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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99화 (599/1,307)

# 599

그런데 그런 라텐 백작이 죽었다.

분노한 황제는 긴급조치를 발령했다. 하여 수도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가는 것은 제한된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몽타주와 대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지난 1개월간 조사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주점에서 범인을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렇기에 헐레벌떡 출동한 것이다.

주점 안으로 기사와 병사들을 인솔하여 온 자는 쥬다인 남작이다. 제7수도경비대 대장이다.

참고로 카이엔의 수도엔 기사 다섯 명에 병사 100명씩으로 이루어진 경비대가 40개나 있다.

현재 이 주점 밖에는 세 개 경비대가 더 출동해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도주를 대비한 것이다.

13장 황태자와의 만찬

“너, 얼굴 들어봐. 흠, 아니군. 다음은 너. 아니네. 다음 너도 얼굴 들어봐.”

쥬다인 남작이 자신을 지목하자 현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발작적으로 소리친다.

“범인이 여기에 있다! 이놈을 잡아라!”

우다다다―!

기사와 병사들이 달려드는 순간 똥치기를 비롯한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물러난다. 순순히 포박을 받지 않으면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슈, 지금 왜 이러는 겁니까? 내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흥!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잘 걸렸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놈을 제압하라!”

기사와 병사들이 달려들려 할 때 현수는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만! 이보시오,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 있습니까? 왜 선량한 사람을…….”

“코리, 그것을 보여줘.”

“네, 대장님!”

착, 펄럭―!

기사 중 하나가 품에 손을 넣는가 싶더니 뭔가를 꺼내서 펼친다. 누런 양피지에 사람 얼굴이 그려진 몽타주이다.

그런데 그림 속의 인물이 현수와 아주 흡사하다.

“으잉? 어떻게 나를……!”

본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슷하였기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 해! 어서 체포해!”

현수가 멍한 얼굴로 몽타주를 보고 있을 때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이것 보시오. 난 오늘 여기에 처음 왔소. 그런데 어떻게 나를……. 헐! 말도 안 돼.”

그림 속 인물이 진짜 범인이라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뜻이기에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 보시오! 난 아니오! 난 무고하오! 난 범인이 아니오!”

현수가 소리치자 쥬다인 남작이 냉소를 터뜨린다.

“아니긴, 그림하고 완전히 일치하는데!”

“정말 아니란 말이오! 난 이곳에 오늘 처음 왔소!”

“네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목격자가 확인한다. 라텐 백작님의 돌아가실 때 현장에서 빠져나가던 범인을 본 사람들과 대질심문을 할 것이니까.”

“네?”

“어서 압송해!”

“네!”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꽁꽁 묶인 현수를 잡아끈다. 어른 손가락보다도 굵은 밧줄이지만 힘 한 번 주면 끊길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감옥 안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이 일의 전말은 이러하다.

라텐 백작은 한 달 전 전쟁 중인 크로완 제국 어쌔신 길드에서 파견한 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어쌔신은 살인을 하고도 바로 도주하지 않았다. 카이엔 제국의 병력 배치도 및 전술 지도 등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원래 크로완 제국 도둑 길드에서 수임했다. 따라서 도둑 길드에서 파견한 도둑놈, 아니, 도둑년이 할 일이다.

그런데 그 도둑년이 병에 걸려 누워 있다.

둘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많은 대화를 했다. 평범한 부부인 것으로 위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하는 내내 같은 방을 썼다. 그러다 정분이 났다.

어쨌거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아프니 그 일을 어쌔신이 대신한 것이다.

그러는 바람에 지체되었고, 결국 도주하다 발각되었다. 그때 라텐 백작의 아들과 가신들이 얼굴을 보게 되었다.

즉시 황성에 시해 사건이 보고되었다.

분노한 황제가 즉시 범인을 색출하라는 명을 내렸다. 목격자들은 자신이 본 바를 소상히 이야기했다.

이를 종합하여 몽타주를 그렸다. 지구로 치면 전형적인 서양 사람 얼굴이다.

이것을 보고 많은 화공들이 몽타주 사본을 그렸다.

TV 프로그램 중에 가족오락관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 중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이 있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쓰고 단어, 혹은 노래 가사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여섯 명이 게임을 하면 다음과 같이 변한다.

군고구마→그고구마→군고구마→군구마고→듣고말고→국군방송

몽타주 옮겨 그리기도 이런 식이다. 높았던 코는 낮아지고, 쌍꺼풀이 짙었던 눈은 홑꺼풀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전형적인 서양 사람은 사라지고 현수 같은 동양인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매일 몽타주만 그리던 화공은 너무도 힘이 들었다. 하여 마법사에게 돈을 주고 카피 마법으로 복사본을 만들었다.

이것이 경비대 기사들에게 뿌려졌다. 그것의 원본이 하필이면 현수의 얼굴인 것이다.

“들어가!”

감옥의 문을 열고 등을 떠민다. 현수는 순순히 들어갔다.

“이보시오, 난 범인이 아니란 말이오. 얼굴 확인한다는 사람은 대체 언제 오는 거요?”

“곧 올 거니까 기다려. 네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면 그 안에 있고 싶다고 해도 곧 풀려날 테니.”

병사가 나가곤 난 뒤 현수는 안쪽을 살펴보았다. 중범을 가두는 뇌옥이라 지하 3층이다. 당연히 몹시 어둡다. 하지만 어둠쯤은 뚫어볼 시력을 가졌기에 천천히 둘러보았다.

악취가 아주 심하다. 하루에 한 번 배변 통을 비워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어 퓨리파잉!”

공기 정화 마법으로 일단 냄새부터 제거했다.

