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00화 (600/1,307)

# 600

그런데 너무나 많이 자랐다.

밀(Wheat)의 경우를 살펴보면 높이가 1m 정도가 보통이다. 그런데 1.5∼2m까지 자랐다.

뿌리가 더 깊어지면서 수분과 양분의 흡수력이 강하여 가뭄이나 척박토에서도 잘 견디는 건 좋은데 빨리 지력을 소모시킨다.

열매는 뿌리 하나당 30∼40g 정도 열려야 하는데 성장에 힘이 쏠렸는지 10∼20g 정도만 수확되었다.

이때부터 신관은 밀이라는 품종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높이 50∼60㎝, 한 뿌리 당 수확량 70∼80g짜리 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줄기가 성장할 영양이 열매로 옮겨간 것이다.

이 밀은 가이아 신전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라이셔 제국의 수도 인근 직영 농지에서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오오! 이건…….”

현수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 되었다.

이 밀의 종자를 얻을 수만 있다면 수확량의 대폭적인 증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 밀이 가능하다면 옥수수나 벼, 보리 같은 다른 작물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책의 후반부를 살폈다. 얼굴빛이 점점 밝아진다.

밀에서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품종 개량에 성공한 신부가 다른 작물을 연구했다는 글귀를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신관의 뒤를 이은 다른 신관들이 있다는 내용도 있다.

“라이셔 제국의 가이아 신전,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군.”

감옥에 갇혀 있는 시간이 없었다면 알아내지 못했을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육종 교배를 통한 생산량 증대를 바랐다.

북한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면, 그리고 생산량이 늘어난다면 굶어 죽는 이들이 줄어들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실리프 농산 및 농장에서 밀을 재배하여 국내 소요량 거의 전부를 공급할 수 있다면 곡물 메이저들의 횡포에 대항할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수가 내용을 꼼꼼히 살피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아차! 지금 몇 시지?”

몰두해 있느라 시간 가는 걸 모르고 있던 현수가 고개를 번쩍 든다. 황태자와의 만찬에 꼭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순찰, 또는 간수가 감방 앞을 지난다.

“이것 보시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간수장을 불러주시오.”

“왜? 대질신문할 사람 언제 오냐고 물으려고? 내가 아까 그랬잖아. 엿새는 있어야 한다고.”

“그게 아니라 내가 여기서 나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러오. 그러니 간수장을 불러주시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찌그러져. 퉤!”

침까지 뱉으며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있다간 안 되겠다 싶었다.

“플라즈마 볼!”

화르르르륵∼!

“허억! 마, 마법사셨습니까?”

현수의 손 위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 덩어리를 본 간수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다.

“가서 간수장을 불러오라. 안 부르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운 이것이 네놈을 태울 것이다.”

“히익! 아, 알았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간수는 시뻘건 화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것에 맞으면 어찌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만일 5분 이내에 간수장이 오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이 감방을 파괴하고 나갈 것이다. 그때 네놈이 눈에 뜨이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아, 알겠습니다. 기, 기다리십시오.”

후다다다닥∼!

달려가는 간수를 바라보는데 옆방에 있던 청년이 묻는다.

“마법사셨습니까?”

“그래.”

“죄, 죄송하지만 치료 마법을 아시는지요?”

“치료 마법?”

“네, 여기 계신 노인장이 아까부터 이상합니다. 몸에서 열도 많이 나고 숨도 거칠게 쉽니다.”

청년의 말에 시선을 돌려보니 다 죽어가는 듯하다.

이때 청년의 말이 이어진다.

“이분은 죄가 없습니다. 윗사람이 저지른 부정 때문에 억울하게 갇혀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

무슨 뜻이냐는 현수의 눈빛에 청년이 다시 입을 연다.

“이분은 정말 양심 있는 세리(稅吏)였습니다. 위에서 부당한 세금을 먹이면 그에 저항하여 우리 서민을 도우셨습니다.”

잠시 청년의 말이 이어진다.

감방에 누워 있는 노인은 나이가 52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 늙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심적 고통 때문이다.

수도 인근에 위치한 백작령 세리였던 노인은 국가에 바칠 세금을 착복한 죄로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백작령 재정관은 영지민들로부터 부당한 세금을 징수했다.

어디에 대고 확인할 능력조차 없는 영지민들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의 한마디 못하고 착취당했다.

부풀려서 얻은 이득금은 일정 부분 백작에게 상납되었고 반 이상이 재정관 및 그의 심복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었다.

헨리라는 성명을 가진 세리는 재정관의 악행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영지민들에게 부당한 징수를 당했음도 알렸다.

당연히 인심이 흉흉해졌다.

이에 재정관은 헨리를 세금 횡령죄로 고발했다. 하여 이곳으로 압송된 것이 다섯 달 전이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기에 재판에 회부되면 풀려날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언제 재판이 열릴지 알 수 없다.

제국은 지금 전쟁 중이다. 일개 세리의 세금 횡령을 다루는 재판을 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많다.

들어올 때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부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심적 압박으로 인한 의기소침이 원인이다.

게다가 첫날 신고식도 문제다. 그때 많이 맞았다. 그 결과 발목 골절이 발생되었는데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았다.

감방의 식사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하여 시름시름 앓았다. 어제 저녁 식사는 반쯤 썩은 감자를 조리한 스튜였다.

그걸 먹고 폭풍 설사를 했다. 그 결과 다 죽어가는 것이다.

“헨리를 이쪽으로 끌어오게.”

“네, 마법사님.”

청년이 헨리를 끌어다 놓는다. 몰골이 형편없다. 씻지 못해 더러운데다 피골이 상접해 있다.

“바지를 걷어 올리게.”

