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7
프레지던은 남의 상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으로 취업하여 입에 풀칠을 한다. 그럼에도 돈이 부족했다.
결국 로드선은 자신이 그렇게도 욕을 하던 몸 파는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돈은 별로 못 번다.
늙은 데다 재수 없게 생겼는데 누가 찾겠는가!
결국 창녀촌에서도 가장 싼 가격에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한 시간에 한 번씩 죽을 것 같은 고통엔 계속해서 시달린다. 그리고 평생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악인의 말로이다.
처벌할 사람들을 모두 처벌했다 생각한 현수는 여관을 찾았다. 하룻밤 쉬면서 카이엔 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할 일 많은 현수가 이처럼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은 카이엔 제국과 아드리안 공국 간의 관계 때문이다.
둘은 군주국과 제후국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아드리안 공국은 매년 사신을 보내며 조공을 바친다.
그간엔 카이엔 제국이 아드리안 공국의 뒤를 봐줬지만 요즘은 아니다. 다른 제국들과의 전쟁 때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그래, 쉬어 갈 거니까 깨끗한 방과 따뜻한 목욕물 먼저 준비해 줘. 음식과 술도 준비해 주고.”
“네, 손님!”
이제 겨우 열두 살쯤 된 싹싹한 소년이 고개를 꾸벅하고는 열쇠를 가져온다.
“이 층 맨 끝에서 세 번째 있는 1인실입니다. 누나가 깨끗하게 치워놨을 거예요. 비용은 1실버구요, 식대는 50쿠퍼예요.”
“그래? 알았다.”
돈을 지불하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주점을 살펴보았다 제법 늦은 시각임에도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이런 집이 음식 맛이 좋지. 잘 골랐군.’
본인의 선택에 만족한 현수는 싱긋 미소 지었다.
이 층에 오르니 얼굴 가득 주근깨가 박힌 계집아이가 침대보를 한 아름 안고 내려온다.
“어휴, 냄새. 대체 뭘 했기에 침대보에서 이런 냄새가 나지? 이걸 언제 다 빨아. 물도 차가운데. 히이잉!”
울상을 하며 내려가는 소녀의 걸음이 무겁다.
한 아름 안고 있는 침대보 때문일 것이다. 뒤에서 보니 제 덩치보다도 더 크다.
12장 우연한 만남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깨끗하다.
보통은 침대보가 더러운데 새것처럼 깨끗하다. 모르긴 몰라도 조금 전에 내려간 소녀가 세탁한 듯하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방금 전 내려간 소녀가 침대보를 빨고 있다. 손이 시린지 계속 호호 불면서 문지른다.
“히팅!”
“……?”
갑자기 물이 따뜻해지자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제 손을 살핀다. 동상에 걸리면 찬물도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때문이다.
위에서 보니 침대보에 커다란 얼룩이 있다. 그런데 문질러도 잘 안 지워진다. 소녀는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며 문지른다.
그러다 물을 뜨러 일어난다.
“클린! 워싱!”
샤르르릉―!
더러웠던 침대보가 금방 새것처럼 깨끗해진다.
그사이에 물을 가져온 소녀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빨랫감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하늘의 신이 불쌍하여 도와준 것으로 생각하는지 경건한 태도로 기도한다.
현수는 싱긋 미소 지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주문 받았던 소년이 손을 잡아끈다.
“여기에요, 손님.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그래.”
“참, 이거 거스름돈이에요.”
소년의 손에는 50쿠퍼가 들려 있다.
“그건 수고한 네게 주는 내 팁이다. 맛있는 거 사 먹어.”
“헤헷!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몸은 힘들고 일은 많았다. 그러다 실수해서 야단맞았다. 당연히 팁은 한 푼도 없었다. 그런데 무려 50쿠퍼나 생기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녀석이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예상대로 음식 맛이 상당히 좋다. 어떤 향신료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후춧가루 없이도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술맛도 괜찮다. 현수는 자음자작하며 분위기를 즐겼다. 지구에선 맛볼 수 없는 왁자지껄함이다.
“와와와와! 잘했어, 부루트스! 잘했어!”
