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598화 (598/1,307)

# 598

“내일 큰돈 걸고 내게 도전하지 말게.”

“……?”

“크크, 그 돈의 열 배를 줄 능력이 없거든. 요즘 좀 헤프게 써서. 자네도 내 덕에 조금 땄지? 한잔 사게.”

토마스가 짐짓 넉살을 부린다.

“그거야 뭐……. 어이, 얘야!”

“네, 손님!”

“여기 술 좀 더 줄래?”

“네, 금방 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꼬맹이는 받은 팁이 있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더 싹싹하다.

“자넨 카이엔 사람인가?”

“아니요. 난 테세린에서 왔습니다.”

“테세린? 미판테 왕국의……?”

현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는 그쪽은 이곳 사람입니까?”

“아니.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네. 굳이 따지자면 미판테 왕국에 병합되어 버린 미리엄 왕국 사람이지.”

“아! 미리엄 왕국.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로시아로부터 이야길 들어 미리엄 왕국과 이판테 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은 북부에 있었지. 그런데 볼일이 생겨서…….”

“흐음, 북부에 있던 용병 토마스라…….”

“……!”

현수의 중얼거림에 토마스가 움찔거린다. 뭔가 아는 눈치였던 것이다. 그러다 입을 연다.

“어떤 녀석이 내 흉내를 냈다는 소릴 들어서 그렇다네.”

“아! 그럼 미판테 왕국까지 가겠군요.”

이제 확실히 누군지 알았다는 표정에 토마스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근데 녀석이 아직도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네.”

누가 들으면 완전히 뜬금없는 소리이다.

이때 꼬맹이가 가져온 술잔을 받아 하나는 현수에게 건넨다.

현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사내는 전장의 학살자라 불리는 특급 용병 토마스이다. 소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현수가 토마스가 소드 마스터일 것이라 생각한 것은 레이먼과의 대결 때이다. 큰 힘 쓰는 것 같지 않는데 절대 강자였던 레이먼이 패하는 순간 안 것이다.

게다가 토마스는 다른 용병들과 달리 허리춤에 검을 매달고 다닌다. 그렇기에 비교적 쉽게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인상이 험하지 않습니다.”

“좋게 봐주어 고맙네. 자넨 아주 잘생겼네. 계집들이 많이 따를 얼굴이야.”

“흐흐!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이 따라서 곤란할 지경입니다. 어찌하면 좋죠?”

“크크크! 배부른 소리 그만 하게. 일생을 고독한 늑대로 살아온 난 어쩌란 말인가?”

토마스의 얼굴은 여자들이 따르기 힘들다.

흉악하게 생겨서가 아니다. 전신에 남아 있는 상흔이 무섭다 여기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얼굴도 잘생긴 편은 아니다.

“그거야 타고난 팔자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까?”

“내일이나 모레쯤 떠날 것이네. 너무 먼 길이라 심심할까 싶어 귀족가 호송이라도 할까 했는데 시원치 않군.”

“내일 밤 어떻습니까? 테세린까지 동행해 줄 의향이 있는데.”

“오오! 그렇다면 나야 좋지. 핫핫! 핫핫핫!”

뭐가 그리 좋은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근데 자네 이름이 하인스라 했나?”

“그러합니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테세린에서 율리안 영지까지 호송 일을 한 적 있나?”

“…그건 어찌 알았습니까?”

“역시 내 짐작대로구만. 반갑네! 랄프가 내 친척이네.”

“네에? 랄프 대장이? 하아, 이거야 원! 이처럼 먼 곳에서 랄프 대장의 친척을 만나다니. 핫핫! 반갑습니다.”

“자네 덕에 랄프의 아이가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 내 기념으로 술 한잔 사지.”

토마스가 환히 웃는다. 그러고 보니 랄프 대장과 닮은 구석도 있는 듯하다. 못생긴 것이 그것이다.

“하하,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때 주점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린다.

콰아앙―!

