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6
조금 전보다도 훨씬 더 놀란 표정이다. 하여 말까지 더듬는다.
“네에, 오늘 황태자님과 만찬을 같이하셨다고 합니다.”
“그럼 황성 안에 머물고 계신단 말인가?”
“아닙니다. 조금 아까 밖으로 나가셨다고 합니다. 근데 종적이 묘연하답니다.”
“종적이 묘연해?”
일루신의 반문에 상인의 보고가 이어진다.
“네에, 지금 영광의 마탑 탑주이신 스타이발 후작님께서 마탑의 모든 마법사를 풀어 매지션 로드이신 그분을 애타게 찾고 있다고 합니다.”
“왜?”
“왜긴요. 매지션 로드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냥 보내드리겠습니까? 마탑에서 식사라도 대접을 해야…….”
“아! 그래, 그렇겠군.”
일루신이 고개를 끄덕일 때 상인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후퍼 공작님께서도 모든 인원을 풀어 마탑주님을 찾고 계십니다.”
“후퍼 공작님은 왜?”
황태자의 외조부인 후퍼 공작은 제국의 검이라는 칭호를 듣는 소드 마스터이다. 그가 왜 마탑주를 찾느냐는 표정이다.
“마탑주님은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잖습니까. 소드 마스터이시니 가르침을 청하려…….”
“그래, 그렇겠어.”
일루신은 또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마탑 사람들이 지금 상단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 사람들이 왜?”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인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현수 때문이다.
“그 사람들 참 사람 귀찮게 하는군요.”
“네에? 그 사람들이라니요? 영광의 마탑입니다. 게다가 마탑주님이 직접 명령하신 일입니다.”
상인의 힐문1)에 일루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아무리 제국의 백작 본인이라곤 하지만 마탑주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마탑주는 제국의 후작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방금 하신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
일루신의 말에 상인의 눈이 커진다.
테세린에서 왔다는 C급 용병 차림의 사내에게 지부장이 공대한다는 느낌이 든 때문이다.
“아! 참 인사드리게. 내 동생 카이로시아의 부군이 될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님이시네.”
“네에? 누, 누구요?”
“코리아 제국의 하인스 백작님이시라니까. 뭐하는가? 어서 정중한 예를 갖추게.”
“헐! 아차! 죄, 죄송합니다. 처음 뵙습니다.”
얼른 고개를 숙이는 상인은 뭔가가 생각날 듯하면서 생각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때였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난다.
쿵, 쿵, 쿵, 쿵―!
“지부장님! 지부장님!”
“아! 오늘 대체 왜들 이러나? 자넨 또 왜?”
일루신의 시선을 받은 이는 갑옷을 걸치고 있다. 그런데 가슴에 이레나 상단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상단에서 직접 양성한 무사인 듯하다.
“헉헉! 지, 지부장님, 당장 밖에 나가보셔야겠습니다.”
“밖에?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네. 지금 밖에 여, 영광의 마탑주님께서 와 계십니다.”
“뭐어? 누, 누구라고?”
일루신은 오늘은 이상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상시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왜?”
“그야 저는 모르죠. 아무튼 나가보십시오. 스타이발 후작님께서 마탑의 마법사님들을 잔뜩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 알았네. 가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일루신이 막 밖으로 나가려 할 때이다.
“안 나가도 됩니다.”
“뭐라고요? 영광의 마탑 탑주님이 직접 오셨다는데 어찌 그런 말을…….”
일루신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현수가 방금 들어온 무사에게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스타이발 후작에게 돌아가라 전하게.”
“네에? 뭐라고요? 그게 무슨……. 감히 마탑주님에게……. 지부장님, 이 사람은 누굽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다. 무사의 말에 일루신 또한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는 눈빛을 보낸다.
“가서 전하게. 내일쯤 내가 마탑을 방문할 것이니 돌아가라고. 안 그러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네에?”
무사는 눈만 크게 뜬다. 방금 현수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가는 파이어 계열 마법으로 통구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라이트닝 계열 마법으로 감전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지부장님의 집무실에 있는 사람이니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좋습니다. 그런데 뉘시라고 말씀을 전할까요?”
“가거든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가 그러더라 전하게.”
“허억!”
“히끅!”
“네에? 이, 이, 이실리프의……?”
셋 모두 대경실색한다. 그중 상인은 너무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한다.
“히끅, 히끅, 히끅!”
“자, 잠시만요. 바, 바, 방금 뭐, 뭐, 뭐라고, 바, 방금 뭐, 뭐라 하셨습니까?”
무사의 물음에 현수는 태연한 신색으로 대꾸했다.
“이실리프 마탑의 마탑주가 그러더라고 전하게. 스타이발 후작에게 내일 찾아갈 테니 돌아가라고.”
“저, 저, 저, 정말입니까? 저, 정말 이실리프 마, 마탑의 탑주님이시라는 겁니까?”
이번에 심하게 말을 더듬은 이는 무사나 상인이 아니라 일루신이다. 갑작스레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심하게 말을 더듬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실리프 마탑의 제2대 마탑주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 내 이름입니다.”
“헐! 세상에, 맙소사! 세상에, 맙소사!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털썩―! 털썩! 털썩―!
일루신과 무사, 그리고 상인이 차례대로 주저앉는다.
너무도 엄청난 소리에 다리의 힘이 단번에 풀린 때문이다.
현수를 안내했던 상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든다. 너무도 놀라 소변을 지려 버린 것이다.
“저, 정말이신 겁니까? 농담 아니지요?”
일루신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러니 스타이발 후작은 보내세요.”
“아, 알겠습니다. 즉시 명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무사가 후다닥 튀어나간다. 이곳으로 올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이다.