뇌옥은 쇠창살로 이루어져 있다. 창살과 창살 사이의 간격은 주먹 하나 크기보다 조금 크다.

좌측 감옥엔 노인과 청년이 하나씩 있고, 우측엔 40대 사내만 셋이 있다.

서성이며 두리번거리자 우측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연다.

“이봐, 정신 사나우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앉아.”

“그래요? 알았습니다.”

바닥에 깔린 건초에서도 악취가 풍기기에 이것들을 한쪽에 모아두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바닥은 돌이다.

땅을 파고 도주할까 싶어 석판을 깔아둔 모양이다.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옆 감옥의 누군가가 입을 연다.

“자넨 무슨 죄로 잡혀 왔나?”

“라텐 백작 시해범이랍니다. 오늘 이곳에 처음 왔는데.”

“백작님을 시해했다고?”

“네, 귀족 시해죄랍니다.”

“최하가 무기형이군.”

“네?”

“재판에 회부되면 최하 무기형이 언도된다는 거네. 그렇게 되면 여기가 아니라 악명 높은 다른 감옥으로 옮겨지지.”

“그래요?”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원래 있던 녀석들도 시들한지 말을 걸지 않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다.

“모두 취침! 죄수들은 모두 취침하라!”

간수가 소리를 지르며 통로에 밝혀두었던 횃불들을 끈다. 이내 시커먼 어둠이 세상을 지배했다.

“헐!”

어이없었지만 뭐라 하진 않았다. 하룻밤쯤 감옥 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짙은 어둠 속인지라 아공간에서 침낭을 꺼내도 아무도 모른다. 조금 출출했기에 만들어두었던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배겼지만 견딜 만했다. 그렇게 감옥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모두 기상! 기상! 지금부터 인원 점검한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붙도록! 기상! 기상! 안 일어나? 기상!”

간수들이 횃불을 들고 다니며 각 방의 인원을 점검했다.

인원에 이상이 없자 통로에 횃불을 밝힌다. 그리고 감자를 넣고 끓인 멀건 스튜를 배급했다.

죄수들은 나무로 만든 식판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애원했다. 현수도 배급을 받았다. 냄새를 맡아보니 이건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반쯤 썩은 감자를 넣고 끓였는데 그것 말고 대체 무엇을 넣었는지 냄새가 고약하다.

“으와아! 맛있다. 맛있어.”

바로 옆 감방에선 그걸 먹느라 여념이 없다.

“역시 뇌물이 제대로 들어갔나 봐. 오늘은 살점도 좀 있네.”

죄수들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감옥은 없다 들었다.

그렇기에 뭔 소린가 싶어 스튜를 뒤적여 보니 진짜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다.

제국이라 뭔가 다른 건가 할 때 옆방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거봐, 매일 2실버씩만 들이면 이런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어때? 이젠 자네들도 돈을 낼 거지?”

“이깟 쥐고기를 먹는 데 하루에 2실버? 너무 비싸다.”

“아니면 매일 맛도 없는 시래기죽을 먹어야 해. 그러니…….”

옆방의 대화를 들어보니 간수들이 뇌물을 받는 모양이다. 양질의 음식을 먹기 위한 것이다.

그럼 주방에선 적당한 고깃덩어리를 넣어 조리한다. 쥐고기일 때도 있고 죽은 고양이를 넣을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길 듣고 있는데 다른 방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스튜 속에서 쥐꼬리가 나온 모양이다.

웃음이 나왔으나 이들에겐 절박한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들은 죄를 지어 갇힌 자이다. 본인처럼 억울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그렇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간수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한다. 이곳은 같은 층에도 통로마다 문이 있다. 웬만해선 탈옥할 수 없는 감옥인 것이다.

“이보시오. 대질한다는 사람은 왜 아직 안 오는 것이오?”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 감감무소식이라 물은 말이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찍소리 말고 기다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올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난 오늘 오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소. 그러니 빨리 불러주시오.”

“미친놈! 귀족가의 자제가 우리가 부른다고 빨리 오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언제 온다는 말입니까?”

“오늘 아침에 루텐 백작가로 전령을 보냈으니 빠르면 엿새 후에나 올 거야. 그러니 찍소리 말고 기다려. 알았어?”

“헐!”

현수는 어이가 없어서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감옥 안의 경험은 하룻밤으로 충분하다.

에어 퓨리파잉 마법으로 계속해서 공기 정화를 하고 있지만 식사 후 쏟아내는 죄수들의 그것 때문에 불편하다.

황태자와의 만남은 저녁때이다. 그러니 점심나절까지는 이곳에 있어도 되지만 오후가 되면 나가야 한다.

텔레포트 마법을 쓰면 간단하지만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제국의 수도에서 7서클 마법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에이!”

짜증이 났지만 애써 참았다.

그리곤 아공간에 담겨 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르센 대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아르센 백과사전이다.

이 책을 저술한 이는 300년 전의 신관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시던 이 신관은 가뭄 등으로 작황이 나쁠 때마다 파견되어 신성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것도 한두 해이다. 거의 매년 멀고 먼 곳까지 가서 신성력을 뿜어내고 파김치가 되어 되돌아오는 상황이 계속되자 지겨웠다. 하여 대체 왜 그런 현상이 빚어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마족이나 상서롭지 못한 고대 유물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안 가 거의 모두 위력을 잃었다.

하여 작황이 좋지 못한 이유는 딱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가뭄과 지력 고갈이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던 신관은 종자에 신성력을 퍼붓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렇게 하면 종자 자체가 신성력을 머금은 상태에서 파종이 된다. 싹이 나고 잎과 줄기가 늘어날 때까지 아주 만족스러웠다. 거의 모든 종자가 싹은 틔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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