“어떤 새끼야! 어떤 씁쌔가 감히 사기를 쳤어?”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가 싶더니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선다.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손님 중 하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내뱉는다.

“으으으! 미친 오우거 란돌프다!”

“……!”

주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힘 쓸 것으로 여겨지는 용병들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군가 나서서 난입자를 개 패듯 패야 한다. 그런데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다.

‘뭐지?’

“어떤 씁쌔가 내 동생 레이먼에게 사기 쳐서 돈 따갔어? 나와! 어서 안 나와?”

소리 지르는 사내를 보니 레이먼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덩치 또한 우람하여 오우거라는 별명에 걸맞다.

반면 생긴 건 무식해 보이지 않는다. 잔인하면서도 영리해 보이는 인상이다.

아무튼 주점 내의 시선이 토마스에게 쏠린다. 미친 오우거에게 밉보여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미친 오우거라 불리는 란돌프는 카이엔 제국 수도의 똥치기 두목이다.

똥치기가 뭔가 하면 사람들의 대변과 소변을 모아서 치워주는 사람을 뜻한다. 제국 초창기부터 악취 풍기는 오물은 똥치기를 동원하여 치우도록 명문화하였다.

현재 수도엔 약 2,000명의 똥치기가 있다.

이들이 이틀에 한 번씩 모든 가정을 돌면서 오물을 수거하여 수도 바깥 오물 처리장에 버린다.

한 번 수거할 때마다 5쿠퍼를 받는다. 적은 것 같지만 수도의 가정 수를 헤아리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대소변을 치우기에 이들의 몸에선 당연히 냄새가 난다. 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처음엔 많은 무시를 당했다. 그러다 모임을 결성했다.

이는 수백 년 전의 일이다. 이후 무시하는 가정의 오물은 치워주지 않았다. 국법에 따라 그 가정은 자력으로 대소변을 수도 바깥까지 치워야 했다.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이후 똥치기를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미친 오우거라 불리는 란돌프가 현재의 똥치기 두목이다.

힘이 장사여서 기사들조차 감당하기 힘들다. 게다가 몹시 영리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자이다.

란돌프에겐 레이먼이란 동생이 있다.

주점을 돌면서 팔씨름으로 먹고산다.

똥 냄새가 싫어서 똥치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레이먼은 승부욕이 강하기에 그에게 딱 맞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패했다. 그리고 거금 50골드를 잃었다.

귀가했던 미친 오우거는 구석에 쪼그려 앉은 동생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곧장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동생을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너희 둘 중 누가 사기를 친 놈이냐?”

“사기? 사기라니? 뭐가 사기란 말이오?”

토마스의 대답에 미친 오우거가 째려본다.

“내 동생의 힘은 나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 너는 덩치가 작다. 팔의 근육도 두껍지 못하고. 그럼에도 내 동생을 이겼다면 마법이랄지 기타 다른 술수를 부린 것이다.”

“마법사가 아니라고 증명해 준 바 있소.”

“믿을 수 없다. 어서 말해라. 어떤 수법으로 내 동생을 속여서 이겼는지.”

“그건 정당한 대결이었소. 그리고 덩치가 크다고 항상 힘이 더 센 것은 아니잖소.”

“아니긴! 힘은 덩치에 비례해!”

“증명하면 어쩌겠소?”

토마스의 도발에 미친 오우거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해라. 아니라면 넌 오늘 죽는다.”

“여기 있는 이 친구 어때 보이쇼? 동생과 팔씨름을 하면 이기겠소? 아님 지겠소?”

토마스가 말을 완전히 내리지 않는 이유는 란돌프가 50은 넘은 듯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지금 날 바보로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저 비리비리한 놈과 내 동생을 비교하라고?”

“그렇소. 이기겠소, 아님 지겠소?”

“당연히 레이몬이 이기지.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

“지면? 지면 찍소리 않고 물러나겠소?”

“당연하지. 좋아, 나서라. 어이, 하만! 네가 나와서 해봐.”

“네, 대장!”