쿵, 쿵, 쿵, 쿵, 쿵, 쿵―!
“소, 소인이 마탑주님을 알현하옵니다.”
“마탑주님을 뵙게 되어 일생의 광영이옵니다.”
상인과 일루신이 차례로 무릎을 꿇으며 한 말이다.
“처남, 이러지 마십시오! 곧 나보다 손위 사람이 되실 텐데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네? 아, 네에. 그래도…….”
“그냥 편히 앉으세요. 그쪽도 이제 그만 일어나고.”
“감사하옵니다, 마탑주님!”
자리에서 일어난 상인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저, 저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백작님께서 마탑주시라니요? 그리고 진짜 카이로시아와 결혼을 하실 겁니까?”
“물론입니다. 마탑주 본인 맞습니다. 그리고 카이로시아 에델만 드 로이어는 나의 정실부인이 될 겁니다.”
“아……!”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일루신은 분명 지구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당첨금 1,000조 원짜리 로또 복권에 단독 당첨된 느낌을 받아 뇌가 텅 비어 버렸다.
하여 눈은 크게 뜨고 입도 크게 벌리고 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지부장님, 지부장님! 우리 이제 대박 났습니다!”
상인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직접적인 위해는 없었지만 전쟁 당사국인 라이셔 제국의 상단이기에 적지 않은 곤란을 겪는 중이다.
단골은 떨어져 나갔고 필요로 하는 물목은 사들이기 어려웠다. 이레나 상단 카이엔 지부는 나날이 쪼그라들던 중이다.
다행히 테세린 지부에서 머리띠와 커피잔 세트 등을 보내 큰 고비는 넘겼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기에 비싼 값에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가 이레나 상단의 가족이 된다고 한다. 이제 이레나 상단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성이 없는 몬스터는 아니겠지만 이제 타국의 산적들조차 이레나 상단의 행렬은 덮치지 못한다.
매지션 로드의 가족이 운영하는 상단을 건드리면 세상 모든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요절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딱 하나밖에 없는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기에 모든 검사들이 달려들어 도륙 내려 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레나 상단은 이제 대륙 최고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사위 하나 잘 둔 셈이다.
“그, 그건… 고, 고맙습니다.”
일루신의 뜬금없는 말에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우리 카이로시아와 결혼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기뻐 표정을 감출 수 없는지 일루신은 입이 찢어지도록 환히 웃는다.
“에구! 귀한 여동생을 주시는 건데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카이로시아랑 꼭 결혼해 주십시오.”
“네? 아, 네. 그럼요. 당연하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카이로시아는 제 정실부인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루신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절을 한다. 쓴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는 없다.
이미 늦은 시각이기에 현수는 영빈관으로 안내되었다. 물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일루신과 만찬 같은 아침 식사를 했다. 온갖 요리가 다 차려진 것이다.
“마탑주님,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성의를 생각해서 많이 드십시오.”
“네, 그러지요. 정말 먹음직스럽네요.”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예상대로 냄새가 난다.
식사를 하면서 테세린과 유카리안 영지와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데니스 백작이 죽었다는 말에 일루신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거금 15,000골드나 꿀꺽하곤 내쫓김을 당해 얼마나 분했는지 모른다.
테세린의 영주 로니안 자작이 마나석 광산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이레나 상단에 주었다는 말에 또 한 번 웃는다.
금광보다도 더 귀한 것이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식사를 마칠 때 즈음엔 보다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즐겁고 유쾌한 소식을 전해줘서일 것이다.
식사 후엔 후춧가루와 소금을 넉넉하게 꺼내주었다.
이 밖에 머리띠도 더 꺼내놓았고, 커피잔 세트도 줬다.
그렇지 않아도 없어서 못 팔던 물건들이다. 일루신의 입이 좌우로 벌어진다.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결혼식엔 오실 거지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만사 제쳐놓고 꼭 가겠습니다. 오빠가 어찌 여동생의 결혼식에 빠지겠습니까.”
일루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레나 상단을 나섰다. 그리곤 주점으로 향했다.
삐이꺽―!
“어서 옵… 헉! 마탑주님이시다!”
상투적인 인사말을 내뱉으려던 꼬맹이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곳에서 귀족 시해죄로 잡혀갔던 청년이 이실리프 마탑의 탑주이며 매지션 로드이고 그랜드 마스터였다는 소문이 이미 번진 상태이다.
하여 주점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위대한 존재가 잠시라도 머문 곳인지라 찾아온 것이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전장의 학살자라 불리던 토마스도 있다.
미친 오우거라 불리는 똥치기 두목 란돌프도 있고, 그의 아우인 레이먼도 있다. 현수와 팔씨름을 했던 하만도 있다.
“위대하신 존재를 뵈옵니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쿵―!
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기에 진동이 느껴진다.
“끄응!”
이런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현수가 살짝 이맛살을 좁혔다. 이런 대우는 조금 불편하기 때문이다.
“전장의 학살자 토마스가 그랜드 마스터인 위대하신 존재를 알현하옵니다. 저의 무례를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끄응, 토마스!”
사람들의 시선이 휘둥그레진다. 토마스가 전장의 학살자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인다.
4장 나랑 같이 갈래요?
소드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를 굳이 산에 비교하자면 그랜드 마스터는 높이 8,848m짜리 에베레스트(Everest)의 정상이다.
이에 비교하는 소드 마스터는 높이 1,915m짜리 지리산의 7부 능선 어디쯤 될 것이다.
단순 높이 비교가 아니라 산의 체적을 비교하는 것이 둘의 차이이다. 둘 다 정사면체라 여기고 체적을 계산해 보자.