갑자기 함성이 들려 바라보니 팔씨름을 한 듯싶다. 덩치 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쥔다.
승자인 듯싶다. 그 사내 곁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누가 이길지 내기를 건 듯하다.
“와와와! 레이먼이 왔어! 레이먼이 왔다고! 아르센 최고의 장사가 왔단 말이야!”
“와와와! 레이먼, 레이먼, 레이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이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이다. 덩치는 크지만 배가 나와 뚱뚱해 보인다.
그런데 팔뚝은 엄청 굵다.
“자, 다음은 레이먼과 부루트스와의 대결입니다. 판돈을 걸 사람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무리로 나뉜다. 약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내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서이다.
“레이먼과 부루트스와의 대결! 오늘의 내기는 1:3입니다!”
“겨우 그거밖에 안 돼? 지난번엔 1:12였잖아!”
“맞아! 혹시 주최 측의 농간이 있는 거 아냐?”
누군가의 고함에 내기를 주관하는 사내가 입을 연다.
“야, 인마, 이게 내 마음대로 하는 거냐? 난 걸린 돈을 보고 말하는 거야. 그러니 앞으로 끼어들지 마.”
사내의 일갈에 조용해진다.
“자, 그럼 잠시 후에 시합을 벌이겠습니다. 양 선수 입장!”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루트스와 레이먼이 등장한다.
“그럼 시작합니다. 양 선수 손 잡아.”
둘이 손을 잡자 조용해진다.
“시이∼작!”
“이이잇!”
“야아아압!”
양 선수가 기합을 넣으며 힘쓰기 시작한다.
“와와와! 레이면 이겨라! 레이면 이겨라!”
“부루트스! 네 힘을 보여줘! 부루트스 힘내라, 힘내!”
막상막하인지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부루트스가 졌다.
“와아아아! 레이먼, 레이먼, 레이먼!”
“제기랄! 힘 좀 쓰지. 부루트스! 힘 뒀다 국 끓여 먹었냐?”
“그러게. 부루트스에게 걸었다 2실버나 잃었어.”
“야호! 6실버 땄다! 만세! 만세!”
한쪽은 기뻐하고 다른 쪽은 투덜댄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사내들이란 참 단순하다. 이런 것에 돈을 걸고 잃으면 잃었다고 한잔하고, 딴 사람은 기쁘다고 한잔한다.
덕분에 주점 매상만 오른다.
“여기! 한잔 더 가져와.”
“여기도! 기분 나빠서 한잔 더 해야겠어.”
“나도 한잔 더 줘!”
여기저기서 술잔을 치켜든다. 그럴 때마다 소년이 작은 술통의 술을 따라준다. 시끌벅적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이다.
“어이! 너희들 중에 내게 도전할 자 없나?”
오늘의 승자 레이먼이 거들먹거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도전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다. 해봤자 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어? 쳇, 오늘은 좀 그렇군. 나하고 붙어서 이기면 열 배를 주려고 했는데.”
“그 말 진심이오?”
레이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일어나며 소리친다.
“뭐 말이야?”
“당신과 붙어서 이기면 건 돈의 열 배를 준다는 거.”
“물론이야. 대신 조건이 있어.”
“뭐지?”
“판돈이 최하 5실버는 넘어야 해. 그리고 내게 지면 그 돈은 내 것이 되고. 이기면 50실버를 주지.”
“좋아, 도전하겠소.”
사내가 걸치고 있던 망토를 걷어내자 근육질 상체가 드러난다. 전장에서 얼마나 굴렀는지 상처 없는 곳이 없다.
그래도 레이먼과 비교해 보면 비교적 슬림한 편이다.
한편, 레이먼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런 정도는 수백 번도 더 만나보았기 때문이다.
“통성명부터 합시다. B급 용병 레이먼이오.”
“나는 토마스라 하오. 판돈으로 5골드를 걸겠소.”
“호오∼! 5골드나? 자신이 있나 보구려.”
“길고 짧은 건 대보면 아는 법. 내게 지고 울지나 마시오.”
“핫핫! 당신의 그 기개, 마음에 드오. 토마스라 했소? 좋소, 내가 지면 50골드를 내드리지.”
레이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 그 사내가 또 입을 연다.