“네.”

앙상한 뼈가 드러난다.

“흐음! 심각하군. 컴플리트 힐!”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푸른빛 마나가 노인의 발목으로 스며든다.

“리커버리!”

샤르르르릉―!

또 한 번 마나가 노인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금방 안색이 달라진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청년이 계속해서 고개를 조아린다.

“자넨 누군가? 어떻게 해서 투옥되었지?”

“저는 헨리 아저씨와 같은 영지의…….”

청년의 이름은 대런이다. 헨리가 수도로 압송되자 부당하다며 시위를 벌였다. 혈기 왕성한지라 감옥 앞을 지키던 간수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이빨 세 개를 부러뜨렸다.

근무 중인 간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감방에 투옥되었다. 대런은 헨리를 보살피겠다며 같은 감방에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날마다 고함을 질러댔기에 결국 같은 방에 있게 된 것이다.

“그랬군. 알겠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런이 고개를 숙인다.

“오늘의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 성함이라도 알려주십시오.”

“하인스라 하네.”

“알겠습니다, 하인스님.”

“헨리는 곧 나을 것이네. 먹는 것만 잘 챙겨주면 될 거야. 자, 이걸 쓰게.”

팅∼!

1골드짜리 금화 하나가 대런의 품으로 날아갔다.

“헉! 이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대런이 고개를 조아릴 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이 지긋한 간수장과 부하들이다.

“나를 불렀나?”

“그래!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니 감방 문을 열어라.”

“열어라? 혹시 신분은 잊은 건 아닌가? 난 간수장이고 넌 죄수일 뿐이야. 마법사라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말을 하던 간수장이 손짓을 하자 뒤에 있던 사내 하나가 옆으로 나선다. 마나 링이 세 개뿐인 3서클 마법사이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입술을 달싹였다.

“플라즈마 볼!”

화르르륵∼!

현수의 손 위에 시뻘건 화염구가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헉! 저건……! 프, 플라즈마 볼! 저건 6서클 마법인데! 가, 간수장님, 저분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대마법사님입니다.”

“뭐, 뭐라고? 대, 대마법사? 6서클의?”

“네. 마, 마탑주님이 오시기 전엔 저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마탑주님이라니?”

“우리 영광의 마탑 탑주님 말씀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간수장이 대경실색하며 물러선다.

영광의 마탑은 카이엔 제국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초대 탑주인 헬리온 드 스타이발 후작은 7서클 마법사이다. 멀린에게 실수하는 바람에 나중에 싹싹 빌었던 인물이다.

그 영광의 마탑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나가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순순히 문을 열 것이냐, 아님 내가 부수고 나갈까?”

현수의 말에 간수장은 어찌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에서 잡아온 죄수이다.

죄목은 귀족 시해죄이다. 단순한 암살범인 줄 알았는데 6서클에 이른 마법사라 한다.

풀어줄 수 없다. 그런데 안 풀어주면 난리가 벌어질 듯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상부에 보고를 해야…….”

“시간은 5분. 더 이상 못 기다리니 얼른 다녀와라.”

“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간수장이 감방에 갇혀 있는 죄수에게 깊숙이 고개 숙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웃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 대단하십니다. 6서클 대마법사라니요. 영광입니다.”

대런이 존경 가득한 눈빛으로 또 고개를 숙인다.

“6서클 마법사 아닐세.”

“네? 그게 무슨……?”

대런은 현수가 무슨 술수를 부린 것으로 오인했다.

6서클 마법을 썼는데 그게 아니라면 7서클, 또는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현재 카이엔 제국의 영광의 마탑 탑주가 7서클 마법사이다.

이제 겨우 25세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어찌 마탑주를 능가하겠는가! 그렇기에 말로만 듣던 아티팩트 같은 것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간수장이 되돌아왔다.

이번에도 다른 인물을 대동한 채이다. 힐끔 바라보니 경비대 소속 기사들과 병사 다수이다.

그들의 전면엔 로브를 걸친 사내가 있다. 5서클 마법사이다.

“이, 이쪽입니다, 쉐런드 자작님.”

자작이라 불린 자가 감방 앞으로 오더니 현수를 바라본다.

“이자가 6서클 마법사라고?”

“네, 조금 전에 플라즈마 볼 마법을 썼습니다.”

3서클 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아닌 것 같은데?”

마법사들은 자신보다 화후가 낮은 자를 금방 알아본다. 반면 높은 자 가까이 가면 위압감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6서클 마법을 썼다면 그런 기분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에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것이다.

“네가 책임자인가?”

“뭐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분은 제국의 자작님이시다! 예를 갖춰라!”

경비대 기사가 발작적으로 일갈한다.

“자작쯤 되면 이건 알아보겠지?”

현수가 내민 것은 황태자가 주었던 반지이다. 무심코 반지를 받아 든 자작이 대경실색하며 물러선다.

“헉! 이, 이건……. 다, 당신은 누, 누구십니까?”

“나? 잠시 후에 황태자와 만찬을 즐길 사람.”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태자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아 명을 이행한다 해도 극진히 모셔야 한다. 반지를 갖고 있는 동안엔 황태자를 대리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태자와 만찬을 즐길 사람이란다.

이는 황태자로부터 친히 초청 받았음을 의미한다. 백작위를 가져도 황태자와의 만찬은 꿈도 못 꾼다.

그렇기에 대경실색하며 물러난 것이다.

“어, 어서 감방 문을 열어라!”

“헉! 네!”

간수가 얼른 다가와 문을 연다,

철커덕―! 촤르르르르!

“쉐런드 자작이라 했나? 나를 황태자에게 안내하라.”

“네.”

『전능의 팔찌』 25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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