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4
뭘 알아야 받겠다 말겠다 말을 하겠는데 아무런 언질도 없기에 저도 모르게 물은 말이다.
“이것일세. 아공간 오픈!”
또 시커먼 공간이 일렁인다. 요한슨 드 스타이발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들은 생성시킬 수 없는 마법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공간에 담긴 마법서들을 꺼냈다.
이것은 6서클과 7서클 마법서이다.
모두 열세 권인 이것은 오랜 옛날 스타이발 후작이 스승인 멀린에게 바쳤던 것이다. 스승의 젊은 시절에 홀대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뜻이었다.
“이, 이건……!”
“그래, 스타이발 후작이 내 스승님께 드렸던 것이네. 이제 세월도 오래 흘렀고 두 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돌려줄 때가 된 듯하네.”
“가, 가, 감사하옵니다. 로드시여!”
카이엔 제국은 수백 년 동안 태평성대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마법은 점점 쇠퇴했다.
마법을 쓸 일이 많지 않기에 수련을 게을리한 것도 있지만 자질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마탑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300년 전, 당시의 마탑주가 마법 실험을 하다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불이 났다. 그때 많은 마법서가 불에 탔다.
하위 마법서라면 큰 문제가 없겠는데 하필이면 6서클과 7서클 마법서들이 집중적으로 소실되었다. 그것들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실험하느라 펼쳐놓은 때문이다.
아무튼 화재 진압 후 마법서 복원 작업이 시도되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당시의 마탑주는 화재 당시 큰 부상을 입었다. 그 결과 기억을 상실했다.
그 후 영광의 마탑은 총력을 기울여 마법서 복원을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온전한 6서클과 7서클 마법서가 마탑으로 되돌아왔다.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털썩―!
“아아! 로드시여, 하해와 같은 이 은혜를 어찌 갚겠사옵니까? 그저 깊은 감사를 드릴 뿐이옵니다. 저희 스타이발 가문은 영원히 대를 이어 로드께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로드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로드의… 충성하겠나이다.”
“로드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로드의… 충성하겠나이다.”
“로드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로드의… 충성하겠나이다.”
모든 마법사가 고개를 조아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황제 즉위식에서나 볼 만한 장면이다.
황태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마탑주인 요한슨 드 스타이발 후작은 늘 7서클 마법서가 없음을 애석해했다.
우연한 기회에 깨달음을 얻어 7서클이 되었지만 정작 7서클 마법은 두 가지만 시전할 뿐이다.
마법서가 없으니 익히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며 몹시 답답해했다. 하여 스스로 7서클 마법을 만들어보겠다고 연구를 했다.
그런데 마법이 어찌 쉽게 만들어지겠는가!
스타이발 후작은 단 하나의 7서클 마법도 창안해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7서클 마법이 즐비한 마법서들이 돌아왔다.
황태자로서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시간만 지나면 제국의 마법 전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렇기에 현수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마탑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이 마법서들은 본시 영광의 마탑의 것이었습니다.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진짜 감사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돌려받는 물건이 6서클과 7서클 마법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있어 이처럼 귀한 것을 무상으로 넘겨주겠는가!
열세 권의 마법서를 돌려줄 테니 1,300만 골드를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3조 원이다.
그렇더라도 카이엔 제국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다른 제국에 비해 마법 전력이 훨씬 낮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상이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스타이발 후작은 선조의 유품이라 할 수 있는 마법서를 받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가 펼쳐 보고 있는 부분엔 7서클 마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알고자 했던 마법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룬어의 배열 공식도 표기되어 있다.
다음이 7서클 마법이다.
라그나 블라스트(Lagna Blast), 플레어(Flare), 어스퀘이크(Earthquake), 블리자드(Blizzard), 소닉 버스터(Sonic Buster), 썬더 스톰(Thunder Storm), 파이어 스톰(Fire Storm), 아이스 스톰(Ice Storm), 윈드 스톰(Wind Storm), 텔레포트(Teleport), 소닉 바이브레이션(Sonic Vibration), 씨 블라스트(Sea Blaster) 등이다.
스타이발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격동에 잠겨 있다. 그의 곁에 앉은 부탑주는 6서클 마법서를 정신없이 살피는 중이다. 기록된 마법은 50여 가지이다.
이 중 영광의 마탑이 알고 있는 것은 불과 다섯 가지뿐이다. 무려 열 배나 많은 마법이 기록된 것이다.
마법사들의 이런 모습을 보던 현수는 싱긋 웃고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는 나중에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왜……? 오신 김에 만나시는 게…….”
“폐하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자칫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 피하려는 겁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대신 전해주십시오.”
“……!”
무엇을 전해주라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기에 황태자는 눈만 크게 든다.
“아드리안 공국은 왕국이 되더라도 카이엔과의 친분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좋은 우방국으로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는 것도 말씀입니다.”
“무, 물론입니다. 카이엔은 항상 아드리안의 우방입니다.”
드래곤 두 마리가 수호해 주는 국가에 대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은 단두대에 목을 들이미는 것과 다름없다.
브레스 한 방이면 수도가 쑥밭이 될 것이고, 거의 모든 귀족이 비명횡사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대답은 당연한 것이다.
