랑 말이나 섞고 있다니.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병신들! 그년을 죽였으면 시체를 안 보이는데 묻어버리든지 태워 버렸어야지 왜 그냥 놔둬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데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 반성의 기미는 조금도 없고 계속 남 탓만 한다.

그러면서 남편의 지위와 돈으로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든다. 옆 감방에서 누군가 조용히 해달라는 소리를 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현수는 뇌옥 근처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용서할 수 없는 년’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토탈 데프(Total deaf), 블라인드니스(Blindness), 오펜시브 뮤트(Offensive mute)!”

샤르릉, 샤르릉, 샤르르릉!

“읍? 으읍, 으으으……!”

갑작스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자 당황한 듯 움직인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또 달싹인다.

“인터미턴트 애거니(Intermittent Agony)!”

“윽? 으윽! 으아아아아! 아아아!”

간헐적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하는 마법이다.

마나 배열대로라면 한 시간에 한 번은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 가운데 가장 순위가 높은 것이다.

참고로 바로 아래 단계는 손가락, 발가락이 절단되었을 때의 통증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에는 신경이 몰려 있다. 그렇기에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혼자서 갖은 욕을 다 하던 로드선 부인이 갑자기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지른다. 쪼그려 앉아 있던 두 여인은 ‘미친년, 지랄하네!’ 하는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다.

조금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인심을 잃은 결과이다.

비명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조용한 감옥 안에 번지기엔 충분하다. 하여 간수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논 노이즈!”

“아악!”

갑자기 비명 소리가 뚝 끊기자 간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며칠 전, 모든 간수에게 내려진 명령이 있다.

로드선 부인이 어떤 요구를 하던 들어주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이다. 둘째는 아프다고 해도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재투옥하기 전에 신관으로부터 수형 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의견이 접수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로드선 부인이 꾀를 부리다 만 것으로 생각하고 되돌아간 것이다.

그 순간, 로드선 부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굉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뇌옥 안을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도움의 손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고통은 불과 5분 만에 끝났다. 그 5분이 본인에겐 한 시간 같이 길었을 것이다.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걸치고 있는 죄수복은 어디에 걸렸었는지 찢어져 너덜거린다. 로드선 부인은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고 있다.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 한 번만 더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되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루에 정확히 스물네 번, 한 번에 5분씩 느껴질 것이다.

눈은 보이지 않고, 귀는 들리지 않으며, 혀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은 죄에 대한 현수가 내린 처벌이다.

“다음은 사위라는 놈이지?”

다시 수도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로드선 부인의 사위를 찾았다. 고급 주점 룸에 앉아 술을 마시는 중이다.

“이제 그년과 장인만 죽으면, 크흐흐!”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놈은 의도적으로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 지금까지는 서슬 시퍼런 장인, 장모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장모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게 되었다. 눈에 가시 같던 존재이다.

언젠가는 바람피우다 걸리면 하초가 잘릴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장모가 사위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며 본인은 얼마든지 실현시킬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촌 여동생의 죽음이 그것이다.

아무튼 장모는 이제 제거된 셈이다.

이제 장인과 마누라만 죽으면 처가 재산이 전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놈들이 잘해내겠지?”

알고 보니 오늘 어쌔신 길드에 청부를 하고 온 모양이다. 청부 대상은 당연히 마누라와 장인이다.

“크흐흐! 크흐흐흐! 이제 곧 부자가 된다. 크흐흐!”

장인이 죽으면 영사우스 상단뿐만 아니라 작위까지 남긴다. 마누라가 무남독녀이기 때문이다.

꿈에 부푼 놈의 뒤에서 현수가 속삭였다.

“브레인 믹스!”

샤르르릉―!

마나가 놈의 머리로 스며들자 눈빛이 풀려 버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명석해 보였는데 단숨에 바보가 되었다. 모든 지식 및 기억이 뒤죽박죽 섞이면서 반쯤 미친놈이 된 때문이다.

이제 5세 지능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돈이 생겨도 어찌 쓰는지 모를 것이며, 사기를 당해도 모를 것이다.

당연히 사법 관료 자리에서도 잘릴 것이다.

카이엔 제국뿐만 아니라 미판테 왕국처럼 주변 국가 사람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던 사건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위의 암살 청부는 반만 성공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던 마누라만 죽는 것이다. 장인은 상단 호위의 도움으로 한쪽 팔만 잃을 뿐 목숨은 부지한다.

로드선 부인은 매 시간마다 지랄 발광했다. 보다 못해 결국 가석방이 된다.

통증을 겪는 모습이 결코 연기로 보이지 않은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밖으로 나왔을 때 영사우스 상단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금괴 및 주요한 서류를 보관하는 상단 금고가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메딕 영지와의 계약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밀가루 전부를 보냈다. 그때 다른 상단으로부터 외상으로 밀가루를 차입했다. 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영사우스 상단은 파산하여 알거지가 된다. 신전에서의 호화스런 생활을 꿈꾸던 로드선 자작부인으로선 악몽이다.

자작은 빚을 갚기 위해 저택과 작위를 판다. 귀족에서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둘은 프레지던 판 윌로우와 로드선 판 윌로우에서 그냥 프레지던과 로드선으로 이름까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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