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1
1장 헉! 마법사셨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나오십시오.”
쉐런드 자작이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그러는 가운데 현수는 감방 밖으로 나섰다.
이때 죄수가 도주할지 모른다 하여 뒤따라온 제7수도경비대 대장 쥬다인 남작은 안색이 창백해져 있다.
하늘 같은 황태자의 귀빈을 죄수로 몰아 하룻밤이나 냄새나는 감옥에 투옥했다. 이 사실이 전해지면 분명 처벌받게 될 것이다. 귀빈의 신분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진다.
하여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죄송하지만…….”
“죄송? 뭔가?”
현수의 시선을 받은 쥬다인 남작이 얼른 허리를 꺾는다.
“네, 황태자님과의 만찬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신분이 어찌 되는지 여쭤봐도 되는지요?”
지극히 정중하며 조심스럽다.
“흐음, 자네 제7수도경비대 쥬다인 남작이라고 했나?”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에 남작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진다.
“네? 아, 네. 쥬다인 남작 맞습니다.”
“자네들이 들고 다니는 그 몽타주는 엉망이네. 난 루텐 백작을 시해한 범인이 아닐세.”
“그, 그럼요! 당연히 그렇겠지요. 황태자님의 귀빈이신데 어떻게 귀족 시해범이 되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절절매는 쥬다인 남작을 바라본 현수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왜 이러는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내 신분이 궁금한가? 아마 오늘이 지나기 전에 전해질 것이니 이따가 확인토록 하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쉐런드 자작, 나는 이곳의 지리를 모르네. 그러니 길을 안내하게. 황태자님과의 약속 시간이 늦은 것 같네.”
“네? 아,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너무도 자연스런 하대이기에 쉐런드 자작은 얼른 고개를 숙인다. 현수가 쉐런드 자작의 뒤를 따라 감옥 밖으로 나가는 순간 털썩 주저앉는 인물들이 있다.
쥬다인 남작과 간수장, 그리고 현수에게 막말을 했던 간수이다. 모두들 이젠 죽는 일만 남았다는 표정이다.
“남작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황태자님의 귀빈을 귀족 시해범이라고 잡아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 그게… 미안하네. 나도 몰랐네.”
간수장은 평민이고 쥬다인은 귀족이다. 그럼에도 사과를 한다.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토록 순순히 사과를 한 이유는 자신 때문에 간수장이 엄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러니 양심상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목이 잘릴 수도 있는 거겠죠?”
“그, 그렇겠지. 저분의 신분이 뭐냐에 따라 달라질 걸세.”
쥬다인은 몹시 미안했다. 간수장과 간수는 평민이기에 목이 잘릴 확률이 매우 높다. 반면 본인은 귀족이기에 직위와 작위를 잃는 정도로 끝나게 될 것이다.
“휴우! 어쩐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니…….”
“가, 간수장님, 저, 저도 목이 잘리는 겁니까?”
간수가 벌벌 떨며 묻는다.
“아마 그렇게 될 거라 하시네. 가세. 아침이지만 한잔하지 않을 수 없네. 죽기 전에 술이나 진탕 마시세.”
“네? 아, 네. 근데 전 집에 노모가 계시는데 작별 인사 먼저 하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이 사람아, 집에 가서 말하면 무엇하나? 낙심이 크실 텐데. 그냥 술이나 마시다 같이 죽자고.”
“……!”
간수는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모양이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미안하네, 그간 자네를 살갑게 대해주지 못해서.”
“흐흑!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곁에 있던 간수들과 경비대 소속 기사 및 병사들이 슬쩍 얼굴을 돌린다.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도 있다.
이 두 말이 그대로 합쳐진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보게, 간수장, 가세. 오늘 술값은 내가 내겠네.”
“흐흑! 네.”
간수장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다.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하니 온갖 회한이 밀려들어서이다.
이때 쥬다인 남작이 부하들을 바라본다.
“제7수도경비대는 지금 즉시 돌아가서 각자 본연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도록 하라. 나 없이도 잘할 수 있지?”
곧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는지 쥬다인 남작의 음성 또한 촉촉하다.
“네, 대장님.”
“그동안 귀관들과 함께 생활하여 즐거웠다. 내가 우리 제7수도경비대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된 점은 사과한다.”
“아닙니다. 대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어제 몽타주를 펼쳐 들었던 코리가 눈물을 훔친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 나 때문에 임무를 게을리할 수 없으니 지금 즉시 순찰을 실시하도록 하라. 이건 내 마지막 명령이다. 알겠나?”
“네, 대장님.”
제7수도경비대 소속 기사와 병사 모두가 대답할 때 부대장이 입을 연다.
“경비대, 전체 차렷! 제7수도경비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모두들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고 군례를 올린다.
“바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장님!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부대장과 시선을 마주친 쥬다인 남작이 허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경비대, 뒤로 돌앗!”
처척―!
“앞으로 갓!”
척, 척, 척, 척, 척!
제7수도경비대원들이 사라지고 난 뒤 남은 건 간수들이다.
“간수장님…….”
“그래, 그동안 애써주어 고맙다. 내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마라. 대신 집에 있는 마누라와 우리 애들 좀 잘 부탁한다.”
처형장에 가기 직전인 듯 처연한 음색과 표정이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질게 굴었다는 거 안다. 미안하다. 늦었지만 사과하마. 용서해 다오.”
“……!”
감방 앞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에 죄수들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눈엣가시 같던 간수장과 간수가 목이 잘리게 생겼다.
자신들을 검거했던 제7수도경비대장도 어쩌면 같이 죽을 것이다.
