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605화 (605/1,307)

# 605

간수장의 대꾸에 간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닙니다. 마탑주님께서 나오실 때 무릎 꿇고 빌어야지요. 혹시 압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실지. 안 그렇습니까, 남작님?”

“응? 으, 응,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성문 앞으로 가세. 가세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청하세.”

쥬다인 남작은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며 얼른 움직인다. 그의 뒤로 간수장과 간수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현수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현수가 황태자와 만나는 동안 감옥과 관련된 일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아드리안 공국이 있는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물론 이실리프 마탑의 열렬한 팬이 된다.

나중에 있을 일이다.

3장 여러 사람 놀래키기

“저어, 여기가 이레나 상단인가요?”

“그런데 누구슈?”

두리번거리던 현수의 물음에 상단 관계자가 퉁명스레 대답한다. 이곳은 이레나 상단의 카이엔 지부이다.

전 대륙의 물목을 거래하는 거대 상단이기에 전쟁 중인 상대국 한복판에서도 장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C급 용병 따위가 드나들 곳이 아니다.

“여기 지부장님을 뵈려고 왔는데 계신지요?”

“지부장님이요? 계시긴 한데… 우리 지부장님을 아는 사람인가요? 친분이 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름만 압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 지부장님 이름이 뭡니까?”

혹시 잡상인이 와서 청탁하려는 건 아닌가 싶은 모양이다.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라이셔 제국의 에델만 백작님의 차남이지요.”

“흐음, 알기는 제대로 알고 있구만요. 좋소이다. 안에 말씀을 드리지요. 근데 누구라고 합니까?”

“하인스라 전해주십시오.”

“하인스요? 좋아요. 무슨 용무로 왔다고 할까요?”

하인스라는 이름이 워낙 흔하기에 상인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언젠가 들어본 듯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테세린 지부의 카이로시아 에델만 드 로이어…….”

현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상인이 알았다는 듯 중간에 말을 끊어먹은 탓이다.

“아하! 테세린 지부장님이 보내서 오셨구만. 그럼 한식구네. 먼 길 오셨수다. 예서 조금 기다리시오. 지금 중요한 손님이 와서 상담 중이시우. 금방 끝날 거요.”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부드럽다.

말을 마친 상인은 현수의 반응은 기다리지도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졸지에 홀로 남게 된 현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상행에 필요한 샘플들이 진열되어 있고, 상담할 수 있는 소파 비슷한 것이 놓여 있다. 방금 자리를 비운 상인이 쓰던 장부는 펼쳐진 채 놓여 있다.

그렇게 5분쯤 시간이 흘렀다.

“어이, 테세린에서 온 양반, 이쪽으로 오슈!”

상인이 손짓으로 부르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선심 쓴다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날 따라오슈.”

상인의 뒤를 따라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요리조리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며 살펴보니 이곳은 뒤쪽 통로인 듯싶다.

여기저기 상품들이 적치된 창고들을 지나친 것이다.

삐이꺽―!

“에이, 이놈의 문은 맨날 이렇게 소리가 나.”

홀로 투덜거린 상인이 잘 따라오나 확인하려는지 뒤를 돌아본다. 당연히 바로 뒤에 있다.

“자! 다 왔수다. 이제 저 문만 열면 지부장님이 계시오.”

그러고 보니 조금 전과 달리 대리석 비슷한 돌이 깔린 통로에 서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제법 그럴듯한 문이 있다.

똑, 똑, 똑!

“누군가?”

“지부장님, 테세린 지부에서 온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안으로 들어오게.”

“네.”

문을 열고 들어서기에 따라서 들어갔다. 장부를 들여다보던 30대 중반인 사내가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일루신 에델만 드 로이어이다.

아주 잘생겼다. 지구에서라면 영화배우를 할 만한 용모이다. 혈통이 미남미녀 집안인 듯싶다.

“자넨가, 테세린 지부에서 온 사람이?”

“그렇습니다.”

“흐음, 먼 길 오느라 애썼네. 일단 자리에 앉지.”

“네.”

현수가 자리에 앉자 안내했던 상인은 뒤돌아 나간다. 일루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수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카이로시아는 잘 있나?”

“네, 잘 있습니다.”

“그 아이가 보낸 서찰은……?”

“서찰 같은 건 없습니다.”

현수의 대답에 일루신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그럼 말로 전하라 했나? 뭐지? 말해보게.”

“카이로시아의 전언이 있는 건 아닙니다.”

“카이로시아……?”

상행을 하곤 있지만 카이로시아는 엄연히 백작가의 여식이다. C급 용병 차림인 평민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귀족가의 영애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수가 카이로시아라고 하자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하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좋아, 그렇다면 무슨 용무로 날 찾았지? 내게 청탁할 것이라도 있어 찾아온 겐가?”

“청탁이라면 청탁이겠습니다.”

예상대로였기에 일루신은 얼른 말하라는 표정이다. 장부에서 확인할 것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제가 카이로시아와 결혼을 하려 합니다.”

“뭐? 잠깐, 잠깐만! 지금 방금 뭐라고 했나?”

뭘 지껄이는지 들어나 보자던 자세가 확연히 바뀌어 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감히 C급 용병 따위가 달라고 하니 화들짝 놀란 것이다.

현수가 처음부터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남세스러워서이다. 다시 말해 제 입으로 말하기 무엇하여 머뭇거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일루신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제가 카이로시아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결혼 전에 가족들을 찾아뵙는 게 도리인지라 이렇게 왔습니다.”

“뭐라고?”

일루신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말을 잇는다.