“자자, 레이먼과 토마스, 토마스와 레이먼의 겨루기가 있겠소! 지금부터 10분간 돈을 거시오.”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명이 앞으로 나선다.
“레이먼에게 돈을 걸 사람은 내게 오시오.”
“토마스에게 걸 사람은 나한테 오시오.”
금방 두 사내 앞에 줄이 형성된다.
현수는 레이먼과 토마스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곤 토마스에게 돈을 거는 사람 쪽에 줄을 섰다.
그사이에도 앞쪽 사람들이 돈을 걸고 비켜선다.
“당신 이름은 뭐고 얼마를 걸 것이오?”
“하인스. 10골드 걸겠소.”
“얼마요? 10실버?”
너무 큰 금액이라 잘못 들었나 싶은 듯하다.
“아니. 10골드!”
현수가 10골드짜리 주화를 내놓자 사내의 눈이 커진다. 이처럼 큰 금액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지면 이 돈은 사라지는 것이오.”
“이기면 얼마나 받소?”
“현재대로라면 20골드쯤 받게 될 것이오.”
“알겠소.”
제자리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팔씨름이 시작된다.
“준비, 시이작!”
“이이잇”
“야아압!”
이번에도 막상막하이다. 이쪽저쪽으로 치우치는 랠리가 잠시 지속되더니 레이먼의 손등이 바닥에 닿는다.
쿵―!
“으으! 졌다.”
“헉! 레이먼이 졌다! 무적 레이먼이 졌다고!”
“말도 안 돼. 마법사인가 확인해라. 마법을 썼으면 무효다.”
“맞아, 마법으로 이긴 거면 실격패야.”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용병 마법사까지 나서서 마법사가 아님을 확인했다. 현수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토마스 승!”
게임 주관자의 판결에 반 이상이 허탈해한다.
“말도 안 돼! 지난 오 년간 레이먼은 무적이었어!”
“맞아!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지다니!”
“토마스란 사람, 덩치도 별로 안 큰데……. 아아! 내 돈!”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때 누군가 소리친다.
“어이, 토마스! 도전 받아주나?”
“도전? 물론이지. 나도 레이먼과 같은 조건이야. 누구든 자신 있으면 덤비라고.”
“좋아, 내가 도전하지.”
토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법 덩치 큰 사내가 나섰다. 조금 전 레이먼과의 대결에서 이긴 게 요행이라 여긴 것이다.
잠시 후 돈이 걸리고 팔씨름이 시작되었다.
승자는 토마스이다.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처럼 보인다.
현수는 그게 연기라는 걸 눈치챘다.
하긴 약한 척해야 도전자들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토마스에게 도전했고, 번번이 패했다.
“자! 오늘은 이만. 내일 또 도전 받겠소. 누구든 자신 있으면 덤비시오.”
“아침에도 받아주나?”
“물론이오. 단 아침 식사 후부터 도전을 받겠소.”
이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점의 반 이상이 비었다. 늦은 시각인 것이다.
“이봐, 합석해도 되겠나?”
현수에게 말을 건 이는 지금껏 승승장구하던 토마스이다. 나이는 40 가까이 된 듯싶다.
“…그러십시오. 아무 자리나 편히 앉으시죠.”
현수에게 다가선 이는 토마스다. 양손에 술잔을 들고 있다.
“자! 이건 내가 사는 거네.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게.”
“주는 것이니 사양치 않겠습니다.”
챙―!
건배를 하고 잔을 비웠다. 한국으로 치면 약 300㏄짜리 잔이고 독한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넨 힘 좀 쓸 것 같은데 왜 도전하지 않았나?”
“내가 어딜 봐서 힘쓰게 생겼다고 하는 겁니까?”
현수는 외관상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보인다. 덩치 큰 용병들만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힘쓰게 생겼다 하니 반문한 것이다.
“자넨 둘 중 하나일 것이네.”
“둘 중 하나요? 그 두 가지가 뭐죠?”
“엄청나게 강하거나 그냥 샌님이거나. 어느 쪽인가?”
“글쎄요? 그건 말 그대로 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알쏭달쏭한 대답이었지만 토마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