죄수들 입장에선 환호작약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조금만 잘못해도 간수들이 엄청난 보복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현수는 쉐런드 자작의 뒤를 따르고 있다.
자작은 여기저기에서 경비를 서던 기사와 병사들이 군례를 올렸지만 일일이 대응해 주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황태자님과 만찬을 한다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뒤에서 부른다.
“잠깐.”
“네?”
“밤새 감옥에 있었더니 의복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네?”
대체 어쩌란 말인가?
황성 내로 접어든 지 오래이다.
주변에 의복을 취급하는 상점 등이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니 난감하다.
황태자를 만나는 자리이니 당연히 정갈해야 한다. 하지만 5서클 마법사라도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
하여 머뭇거리는데 마나 유동이 느껴진다.
“워싱! 크린! 워싱! 크린! 데시케이션!”
“……!”
현수가 선 채로 본인의 의복을 세탁하고 건조까지 시킨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분명 마법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잘못 본 것으로 치부했다.
마나 링이 있다면 느껴질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마법이다.
‘헉! 그, 그럼…….’
5서클 마법사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현수는 최소 6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라는 뜻이다.
5서클에게 자작의 작위를 주고 6서클은 백작위를 받는다. 7서클은 후작이고, 만일 8서클이 되면 공작이 될 것이다.
백작 정도면 고위 귀족이기에 황태자와 만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다 황태자가 준 반지를 떠올렸다.
그건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쉐런드 자작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혹시 마법사셨습니까?”
“그렇다네. 자, 이제 되었으니 가던 길이나 가세.”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기에 더 물을 수도 없다.
“아, 네. 이, 이쪽으로…….”
아까보다 더 공손하다. 황태자의 귀빈이고 자신보다 상위 마법사이니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쉐런드 자작의 안내를 받아 어려움 없이 제1황자궁에 당도했다.
자작은 제1황자궁 수문위병에게 반지를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조금 늦으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황태자님과 황태자비께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
위병 근무를 하던 자는 어제 현수의 얼굴을 본 바 있다.
그렇기에 반지를 내보인 쉐런드 자작이 아닌 현수에게 정중히 군례를 올리고 있다.
같은 순간, 쉐런드 자작의 마음은 복잡하다.
황태자뿐만 아니라 황태자비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제국의 황태자! 나중에 황제가 될 이가 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7수도경비대장에 의해 체포되어 밤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도 간수는 코웃음만 치며 묵살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목이 잘릴 일이다.
쉐런드 자작은 자신의 목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현수를 함부로 대했다면 본인도 성치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 안으로 드시지요.”
“허험, 그러지.”
쉐런드 자작의 안내를 받아 제1황자궁 접견실로 들어갔다.
기다란 탁자가 있고 상석엔 황태자 부부가 앉아 있다. 식탁엔 온갖 음식이 차려져 있고, 좌석엔 귀족들이 앉아 있다.
“하하! 어서 오게. 조금 늦었구먼. 자네를 기다렸네.”
“아! 그러셨습니까?”
환히 웃으며 다가서는 황태자를 보고 가볍게 고개 숙여주었다. 배석해 있던 황태자의 심복들 눈썹이 꿈틀거린다.
감히 일개 평민 주제에 황태자를 보고도 허리를 꺾지 않음에 분노한 것이다. 하여 누군가 발작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황태자가 먼저 손으로 제지한다.
“자, 앉지. 자네가 늦어서 음식이 좀 식었네.”
“유감이군요. 제가 이쪽 지리에 어두워서……. 저기 있는 쉐런드 자작이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지 않았다면 더 늦을 뻔했습니다.”
“그런가?”
황태자의 시선을 받은 쉐런드 자작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황공무지하다는 몸짓이다.
“아무튼 시장할 테니 식사부터 하지.”
“그러지요.”
현수는 자연스럽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황태자궁이라 그런지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이곳 역시 향신료가 없어 누린내가 난다는 것이다. 현대인인 현수에겐 몹시 역한 냄새이다.
“황태자 전하, 음식 맛이 매우 좋습니다.”
“하하! 그런가? 맛있다니 다행이군. 주방장을 바꾼 보람이 있네. 많이 먹게.”
황태자가 환히 웃는다.
“그런데 이곳엔 향신료라는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향신료? 그게 뭔가?”
“고기에서 나는 누린내를 잡아주는 일종의 조미료입니다.”
“오오! 그런 것도 있나? 고기에서 나는 누린내는 없앨 수 없는 거라 들었는데…….”
“괜찮은 향신료가 있는데 써도 되겠습니까?”
“그런가? 그럼 그러게.”
황태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수는 가방에서 후춧가루를 꺼내 음식에 뿌렸다. 그리곤 먹기 좋게 잘라 입에 넣는다. 확실히 누린내를 느낄 수 없다.
오물오물 씹어서 삼키자 황태자가 손을 내민다.
“그거 내게도 줄 수 있나?”
“그러지요.”
현수가 후춧가루 든 병을 내밀자 시종이 가져다준다. 황태자는 조금 전 현수가 했던 대로 스테이크 위에 뿌린다.
“너무 많이 치진 마십시오. 약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알겠네.”
후춧가루가 든 병을 내려놓은 황태자가 썰어놓은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예상대로 눈이 커진다.
“오오! 이런 맛이……!”
누린내가 사라지자 고기 특유의 향이 느껴진 모양이다.
“뮤엘라, 당신도 뿌려서 먹어보시오.”
“네, 전하.”
기다렸다는 듯 후춧가루 병을 냉큼 집어 든 황태자비가 자신의 스테이크에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