“그런데 자네의 이름이 뭔가?”

일전에 들은 바가 있기에 이름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하인스라 합니다.”

“하인스? 하인스라고? 가만, 그렇다면 혹시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님이신 겁니까?”

표정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자세 또한 달라진다.

동생으로부터 결혼하고픈 남자가 있다는 서찰을 받은 바 있다. 그 사내는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이다. 그리고 C급 용병 차림을 즐겨한다고도 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힘들어 직접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알고는 있으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찾아온 듯하다.

하인스는 제국의 고위 귀족인 백작 본인이고, 자신은 백작가의 둘째 아들일 뿐이다.

형님은 나중에 작위를 물려받아 백작이 되겠지만 자신은 아니다. 당연히 자세를 바로 해야 할 대상이다.

“맞습니다, 하인스 백작. 카이로시아와 결혼을 하려는데 오빠가 이곳에 계시다 하여 찾아온 겁니다.”

“아! 이거… 바, 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조금 전엔 누군지 몰라…….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루신은 현수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너무나 당황해서이다.

재빨리 밖으로 나간 일루신은 하녀에게 차와 다과를 내오라 지시했다. 그리곤 시종을 불러 음식을 준비토록 했으며, 현수가 쉬어갈 방을 청소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카이로시아가 보낸 서찰의 내용엔 하인스가 제국의 백작일 뿐만 아니라 온갖 신기한 물건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머리띠 등을 보내주어 아주 비싼 값에 팔았다.

아까 현수가 진열되어 있는 상품 가운데 머리띠를 보지 못한 것은 품절된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덕에 적지 않은 이득을 취했다.

아무튼 서둘러 되돌아와 현수의 맞은편에 앉은 일루신은 정중히 고개 숙인다.

“아! 이거 미안합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카이로시아는 잘 있습니까?”

특별히 할 말이 없기에 꺼낸 말일 것이다.

“그럼요. 아주 잘 있습니다. 건강하고요.”

“다행입니다. 카이로시아 그 아이와 결혼하게 되면 많이 아껴주십시오.”

“그럼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오면서 마땅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어디 좀 들렀다가 급히 오는 바람에…….”

“아, 아닙니다. 선물은요. 여길 보십시오. 온갖 상품이 다 있습니다. 선물로 무엇을 하시든 우리가 취급하는 품목일 겁니다.”

일루신은 벽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각종 상품을 가리켰다.

“카이로시아의 오빠이니 결혼하게 되면 손위 처남입니다. 저를 너무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아, 네.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오늘은 처음 뵈니……. 차차 나아질 겁니다.”

“네, 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수가 대답할 때 시녀가 들어와 다과를 내려놓고 나간다.

“저녁 식사는 하셨는지요? 아직 안 했다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숙소는……?”

“이따가 적절한 여관을 찾아보면 되겠지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여기에 영빈관이 있습니다. 여관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을 테니 쓰십시오.”

“네? 아닙니다. 저는…….”

현수가 거절하려 하자 일루신이 얼른 손사래를 친다.

“안 됩니다. 나중에라도 카이로시아가 알면 매제를 여관으로 보냈다고 타박할 겁니다. 그러니 이곳에 머무르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신세를 지지요.”

“신세라니요.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곧 가족이 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일루신의 태도를 보니 오빠로서 결혼에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듯하다. 아마도 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지요. 저도 아직은 어색하여 형님이라는 소리를 못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

고위 귀족인 백작이 형님이라는 소리를 한다는 말에 진땀이 솟는지 일루신이 이마를 훔친다.

“그나저나 먼 길을 어떻게 왔습니까? 참, 수행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도 저녁 식사를 한 겁니까?”

“수행원은 없습니다.”

“그럼 그 먼 길을 혼자서 왔다는 겁니까?”

일루신이 대경실색한 표정을 짓는다.

미판테 왕국의 변경인 테세린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산과 강, 들판을 수도 없이 넘어야 한다. 숲속의 몬스터도 위험하지만 산적이나 불한당들 또한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현수는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허리춤에 칼을 매고는 있지만 강해 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그 먼 길을 수행원 없이 혼자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차림을 본다.

“아! 그럼 용병을 고용해서 왔나 보군요. 그 용병들은 다 돌려보낸 겁니까?”

“아니요. 용병 없이 혼자 왔습니다.”

“헐!”

일루신은 믿을 수 없다는 소리를 낸다. 어찌 왔을까 싶은 것이다. 모르긴 해도 천신만고 끝에 왔을 것이고, 발바닥은 많이 걸어 부르텄을 것이다.

하여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낸 것이다.

이때 누군가 노크를 한다.

똑, 똑, 똑―!

“누군가?”

“지부장님, 급한 보고가 있어 왔습니다.”

아까 현수를 데리고 온 자이다.

“지금 손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걸 모르나?”

“압니다. 그래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긴급하게 보고 드려야 합니다.”

“중요한 일? 좋아, 들어오게.”

“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예상대로 아까 그자이다.

“그래, 긴급 보고 사항이라는 것이 뭔가?”

일루신의 시선을 받은 상인이 얼른 허리를 숙인다.

“지부장님, 지금 수도에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난리? 전쟁이 이곳까지 번졌단 말인가?”

일루신이 화들짝 놀란다.

전쟁은 상인에게 큰 부를 축적하는 기회일 수 있다. 반면 쫄딱 망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니구요, 수도에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님께서 오셨다고 합니다.”

“뭐? 이,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님? 9서클 대마법사에 그랜드 마스터가 되셨다는 그분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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