하만이라 불린 사람 역시 한 덩치 한다. 신장 190㎝, 체중 140㎏ 정도로 추측된다.

하만이 팔씨름을 하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일 때 토마스가 현수를 바라본다.

“가볍게 이길 수 있겠지?”

“나, 샌님인데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어허, 이 사람이. 가서 가뿐하게 이겨주게. 자넨 내가 사기 치지 않았다는 걸 알지 않는가?”

토마스가 등을 떠밀었기에 현수는 할 수 없이 하만의 앞에 앉았다. 하만은 기도 안 찬다는 듯 피식 웃는다.

대학생에게 초등학생이 도전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팔 부러져도 손해배상 청구하지 마라.”

“그쪽이나 조심하슈!”

주점의 모든 시선이 쏠린다. 이 대결의 결과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자아, 지금부터 하만과 누구……?”

“하인스야.”

“네, 지금부터 하만과 하인스, 하인스와 하만의 팔씨름 시합이 있겠습니다. 10분간 접수를 받을 테니 줄 서십시오.”

또다시 내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전부 하만에게 건다.

덩치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현수 쪽에 줄 선이는 토마스 하나뿐이다.

“어이! 그쪽에 얼마 걸렸소?”

토마스의 물음에 접수 받던 자가 장부를 보며 계산한다.

“20골드 37실버요.”

“좋아, 난 하인스에게 같은 금액을 걸겠소.”

내기에 걸린 돈이 똑같기에 이기는 쪽이 건 돈만큼 버는 시합이 되어버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준비! 시이작!”

하만은 현수보다 키가 크다. 당연히 팔, 다리도 길다.

지금은 팔씨름을 하느라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팔이 짧은 현수는 주먹과 어깨의 간격이 하만보다 적다. 이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게다가 몸은 테이블에 바싹 붙어 있다. 당연히 다리는 넓게 벌렸다. 힘주기 좋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상대의 손바닥을 쥐는 게 아니라 엄지손가락 부위를 강하게 감아쥐었다.

손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전후로 움직이는 마디는 엄지손가락과 손목을 잇는 뼈대이다. 이 부분을 꺾을 경우 손이 자동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다른 한 손은 마치 뒷짐 진 듯 등 뒤로 돌렸다.

현수는 시작과 동시에 주먹을 잡아당겼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팔이 펴지게 된다. 힘을 주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이잇!”

“끄으응!”

워낙 강한 상대이기에 순수한 근력으로 이기기엔 무리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자세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 대등한 듯 보인다.

하만은 자신보다 훨씬 여리게 생긴 현수를 단번에 넘기지 못하자 전력으로 힘을 기울이느라 얼굴이 시뻘겋다.

“으으으!”

“이이잇!”

하만은 넘기려 하고 현수는 버티는 상황이 잠시 지속되었다. 그러다 현수의 손이 점점 뒤로 넘어간다. 내기를 사용치 않고 순수한 근력만 가지고 버티기엔 상대가 너무나 강한 것이다.

“이겨라! 이겨라! 하만 이겨라!”

똥치기들이 합창하듯 소리친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더더더더!”

콰아앙―!

똥치기들이 합창하듯 소리를 지르는 바로 그 순간 주점의 문이 부서질 듯 열린다.

와르르르―!

쿵―!

일단의 기사와 병사들이 몰려들어 오는 순간 현수의 손등이 바닥에 닿았다. 그 와중에도 하만은 힘을 준 것이다.

“모두 동작 그만! 잠시 검문을 하겠다!”

“누구십니까?”

누군가의 물음이다.

“보면 몰라? 수도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경비대원들이다.”

“무슨 일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안에 라텐 백작님 시해범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모두 고개를 들어라!”

“네? 라텐 백작님 시해범이요?”

모두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약 한 달 전 제국의 지낭이라 불리던 라텐 백작이 암살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카이엔 제국이 라이셔, 크로완 제국과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대등 내지는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라텐 백작이라는 희대의 전략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간세를 내보내 적진의 사소한 것까지 파악한 뒤 전력을 세우니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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