황태자의 절절매는 태도를 본 현수는 생각을 굳혔다.
라세안과 제니스로 하여금 아드리안의 수호룡 선언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니 라세안을 못 본 지 꽤 되었군. 같이 다니는 동안 정이 들었나? 지금쯤 다 되었을 텐데.’
현수는 라세안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 절절매던 모습이 생각난 때문이다.
“아드리안으로 곧장 가실 겁니까?”
“아닙니다. 이곳에서 만나볼 사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누구인지요? 말씀만 하시면 즉각 대령시키겠습니다.”
황태자는 명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하라는 듯 시종을 바라본다. 이에 시종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곁에 있는 탁자에서 깃털 펜을 집어 든다.
“아닙니다. 불러서 만날 사람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네?”
대체 누구이기에 이실리프 마탑주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럴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위치라 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카이엔 제국과 라이셔 제국, 그리고 크로완 제국의 황제뿐이다.
이실리프 마탑을 제외한 일곱 개 마탑의 탑주는 매지션 로드가 간다는 소식만 들어도 곧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대기해야 한다.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드 마스터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이라도 경지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그랜드 마스터인 현수를 만나기 위해 의복 정제는 물론이고 목욕재계까지 기꺼이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르지 않고 찾아가야 한다니 정체가 궁금하다.
“저어, 그분이 뉘신지 알아도 되겠는지요?”
황태자가 묻자 모두의 이목이 쏠린다. 잘 들어두어야 하며, 현수가 만나려는 사람은 대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라고, 이레나 상단의 카이엔 지부장입니다.”
“상단 지부장이요? 상인을 만나러 가신다는 겁니까? 혹시 이실리프 마탑에 필요한 물목이 있어 그러는 겁니까?”
“……!”
조금이라도 친해지려는 황태자의 속내를 알기에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곧바로 말을 잇는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 몰라도 말씀해 주시면 저희 제국에서 기꺼이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스타이발 후작 또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매지션 로드가 귀하디귀한 마법서를 반환해 주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문제는 마법서의 가격이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마탑의 재정이 고갈되어 수년간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기꺼이 재정 고갈을 감수할 생각이다.
마법사에게 있어 돈보다 중요한 것을 딱 하나뿐이다. 상위 마법을 익힐 수 있는 마법서가 그것이다.
그렇기에 현수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를 메모리 마법으로 기록할 준비를 했다.
“물건이 필요해서 이레나 상단을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카이엔 제국의 뜻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참, 이거를 잊었군요.”
현수는 아공간을 열어 후춧가루 다섯 병과 후춧가루가 든 양철 깡통 열 개를 꺼냈다.
“이건 황태자비님이 보관하는 게 적합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서를 돌려주셨는데 또 이렇게 귀한 물건을 주시니 뭐라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황태자비가 공손히 머리를 숙인다.
“오늘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현수는 또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반짝거리는 인조 보석이 박힌 티아라를 꺼냈다. 몸체는 순은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 보기엔 싸구려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아르센에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황태자비의 눈이 커진다.
기왕에 환심을 사려 주는 것이기에 향수도 몇 병 꺼냈다.
황태자비는 너무도 향긋한 냄새에 혼이라도 나간 듯 멍한 표정이다.
“이실리프 마탑이 우정의 표시로 대 카이엔 제국 황태자비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곁에 있는 황태자는 티아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침 빛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황태자께도 선물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꺼낸 것은 마법이 인챈트된 검이다.
멀린이 영국의 건국 시조 아더에게 주었던 엑스칼리버처럼 컴플리트 힐이 인챈트되어 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검법 수련을 하라는 뜻이다.
인챈트된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이 검은 위기 상황 때 작동할 체인 라이트닝 마법 또한 걸려 있다.
현수의 설명을 들은 황태자는 감격한 표정이다.
마법이 인챈트된 검은 부르는 것이 값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만 헤어집시다. 다음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로드시여, 안녕히 가시옵소서!”
“마스터시여, 살펴 가시옵소서!”
마법사와 기사들이 일제히 예를 갖춘다.
“쉐런드 자작, 자네가 황성 밖까지 안내해 주겠는가?”
“다, 당연한 일입니다. 소인이 뫼실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쪽으로…….”
쉐런드 자작의 안내를 받아 황성 밖으로 나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예를 갖췄다. 이실리프 마탑주가 황성을 방문했다는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이다.
이렇게 황성 밖으로 나가는 동안 간수장과 간수, 그리고 제7수도경비대장 쥬다인 남작은 멍한 시선이다.
황제마저 반례해야 할 너무도 위대한 존재를 하룻밤 동안이나 감옥에 처박아뒀고, 함부로 대했으며, 막말을 했다는 사실에 미칠 지경이 된 때문이다.
사실 쥬다인 남작은 자리만 빼앗기고 근신 처분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귀족의 작위가 박탈되는 것은 어지간한 일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실리프 마탑주란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다. 작위를 빼앗기는 건 당연하고 재산과 목숨까지 잃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넋 나간 표정으로 있는 것이다.
“저어, 우리가 여기서 이럴 게 아닙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막말을 했던 간수이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늘같은 마탑주님께 불경의 죄를 범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데? 우린 이제 죽은 목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